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4] 세월호 10주기, 투쟁과 과제 / 박성현

by 철폐연대 posted Apr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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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운동의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안녕을 묻습니다.
- 세월호 10주기, 투쟁과 과제 -

   

 

박성현 • 4·16재단 나눔사업1팀 팀장

 

 

 

2024년 3월 16일 노오란 조끼를 입은 4.16세월호참사 피해가족들과 시민들과 보랏빛 점퍼를 입은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함께 도로에 앉았습니다. 20박 21일이라는 시간 동안 세월호가 제대로 도착했다면 닿았을 제주도부터 서울시의회 앞 기억공간까지 이어진 도보행진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4.16세월호참사 피해가족들이 입은 조끼 앞면에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안녕하십니까?”라는 글귀가, 뒷면에는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국민 모두를 목격자로 만들었던 세월호참사가 벌써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벌써 10년! 누군가는 ‘아직도 10년’ 혹은 ‘아직까지, 세월호?’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여러분들은 안녕하신지요? 2014년 4월 16일 이후, 부던히 애써 왔던 것 같은데, 세상은 오히려 저만치 뒤로 걸어가는 느낌입니다. 아직도 매일 2명씩 노동현장에서 귀한 생명이 떠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오송지하차도참사로 14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가족 중 누군가를 잃어야 안일한 사회시스템을 멈추고, 성찰하려나 싶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도 운 좋게 살아남은 서로에게 안부의 인사를 건네어 봅니다. 세월호참사 가족들이 전국을 찾아가 안녕을 물었던 건, 2014년 4월 16일 누군가는 탄식을 지었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던 그 순간 이후, 손잡고 피해가족들의 걸음을 동의해 준 시민들의 안녕이었습니다. 재난참사 피해가족으로서 겪었던, 때때로 혐오하며 힐난하는 시민들로 입은 2차 가해라는 상처를 당신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바람은 별이 된 가족들에게 약속했던 “끝까지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시민분들이 다시 함께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많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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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7.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 3일 차 행진 시작. 목포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앞. [출처: 4·16연대]

 

 

매듭짓지 못한 숙제 1. 

애도할 권리, 4.16생명안전공원 건립 

 

3월 15일, 도보행진의 시작이었던 안산 4.16생명안전공원부지(추모공원부지)에는 호성엄마(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부서장)의 애달픈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4.16세월호참사 10주기에 첫 삽을 뜰 수 있을 줄 알았던 추모공원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원자잿값이 올라 다시 공사비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정부의 발목잡기는 1년을 늦추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서너 군데의 공간을 줄이고서야 다음 단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용역을 통해 공사업체를 선정하고 나면, 올해 말 즈음이 되어야 추모공원의 첫 삽을 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모공원에 대한 편견이 있는 시민들로 피해가족들은 지역사회에서 2차 가해를 당합니다. 확성기를 단 용달차가 와서 동네를 돌며 피해가족과 관련 기관을 폄훼하곤 합니다. 추모공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매해 기억식 건너편 도로에 집회신고를 내고,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발언을 합니다. 주민들 마음을 돌려보겠다고 나섰던 호성엄마는 경로당 어르신이 던진 양파에 뒤통수를 맞는 일도 있었습니다. 다섯 해쯤을 지역사회 봉사를 하며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나서야 그 어르신으로부터 ‘잃은 아이가 얼마나 아프냐?’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로서 충분한 애도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갖는 일은 회복을 위해 너무 중요한 일임에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매듭짓지 못한 숙제 2.

진실을 알 권리,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

 

세월호참사는 처음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시민들의 마음이 이렇게 많이, 오래도록 모인 것도 처음이었지만, 조사기구를 세 번이나 가진 유일한 참사였습니다.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례적인 조사기구들이 있었으니, 참사의 진실이 모두 밝혀져야 마땅하지만, 애석하게도 세월호참사 피해가족에게는 남겨진 숙제가 존재합니다.

 

가장 최근 종료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는 피해자 가족들의 끈질긴 진상규명 운동으로 만들어 낸 독립적인 조사기구입니다. 조사 과정에서 많은 방해를 받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록물과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세월호참사 관련 자료를 모두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끝끝내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습니다. 사참위는 3년 6개월여의 조사 활동을 통해 총 여덟 권의 보고서와 함께 수많은 권고사항을 내어놓았습니다. 물론 충분한 진실과 대책을 담지 못했지만,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실천 사항을 결실로 내어놓았습니다.

 

사참위는 대통령에게 세월호참사로 인한 국민 희생이 있었으며, 피해자를 포함한 민간인 사찰과 진상규명 방향 등 권리침해가 피해자 가족과 국민을 적대시하는 정책 기조에 따라 이루어진 반인권적 국가범죄였다는 점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국가의 잘못에 관하여 추가적인 독립조사 또는 감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외에도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보완을 권하였으며, 이는 2023년 국회국민동의청원으로 요청한 바 있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의 궤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재난참사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 중에는 ‘아까운 세금’을 운운하며, 참사에 투여되는 사회적 자본을 아까워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아까운 돈은 이러한 조사기구 이후 사회적 교훈으로 정리한 안전한 사회를 위한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일입니다. 사회적 참사로 온 우주와 같은 생명을 잃는 것, 참사를 통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교훈을 성찰하지 않는 것, 이를 제도와 정책으로 수정하지 않는 것은 다시 참사를 반복하겠다는 것이니 가장 아까운 돈이 되는 것이지요. 사회적 참사 피해자의 경험을 그저 운 나쁜 경험으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사회화하는 과정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가족은 여기에서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국정원이 자행한 불법사찰 정보공개 요구를 시작으로 비공개 자료의 공개와 추가적인 조사를 촉구하는 활동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이 진상규명에 대해 안전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장을 만들고, 민간 진상규명체계를 구축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민들과 함께했던 도보행진은 이러한 과정에 다시 마음을 보태어 달라는 가족들의 당부가 담긴 걸음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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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3. 세월호 기억공간 지키기 광화문광장 집중 피켓팅. [출처: 4·16연대]

 

 

매듭짓지 못한 숙제 3.

책임지는 사회,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 

 

세월호참사 현장에서 구조의무를 방기했던 해경지휘부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진실을 은폐한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피해자를 불법 사찰한 범죄자들의 형이 확정되자마자 보란 듯이 사면되고, 복권되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 가족들이 불처벌에 항의하고 끝까지 책임을 묻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입니다. 참사로 생명을 잃은 사람은 있지만,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참사 현장에서 구조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거나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 현장의 지휘·감독 책임이 있었던 이들이 더 나은 자리로 ‘지도층’이 되거나 ‘전문가’인 양 나서는 일이 만연한 사회입니다. 그렇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면, 또 다른 참사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10.29이태원참사와 오송지하차도참사에서 반복되었던 사실입니다.

 

모두가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 시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더 해야 할까요? 재난을 대비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재난을 덮는 복구가 우선이기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 실천하는 일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안전감시자’로서 우리의 눈길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문득,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간담회 장소에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안전한 사회가 되어도, 내 아이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내가 겪은 이 고통을 당신은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안전한 사회에 살 권리,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마음에 빚져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남았는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 곁에 당신이 함께 손잡아 주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