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6] 여기, 싸우는 상가세입자들 / 이종건

by 철폐연대 posted Jun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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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여기, 싸우는 상가세입자들

 

 

이종건 • 전도사, 옥바라지선교센터

 

 

 

여기 싸우는 상가세입자들이 있다. 5년 전, 맛집 거리로 막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서촌 거리 한 편에 ‘본가 궁중족발’이 있었다. 2017년 당시 막 7년을 채운 가게였다. 모든 소상공인의 가게가 그렇지만, 골목에 터를 잡고 자리 잡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족발집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빚내서 수천만 원. 새 벽에 어엿한 족발집 냄새가 배기까지의 시간이 7년이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단골이 생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주말쯤 되면 자리가 꽉 차는 날도 생겼다. 이제야 한숨 돌리고 빚을 갚아 나간다. ‘장사’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그쯤 사달이 났다. 건물주가 바뀐 것이다. 서촌 골목이 뜨기 시작하니 건물주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적당히 월세를 올리며 소통해 온 토박이 건물주들이 값을 크게 부르는 전문 투기꾼들에게 건물을 팔기 시작한다. 궁중족발의 바뀐 건물주는 그중에서도 지독한 인물이었다. 건물을 매입하자마자 세입자인 궁중족발 사장 부부에게 요구했다. 월세 1,200만 원, 보증금 1억 낼 생각 없으면 나가란다. 그동안에도 월세를 적게 낸 것이 아니었다. 이미 월세를 300만 원 내고 있었고, 보증금은 3,000을 낸 상태였다. 하루아침에 네 배를 올려 버린다. 그 값을 내고 족발집을 운영할 수 있는 소상공인은 누구도 없다. 나가라는 것이다. 월세를 조정해 달라고 호소를 했다. 대화하자고 했다. 돌아온 것은 온갖 소송에 이어 결국 강제집행이다. 손님인 것처럼 들어온 용역 깡패들이 궁중족발의 사장을 끌어냈다. 이렇게 끌려 나오면 제대로 된 대화도 한 번 못 하고 쫓겨나게 될 것이 뻔히 보였던 궁중족발의 사장은 주방집기를 있는 힘껏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손에 힘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으면 좋았을 텐데, 법원 집행관과 용역들은 그새를 기다리지 않고 물건 마냥 사람을 끌어냈다. 주방집기 아랫면을 꽉 잡고 있던 손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집기 바닥 면에 손가락이 찢겨 나갔다. 지난 7년 족발을 썰던 손가락, 앞으로도 평생 음식을 해야 하는 손가락이다. 주방부터 바깥으로 이어진 문까지 피가 난자했다. 병원에서는 ‘부분 절단’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회복하셨지만, 그때의 충격은 잊힐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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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궁중족발 강제집행 직후, 연대인들이 떼어진 간판과 동일한

현수막을 출력해 집회를 하는 모습. [출처: 박김형준]

 

 

소식을 듣고 모인 이들이 가게를 지켜 냈다. 궁중족발은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 “궁중족발이 쫓겨나면 모두가 쫓겨납니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월세 1,200만 원을 감당할 수 있는 소상공인은 없다. 궁중족발이 그 값을 수용하면 골목 전체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불이 붙을 것이다. 결국 궁중족발이 쫓겨나면 골목의 모두가 쫓겨난다. 그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정도가 들어왔다가 결국 골목 상권은 폐허가 될 것이고, 그 시세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투기꾼들만 배부른 채 골목도, 상인도, 손님들도, 그 모두가 만들어 온 문화도 사라질 것이다.

 

강제집행을 막은 날, 건물주는 궁중족발의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곧 집행하러 간다. 또 해 봐.”

 

부동산값이 치솟던 지난 몇 년, 사람들은 건물값, 땅값이 이 도시의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굴었다. 1,200만 원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상인이 없는데, 그게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쫓겨나고 빈 건물을 비싸게 팔면 대체 그 과정에서 어떤 가치가 생성되는 것일까? 실제 삶에 기반 하지 않은 숫자놀음 속에 결국 폐허가 되는 건 이 도시의 문화고, 그 피해는 상인들뿐 아닌 그 거리를 오가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렇게 12차례의 강제집행을 막아 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대화를 거부한 건물주는 야간에 크레인을 동원해 문을 부쉈고, 안에 있는 사람들이 끌려 나왔다. 궁중족발의 사장은 피켓을 들고 국회를 향해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을 외쳤다. 비록 궁중족발은 가게를 잃었지만, 또 다른 세입자가 쫓겨나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당시 상가법은 단 5년만 상가세입자를 보호하고 있었다. 5년 동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업장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궁중족발과 시민사회는 세입자에게 하자가 없는 이상, 계속해서 장사할 수 있는 법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궁중족발 투쟁을 계기로 결국 상가법이 개정되었고, 5년의 보호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났다. 궁중족발에 소급 적용되는 바 없었으니 쫓겨남의 현실은 여전했고, 주장했던 것에는 턱 없이 모자란 법안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법을 ‘궁중족발 법’이라 불렀다.

 

시간이 조금 지나 2022년 4월 21일, 새벽에 용역깡패들이 을지로노가리골목에 있는 ‘을지OB베어’에 들이닥쳤다. 다섯 번째 강제집행, 궁중족발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쫓겨나야 했다. 42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노가리와 맥주라는 문화를 처음 만든 유서 깊은 가게였다. 이 조그마한 가게를 시작으로 노가리와 맥주를 파는 이웃 가게들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을지OB베어의 1대 사장은 새로 생긴 이웃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같은 업종의 가게들이 한 골목에 자리 잡아 소위 명물거리가 될 때에는 먼저 시작한 이의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소위 단일 업종의 맛집 골목이라면 으레 보이는 ‘원조 논쟁’이 없었다. 모든 가게가 을지OB베어가 첫 가게라는 걸 인정했으며, 선의의 경쟁을 하며 골목을 발전시켰다. 그렇게 을지OB베어는 정부에서 지정하는 ‘백년가게’가 되었다. 백년가게로서는 처음으로 술집이 선정된 것이다. 서울시는 가게와 골목 전체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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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5. 42년간 자리를 지켰던 을지OB베어의 강제집행 전 모습. [출처: 박김형준]

 

 

그렇게 골목이 유명세를 타자 골목 관할 구청인 중구는 골목 일대의 옥외영업을 허가했다. 소상공인 상권 활성화라는 명목이었다. 덩달아 지역 상권도 살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웃해 있는 가게 ‘만선호프’를 자본가가 인수하더니 조그마한 골목에 가게 수를 열몇 개로 늘렸다. 공공도로를 사용하는 옥외영업권을 입점해 있는 가게라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해 두었으니 자연스럽게 악용되기 시작했다. 열몇 개 가게를 가지고 있는, 이제는 ‘프랜차이즈’가 되어 버린 그 가게의 사장은 골목 전체를 자기 것인 마냥 사용하기 시작했다. 건물 아래에는 클럽을 들였다. 보행자가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테이블을 깔고 소위 ‘야장 문화’와 ‘힙지로’ 유행에 힘입어 큰돈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조 가게인 을지OB베어를 쫓아내겠다고 건물 지분을 사들여 강제집행을 한 것이다.

 

월세를 올리겠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궁중족발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떻게든 쫓아내겠다는 것이다. 궁중족발의 경우 건물주는 시세차익을 남기기 위함이었고 을지OB베어의 경우는 골목을 독점하기 위함이었다. 이 골목이 ‘을지로노가리골목’이 아닌 ‘만선골목’이라 불리길 바랐다. 을지OB베어의 사장과 연대인들은 쫓겨난 뒤에도 매일같이 문화제를 하며 골목에서 ‘상생’을 외쳤다. 한 가게만을 위해 허용된 옥외영업이 아니며, 모두가 상생해야 이 문화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을지OB베어의 골목에서 우리는 이렇게 외쳤다. “을지OB베어가 쫓겨나면 모두가 쫓겨납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고소장이었다.

 

결국 골목은 현재 재개발로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만선골목이 되며 문화적 가치조차 사라졌으니 그 골목을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낼 사람들조차 없다. 중구청은 잘됐구나 하며 옥외영업 허가를 취소했다. 더 이상 분쟁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이 도시 한 편에 싸우는 상가세입자들이 있다. 도시라는 이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소유’는 권리가 되지만 소상공인들의 노력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가치는 계수되지 않고, 계속해서 장사할 권리는 언급되지 않는다. 궁중족발 강제집행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그 건물은 여전히 팔리지 않은 채 궁중족발 자리는 공실로 남아 있다. 부동산 호재를 비껴간 모양이다. 을지OB베어가 있던 골목은 이제 폐허가 되고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가게들이 장사에 열심이지만, 재개발 광풍이 하나둘 가게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을지OB베어를 쫓아낸 만선호프에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이 도시는 세입자들이 만든 가치 위에 생동한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그 거리의 가게를 입점한 사람도, 그 가게의 손님도 모두 세입자다. 세입자의 노동은 이 도시를 지탱하는 힘이다, 하루의 고된 노동을 하고 돌아온 우리는 모두 단골가게를 향한다. 그 가게들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세입자의 노동이 우리 도시 곳곳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두 가게는 세상을 바꾼 투쟁을 감당했다. 궁중족발은 상가임대차 보호법을 개정했으며, 을지OB베어는 ‘백년가게법’을 외치며 상가법의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두 가게 모두 건물주와의 상생에는 실패했다, 싸움의 대가가 가혹하다. 수천만 원에 이르는 강제집행 비용을 모두 물고 나서도 손해배상, 징역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싸우는 상가세입자들을 괴롭힌다.

 

두 싸움에 연대한 활동가인 나에게는 궁중족발 건물의 효용을 침해했다는 해괴한 죄목 ‘부동산효용침해’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을지OB베어 건으로는 영업을 방해했다며 1,800만 원의 배상액이 주어졌고 통장이 압류된 상태이다. 궁중족발의 연대인들이 받은 벌금은 도합 2,000만 원 정도이며, 을지OB베어의 가족들은 내가 받은 금액을 포함해 총 7,200만 원의 배상액을 납부하라는 결정문을 받았다. 법원에서 다투고 있지만 투쟁한 세입자들의 손을 들어줄지는 모를 일이다.

 

싸우는 상가세입자와 그에 연대한 이들은 벌금 및 배상액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싸우는 상가세입자들을 위한 벌금 모금 프로젝트 <벌금의 꼬리표를 연대의 깃발로>” 라는 제목의 모금 프로젝트를 3개월간 진행한다. 벌금과 배상액을 모금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세입자의 도시에서 우리의 투쟁이 정당했음을 공론화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싸우는 노동자가, 싸우는 상인이, 싸우는 철거민이 세상을 바꾼다. 바뀐 세상의 몫은 투쟁한 이들에게 오롯이 돌아오지 않고, 그것을 기대하고 싸움에 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소유권’이 이 도시의 유일한 권리가 아니라는 세입자들의 외침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으면 한다. 노동하는 이가 주인이 되는 세상, 결국 세입자가 쫓겨나지 않는 세상과 맞닿아 있다.

 

궁중족발은 홍은동에 둥지를 틀어 다시 족발을 삶는다. 을지OB베어는 최근 연희동에서 새 출발을 했다. 다시 을지로로 돌아올 날을 꿈꾸며 오랜 단골들과 오랜 싸움에 지친 연대인들을 맥주 한 잔으로 위로하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을 두 가게로 초대하며 연대를 요청한다. 앞으로 있을 싸우는 상가세입자들의 투쟁에 늘 주목해 주시길 바라며!

 

 

<벌금의 꼬리표를 연대의 깃발로> 모금 계좌

: 우체국 010033-01-008860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