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4] 전세사기 문제와 청년 주거권 / 지수

by 철폐연대 posted Apr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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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전세사기 문제와 청년 주거권

 

 

지수 •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 A : 방을 비운 지 한 달도 넘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고, 최근에는 아예 임대인으로부터 연락이 끊겼습니다.

· B : 임대인이 전세금 반환을 한없이 미루고 있고 잠적 상태입니다.

· C : 임대인 부부가 제 전화를 착신 금지하고, 카톡 탈퇴까지 하고 있습니다.

· D : 새로운 임차인이 나오지 않으면 보증금을 반환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 E : 계약만료하겠다는 의사는 분명히 전달하였고, 집주인도 알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는 돌려줄 수 없으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 F : 집주인이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는데….

 

청년 A~F는 계약이 끝난 뒤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곤경에 빠졌다. A, B, C는 4,000만 원 이하, D는 1억 원대, E와 F는 2억 원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 이유는 모두 임대인으로부터 발생했다. 이유는 주로 뻔뻔한 내용이다. 계약만료가 언제인지는 주택임대차계약서를 처음 쓸 때부터 정해져 있다. 계약서에 작성된 계약기간을 기준으로, 계약만료일의 6개월 전 ~ 2개월 전 사이에 세입자는 임대인에게 계약만료 의사를 통보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계약만료일이 확정된다. 주택임대차계약이란 일정 기간 동안 임대인은 나에게 집을 빌려주고, 나는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빌려주는 것이니, 계약이 끝나면 나는 임대인에게 집을 멀쩡히 돌려주고, 임대인은 내게 보증금을 멀쩡히 돌려줘야 응당 맞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세입자로 살아가는 주택임대차시장의 현실은 그렇게 멀쩡히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 G : 계약 전에 국세체납확인서도 확인했고, 등기에 근저당 없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공인중개사는 세입자한테 피해가 갈 일 없는 집인 것처럼 저를 안심시켰고, 근저당 관련 특약도 썼습니다. 대항력 생기기 전까지는 근저당 없을 거고 위반 시에는 계약을 해지하겠다고요.

· H :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이 건물주이며 문제없다고 계약 체결을 유인했습니다.

· I : 등기가 깨끗했습니다. 부동산에서도 아무런 얘기가 없었습니다. 별일 없겠지 싶어서 계약했습니다.

 

G, H, I는 현행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세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을 확인한 뒤, 공인중개사의 중개 행위를 신뢰하며 계약을 체결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가 되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해도 전세사기 피해를 당하게 되는 주택임대차 구조하에서 세입자로 살아가는 청년들은 무엇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가? 임대인은 언제든 집을 팔고 도망갈 수 있고, 공인중개사는 중개 행위를 헛으로 해도 별 지장이 없고, 은행기관은 대출심사할 땐 별말 없더니 상환 책임은 모두 세입자 개인에게 있다며 무고한 피해자인 척하고, 정부는 그러게 계약할 때 조심하지 그랬냐며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고 있다.

 

사회적 재난 수준의 전세사기 피해는 오랫동안 세입자의 보증금을 함부로 다루고 제때 돌려주지 않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던 무법지대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사실상 예견된 문제였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은 전세사기 근절을 위해 정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던 적이 있는데, 이것은 정부가 그간 방치했던 주택임대차시장에 관한 관리감독 책임을 통감하지 못한 유체이탈 화법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세입자에게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는 안전한 사람인지 확인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고, 이에 일부 임대인들은 세입자의 보증금을 함부로 편취하거나 뻔뻔하게 돌려주지 않으면서도 ‘법대로 하라’며 큰소리치기 십상이었다. 또 일부 공인중개사는 국가가 공인한 중개 자격을 가진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다들 이렇게 한다’면서 세입자로 하여금 보증금 돌려받지 못한 채 이사 가도록 설득하거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서 이사를 가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음 세입자를 구하며 좀 기다려 보라는 말로 세입자 권리 침해 상황을 뭉개는 것에 적극 가담하기 바빴다. 이해관계가 들어맞는 이들이 만들었던 주택임대차 관행은 세입자의 권리 침해 위에서 잘도 돌아갔고, 정부를 통한 관리감독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를 초기에 파악하고, 피해가 확산되기 전에 진압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한 번도 주택임대차시장을 세입자의 편에서 관리감독하지 않았고, 세입자가 보증금 떼이는 문제를 사회문제로 취급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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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8.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행진에서. [출처: 민달팽이유니온]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택임대차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 사회초년생들에게로 집중됐다. 2022년 상반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2021년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에 따른 피해 연령층 중 30대는 49.7%, 20대는 15.0%로 청년층이 전체의 3분의 2 이상이었다. 2023년 상반기, 경찰청에서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통해 파악한 전세사기 피해자 중 30대는 31.4%, 20대는 18.5%로 청년층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청년층이 다수인 이유는 전세사기의 표적이 되는 매물의 가격대가 청년 및 사회초년생이 대출을 이용해 마련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 범위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중소기업취업청년대출 등을 이용하여 보증금을 마련한 청년들, 이외 은행 및 기업 대출을 이용해 보증금을 마련한 사회초년생과 저소득 노동자들이 1~2억 원대 전세 계약을 체결하곤 하는데, 해당 가격대의 매물은 갭투기꾼에게는 최적의 갭투기 매물이고, 전세사기 일당들에게도 익숙한 표적이었다. 2021년 갭투기대응시민모임에서 갭투기 피해 세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피해 보증금 규모는 1억 원대가 55.5%, 2억 원대가 34.3%, 1억 원 미만이 7.4%였다. 강서구 화곡동 등 임대인 김○○씨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결성한 ‘김○○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에서 2022년 12월부터 2월 동안 파악한 피해자들의 평균 계약금액은 2억 2,000만 원이었고, 피해 규모는 최소 7,900만 원에서 최대 3억 4,500만 원 사이에 분포해 있었다.

 

전세사기 피해는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2023년 3월 동안 제주시에서 22억 원대 보증금을 편취한 임대인이 구속되었고, 대구에서는 77가구를 대상으로 54억 원대 보증금을 편취한 임대인이 구속되었으며, 전남 광양에서는 173명의 세입자로부터 82억 원대 보증금을 편취한 임대인 일당이 구속되었고, 부산에서 100채 이상을 대상으로 78억 원 이상의 보증금을 편취한 임대인이 구속되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관악구 신림동, 인천시 미추홀구, 경기도 화성시 동탄, 대전광역시 등에서도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언론에 보도되어 왔다. 하지만 위 수치들은 전부 전세사기 피해 사실이 입증되고 사기죄 성립이 가능한 피해 건수들에 관한 수치이므로, 실제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떼이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 김○○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 등 피해 당사자들이 모여 있는 단위에서 정부에 매번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전세사기 피해 실태조사인데, 정부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한계 때문에 불가하다며 차일피일 그 역할을 회피하고 있다. 알음알음 전세사기 일당이라고 소문나 있는 임대인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전세사기 일당과 새롭게 전세 계약을 맺는 무고한 피해자들이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관리감독하고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는 무엇 하나 실행되고 있는 것이 없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를 바로잡고, 앞으로의 전세사기 피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가 펼치는 대책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데, 문제는 현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이 주로 수사와 구속에 집중되어 있을 뿐 전세사기를 야기하는 주택임대차시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관한 대책은 전무하다는 점에 있다.

 

전세사기는 세입자 보증금을 함부로 편취했던 주택임대차 관행과 함께 ‘깡통주택’을 용인하던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며 확산됐다. 이른바 ‘깡통전세’가 전세사기 문제의 핵심이다. 주택 가격의 100%를 세입자가 보증금으로 지불하더라도 HUG에서는 보증보험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매물은 부동산 시장에서 ‘무갭’투자 매물로 통용되며, 전세사기 일당이 바지임대인에게 푼돈을 얹어 주며 떠넘긴 뒤 보증금 전액을 편취하고 달아나기 좋은 표적이 된다. 특히 요즘처럼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주택 가격이 전세보증금보다 낮아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에 대해 선량한 임대인을 자처하는 이들은 갭투기 자체가 범죄는 아니고 일부 사기꾼들이 문제라고 주장하는데, 최근에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주관한 전세사기 관련 토론회에서는 몇 패널은 이런 주택들이 보증금을 제때 못 돌려주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기도 했다. 현 정부가 깡통전세 근절을 위한 대책을 하나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이유 또한 이와 비슷한 사고 흐름에 의한 것이라면, 앞으로도 전세사기 위험으로부터 세입자들이 안전히 보호받을 수 있을 길은 당분간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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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그 많던 보증금은 누가 다 떼먹었을까? : 보증금 먹튀 국회토론회.

[출처: 민달팽이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은 전세사기를 가능케 했던 구조적 요인 중 하나로 ‘깡통전세’에 주목하며,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임대소득을 취하고 있는 임대인은 응당 세입자의 보증금을 모든 계약만료시점에 즉시 반환하여야 하며, 만약 세입자에게 제때 돌려주지 못할 보증금이라면 처음부터 받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달팽이유니온의 주장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2023년 1월에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와 함께 제도개선 연구를 진행하며 심상정 의원실의 깡통전세 방지를 위한 법 개정안 7가지를 발의안을 작성하였다. 주요 내용은 주택 가격의 70% 이하로 보증금을 제한하여 애당초 깡통주택에 세입자의 보증금이 저당 잡히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통용되는 주택임대차계약서를 보다 고도화하고, 세입자의 알 권리 및 보증금 반환에 대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임대인의 정보제공 및 공인중개사의 확인설명의무에 관한 의무조항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주택임대차 계약 체결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세입자 권리 침해를 적절한 단계에서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주택임대차감독관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근로감독관 제도처럼 정부 차원에서 세입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감독관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이자 세입자로 살아가는 청년에게 전세사기는 눈앞에 닥친 불안이자 위기다. 주거사다리라는 환상으로 당장 위기에 처한 우리 삶의 불안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입자의 삶 자체를 불완전한 것으로 방치하고 있는 정부에 역할을 요구하고, 오늘과 내일 세입자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