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1] 한국와이퍼 거대 외투자본과의 생존권 투쟁 / 임진호

by 철폐연대 posted Jan 02,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오늘, 우리의 투쟁

 

 

한국와이퍼 거대 외투자본과의 생존권 투쟁,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임진호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사무부장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수많은 제조업 공장이 외국자본의 수중으로 떨어진다. 한국와이퍼도 외환위기 이후 일본계인 덴소자본이 들어 왔고, 그렇게 25년 이상 현대·기아자동차에 암-브래이드를 납품해 왔다. 2023년 1월 8일 현대·기아차 점유율 70~80%를 차지한 한국와이퍼는 덴소자본의 기획적자로 청산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한국와이퍼분회는 이 또한 위장청산으로 보고 있다. 와이퍼 시스템의 모터, 링케이지 부분은 매각이지만, 와이퍼의 핵심인 암-브래이드 제조 부분은 청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IMF는 외화자금을 대출해 주면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한다.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비정규직의 임금 조건도 최저임금 기준만 넘기면 되기에 외국자본은 물밀듯이 들어 왔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지자체는 경쟁적으로 외국자본 전용공단 등을 조성, 각종 세제지원, 아낌없는 행정적 지원으로 외국계 기업 유치에 혈안이 되었다. 한국와이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와이퍼에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많게는 하루 150명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었다. 덴소코리아도 와이퍼 시스템의 일부분인 모토와 링케이지를 만드는 화성공장 건립 시 공장 부지 50년 무상임대, 특별소비세·부가가치세 전액감면, 시설설치비 50% 지원 등의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받았다.

 

비정규직 제도와 각종 재정적 지원과 세제 혜택 등으로 외투자본은 거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지만, 그 이윤은 한국 사회에 재투자되지 않고, 외투자본 본국으로 송금된다. 신기술을 이용한 제품은 본국 공장에서 생산되고, 외투자본은 신기술을 한국 공장에 이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와이퍼 공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국와이퍼 2공장 설립 이후에는 시설투자가 전혀 없었다. 2012년 이후 지금까지 투자가 전혀 없는 공장이다. 언제든 공장폐쇄 결정을 손쉽게 내릴 수 있게 은밀하게 청산을 준비해 온 것이다.

 

 

4. 본문사진1.jpg

2022.12.22. ‘덴소자본 규탄, 구조조정 분쇄, 한국와이퍼 투쟁 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에서.

[출처: 금속노조(변백선)]

 

 

이미 투자 대비 막대한 이윤을 뽑아낸 외투자본은 공장폐쇄, 청산 매각 등에 대한 결정을 국내자본보다 손쉽게 할 수 있다. 외투자본의 유치 관련 혜택과 편의만 보장하는 현 외국인투자제도, 외국인투자촉진법으로는 외국인투자기업의 먹튀 행각을 막아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공장폐쇄, 청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량 실직의 아픔은 오로지 실직의 당사자, 노동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외투기업의 정리해고는 보통 자본 철수를 전제하기에 외투 관련 기업의 정리해고는 대량해고, 실직사태로 연결된다. 포레시아, 하이디스, 한국산연, 한국게이츠, 한국다이셀 등 외투의 먹튀 행각은 계속되고 있다.

 

법과 제도적 먹튀 방지 대책이 미비하거나 전무한 상태에서 외투자본의 막무가내식 청산을 철회시키기 위해서는 처절한 노동자의 희생이 요구된다. 공장폐쇄, 청산 이후 외투기업이 국내에서 형식적으로나 표면적으로 자본을 철수한 상태에서의 투쟁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법정 다툼의 상대방을 찾기도 어려운 투쟁이 되는 것이다. 소위 투쟁의 거점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투쟁의 기간도 길어지고, 그만큼 노동자들의 생활 또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한국와이퍼분회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덴소자본의 철수를 예상하고 많은 준비를 해 왔다. 노동조합 가입률도 높이고, 조합원 교육 등으로 조직을 점검하고, 지역과 연대하며, 외투자본의 문제점 등을 파악하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며 한국와이퍼 생산현장을 지켜내기 위해 많은 투쟁의 준비를 해 왔다. 2020년, 2021년에는 고용협약의 각 조건을 합의해 나가며 우리의 일터, 생활의 터전인 한국와이퍼공장을 지켜내고자 치밀한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덴소자본의 청산 발표를 막지는 못했다. 이미 막대한 이윤을 챙겨간 상태에서의 청산이기에 손해날 게 없다는 자본의 셈법 앞에서 한국 사회의 법, 사회적 장치는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단협 위반과 부당노동행위, 불법대체생산을 자행한 덴소를 규제하고, 처벌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볼 뿐이다.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막기 위하여 고용협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말을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진행하는 지난 10월 5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주저 없이 하는 덴소코리아의 일본인 사장을 보면서 그들에게 한국 사회와 노동자는 무엇이고, 한국의 법과 제도가 의미가 있는 것인지 분노가 치솟을 뿐이다.

 

2022년 7월 8일 덴소자본은 청산을 발표하였고, 적지 않은 위로금을 제시하면서 노동조합을 흔들려는 시도에도 한국와이퍼분회는 흔들림 없이 청산 철회, 고용안정 쟁취의 한 구호를 외치며 조합원 이탈을 최소화하였다. 하지만 외투 덴소자본은 막대한 자본을 동원한 불법대체생산으로 파업권을 무력화하였다.

 

12월 31일 공장폐쇄 두 주를 앞둔 오늘(2022.12.18.) 한국와이퍼분회는 무기한 파업투쟁 42일 차에 이르렀고, 한국와이퍼분회 최윤미 분회장과 금속노조 경기지부 이규선 지부장의 단식 또한 42일 차이다. 무자비한 자본의 폭력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두 명의 소중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덴소자본은 한국와이퍼 260명 노동자를 생존의 절벽 밑으로 밀어 버리려 한다. 고용노동부는 한국의 노동자가 단협 위반과 부당노동행위, 불법대체생산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데 그저 회사와 합의만을 종용하고 있다. 정치권이 뒤늦게 한국와이퍼 대량해고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4. 본문사진2.jpg

2022.11.30. 한국와이퍼분회 국회 앞 농성장. [출처: 노동과세계]

 

 

대량해고로 이어지는 외투자본의 먹튀는 소중한 가족의 일상을 유지시키는 생존권의 침탈이다. 특히 지난 2년의 투쟁 결과물인 고용협약으로 일상의 평온함을 약속받았다고 생각한 230명 한국와이퍼 노동자에게 지난 7월의 청산 발표는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왜 한국 사회에서 외국자본의 먹튀 행각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노사합의인 단체협약을 위반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하더라도 실질적인 처벌과 규제가 없다면 외투자본의 먹튀는 계속될 것이다. 외투기업의 먹튀 행각에 대한 법·제도적 규제 없이 퍼주기식 외국자본 유치는 제2, 제3의 한국와이퍼 사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국와이퍼분회는 반드시 덴소자본의 위장 청산에 맞서, 청산을 철회하고 고용을 지켜 낼 것이다. 생존의 절벽 위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와 법과 제도의 미비만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정당하기에 극단의 투쟁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한국와이퍼 투쟁이 먹튀를 계획 중인 외투자본에 큰 경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