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2] KT 노동자로 산 30년 / 김미영

by 철폐연대 posted Feb 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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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KT 노동자로 산 30년

 

 

김미영 • KT새노조 위원장 / 철폐연대 후원회원

 

 

 

라테는 말이야~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상 용돈은 내가 벌어 써야 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노동이 몸에 배지 않은 어린아이가 분식집에서 음식을 나르고 장시간 설거지를 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던 같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떡튀순을 먹으러 학교 담장을 넘을 때도 멀리했던 분식집의 알바는 그래서 더 고단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중 내게 1992년 KT 입사는 대기업의 안정된 일자리였다. 입사할 당시의 임금으로는 한 달을 살아내기 힘든 정도였지만, 매달 25일이면 꼬박꼬박 통장에 찍히는 것만으로도 쥐꼬리만 한 월급을 충분히 참아 낼 수 있었다.

 

KT에 입사하니 “3% 가이드라인 끝장내자”라는 투쟁으로 전국이 뜨거웠고, KT 노동조합은 국가 전복세력이 되었다. 그 끝에 우리들의 임금은 조금씩 먹고살 만해졌으나 먹고살 만한 임금은 안정적이었던 고용과 바꿔 나갔다. 안정적이었던 KT 노동자들의 고용을 흔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합의와 협조가 필요했을 게다. 그래서 전투적이었던 노동조합은 협조적 노동조합으로, 합리적 노동조합으로, 회사의 입장과 유사한 노동조합으로 변해 갔고, 그렇게 변해 가는 노동자(노동조합)의 자리에 나는 회사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뒤돌아보면 꽤 열심히 살았던 때도 있었다. 좌절과 패배감에 주저앉아 활동하지 않겠다고, 평범한 KT 노동자로만 살겠다고 도망간 적도 있었다. 잘했다며 나 스스로 칭찬할 만한 일들도 있었고,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일들도 있었다. 상처가 깊어 일어서지 못할 것 같던 일들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23년 1월 현재, KT 노동자로 30년이 되었다.

 

어쩌면 나의 지난 30년은 KT 노동자(노동)가 어떻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게 되었는지, 왜 나뉘게 되었는지, 노동자들을 임금과 고용 두 개의 추 위에 올려놓고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갈라치기 한 신자유주의의 역사가 아닐까? 이런 과정에서 노동자들도 늙어 갔고 현장을 떠나갔다. 젊은 친구들은 좁은 취업문을 통과해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이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도 조직도 늙어 가고 있지만, 민주노조 깃발, 이 정도의 선은 지키고자 이 악물고 힘내고 있다.

 

2022년 도망의 끝, KT새노조 위원장을 떠안다

 

나는 현재 KT새노조 위원장이다. KT새노조는 KT의 제2노조로 경영진과 제1노조에 할 말은 하는 소수노조이다. 위원장 자리가 그렇게 하기 싫어서 도망갔지만, 지금은 결국 위원장을 떡 하니 하고 있다. 하기 싫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위원장이 하다 보니 힘이 생기고, 하다 보니 잘되는 것도 있고, 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어졌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KT새노조는 소수노조라 노조 전임이 없다. 그래서 타임오프와 휴가를 활용해서 활동을 한다. 즉 회사 일도 하고 시간을 쪼개서 조합 활동을 해야 한다. 회사 일과 노동조합의 일을 병행해야 한다는 건, 시간 부족도 있지만 현실과 당위가 부딪힐 때 원칙을 지켜 내야 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일상에서 현장 관리자와 부딪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원칙과 현실이 부딪히고, 그래서 갈등하고 타협하고 싶을 때가 있다.

 

소수노조라서 기존 노동조합처럼 현장 조직하고 KT 노동자들의 복지 및 임금 상승 등을 위한 활동을 하기는 어렵다. 가령 임단협의 경우, KT새노조의 안을 1노조에 제출할 수는 있지만 결정 과정(협상 과정)에 참관조차도 허락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소수노조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노조는 KT가 잘못된 쪽으로 나아가면 정도를 걸을 수 있도록 비판하고 KT 정상화를 요구한다. 이것이 요즘 KT새노조가 하는 주요한 사업 중 하나다.

 

 

8. 본문사진.jpg

2022.11.14. “KT 이사회 전원 배임 횡령 고발 기자회견” [출처: 김미영]

 

 

KT 정상화를 외치다

 

KT에 역대로 CEO 리스크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통신은 규제 산업이므로 정치권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이다. KT는 돈 잘 버는 주인 없는 회사라 KT CEO 자리에 정치권의 이놈 저놈들이 군침을 흘리는 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역대 CEO들은 정치권에 줄 대기를 하고, 정치권은 부당한 요구를 하고, 이런 것들이 CEO 리스크를 재생산하면서 KT의 성장을 막고 경쟁력을 약화 시켜 왔다. 이 구린 짓을 하는 데는 노동조합의 침묵 또는 지원이 있어야 했고, 이는 다수노조인 1노조와 합을 맞추어 왔다.

 

KT는 통신회사이다. 근래 잦은 대형사고, 5G 주파수 반납, 통신 3사 중 제일 낮은 품질 등에 관한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이는 KT의 근간인 통신을 배제하고, 구현모 연임에 맞춰 투자보다는 연임 광내기에 집중한 탓에 국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양질의 통신 품질이 훼손된 결과이다. 국민기업, 통신의 맏형인 KT가 본연의 자세를 잃고 자기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CEO가 본인의 연임에만 몰입하고 있어서다. CEO의 주변에는 KT의 미래를 위해 직언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하여 KT새노조는 반복되는 CEO 리스크를 멈춰 세우기 위해, KT 정상화를 위해 현 구현모 회장의 연임 반대 행동을 하고 있다.* 2022년 구현모 연임을 반대하며, 구현모의 친위부대로 거수기 역할만 하는 우리사주 조합장 선거에 출마도 했고, 구현모 셀프 연임의 근거지인 KT 이사회를 고발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

 

동지들과 함께 ‘이’ 정도 선 지키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요즘 활동에 대해 <질라라비>에 기고를 요청했을 때, 내 활동이 지면에 오르는 게 송구한 일이지만 애쓰고 있는 철폐연대 동지들의 수고를 덜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어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 내고 싶고, 작아졌지만 그 안에서 선은 지키고 싶은 늙은 노동자들의 얘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흔쾌히 하겠노라 했다.

 

요즘 가장 내세울(?) 만한 활동은 KT 구현모 대표 연임 반대 투쟁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자랑스러운 활동은 아직 KT에 남아 늙어 가고 있는, 그리고 KT 현장을 떠난 KT 노동자들과 함께 적어도 쪽팔리지 않게 ‘이’ 정도의 선은 지키며 살아 보자는 연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거다. 이런 KT의 늙어 가는(ㅠㅠ) 노동자들이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농성장에 가지는 못해도 연서명과 작은 후원이라도 할 수 있는 노동자로 남는 게 ‘이’ 정도의 선은 지키며 사는 거다.

 

작년 11월 비 오는 노동자 대회 때 나이 든 새노조 조합원이 깃발을 든 모습을 보며 젊은 청년이 새노조 깃발을 들고, 젊은 노동자들과 함께 KT 정상화를 위해 CEO 리스크 저지 연임 반대하고, 1노조의 대항마로 우뚝 서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런 날은 안 올지 모르겠다. 아니, 우리 대에 그런 모습을 못 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기록으로 남아 KT 젊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상상으로 계급적 노동운동에 우뚝 서길 기원한다.

 

현재 우리들의 힘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남은 시간들은 이 악물고 선만 지키며 견뎌야 하는 시간일지 모르겠다. (선을 지킨다는 게 그 자리만 지키는 게 아니다. 나아가기 위해 투쟁할 것이고, 밀리지 않기 위해 힘껏 애쓰는 선이다.) 참 슬프지만 나와 떠나간 떠나갈 KT 노동자들에게 그만하면 잘했다고 토닥토닥한다.

 

이런 위로와 연대 위에 다시 힘을 내고, 힘을 내는 우리들을 보며 젊은 청년들은 새로운 상상과 희망의 꽃을 피울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슬프기보다 작은 것이더라도 멋있는 늙음의 연대로 선을 만들고 지켜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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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새노조 홈페이지(https://humankt.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