[질라라비/202211] 여기, 마루시공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 최우영

by 철폐연대 posted Nov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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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여기, 마루시공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최우영 • 한국마루노동조합 위원장

 

 

 

여기서 그만두든지, 아니면 싸우든지

 

3년 전 여름날, 마루시공 초보였던 저는 부산 현장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늦은 밤까지 작업하고 있는데 문득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왜 나는 이 쓰레기를 치우며 일해야 하지? 왜 나는 다른 공정 짐까지 치우며 일해야 하지? 왜 나는 대변까지 치우며 일해야 하지? 왜 나는 다른 작업자처럼 5시에 집에 가지 못하고 일하고 있지? 왜 난 집 떠나서 객지에서 지금 뭘 하고 있지? 여긴 어디지? 라는 불만과 불평에서부터 지금의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주변의 오래된 마루시공자들의 얘기를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마루 초보인 저에게는 무조건 열심히 일만 하면 돈이 된다는 말보다 오래된 시공자들의 진실한 현장 얘기가 더 절실했습니다. 뭘 알아야 뭐가 잘못되었는지, 뭘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후 1년간 일감을 주는 관리자를 따라 부산, 이천, 평택, 파주, 광주, 동탄, 대구 등 전국 현장을 누볐습니다. 가는 곳마다 같이 작업하는 시공자를 찾아가서 묻기도 하고 잠시 들린 시공자를 붙들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제가 들은 마루시공자들의 현실 얘기는 마루 초보인 저로서는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건설현장 마루시공은 원래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불만과 불평들의 모든 원인은 건설회사와 원청, 그 밑의 관리자들의 불법과 편법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노예처럼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그만두든지, 아니면 싸워야 하는지…. 일주일의 고민 끝에 저는 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노조가 생겨서 기뻤으나…

 

정말 열악한 작업환경, 주 80시간의 장시간 노동시간, 최저임금…. 30년간 유도를 해서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지만 계속 나빠져 가는 건강 문제 속에서 계속 일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틈틈이 근로기준법, 노동법, 노조법 등을 공부했습니다. 제대로 싸워 보려면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변수 아닌 변수가 생겼습니다. 바로 마루시공자들에게도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기쁜 마음에 저는 노동조합이 생겼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에 바로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활동하기로 맘먹었습니다. 전국에 퍼져 있는 마루시공자들의 유일한 소통공간인 밴드에서 글도 남기고 함께 투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노조는 제 생각과는 다르게 합법적이지도 절차적이지도 않고 무조건 임금 인상에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직접 임금을 주는 원청이 아닌 그 밑의 관리자들을 상대로….

 

답답한 마음에 노조 운영진과 조합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직접 임금을 주는 원청을 상대로 정상적인 교섭을 해야 하며, 당장의 평당 임금을 높이기 위해 관리자들을 만나는 것은 구걸하는 것에 불과하며, 근로기준법 안에서 마루시공자들의 지위를 찾아야 한다고….

 

그렇지만 제 말은 힘든 여건 속에서 하루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시공자들에게는 노동환경, 근로기준법보단 당장의 500원, 1,000원이라는 임금 인상이 더 절실했던 터라 제 말은 공허한 메아리로 제게 되돌아왔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냥 다른 시공자처럼 일만 하면 되나? 알아서 하겠지? 싶은 생각에 조합도 탈퇴하고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냈습니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다시 노조를 만들다

 

그렇게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났고 뉴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의 활동 소식이었습니다. 다들 배달직이라면 짜장면 배달직이나 음식 배달하는 오토바이 폭주족들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하찮게 여겼던 그런 노동자들조차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찾고 있는 사실에 정말 놀랐습니다. 양대 노총에도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뭉쳐서 하나씩 권리를 되찾아가는 모습에 저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었습니다.

 

작업하는 현장마다 만나는 시공자들마다 우리도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만들어 우리의 권리를 찾아보자며 설득했습니다. 당시 마음만 앞서고 노조법 절차도 모르는 기존 노조에 불신과 불만이 가득했던 시공자들이 제 말에 동참하며 응원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노조의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기 싫어서, 신중하고 또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조언을 구하려고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님에게 연락했습니다. 세 번이나 전화, 문자를 보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유비는 삼고초려도 했는데, 십고초려도 못 하겠냐 하는 생각에 네 번째 문자를 했고, 드디어 연락이 왔습니다.

 

전 긴 시간 마루시공자들의 고충을 얘기했고, 박 위원장은 저를 도와줄 사람이 한 명 있다며 전화번호 하나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권리찾기유니온의 한상균 위원장님이었습니다.

 

그 즉시 약속을 잡고 서울로 달려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기분은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습니다. 새벽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와중에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눈 대화를 몇 명의 마루시공자들에게 알렸고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새로운 노동조합 설립을 알렸고,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상의 우리의 권리를 알리는 데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무조건 바꿀 수 있다는 제 기대와는 달리 시공자들에게는 아직도 당장의 임금 인상이 중요했으며, 기존 노조와 관리자들의 오해와 험담으로 추진력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상균 위원장님이 기자회견을 한번 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2022년 6월 23일 짧은 기사 한 줄이었지만 기자분들 앞에서 마루시공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3. 본문사진1.jpeg

2022.06.23. ‘가짜 5인미만 공동고발 2주년! 가짜 3.3 실태조사 개막 기자회견’에서

당사자 발언하는 모습. [출처: 권리찾기유니온]

 

 

마루시공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저의 글을 읽고 계시는 동지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리 마루시공자는 건설업에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건설 현장의 마지막 공사이며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마룻바닥을 시공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실의 마루시공자는 건설회사는 일용근로자로 신고하고, 원청이 저희에게 임금을 지급하며, 개인사업자인 관리자가 저희를 프리랜서로 신고하는 말도 안 되는 다단계식의 구조 속에서 주 70~80시간을 일하며 최저임금 수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일해야 하나? 라고 물으신다면, 다른 노동자처럼 주 52시간을 일하면 최저임금도 못 벌기 때문입니다.

 

4대 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은 저희 마루시공자들의 건강 문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하루 13시간 이상 앉아서 작업하는 모든 마루시공자는 무릎, 손목 관절과 허리디스크에 무리가 와서 진통제를 먹으며 일하고 있으며,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한 현장 여건 속에서 여성 시공자는 방광염에 만성변비와 조기폐경으로 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건강권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만일 작업하다 다쳐서 산재 처리를 하려 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다음부터 현장에서 일을 못 한다는 건설회사와 원청관리자의 말에 몸이 잘려 나가지 않는 이상 스스로 치료하고 작업을 해야 합니다.

 

별도의 휴게시간조차 없으며 공사 기간에 쫓기면 휴일과 선거일, 국경일에도 일해야 합니다. 마루시공자에게 근로기준법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임금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으며 임금명세서도 근로계약서 작성도 없기에 작업하는 현장 세대별 임금이 얼마인지도 알려 주지 않고, 임금 날짜도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정부에서 2007년부터 시행했던 매일 8시간 작업하면 적립해 주는 건설노동자 퇴직공제금조차 15일 이상 적립하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관리자 말에 속아서 이의신청도 하지 못한 채 저희 마루시공자는 정확한 적립일수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약 2,000여 명이 하루 적립금액 3,000원(현재 4,000원), 10일만 적립이 되지 않아도 6,000만 원, 10년이면 72억입니다. 이 돈은 어디로 갔습니까? 건설회사입니까? 원청회사입니까?

 

임금은 더 큰 문제입니다. 평당 1만 원의 임금을 받는 마루시공자에게 세대별 1평에서 2평 정도의 칼질(평을 잘라먹기)은 관행입니다. 이것 또한 2,000명의 시공자가 한 달에 시공하는 세대가 평균 20세대면, 한 평 1만 원만 칼질해도 4억이며 10년이면 480억입니다. 두 평이면 960억입니다. 이 돈은 또 어디로 갔습니까? 건설회사? 원청? 하청? 관리자? 대체 누가 저희의 임금을 가져갔습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건설 게이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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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3. ‘마루시공 노동자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 접수 기자회견’에서.

[출처: 권리찾기유니온]

 

 

근로기준법 쟁취를 위해

 

이러한 구조 속에서 20~30대의 시공자는 찾아볼 수 없으며 숙련공까지 현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엔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주노동자들은 소통이 더디기 때문에 적응기가 더 많이 필요하고, 그러면 자연히 결과물의 퀄리티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전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겁니다.

 

이 모든 피해는 결국 수억 원의 돈을 지불하고 사는 입주민과 하자 발생, 안전사고가 늘어 나는 건설회사에 돌아갑니다. 이 코스를 정확히 밟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 대우조선 사태에서 보았듯이 건설업도 원청의 책임회피와 다단계식 구조, 숙련공의 고령화 등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그늘 속에 있는 고용노동부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대한민국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5,000여 명의 전문 마루시공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을 50년이 지난 지금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마루시공자가 근로기준법 안에서 건강한 몸으로, 정당한 근로시간 안에서 정당한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저희 한국마루노동조합은 2022년 10월 13일 서울노동청 앞에서 근로자지위확인 및 고발진정을 통해 투쟁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저희는 근로기준법을 쟁취하는 그날까지 앞으로도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많은 동지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을 바랍니다. 단결!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