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11] 연쇄 산재사망 사고, 살인기업 디엘이앤씨, 그리고 일흔의 엄마 / 조혜연

by 철폐연대 posted Nov 10,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오늘, 우리의 투쟁

 

 

연쇄 산재사망 사고, 살인기업 디엘이앤씨,

그리고 일흔의 엄마 

 

 

조혜연 • 김용균재단 상임활동가 

 

 

 

어떻게 그런 사고가 날 수 있지? 

 

부산 연제구의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20여 미터 높이인 6층의 파손된 유리창을 교체하던 노동자가 창틀과 함께 추락해 사망했다. 창의 양쪽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함께 잡고 있었는데 다른 한 명의 노동자는 창호가 균형을 잃고 기울자 손을 놓았지만 사망한 노동자는 미처 손을 놓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수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이미 설치된 창의 유리를 교체하는데 어떻게 창호 자체가 떨어져 나갈 수가 있지? 20미터 높이의 고소 작업을 하는데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가 전혀 없었단 말인가?

 

수많은 산재사망 소식을 듣지만, 번번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사람의 목숨이 허망하게 스러진다. 8월 11일 부산에서 일어난 이번 사고 역시 그랬다. 고 강보경 씨는 그 현장에 투입된 첫날 사고를 당했다. 고 김용균과 같은 나이인 94년생이었다.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고, 안전고리도 없었고, 추락방지망도 없었다. 그는 우리가 창호로 잘 알고 있는 KCC와 일용직 근로계약을 맺었고, 원청은 디엘이앤씨이다.

 

디엘이앤씨는 DL그룹의 계열사로 이름만 들으면 생소한데, 찾아보니 e편한세상의 건설사이다. 그리고 예전 이름은 대림산업으로 대림산업이 2021년 분할하면서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지금의 마창민 대표이사는 이때 취임했다.

 

찾아보다 보니 대림산업은 그냥 그런 건설사가 아니라 엄청난 회사였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1939년에 설립된 대한민국 1호 건설회사로 경부고속도로,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광화문광장, 이순신대교 등 국내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건설해 왔고, 현재도 국내 건설업계 BIG 5로 꼽히는 기업이고, 시공능력평가순위는 2022년 3위, 2023년 6위를 기록하는 등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기업에서 지난해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만 7번의 중대재해가 발생해서 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모두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2022년 3월에는 서울 종로구에서 떨어지는 전선 드럼에 맞아서, 같은 해 4월에는 과천시에서 신호수가 굴착기와 철골 기둥 사이에 끼어서, 8월에는 안양시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펌프카 붐대가 부러지며 깔려서(2명), 10월에는 경기도 광주시에서 이동식 크레인 붐이 낙하하면서 함께 추락해서, 2023년 7월에는 의정부시에서 콘크리트가 무너지며 철근에 머리가 관통되어, 8월에는 서울 서초구에서 지하 전기실 양수 작업 중 물에 빠져서 노동자들이 죽어 갔다. 같은 달 강보경 씨까지 모두 8명의 생명이다. 

 

 

4-1 본문사진1.jpg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디엘이앤씨에서 일하다 죽어 간 8명의 노동자. [출처: 대책위] 

 

 

그런데 사고 내용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7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동안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근 1년 반 동안 연달아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처벌은 단 한 건도 없었다. 8번째 사망자인 강보경 씨의 사고가 나고서야 고용노동부는 8월 29일 디엘이앤씨 본사와 부산 연제구 현장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기본적인 안전조치도 하지 않은 채 고소 작업을 하도록 한 것도 문제지만 중대재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도 반성하거나 바뀌지 않은 디엘이앤씨의 태도와 정부·수사당국의 안일함은 ‘산재는 살인이다’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한다. 7건의 중대재해 혹은 연쇄 산재사망, 8명의 노동자의 죽음이라고 쓰지만 연쇄 살인사건과 뭐가 다를까.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진짜 책임자 

 

디엘이앤씨의 기업정보를 좀 더 들여다보자. 디엘이앤씨가 속해 있는 DL그룹은 DL주식회사를 지주회사로 두고 있는데,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대림이다. 결국 DL그룹의 최정점에 있는 기업이 ㈜대림인 셈인데, 대림의 최대주주는 이해욱 DL그룹 회장이다. DL그룹은 세습이 유지되고 있는 재벌기업이기도 하다. 이해욱 회장은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이고, 이재준 창업주의 손주이다.

 

복잡하지만 이런 것들을 따져 보는 것은 ‘진짜 책임자’를 찾는 과정이다. 현실적으로 디엘이앤씨 마창민 대표이사는 월급을 받는 바지사장일 뿐이고, 기업경영의 방향을 결정하고 이윤을 챙기는 디엘이앤씨의 실질적인 소유자는 이해욱 회장인 것이다.

 

강보경 씨의 유족들은 청천벽력 같은 사고 소식을 듣고 회사를 찾아갔으나 사측은 고인의 죽음의 원인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고, 사고 현장도 보여 주지 않았다. 사과 한마디 없었음은 물론이다. 대신 마창민 대표이사의 도장이 찍힌 합의서를 내밀며 돈 몇 푼으로 합의를 종용했다. 이후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포함된 내용이다. 이전의 모든 사고들도 그런 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복잡한 과정이 있었고, 유족들은 거의 합의할 뻔하기도 했으나 결국 디엘과의 싸움을 선택했다.

 

추석 이전 유족과 노동사회단체들은 간담회를 거쳐서 지난 10월 5일, DL그룹과 디엘이앤씨 본사가 있는 서울 서대문 D타워 앞에서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건설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를 발족했고, 10월 18일 분향소를 설치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주요 요구는 (1) 사건 진상 공개, (2) 책임 인정과 공개사과, (3) 재발방지대책 수립, (4)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엄정한 수사와 처벌 등이다. 이에 더해 대책위는 고 강보경 씨의 죽음만이 아니라 디엘이앤씨에서 발생한 전체 중대재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을 요구하고 유족과 함께 투쟁하기로 결정했다.

 

마창민 디엘이앤씨 대표이사는 10월 12일 국감에 출석해서 유족에게 사과하겠다, 유족의 요구를 ‘가능하면’ 진행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나 역시나 10월 17일 첫 번째 공식 교섭자리에서 장황하게 유감 표명을 하였으나 그뿐이었고 지금까지 분향소에 발길 한번 없었다. 공식적인 사과를 할 생각도 진지하게 유족의 요구에 대해 고민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 이렇게 크게 문제제기가 되어도 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런 태도는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특히 건설현장의 수많은 죽음들이 기업에는 얼마나 일상적인(익숙한) 문제인지 보여 주는 것 같았다.

 

한편 마창민 대표이사에 이어 진짜 책임자인 이해욱 DL그룹 회장도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함께 10월 26일 국감 출석을 요구받았으나 두 명 모두 해외 출장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했다. 말하자면 사람이 죽었거나 말거나 돈 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4-1 본문사진2.jpg

2023.10.24. 이해욱 DL그룹 회장의 국감 출석 거부 규탄 기자회견. [출처: 전병철] 

 

 

디엘이앤씨뿐만 아니라 DL그룹에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어 가고 있다. 이은주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3년 반 동안 디엘이앤씨에서 10명, DL건설 4명, DL모터스 2명으로 DL그룹에서만 모두 1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DL건설은 같은 DL그룹 계열사일 뿐 아니라 디엘이앤씨와 e편한세상 브랜드를 공유하는 건설사이기도 하다.

 

디엘이앤씨는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원청사가 그렇듯 하청업체의 책임으로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일말의 책임이 인정되어도 진짜 책임자는 따로 있는 기업 구조에서 늘 사건의 해결은 꼬리 자르기,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다. 사고 다발 사업장도 수사가 봐 주기로 끝나거나 벌금 수준의 미약한 처벌로 그칠 뿐이니 또 사고가 나도 전과가 없거나 벌금 몇 푼인 미약한 전과가 있을 뿐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이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지만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개악이 시도되고 있다. 디엘이앤씨 투쟁, 잘 싸우고 꼭 이겨야 하는 이유이다. 진짜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도록 하고 조금씩이라도 현장을 바꿔 나가야 한다.

 

일흔을 넘긴 강보경 씨의 어머니와 누나는 나고 자란 경남의 먼 고향을 떠나 벌써 4주째 매일 서울 한복판에서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의 1인 시위를 하고, 익숙하지 않은 집회와 추모문화제에서 발언을 하고 인터뷰를 하느라 수십 수백 번씩 사고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면서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일하다 죽지 않도록 하는 게 기본이지만,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질 자가 책임지고, 유족 앞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제대로 처벌받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상식적인 세상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