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1] 청년유니온, 패션어시를 만나다 / 문서희

by 철폐연대 posted Jan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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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청년유니온, 패션어시를 만나다

 

 

문서희 • 청년유니온 대의원, 전 기획팀장

 

 

 

2020년 초봄,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은데 자문을 구한다며 청년유니온에 연락이 왔습니다. 이들은 이미 여러 노동조합에 자문을 받으러 갔던 상황이었고, 되돌아온 답은 ‘조직화를 해야 한다’였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었지만 그들이 넘기에는 너무나 높은 벽이었습니다. 이미 같은 답을 들어 온 이들이 청년유니온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9년 말, 청년유니온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을 살펴보고 이를 알리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편의점, 카페 등 청년·청소년이 처음 일을 하게 되는 곳이 5인 미만 사업장일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의 비율이 결코 낮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작은 사업장과 관련한 이슈도 다루는 것을 본 이들은 청년유니온에 발걸음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유니온을 통해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이하 ‘패션어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분들이 있듯이 청년유니온 역시 그날 방문해 주신 두 분을 통해 패션어시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듣는 구조로, 말도 안 되는 노동환경에서 수많은 이십 대 초중반 여성 청년들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청년유니온은 그들에게 먼저 제안했습니다. 노동조합을 따로 만들기보다 청년유니온에서 이슈파이팅을 하고 지부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2명이면 만들 수 있는 노동조합이지만 청년유니온 규약상 지부는 10명이 모여야 출범을 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더 어려운 조건이지만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유에는 패션어시 직종의 노동환경을 바꿔 내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유니온의 운동방식은 무엇일까, 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슈파이팅입니다. 어느 운동조직에서나 하는 작업이지만, 청년유니온은 언론을 통해 의제를 알려 내고 그 의제 활동에 동의하는 많은 청년 당사자가 모이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처음 한 일이 패션어시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유니온에 처음 문을 두드리셨던 방장님과 마라님 외에 다른 패션어시 분들을 만나 패션어시라는 직종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어떤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어떻게 그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미래를 어떻게 그려 내는지 이들에게 있어 패션어시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한 달 동안 열한 분의 패션어시를 만났습니다. 주로 강남 압구정에서 만났고 방송국이나 그들의 집 근처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압구정에서 기다리는데 늦는다고 하셔서 끝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린 날도 있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잡은 인터뷰였기에 오늘을 놓치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만큼 어시들은 자신의 사적인 일정조차 쉬이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과 이야기 나눈 내용을 바탕으로 실태조사 질문을 구성하여 첫 실태조사 질문지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패션어시들이 모여 있는 오픈채팅방에 방장님과 마라님이 온라인 링크를 올리고, 보름 동안 252명의 어시들이 응답을 해 주셨습니다. 질문이 많은 편이라 혹시나 참여도가 낮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응답자분들은 주관식 질문에도 정성스럽게 답을 해 주셨습니다. 아니, ‘정성스럽다’라는 표현보다는 ‘간절하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사연 없는 어시가 없었으니까요.

 

응답자의 94.3%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4대보험에 모두 가입되어 있는 경우는 5.16%에 불과하며, 하루 평균 근로시간 11.49시간, 한 달 평균 휴일은 4.78일, 응답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 3,989원, 새벽에 잦은 출퇴근을 하지만 택시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33.3%, 본인이 의상과 부자재들을 분실하거나 손상을 입히지 않았음에도 손해배상을 경험한 응답자 중 69.84%가 손해배상 시 자비로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갑질 문제 역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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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6.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

[출처: 청년유니온]

 

 

“특히 패션 분야의 경우 노동 착취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작업을 요구합니다. 픽업, 반납? 말이 쉽지요. 한 촬영당 70~90벌의 옷을 빌리고 진열하고 반납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도 잔 업무는 밀려 있고 전화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습니다. 이 업계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견뎌 냈다고. 에디터(혹은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선 어시스턴트 경력은 당연한 거라고요. 이런 구조 시스템 자체가 어시스턴트들에게 노동의 당위성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최저시급으로만 계산해도 300만 원은 넘게 벌 근무시간인데 젊은 사람들의 열정, 꿈을 이용하여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노동착취를 하는 이 업계가 너무 역겹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분야라 다시 돌아가겠지만 이 스타일리스트 업계는 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 지금 실장님들, 곧 실장이 될 팀장님들 기본적인 마인드가 내가 이 돈 받고 개고생했으니 너희들도 그래야 돼, 라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업계 관례라는 이름으로 계속 반복되고 있더라고요.”

 

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정말 많은 언론에서 보도하였습니다. 한국일보의 ‘프란’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인터뷰를 했고 해당 영상이 조회수 100만 회를 넘으며 패션어시의 실태를 알리는 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이 직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니 모 유명 스타일리스트가 SNS로 라이브 방송을 하는데 누군가 “어시들에게 4대보험을 가입해 주냐”라는 댓글을 올렸고 스타일리스트는 당연히 가입한다고 답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이 직접 질문을 던질 정도로 아예 몰랐던 직업을 알리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이슈화하고 난 뒤 돌입한 다음 작업은 바로 지부 창립을 위한 조합원을 모으는 작업이었습니다. 어시들은 실태조사에는 참여해 주셨지만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은 주저하셨습니다. 이슈화를 하고 나니 소속된 팀에서 인터뷰한 게 누구냐며 어시들을 상대로 압박을 했다고 합니다. 현실적인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조합비였습니다. 청년유니온은 최저조합비 기준을 두고 있는데, 당해연도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의 절반을 임금으로 받고 있는 어시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부담되는 금액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무처에서 논의를 해 봤을 때 조합비를 내는 것의 의미와 다른 지부 조합원과의 형평성 문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찾아간 곳은 전태일재단의 한석호 사무총장님이었습니다. 사무총장님께 이런 사연을 말씀드리니 함께 모금을 해 보자며, 이를 위한 글을 기고해 주셨고 노동계, 정치계로부터 1,000만 원에 가까운 모금액이 모였습니다. 덕분에 패션어시들은 3,000원만 내고도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패션어시가 아닌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청년유니온 내 ‘패션어시 사업TF’를 꾸렸습니다. 실제로 패션어시로 일하는 조합원분도 참여해 주셨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아닌 조합원이 80%였습니다. 청년유니온은 의제를 다룰 때 조합원 TF(Task Force: 태스크포스, 프로젝트팀)를 꾸려 활동하는데, 그 의제의 당사자가 아닌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TF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그 의제가 청년 노동자에게 정말 중요한 의제이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이렇게 꾸려진 TF에서는 일여 년간 다음과 같은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첫 번째는 ‘패션어시정보공유’라는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게시물을 만들어 어시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압구정 일대에서 현장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노동상담 번호를 넣은 반짓고리 기념품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한두 명이라도 연락이 닿길 기대하며 직접 어시들을 만났습니다. 세 번째는 학생들의 방학기간을 맞아 ‘스타일리스트 지망생 모임’을 열었습니다. 일종의 진로 멘토링처럼 어시들이 직접 스타일리스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일을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네 번째는 체불임금을 계산하고 돌려받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체불임금을 계산해 드린다며 조합원들과 압구정과 상암동 일대에 전단지와 현수막을 직접 붙이러 다녔고, 그 결과 총 1,400만 원 규모의 체불임금을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으로 2021년 4월 17일 패션어시유니온이 출범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경계가 높은 때였지만 처음 시작하는 자리인 만큼 오프라인 총회를 진행했습니다. 출범 이후 패션어시유니온은 갑질을 비롯한 부당대우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이수진 의원실을 통해 국정감사에서 패션어시의 실태를 다시 한번 알려냈습니다.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2020년 9월 청년유니온이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을 당시 너무 작은 사업장이라 근로감독이 어렵다고 얘기해 오던 것과 많이 달라진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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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3. 청년유니온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지부 준비위원회 출범식.

[출처: 청년유니온]

 

 

“우리 업계가 바뀔 수 있을까요?” 처음 패션어시를 만나 인터뷰를 했을 때 들었던 질문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 발 딛고 목소리를 내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바뀔 수밖에 없다는 확신입니다. 첫 실태조사 이후 1년 만에 진행된 두 번째 실태조사에서 패션어시가 받는 첫 월급의 규모가 달라졌음을 확인했습니다.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식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는 제보도 받았습니다. 개인 실장들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했던 경험이 전무했다던 고용노동부가 이제는 스스로 근로감독을 진행합니다.

 

청년유니온에 처음 방문했던 두 분은 청년유니온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청년유니온 역시 두 분이 와 주신 게 청년세대 노동조합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활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우리가 대변해야 할 청년 노동자는 누구인지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투입한 시간과 비용 대비 사람은 적게 모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유니온의 운동은 그 직종의 오래된 관습을 무너뜨리는 데 작동됩니다. 그리고 이를 본 다른 분야의 청년들이 문을 두드립니다. 통계로 파악조차 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에서 일하는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존재하기에 청년유니온이 더 현장으로, 발로 뛰어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