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1]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조합원 / 안명희

by 철폐연대 posted Jan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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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2)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조합원

 

 

“영화를 볼 것인가? 콘텐츠를 소비할 것인가?”

 

 

인터뷰·정리 안명희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서울을 벗어난 지역의 단관 극장을 살리기 위해 영화인들이 한데 모였다. 기억과 문화를 지키는 것을 넘어, 변화하는 문화예술산업에서 영화는 어떻게 읽히고 있는 걸까? 읽혀야 할까? 궁금했다. K-콘텐츠, K-컬처로 받들어지며 한국 문화예술산업의 부흥이 얘기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영화노조 위원장으로 조합원으로 여전히 영화 현장을 지키고 있는 안병호 동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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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조합원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 현장에서

10월 28일 새벽에 철거를 막으려고 영화인들과 함께 모여 갔어요. 26일인가 철거를 방해하려고 원주에 계신 분이 극장 지붕 위로 올라갔고, 원주시장이 공사를 중단하고 면담을 하겠다고 하여 내려왔는데, 바로 다음 날 철거하겠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된 거예요. 그래서 부랴부랴 내려간 거죠.

아카데미의 친구들 활동가 몇몇 분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고, 극장 입구 쪽에는 공사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스크럼 짜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어요. 잠시 소강상태가 생겼고 점심을 먹고 왔는데 문 앞에 폐기물 운반하는 덤프트럭이 진입하려고 서 있는 거예요. 다시 막아섰는데, 용역업체가 업무방해로 신고했고, 그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은 진입을 막아선 영화인들에게 신분증을 내놓고 주소지를 대라고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체포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박찬희 전 영화노조 위원장과 이은 영화제작가협회 회장 등이 연행되었어요. 영화산업 노사 대표가 함께 연행된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된 거죠.

원주시는 건물 안전이 위험하니 철거한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 않아요. 안전등급을 받았는데, 건물 뒤쪽 벽체만 D등급을 받았고 나머지는 B등급 받은 곳도 있고. 실제 철거를 할 만큼 위험한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음에도 철거를 강행한 거예요. 시민사회에서는 단관 극장의 형태로 60년 된 극장이 유일하니 보존해야 한다고 했고, 2020년인가 원주시에서 보존을 위해서 극장을 매입하기도 했어요. 예산도 있었고, 충분히 극장을 보존할 수 있었음에도 강제 철거한 데는 부동산 개발이익을 얻고자 한 게 아닌가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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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8. 원주 아카데미극장 강제철거 현장에서. [출처: 안녕 아카데미]

 

 

단관 극장의 의미? 공간으로서의 영화!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중요했던 건, 극장 산업이 바뀌면서 멀티플렉스 위주의 극장들이 많이 생겼다는 거죠. 많은 사람을 오게 해서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만 극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데 반해,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스크린이 하나만 있는 극장이라는 거예요. 스크린 하나만 갖고서, 극장 위층에 살림집을 놓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극장 운영을 해 왔던 거예요. 600석 규모라면 쪼개서 스크린 두 개를 둘 수도 있었을 텐데, 더 많은 관객을 더 흥행성 있는 작품을 돌려 가면서 돈을 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 단관 극장으로서 영화를 지켜갈 수 있는 어떤 보루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의 극장이 아닌 영화를 같이 보게 하는 공간으로서 이 아카데미극장이 유지돼 왔고 그런 지점으로 또 유지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이었던 거죠.
코로나19 이후부터 가속화되었는데, 이제 사람들은 OTT나 VOD로 영화를 감상해요. 극장에서 보는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로 전환되기 시작한 거죠. 각자가 핸드폰으로 아이패드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는 문화로 바뀌면서 모일 수 있는 여지도 사라지고 그저 콘텐츠 소비의 방식으로만 영화 문화가 바뀌어 거예요. 그런 지점에서도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라는 곳이 더 중요한 것 같고, 또 그런 지점에서 멀티플렉스가 아닌 단관 극장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영화는 다수의 대중이 한 공간 안에 들어와서 유료로 입장료를 내고, 영화를 보기 위해 모여 있는 형태, 그 행위 자체를 모두 포함해요. 그러니까 한 장소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로 영화가 처음에 정의되었고, 요즘이야 영화의 형태가 좀 달라져서 콘텐츠 자체로서 정의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이렇게 변형되어 가고 있지만, 애초에는 공간까지 아우르고, 그 공간에 온 사람들의 관람 형태까지 아우르는 것이 극장 영화라는 정의였어요. 그 출발로 보자면 영화는 소비 산업적으로 생각되기 전에 문화적으로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서 영화를 본다라는 것이 주요했기에 단관 극장으로서의 의미가 좀 더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산업의 기형성? 독과점의 문제!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말하면 단관 극장, 멀티플렉스에 대한 얘기가 따라오는데요. 관객들은 편리성으로 멀티플렉스를 더 선호할 수 있겠지만, 이제 영화산업은 멀티플렉스를 하게끔 만들고, 거기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서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게끔 여러 편의 영화를 직접적으로 상영하도록 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다수의 스크린을 점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 확률이 높아지니까 자본이 개입하는 거죠. CJ, 롯데, 메가박스, 이런 대형 회사가 우리나라 극장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의 99.9%를 세 개의 특정 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보니, 셋 중 하나는 돌아가면서 천만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거고, 천만이 되려면 한 영화를 다 도배하는 수준으로 틀어야지 가능한 거죠. 우리나라에서 천만이 든다라는 건 인구의 5분의 1이 한 편의 영화를 본다라는 건데, 사실 말이 안 되는 행위이긴 하거든요.
영화가 다양해지고 문화가 다양해지려면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환경보다는 여러 편의 영화가 상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할리우드의 경우에는 1930년대, 1940년대에 이미 독점하면 안 된다라는 판결이 나왔어요. 미국 법무부에서 주요 8개 회사를 상대로, 우리로 치자면 CJ나 롯데 같은 대형 회사들이 극장도 갖고 제작도 하고 배급도 하면서 다른 소규모 극장이나 소규모 제작사들을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자기 영화만 계속 트는 수직계열화 독점구조가 너무 공고해지니까,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라는 소송이 있었고, 그 결과 독점하면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린 거예요. 극장을 분리시키고, 배급만 하고, 제작과 극장 영업을 분리하도록 조치한 거죠. 그 판결이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영화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영화계에 자본이 들어온 것이, 대기업이 들어와서 영화를 제작하고 영화에 투자하라고 한 것이 겨우 김대중 정부 때부터거든요. 제 기억으로는 아마 ‘쉬리’였던 것 같아요. 삼성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CJ까지. 대기업 자본이 영화산업으로 들어오면서 다양성은 사라지고 한 편의 영화를 여러 군데 스크린에 도배해 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죠. 자본의 입장에서는 자기네 극장을 많이 만들어 자기네 영화를 많이 틀어서 더 많은 관객을 불러 들어야 큰 이익이 만들어질 거라는 계산이 나오는 거니까요. 독점을 하는 게 자기들한테는 더 유리한 거니까 영화 다양성 측면에서는 그들이 좀 저해되는 요인인 거죠. 그래서 예전에 한 개의 영화가 점유할 수 있는 스크린 숫자를 정하자는 내용의 법률안을 내기도 했는데, 발의는 되었으나 논의가 되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그전에는 영화판에 돈 없다고 대기업 자본 들어와야 한다고 했는데, 막상 독점 구조가 형성된 걸 보니 결국 우리가 우리 발목을 잡은 건 아닌가 하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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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25. 2001년 제39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화노동자들. [출처: 영화산업노조] 

 

 

더 많은 영화가 스태프의 고용을 만든다!

아이러니한 게 영화산업에 근로계약서를 쓰게 된 건 사실 자본의 역할이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분배라든가 노사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으니까요. CJ가 투자사로서 근로계약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제작사들은 투자사가 하라고 하니 그제야 표준근로계약서가 퍼지기 시작한 거죠. CJ로 인해 근로계약서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자본으로 인해서 근로계약서가 확장되고, 그 자본으로 인해서 스태프들 임금이 올라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긴 하거든요.

그러나 천만 영화로 주목되는 CJ 등 자본이 투여된 영화들은 1년에 몇백 편씩 나오는 게 아니니까, 천만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 몇 군데 틀어지는 영화보다는 작지만 더 많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고용을 확보하는 데는 더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고용된 스태프의 수가 일정하게 유지되려면, 큰 규모의 영화 한 편보다는 적정한 규모의 영화들이 여러 편 나와야 한다는 거죠. 그런 환경이 되어야 고용이 유지되고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고 관람이 이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될 게 아닌가 하는 거죠. 지금은 극장에 안 가는 것도 영화에 투자를 안 하는 것도 계속 큰 영화만, 돈 될 영화만 고민하고 자본이 거기에만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예전만 해도 투자의 과감성이랄까 뭐 그런 측면에서 이런저런 영화에 많이 투자를 했었는데요. 코로나19를 겪고 나서는 자본 하나가 위축되니까 영화산업 전체가 위축되어 버리는 거예요. 자본 하나에 영화산업 전체가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CJ가 아프면 우리가 다 아파야 되는 상황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판단을 해야 되는 거죠.

최근 외국에서 온 분들과 인터뷰를 했었는데요. ‘오징어 게임’도 흥행하고 그러는데, 도대체 K-콘텐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노동자들을 인터뷰해서 개발도상국들에 사례를 전파하는 연구보고서를 만든대요. 그런데 그들한테는 아직도 한국 콘텐츠가 어떻게 이렇게 세계적으로 잘되는지가 의문인 거예요. 근로계약, 4대보험 이런 것도 제대로 안착되어 있는 게 아니고, 노동환경도 열악하고. 신기한 거죠. 사실 이렇게 나올 수가 없는 구조이긴 하거든요. 

 

인터뷰 마지막 한마디

모든 투쟁에는 이유가 있고 다 긍정해야 된다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원주에도 내려갔던 거고요. 소수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끈질기게 지역에서 욕을 들으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보면서 그분들의 투쟁이 되게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면서 지역 영화 문화에 대한 마음, 단관 극장의 소중함, 이런 것들을 좀 더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