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5] 5인 미만, 프리랜서, 책 만드는 노동자들의 교섭투쟁 / 안명희

by 철폐연대 posted May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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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1)

 

 

5인 미만 & 프리랜서,

책 만드는 노동자들의 교섭투쟁

 

 

안명희 •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조협의회 의장, 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 지부장 

 

 

 

거대한 출판산업의 규모 vs 5인 미만·프리랜서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출판산업은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에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한다. 2023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2022년 실시, 2021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콘텐츠산업에서 매출액 규모가 가장 큰 산업은 바로 출판산업이다. 그다음이 방송산업, 게임산업이다. 사업체 수도 종사자 수도 부가가치액도 출판산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수출액은 게임산업이 가장 높았으며 출판산업은 음악, 방송, 지식정보산업 다음을 차지했다. 수입액은 광고산업 다음으로 출판산업이 높았다. 한국 출판시장의 규모가 세계시장 10위권 내에 든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것이다.

 

 

3. 그림.jpg

출판산업은 우리나라 콘텐츠산업 가운데 (위부터) 사업체 수, 매출액, 종사자 규모가 가장 큰 산업이다. 매출액 수치는 10억 원 단위.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2022년 실시 2021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 / 편집: 미디어오늘] 

 

 

그러나 이 같은 산업의 규모에 비해 출판노동자의 법제도적 지위나 노동권의 보장은 너무도 형편없다. 혹자는 5인 미만 출판사가 전체 70%를 차지한다는 이유를 들어 출판사가 영세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둘러댈 테지만, 이는 영세성의 문제가 아니라 양극화의 문제로 접근하는 게 맞다. 무엇보다 실제 5인 미만 출판사가 이토록 많은 것은 출판사 내부의 고용을 최소화하고 책 생산을 외부화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1년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간도서 1권 발행기준으로 자사 수행 71.8%, 외주 의뢰 28.2%이다. 출판사의 연간 지출액 비율은 인건비 23.2%, 편집비 12.1%이다. 이는 곧 외주노동자 없이는 출판사의 책 생산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며, 출판사용자 입장에서는 외주노동자가 있기에 굳이 출판사 내부 고용을 늘릴 필요성을 갖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구조는, 출판사 내부의 고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출판사의 전략은, 출판노동자들을 노동법 밖 노동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출판사는 출판노동자를 고용했을 때 드는 비용과 사용자로서 져야 할 책임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과 맞닿아 있다. 출판사 안에서 일하는 재직노동자의 경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어서 근로기준법의 일부만 적용받을 뿐이다. 출판사 밖에서 일하는 외주노동자들은 프리랜서로 호명되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기에 모든 노동관계법에서 적용 배제되고 있다. 결국 출판노동자는 재직이든 외주든, 근로자든 프리랜서든 할 것 없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법제도적 지위가 취약하고 권리를 배제당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출판노동자들의 노동현실, 출판산업 단체교섭 요구 

 

출판노조의 「2023년 출판노동 요구안 설문 결과」에 따르면, 재직노동자의 경우 근로계약서 작성 96.6%, 가산수당 미지급 81.8%, 연차휴일 적용 88.6%, 임금명세서 교부 82.6%, 4대보험 가입 96.4%, 출산·육아휴직 없다 51.3%로 나타났다. 아직도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출판사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주노동자의 경우는 절반만이 계약서 작성을 매번 하고 있다고 했으며, 61.8%가 연소득 2,400만 원 이하라고 답했다.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은 단 2%뿐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출판계에 만족한다는 답변이 10점 만점에 4.98점에 불과한 건 당연한 결과다.

 

출판노동자들이 바라는 바는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최소한의 노동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랄 뿐이다. 재직노동자들은 첫째 연장근로 제대로 보상받기(74.3%), 둘째 장시간 노동 줄이기(64.4%), 셋째 포괄임금제 폐지(62.7%)를 요구하고 있다. 외주노동자들은 첫째 적정한 작업 단가(95.1%), 둘째 작업비 지연/체불 금지(69.6%)를 요구했다. 제대로 계약서를 쓰고, 장시간 야간 노동 없이도 가능한 책 작업 일정이 제시되고, 적정한 임금과 작업비가 보장되고 체불되지 않으며, 쉬운 해고와 직장 내 괴롭힘이 없다면 출판노동자들이 이토록 고통받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법제도가 미비한 것도 맞다. 그렇다고 해서 출판사용자의 책임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출판노조는 출판사용자단체에 전체 출판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바꿔내기 위해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저의 노동기준을 넘어, 아직 법이 보장하지 않는 출판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출협과 단체협약을 맺어 보겠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설문 결과에서 출판노동자의 84.9%가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출판노조와 사용자(또는 사용자단체)의 교섭이 필요하다고 답했고(잘 모르겠다 14%, 필요하지 않다 1.1%), 74.2%가 출판노조가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단체교섭을 요구한다면 지지하겠다고 했다(잘 모르겠다 21.7%, 지지하지 않는다 4.1%). 출판노조로서는 처음 가 보는 길이지만, 꼭 한번은 가 봐야 할 길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잠깐, 이해를 돕기 위해 출판노조와 출협을 설명하자면, △ 출판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조협의회)는 언론노조 산하 7개 기업노조(고래가그랬어지부, 보리지부, 사계절지부, 작은책지부, 좋은책신사고지부, 창비지부, 한겨레출판지부)와 1개 지역노조(서울경기지역출판지부(별칭 출판노동유니온))의 협의체이다. 전체 출판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사업장 노조와 개별노동자가 가입한 지역노조가 함께,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 출협(대한출판문화협회)은 1947년 창립하여 2023년 12월 총 4,004개 사가 회원사로 참가 중인 출판계 대표 사업주단체이다. 출판노조가 단체교섭 대상으로 지목한 출판사용자단체로서, 전태일재단의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출판하는 ‘사회평론’의 윤철호 대표가 2017년부터 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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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1. 책의날 기념식에서 윤철호 출협 회장에게 항의하는 피케팅. [출처: 언론노조] 

 

 

어찌 됐든 시작했다, 출판노조가 싸우는 이유 

 

2022년 12월 16일, 출판노조는 국회토론회를 열어 출판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사·정이 함께 논의를 시작해 보자고 제안했다. 국회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근로복지공단,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의 정부/기관 모두가 자리했다. 그러나 정작 출협 윤철호 회장만이 검토 운운하며 시간을 끌더니 끝내 불참하였다. 그 뒤로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언론노조에서, 파주출판단지에서, 출협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고용노동부에는 근로감독을, 문체부에는 노사정협의체 구성을, 출협에는 단체교섭 요구를 끊임없이 밝혔다.

 

그렇게 1년 5개월, 성과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서울 소재 2개 출판사(사회평론, 민음사)에 시범적으로 근로감독이 실시되었고, 문체부는 처음으로 출판 외주노동자 노동실태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2023년 10월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출판 노사정협의체 구성의 전제는 노사합의”라고 한 이후 문체부는 출판노조와의 만남 그 자체를 거부해 왔다. 그러다 4월 23일 ‘2024 세계책의날’ 행사장에서 피켓시위를 한 이후에야 겨우 면담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출협은? 정말 완강히 버티고 있는 중이다. “출협은 사업주이익단체이지 사용자단체가 아니라며 교섭에 응할 이유가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이에 출판노조는 2023년 10월 11일 출협이 주최하는 ‘책의날’에서 기습적으로 단상에 올라 윤철호 회장이 기념사를 하는 내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2024년에는 세계책의날을 맞아 일주일간 출협 앞과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집중 선전전을 동시 진행하기도 했다. 다가오는 6월 서울국제도서전 때에도 출판노조는 무언가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가장 많이 사고 보는 사람들이 편집자라는 말이 있다. 책이 좋아서 출판계에 들어왔고, 책이 싫어질까 두려워 출판계를 떠난다는 말도 있다. 출판노동자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간절히 바란다. 출판노동자를 착취해 책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출판자본의 질서를 출판노동의 질서로 바꿔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책이 온전히 지켜지기를 말이다. 그러니 출판노조는 계속해 싸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