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4] 김용균의 동료 발전노동자는 레고 블록이 되고 싶지 않다 / 이태성

by 철폐연대 posted Apr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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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바닥 일기

 

 

김용균의 동료 발전노동자는 레고 블록이 되고 싶지 않다

- 정의로운 전환을 외치며 414 기후정의파업으로 -

 

 

이태성 • 발전비정규직전체대표자회의 간사

 

 

 

국내에서 석탄발전소 대부분을 운영 중인 한국전력 및 발전회사(남동, 남부, 동서, 서부, 중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27.1%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석탄화력의 전력 발전량 비율은 32.6%로 가장 크며, 원자력(27.8%), LNG(19.5%), 집단에너지(7.9%), 신재생(5.4%)의 순이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석탄발전 비중은 현재 32.6%에서 2030년 19.7%로 대량 축소되며, 석탄발전소 총 60기 중 30기가 34년까지 폐쇄된다.

 

이곳에도 노동자는 있다. 석탄발전에서 최종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는 정규직인 발전사 소속의 노동자 1만 3,846명이 일하고 있고 석탄이송, 오염물질처리업무, 청소·경비, 발전설비 정비분야는 외주·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8,204명이 담당하고 있다. 정부는 석탄발전에서 LNG발전소 24기 신규건설을 통해 일자리 전환을 예정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석탄발전소 정규직 2,625명 중 1,221명(46.5%), 비정규직 5,310명 중 3,690명(69.4%)이 대체 일자리가 없어 총 4911명 해고된다. 그리고 2050년 석탄발전은 모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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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화력발전소 계통도. [출처: 공공운수노조]

 

 

내가 기후 정의를 외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어떻게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면서 발전소가 폐쇄되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 보자. 만약 당신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면, 잠겨 죽을 것입니까? 아니면 탈출할 것입니까? 그 배가 아무리 소중하다고 할지라도 침몰하는 배에서는 뛰어내려야만 한다.

 

당연한 사실이다. 발전소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발전소는 우리 발전노동자들에게 단순히 생계 수단의 의미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청년 시절 입사해 이곳에 인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의 삶과 자부심, 땀과 눈물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처한 이 상황을 더욱이 직면하고자 한다. 단순히 발전소를 지키는 게 답이 아니라면 우리는 남은 시간 어디로 가야 할까? 우리의 외침은 결국 발전소는 침몰하더라도 발전노동자만큼은 침몰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배 밖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갈 수 있으려면 발을 디딜 수 있는 육지가 필요하다.

 

석탄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이 보장된다면 발전소 폐쇄에 74%가 찬성’ 한다고 밝혔고 ‘폐쇄로 인한 고용불안을 느끼는 노동자는 무려 79.3%’이다. ‘발전소 폐쇄로 인한 고용보장 국가가 책임져야 83%’로 압도적이다.

 

길거리에 쓰레기만 버려도 혹시 누가 본 사람이 있나 싶어 두리번거리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당신이 환경을 망치는 악당이다’라고 지목되면 어떨까? 불안, 수치심 그리고 찾아오는 것은 절망일 것이다. 사회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땀 흘려 일하던 일터는 기후 위기의 주범이라는 낙인과 함께 점점 고립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우리가 발전소 폐쇄에 무조건 반대하고 우리의 이익만을 챙기기 바쁠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도 가족이 있다. 깨끗한 지구를 물려 주고 더 쾌적한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아랫세대 말이다.

 

석탄 화력 발전으로 인한 피해는 발전소에서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이미 본 적이 있다. 김 양식이 망하는 모습, 미세먼지로 인해 두통을 호소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점점 그 수가 증가하는 암 환자까지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더라도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은 아마 10명 중 10명일 테다.

 

발전노동자들은 준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여전히 무관심하다. 아니 오히려 에너지 정책에는 상식과 정의, 공정이 없으며 매우 폭력적이다. ‘정부는 마치 레고 블록을 끼워 맞추듯 여기 있는 노동자들을 저기로 옮기면 된다’는 식이다. 그리고 재취업 알선, 재교육을 해 주겠다는 등 국가 정책의 피해자인 동시에 국민을 소모품처럼 취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 직장이 망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지 모르는,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한 노동자가 기후 정의와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을까? 나는 발전노동자가 기후 정의를 이뤄내는 사회와 함께 가기를 바란다. 발전노동자는 기후 정의와 갈등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기후 정의에 누구보다도 앞장설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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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 화력발전소 노동자 모임. [출처: 이태성]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가장 첫 번째로 총고용의 대책이 절실하다. 국가는 정책은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탄소 중립의 사회 체제를 이루기 위해 함께 토론하자.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자. 노동자 이태성으로서의 몫이 있다면, 발전소와 발전노동자가 기후 악당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협력의 상대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이가 내가 꾸준히 기후 위기의 최전선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이유이다.

 

414 기후정의파업은 ‘일터와 일상을 멈추고 정부세종청사로 향하는 사회적 파업은 우리의 삶을 지키는 파업’이다. 오는 4월 14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우리는 260개의 단체, 3,000명의 시민과 함께 자발적으로 일상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여느 기후 정의 투쟁과는 사뭇 다르다. 4월 14일은 평일인 금요일인 데다가 장소도 서울이 아닌 세종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세종정부청사에는 그동안 기후 위기를 가속화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막아 왔던 주요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가 모여 있다. 이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 아닌, 모두 출근했을 시간인 평일에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을 것을 강구하는 대규모 직접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살기 위해서 나의 하루를 멈춰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삶 자체가 멈춰 버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414 기후정의파업은 기후 위기 최전선 당사자들이 가장 일선에 서 있는 전면적인 대정부 투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절실하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대안을 이야기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불평등을, 이 반기후를, 친자본 정책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너지 공공성 강화와 발전노동자의 안정적인 고용 보장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 빠른 탄소 중립 시대를 위해 정부는 적극적으로 기후 정의 행동에 답하고 체제의 전환에 동참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을 잠시 멈추면 앞으로의 가능성은 더 확장될 수 있다. 지난해 924 기후정의행진 이후에도 변하는 것이 없어 답답했다면, 더 큰 실천으로 기후 정의에 목소리를 내고 싶다면, 4월 14일 당신의 하루를 잠시 멈추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을 414 기후정의파업 세종으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