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2] 스포츠인권을 위한 모두의 운동 / 함은주

by 철폐연대 posted Feb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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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스포츠인권을 위한 모두의 운동(movement & act)

 

 

함은주 • 문화연대 집행위원

 

 

 

“그 사람들 죄를 밝혀 줘”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팀 소속이었던 최숙현 선수는 오랜 기간 지도자와 선배 선수로부터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려 왔지만, 스포츠계뿐 아니라 사회 내 어떤 시스템으로부터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피해자가 여섯 차례나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부실하게 대응했다. 철인3종경기협회, 대한체육회와 같은 스포츠계는 책임을 방기했고, 사실을 방조·은폐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고 최숙현 선수가 도움을 요청했던 경찰, 검찰, 국가인권위원회는 무관심했고 관성적으로 사안을 처리했다. 체육계의 뿌리 깊은 성과, 성적 지상주의는 관련 선수와 지도자의 가해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기하고 가해 선수의 성과를 포상하고 격려까지 하였다. 이것이 지속적인 폭력과 가혹행위에 시달린 피해자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최 선수는 결국 무력함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였다. 엄마에게 “그 사람들 죄를 밝혀 줘”란 메시지를 남겨 놓고서. 2020년 6월 26일이었다.

 

지난 1월 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 직장운동경기부 선수의 인권보호와 인권증진을 위한 조례개정’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발표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직장운동경기부를 운영하는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장에게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른 「직장운동경기부 표준 운영 규정」과 인권보호 규정이 직장운동경기부를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직장운동경기부 설치 및 운영 조례」 및 시행규칙 등에 충실히 반영되도록 하고, 이행실태를 확인·점검하라는 내용이다. 본 의견표명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실시한 ‘직장운동경기부 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2020년 6월에 내린 ‘직장운동경기부 선수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정책 권고’의 후속 조치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고 최숙현 선수의 사망 3일 전에 발표된 정책 개선 권고 후, 2년 6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후속 조치 및 점검 차원의 의견표명이 발표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 발표 배경은?

 

2019년 1월, 빙상종목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국가대표팀 코치로부터 지속적인 폭력과 성폭력 피해를 입어 온 사실을 폭로한 후 스포츠 미투(Me Too)가 이어졌고, 이에 경악한 대중들은 스포츠계가 혁신되어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었다. 이를 계기로 문체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체육계 구조를 혁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스포츠계 인권침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출범시키며 초·중·고 학생선수 및 대학 선수, 직장운동경기부 선수 등 대대적으로 스포츠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직장운동경기부 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는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 소속 직장운동경기부 선수 4,096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그 결과,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직접 경험한 비율이 각 33.9%, 26.1%로 나타나고, 성폭력 피해 경험도 52건이 조사되는 등 직장운동경기부 선수들의 반인권적 실태가 드러났다. 경기장이나 숙소, 라커룸, 훈련장 등에서 발생한 이러한 인권침해 실태는 선수들이 일상적인 폭력과 성폭력 피해뿐 아니라 과도한 사생활 통제 등 반인권적 상황에 노출되어 있음을 추정하게 한다. 이뿐 아니라, 불합리한 근로계약 관행과 처우 등 불공정한 상황에 놓여 있음이 조사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직장운동경기부 내 인권침해를 조장·묵인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 및 증진하기 위한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직장운동경기부 선수 인권 보장 시책 마련’, ‘여성 선수의 성차별 해소 및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모성보호 정책 수립’, ‘불공정 계약 등 적대적 노동환경 개선’, ‘통제된 합숙소 폐지 및 제도 개선 방안 마련 등 인권 침해 환경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정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7. 본문사진.jpg

2020.07.20. 철인3종선수 사망사건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스포츠 구조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 [출처: 문화연대]

 

 

운동선수의 인권(스포츠인권)과 인권침해의 구조

 

빙상종목 국가대표 선수의 스포츠 미투를 비롯해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을 겪으며 정부와 국회, 체육계에서 다양한 개선책과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구시청 핸드볼팀 감독의 선수 성추행 사건, 유명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학생선수 시절의 폭력 고발, 대학 운동부 지도자의 선수 폭력 사건 등 스포츠인권 침해 사건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반복되는 스포츠인권 침해는 가해자의 일탈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정부의 변하지 않는 국가주의적·승리지상주의적 스포츠 정책 패러다임에서 기인하는 구조적·제도적 문제이다. 스포츠 성적만으로 진학과 미래의 진로가 정해지는 제도와 폐쇄적이고 위계로 점철된 집단 문화 속에서 선택과 다양성이 배제된 채로 오로지 훈련과 경기에만 올인하도록 내몰리는 선수들은 지도자의 전횡이나 이런 체계에 저항할 수 없고 의문조차 제기하기 어렵다. 성인인 직장운동경기부 선수들조차도 훈련 환경, 대회 출전, 급여, 재계약 등에 권한을 가진 지도자의 영향력에 저항하고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와 문화가 스포츠계 인권침해를 은폐하거나 반복적으로 발생하도록 하는 구조적 원인이다.

 

그래서 스포츠인권 침해는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가해도 은폐도 다 구조적으로 처리된다. 구조가 원인이기도 하고 방법이며 결과이다. 어떤 사건이 ‘구조적이다’라는 것은 가해와 피해, 피해와 죽음 사이에 다른 행위자들과 그들의 행위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 사건을 구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고 최숙현 선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폭력과 괴롭힘도 스포츠계에서 구조적으로 내재된 문화인 것이다. 폭력과 인권침해를 용인하는 성적지상주의 문화와 체육단체 및 공공기관의 방관, 은폐, 방기, 그리고 부실하고 불안정한 신고시스템이 엮인 구조가 스포츠인권 침해를 반복적으로 발생하도록 만든다.

 

스포츠인권을 위하여 :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모두의 운동이 필요해

 

2019년 스포츠 미투가 이어지자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계 인권침해를 양산하는 스포츠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문화체육관광부에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1년간 170여 차례의 회의를 거쳐 성적, 성과 중심의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을 지향하는 국가 스포츠 패러다임을 체육인 중심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스포츠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이를 토대로 스포츠계의 구조 혁신을 목표로 하는 권고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체육계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고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체육계의 눈치를 보며 권고 이행을 미루다 급기야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안을 재검토하여 엘리트 체육인 중심의 스포츠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2023년 업무계획을 세웠다.

 

고 최숙현 선수 사건 직전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장운동경기부 선수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정책 권고’ 역시, 말 그대로 권고에 지나지 않았으며 현장에 반영되어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고작 정책 권고를 조례에 반영하라는 의견을 표명했을 뿐이다.

 

스포츠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증진하기 위한 대안과 해법, 스포츠문화와 구조를 혁신하기 위한 고민과 방법은 이미 다양한 연구로 국가인권원회, 스포츠혁신위원회 등의 권고로 제시되었다.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체육계의 큰 저항에 스포츠 구조 혁신을 주장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묻혔고 그 주장이 꺾였던 것이다. 기존의 체육계가 쌓아 올린 공고한 시스템과 대한체육회를 중심으로 한 경기단체 조직이 가진 대표성과 목소리 때문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체육계 저항의 목소리에 꺾이지 않는 힘 있는 목소리들을 모아야 한다. 체육계를 넘어 시민과 시민사회가 직접 참여하고 만들어 가는 스포츠 시민운동을 통한 구조 개혁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의미다.

 

스포츠 시민운동이 가능하려면 스포츠인권과 스포츠 정책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제라는 인식을 확장하고, 올림픽과 프로스포츠 또는 국가주의와 승리지상주의가 아닌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는 스포츠 패러다임의 확장이 필요하다. 즉 ‘스포츠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이며 모든 사람은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그리고 존엄하게 스포츠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스포츠인권의 가치와 스포츠인권 실현의 주체가 국가라는 점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공감하도록 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movement)을 통해 운동(action)이 발현되도록 하려는 전략과 운동 비전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스포츠인권을 위한 모두의 운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