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12] 오늘도 만나러 갑니다! / 곽이경

by 철폐연대 posted Dec 06,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발바닥 일기

 

 

오늘도 만나러 갑니다!

 

 

곽이경 •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실장

 

 

 

민주노총 커피트럭이 간다!

 

점심시간 상암동 문화광장. 주요 언론사 및 방송미디어 회사들이 빙 둘러싼 이곳에서 민주노총 커피트럭 문을 열었다. 오늘은 언론노조와 함께 미디어비정규직노동자를 만나는 것이 주목적이다. 방송미디어 환경 변화와 함께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겼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유튜브용으로 편집하여 올리는 짧은 영상클립은 인기가 많지만, 이걸 만드는 노동자들은 방송사에서 일하면서도 방송사에 직접고용되지 않고 3개월, 6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최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커피트럭에 길게 줄이 섰다. 한쪽에서는 버스킹을 하며 중간중간 오늘의 캠페인을 알렸고 우리는 피켓을 들거나 유인물을 나눠 주었다. 사람들은 기다리면서 충분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서명, 노조가입홍보 영상 시청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청년층이 많았지만 인근 건물 청소노동자분들도 민주노총 커피트럭에 관심을 보였다. 공영방송 정치독립 국회청원도 함께 진행했는데 ‘MBC, 전세기에서 내려!’ 사건 이후로 부쩍 높아진 관심을 느낄 수 있다. 간만에 장터같이 활기찬 분위기에서 선전전을 마무리했다.

 

 

3. 본문사진1.jpg

2022.11.17. 상암문화광장 미디어비정규직 선전전. [출처: 민주노총]

 

 

‘커피트럭이 간다!’는 스쳐 지나가는 선전전이 아니라 머물게 하면서 관심을 갖게 하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또한 요즘 친숙한 커피트럭을 통해 민주노총에 대한 마음의 벽을 낮추고자 했다. 물티슈, 볼펜, 수첩 등 다양한 선전물품을 들고 거리에 나서지만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금속노조가 상반기 커피트럭 사업을 먼저 시도했다. 사업에 참여한 간부와 조합원들이 우선 신이 났다. 상담이 늘고, 미조직노동자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좋은 평가가 이어졌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도 민주노총 전략조직기금을 활용하여 각 가맹조직과 함께 여러 직종·업종의 노동자를 찾아가는 커피트럭 선전전을 벌였다.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후기가 도착했다.

 

민주노총은 10월 하순부터 한 달간 민주노총 집중홍보사업을 하기로 했다. 이주노조와 13개 지역본부가 참여하여 총 15회의 커피트럭 선전전 계획을 세웠다. 11월 12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노동자들이 무엇 때문에 서울로 모이는지 알릴 필요도 있었다. 커피트럭 시작과 함께 민주노총 유튜브에는 “여기저기 다녀봐도 일하는 사람이면, 결국은 민주노총”이라는 슬로건으로 민주노총 홍보영상이 올라갔다. 영상의 주인공은 배달라이더, 물류센터노동자, 콜센터노동자, 돌봄노동자 조합원으로, 우리 주변 평범한 노동자이면서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을 선택한 이유를 담으려 했다. 같은 시기 전국(수도권,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지하철에도 “결국은 민주노총” 슬로건으로 광고를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집중적으로 미조직노동자, 시민들을 만나며 민주노총을 알리는 것이다.

 

커피트럭은 거들 뿐, 진짜 힘은 여기서

 

첫째, 커피트럭을 통해 다양한 노동자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금속노조는 지역 미조직사업의 일환으로 커피트럭을 운영하면서 전국 각지의 공단을 찾았다.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가 선전전을 진행했을 때는 근처 쿠팡물류센터와 판토스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왔고 호응도 매우 좋았다. ‘금속노조 화이팅!’을 외치는 분들도 있고 ‘노동자들 위해 좋은 일한다’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분들도 많았다. 공단에는 제조업만 있지 않다. 음식점 노동자, 청소노동자, 인근의 작은 사무실과 업체, 물류센터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이 일한다.

 

둘째, 커피트럭은 마음의 문턱을 낮춘다.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민주노총도 알릴 수 있고 옆에 차린 상담부스에 상담하는 분들도 늘었어요.” 무료커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적어도 수십 명이 이곳에 체류한다. 많은 지역본부가 거리이동상담소를 함께 운영한다. 노동자들은 커피를 기다리며 노동조합을 지켜보고, 노동조합이 설치해 놓은 노동자 휴게실이나 전시를 구경하다 보면 좀 더 이야기를 해 볼 만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상담부스에서 한두 가지라도 물어보기가 좀 더 쉬워지기도 한다. 이번은 아니더라도 다음엔 민주노총이 좀 더 편해지는 기회가 된다.

 

셋째, 커피트럭은 거들 뿐, 미조직노동자를 늘상 찾는 꾸준함과 공감대를 넓히는 사업이 필수다. 커피트럭은 매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간부들은 일상적으로 선전전을 한다. 소득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힘 빠질 때도 있다. 커피트럭을 아무 데나 갖다 댄다고 성공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수막을 달고 유인물을 나눠 주고 상담을 받는 그곳에 커피트럭이 서서 늘상 그곳을 오가는 노동자들을 맞이한다. 어떤 분들은 커피를 받아 가며 예전에도 본 적 있다며 아는 척을 하기도 한다. 결국 커피트럭이 되는 곳은 민주노총이 늘상 찾아가는 곳이다. 커피트럭은 거들 뿐,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각 지역 노동자들을 만나 노조할 권리를 꾸준히 건네는 손에 달렸다.

 

 

3. 본문사진2.jpg

2022년 6~8월. 커피트럭 공단 선전전. [출처: 금속노조]

 

 

작은사업장 조직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민주노총(총연맹) 미조직전략조직사업의 한해살이 중 가장 목돈이 들어가는 사업이 홍보사업이다. 가장 큰돈은 매년 초 내는 권리찾기수첩 제작에 들어간다. 손바닥보다 작은 책자에 빼곡하게 노동자가 꼭 알아야 할 권리가 알기 쉽게 쓰여 있다. 때로 효용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의외로 노동자들은 권리찾기수첩을 잘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지하철광고, 유튜브영상광고, 라디오광고, 전광판, 버스광고 등 매체를 이용한 광고를 진행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현수막, 물티슈, 마스크같이 지역에서 미조직노동자 선전전을 위해 만들어 배포하는 각종 선전물품들이 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물량으로 승부해야 하는 대중매체 광고는 민주노총 자금 사정으로는 효과를 볼 만큼 충분히 진행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번처럼 집중되는 기간을 정해 홍보영상이나 매체광고를 하면서 ‘커피트럭이 간다’를 통해 전국에서 대면 선전전을 결합한다. 민주노총이니까 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올해 상반기부터 전국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휴게실을!’ 실태조사와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미조직노동자의 요구와 관심사에 부합하는 꾸준한 캠페인이 바탕되어야 커피트럭 같은 홍보수단이 성공할 수 있다. 올해 우리 목표는 작은사업장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 구체적인 의제를 선정하여 1년간 꾸준히 전 지역본부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왜 작은사업장 의제인가? 총연맹과 지역본부의 미조직전략조직사업이 노동법 사각지대이자 조직화가 어려운 작은사업장에 대해 집중하자는 것은 수년간 형성된 공감대가 있다. 지역 내에서 움직이는 작은사업장 노동자 특성상 지역본부가 중심이 되고, 산별을 넘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기에 민주노총이 상당 부분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마땅하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당장 없더라도 작은사업장 노동자에 다가서려는 시도와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라는 한마디에 가슴이 뛴다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실로 옮겨 처음 맡은 것이 작은사업장 사업이다. 처음부터 관심이나 사명감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하면 할수록 중요하다는 생각이 커졌다. 민주노총을 보고 정규직 노조, 대공장 노조라고들 한다. 때로는 민주노총을 그러한 비정규직이나 작은사업장 노조와 구분하거나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일면 사실이면서도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 과제를 실제로 귀하게 여기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활동하는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적지 않다. 부족할지라도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는 민주노총이 오랜 시간 중요하게 지녀 온 가치다. 그런 노력이 모여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비중이 커지고, 실제로 작은사업장 노동조합의 숫자도 늘었다. 작은사업장 조직화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여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전물을 들고 공장 밖으로 나서 민주노총을 건네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있다.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 이 말 한마디에 가슴이 뛴다. 매일 한결같지는 못 하지만 이 말에 다가가려고 활동한다. 나는 성소수자 활동가다. 지금이야 노동조합 간부로 지낸 지 10년이 되었지만 가슴속엔 ‘모든 성소수자 노동자의 민주노총’을 품고 있다. 예전에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에서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트랜스젠더 노동자를 만났다. 트랜스젠더를 상상할 수 없는 공단에서 모든 노동자를 품고 있는 일터로, 모든 노동자가 평등하게 참여하는 노동조합으로 나아갈 때 진짜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민주노총은 전략조직화사업의 방향과 과제를 점검하고 도출하기 위한 토론을 지속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새로운 방향은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부터, 그리고 그것이 분절된 노동자가 아니라, 노조로 쉽게 접근하기 힘든 노동자들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