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1] 그녀의 커밍아웃 후 3년, 군은 무엇이 변했는가 / 박한희

by 철폐연대 posted Jan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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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그녀의 커밍아웃 후 3년, 군은 무엇이 변했는가

- 육군의 故변희수 하사 순직 불인정 결정에 대해 -

 

 

박한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2022년 12월 1일, 육군은 전공심사위원회를 통해 故변희수 하사의 사망을 일반사망(비순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022년 4월 25일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변 하사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하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음에도 이와는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육군의 결정문에는 다양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심층 깊게 검토 및 논의한 결과, 변 하사의 사망이 법령에 명시된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어 순직기준에는 충족되지 않는다, 이렇게만 적혀 있었다.

 

변 하사가 2020년 1월 군 복무 중 성확정수술을 받은 후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용기 있는 커밍아웃을 한 지 약 3년, 강제전역 후 재판이 진행되던 중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지 1년 10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오랜 시간을 지나 또다시 군이 변 하사에 대해,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해 일말의 책임조차 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 앞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군은 대체 무엇을 반성하였고 무엇이 변하였는가.

 

순직 불인정, 군의 끝없는 비겁함

 

순직(殉職)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국가를 위한 희생? 명예로운 사망? 사실 순직의 사전적 의미는 단순히 “직무를 다하다가 목숨을 잃음”이다. 공무원이 직무 중에 사망하면 순직으로 인정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군인사법」 제54조의2의 제2항은 “군인이 의무복무기간 중 사망한 경우 제1항 제2호에 해당하는 순직자로 분류한다”고 정하고 있다. 나아가 「군인사법 시행령」은 공무와 관계있는 사유로 자해행위를 하여 사망한 경우도 순직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변 하사의 순직을 불인정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당초 국방부는 변 하사의 사망일이 사망 사실이 알려진 날인 2021년 3월 3일이라 주장했으나 경찰 수사결과 2월 27일로 밝혀졌다. 변 하사의 의무복무 기간은 2021년 2월 28일까지였고, 대전지방법원의 판결로 군의 강제전역이 소급해서 무효가 되었으므로 변 하사는 복무 기간 중 사망한 것이 된다. 그리고 변 하사가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이 군의 위법한 강제전역과 연관이 있음은 명백하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순직 권고 결정은 그렇기에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군은 끝내 일말의 책임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군인사법」과 그 시행령에 따르면 고의 또는 중과실, 위법행위, 직무수행과 관련 없는 개인적 행위를 이유로 사망한 경우에는 순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즉,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군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변 하사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일은 우리 군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그냥 변 하사 개인의 문제로 발생한 것이라고.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의 입장을 낼 것은 없다”고 했던 군은 전역처분 취소판결이 나왔음에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보았을 때 군이 순직 비해당 결정을 내리며 ‘종합적’으로 ‘심층 깊게’ 검토 및 논의한 것이 무엇일지 짐작이 된다. 트랜스젠더 군인을 인정할 수 없다는 혐오와 편견,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보신주의, 그것이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권고조차 무시한 군의 결정 이유일 것이다.

 

 

7. 본문사진.jpg

2022.02.27. 진행된 변 하사 1주기 추모제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메모들.

[출처: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그 후 3년, 군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쯤에서 변 하사의 커밍아웃 시점부터 현재까지 일련의 과정을 다시 돌아보고자 한다. 2021년 A하사로만 알려졌던 변 하사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기자회견을 한 것은 그동안 군 내에서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어 오던 트랜스젠더 군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군 내 업무지침이나 훈령에 트랜스젠더의 복무에 대한 내용은 전무했다. 그렇기에 직속상관은 물론 여단장까지 변 하사가 계속 근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군이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군이 해야 했던 일은 무엇일까. 트랜스젠더 군인의 복무에 대한 열린 논의를 하고 변 하사 개인을 지원하고 계속 복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찾는 일이 이루어져야 했다. 그것이 당사자의 의지도 충만하고 부대 동료와 상관도 적극 지지하는 한 군인을 위해 조직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군이 한 선택은 국가인권위의 긴급구제 결정도 무시하고 이루어진 강제전역 결정이었다.

 

그 후의 과정들은 다들 알 것이다. 소청심사 기각,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시정권고를 했으나 군이 불수용. 그리고 지연된 재판의 첫 기일을 앞두고 변 하사는 우리 곁을 떠났다. 망인이 된 변 하사를 원고로 한 재판은 2021년 10월 8일 전역처분 취소 판결이 나왔고, 군의 항소 포기로 확정되었다. 여성인 변희수에 대해 남성의 기준을 적용하여 내린 전역처분은 위법하다, 명쾌한 이 판결로 군의 과오는 바로잡혔지만, 안타깝게도 변 하사는 승소를 함께 기뻐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군은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 하사의 용기로 트랜스젠더 군인이 있는 것이 드러났고, 실제로도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생 시 지정 성별이 남성인 응답자 259명 중 현재 군 복무 중이거나 군 복무를 마친 이들은 109명(42.1%)이었다. 그리고 남성, 이성애 중심적인 군 내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심각한 폭력과 차별 위험을 마주한다. 위 조사에서 군 복무를 한 지정 성별 남성 트랜스젠더들은 성소수자 비하 발언 및 이를 용인하는 문화(54.6%), 본인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알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52.8%)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관심사병으로 분류되거나(29.5%),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겪은 경우(12.4%)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방부훈령인 「부대관리훈령」에는 동성애자 장병의 복무에 관한 규정은 있으나 트랜스젠더 장병의 복무에 대해서는 어떠한 규정도 되어 있지 않다. 이에 대해 2021년 서욱 당시 국방부 장관은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문제에 대한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고, 2022년 8월에는 국방부가 연말까지 ‘성전환자 군 복무’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보도되었다. 그러나 2023년이 된 지금까지도 해당 연구의 내용은 공개되어 있지 않다.

 

결국 변 하사의 용기 있던 기자회견 이후로도 우리는 아직 몇 명의 트랜스젠더 군인이 있는지, 이들이 안전하게 복무하고 있는지, 복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환경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번 순직 비해당 결정에서 알 수 있듯 아직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군이 변 하사와 같은 트랜스젠더 군인이 다시 목소리를 냈을 때 다른 핑계를 대며 또다시 전역처분을 하지 않을 거라 보장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군이 져야 할 최소한 책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이번 순직 비해당 결정이 위법한 차별임이 분명히 인정될 필요가 있다. 현재 국가인권위에 진정이 제기되어 있고, 인권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누구도 자신답게 복무할 수 있도록

 

“군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일반 국민과 동일하게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가진다.”

 

「군인복무기본법」은 위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11월 24일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를 둔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며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성을 진정한 성으로 법적으로 확인받을 권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근본적인 권리로서 행복추구권의 본질을 이루므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모든 점들을 종합하면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대로 군에 복무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임에도 군은 변 하사의 기본권을 철저히 부정하였다.

 

과거의 비극을 없던 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를 통해 교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어야 한다. 더 이상 군이, 국방부가 그저 한 사람의 군인으로서 성실히 복무하고자 했던 한 트랜스젠더 군인을 모욕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국방부는 재심의를 거쳐 변 하사의 순직을 인정함으로써 강제전역에 대한 군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아물러 하루빨리 트랜스젠더 군인의 복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누구도 자신을 부정당하지 않고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으며 안전하고 평등하게 복무할 수 있는 군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그 길이 보다 나은 사회로 뻗어나가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