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2]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한 세상, 함께 만들어 가요!” / 권미정

by 철폐연대 posted Feb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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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한 세상,
함께 만들어 가요!”

 

권미정 회원 인터뷰

 

9 살아가는 이야기_01.jpg

 

2022.01.22. 인권활동가 그림 소모임 ‘그리우리’의 그림으로 채워진 <2022 인권달력>과 함께 포즈를 취한 권미정 회원님. [출처: 철폐연대]

 

 

인터뷰 시작부터 핀잔을 들었어요. ‘살아가는 이야기’라더니 질문들이 왜 이렇게 시시하냐고요. 순간 뜨끔해졌습니다. 그럼에도 활동 이야기만이 아니라 쉼과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나만의 노하우까지 들려주신 권미정 회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활동만으로도 벅찰 것 같은데, 권미정 회원님은 지난 한 해 동안 그림 그리기 모임, 책 읽기 모임에도 두루 참여하면서 기쁨과 여유를 만끽했다고 하네요. 왠지 취미 활동과 여가 시간마저 ‘조직’해 낼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철폐연대 집행위원이자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인 권미정 회원님을 지난 1월 22일 철폐연대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Q. 올 초부터 김용균 동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원하청 경영책임자에 대한 재판 대응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보통 형사재판은 한두 차례 준비공판을 거쳐서 본공판을 진행하더라고요. 저희도 준비공판을 하고 나서 본공판에 들어갔고 열 번째 본공판은 작년 12월 21일에 있었던 결심공판으로 진행됐어요. 이제 2월 10일 선고를 앞두고 있는데요. 우리가 기소한 게 2019년 초였는데 이듬해 10월 들어서야 준비공판이 시작됐으니 실제 재판이 시작된 시점도 굉장히 늦었죠. 준비공판이 이렇게 늦어지고 본공판도 2021년도 들어와서야 진행됐어요.

재판만 늘어진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회사(한국서부발전)의 태도도 돌변했어요. 어찌 보면 그리 놀랍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회사가 2019년 2월 5일에 저희랑 합의할 때에는 김용균 노동자의 잘못은 없다고 자기들도 시인했거든요. 발전소 현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미비나 인력 부족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그들도 원하청 구조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정했던 거예요. 그래서 중앙일간지에 공식사과문까지 게재했었는데, 재판 시작부터 선고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회사가 하는 얘기는 영 딴판인 거죠. “우린 그 사고가 왜 났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왜 그렇게 작업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 일을 열심히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고, 평소에도 부모가 물려준 몸을 소중히 간직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런 식으로 내뱉었죠. 보통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이런 안타까운 사고가 나서 너무 미안하다.”, “우리는 (안전 조치에)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정도로 이야기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깡그리 무시하는 거예요. 사고가 났지만 (우리는) 원인도 잘 모르겠고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질 이유가 없다. 그 이야기를 초지일관 했던 거고, 저희가 그래서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 원하청 법인과 경영책임자의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받았어요. 저는 이번에 국회의원들도 탄원서를 써 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국회의원 16명이 탄원서에 서명했고, 발전이나 건설 현장에서도 정말 많은 분들이 서명에 동참해 주셨어요. 산재 재난 참사 피해자 가족 분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나 회원 분들도 많이 참여해 주셨고요.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탄원서 제출에 함께해 주신 시민 분들이 1만 400여 명이나 됐어요. 지난 1월 19일에는 일곱 상자 분량의 탄원서를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에 제출했어요.

 

 

Q. 이 재판 피고인 한국서부발전 쪽에서도 탄원서를 받고 있다지요?

 

A. 저희도 그 사실을 우연찮게 알게 됐어요. 1월 19일 서산지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그날 저녁 돌아왔는데요. 한 언론사 기자로부터 연락이 온 거예요. 기자 분께 취재 경위를 듣는데, 알고 보니 한국여성경제인협회라는 단체가 1월 18일 경남지회 정기총회를 열게 돼서 이 언론사에서 현장 취재를 다녀왔더라고요. 그런데 이날 정기총회 자료집에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 외 9명의 선처를 호소하는 내용의 탄원서가 별첨돼 있더라는 거예요. 탄원서 내용에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고 해요. 한국서부발전이 그동안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는 중소기업과 여성 경영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래서 피고인들에 대한 선처를 간청하는 거래요. 취재 기자가 확인해 보니 이 탄원서는 여성경제인협회 본회에서 서명을 권고한 것이고 경남지회 쪽에서는 자발적으로 정기총회에 배포한 거래요. 이게 만약 자기들 주장대로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수집한 탄원서는 피고인 변호인단에 전달할 예정이라는 거예요. 이것만 보더라도 피고인 한국서부발전이나 피고의 법률대리인(변호인) 쪽에서 탄원서 제출을 먼저 요청했다는 게 사실 너무 빤하잖아요. 탄원서를 모으는 과정까지도 어쩜 이렇게 원하청 관계를 쏙 빼닮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지금으로선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아요. 2월 10일 선고공판이 남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아마 대법원까지 가야 하지 않을까, 각오하고 있어요.

 

 

Q. <김용균재단>이 설립된 지 햇수로 3년째이네요. 올해 재단이 주력하고자 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A. 재단 2022년 정기총회가 2월 19일 11시에 온라인 방식으로 열릴 예정인데요. 총회를 앞두고 재단에서는 평가와 계획을 의논 중이에요. 지난해 활동 평가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이런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김용균재단>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는 세상’이라는 목표를 갖고 출범했고, 이러한 목표에 걸맞는 활동들을 꾸준히 해 나가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특정한 사업 하나를 통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재단이 지금 여러 사업들을 하고 있는데, 조금 더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재단의 중심적인 활동이라는 것도 확연해지고 매년 조금씩 변화도 꾀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거든요? 아직은 윤곽을 그려 나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가령 운동사회든 시민사회든 <김용균재단>에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어떤 역할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재단이 창립 당시 설정했던 큰 목표와 당장 배치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 주어진 일들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고 봐요. 그럼에도 이제는 재단이 집중해야 할 의제나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상반기에는 지난해 못다 한 일들을 마무리하는 작업이 남아 있어요. 60일간의 김용균 투쟁 관련 자료들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이 그렇고요. 그리고 지난해부터 대중서 발간 작업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상반기에는 완수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그러고 나서 하반기에는 지난 3년간의 활동 평가 속에서 향후 3년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하는 논의를 본격화하려고 해요. 특히 내년 이맘때에는 정기총회에서 새로운 이사진도 선출해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또 올해 재단에서는 상임활동가 한 명을 추가로 채용할 예정이기도 하고요. 그런 계획 속에서 조직 운영 체계라든지 전체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해 나갈지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아요. 아마 구체적인 사업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이후 재단이 좀 더 활동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 시간이겠죠. 이러한 준비들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Q.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운동의 전망을 가다듬고 길을 닦는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말하잖아요. 그만큼 내 삶을 건강하게 돌보고 가꾸는 것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속가능한 일(활동)과 삶을 위해 회원님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도 궁금해요!

 

A. 우선 여가 시간을 의식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엔 아무리 일이 많더라도 집에 가서는 최대한 일과 멀어지려고 하고 있어요. 노트북 켜는 횟수는 줄이고, 책을 단 몇 페이지라도 읽기, 그리고 만보 걷기, 이렇게 두 가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키려고 해요.

그리고 두 번째는 혼자서 여가 시간을 활용하기 어렵다면 모임을 꾸려서라도 알차게 보내자는 게 평소 제 생각이에요. 제가 틈나는 대로 이런저런 모임을 만드는 이유도 그런 거예요. 책 읽기든 그림 그리기든 주변 동지들과 모임을 통해 함께하면 다과도 나누고 수다도 떨면서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원래 산책이나 여행을 참 좋아하거든요. 예전에 나이 오십이 되면 나에게 주는 선물로 세계 여행을 꼭 가겠다고 다짐했었고, 그래서 실제로 70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왔었거든요. 다음 목표는 쉰 다섯이 되기 전에 100일간 세계 여행을 다녀오는 거예요!

 

 

Q. 지난해 인권활동가의 지속가능한 삶과 활동을 지원하는 작은모임 지원사업 프로그램 ‘반상회’에 그림 그리기 모임으로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얼마 전 모임 활동의 소중한 결과물이 탁상 캘린더로 나왔더군요.

 

A. 맞아요. 인권활동가들의 쉼과 재충전을 지원하는 <인권재단 사람>의 작은모임 지원사업에 ‘그리우리’라는 이름으로 응모해서 그림 소모임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저는 이 모임 정식 멤버는 아니고 깍두기로 참여했어요☺. 깍두기이긴 했는데 이번에 그림 소모임을 함께하면서 그런 걸 느꼈어요. 그림 그리기는 상상력과 자유로움이 더해져야 잘할 수 있다는 걸요. 제가 원래 상상력이나 자유로운 생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요. ‘그리우리’ 전에도 <산업재해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에서 치유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그림 그리기 모임을 제가 추진해서 운영했거든요. ‘아, 나는 그림에 별로 소질은 없는 사람이구나’ 그때도 느꼈어요.

그러면서 또 깨달았죠. 시간과 마음을 투자해야 정말 뭔가가 나오는구나. 그동안 너무 시간에 쫓기듯 지내왔는데, 소진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려면 무엇보다 내 마음을 잘 살피고 돌보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그런 노력들을 하고 있죠. 집안에 작은 수첩이랑 펜을 항시 챙겨 두었어요. 뭐라도 한 컷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그려 보려고요.

 

 

Q.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철폐연대 집행위원으로 함께하실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2022년 철폐연대 집행위원으로 임하는 각오와 다짐을 듣고 싶습니다!

 

A. 제 활동에 있어서 비정규직 운동은 되게 중요한 영역이거든요. 예전에 제가 현장 활동 시작을 지역노조 운동으로부터 했는데요. 그래서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도 작은 사업장 비정규직 운동을 제 출발점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어요. 철폐연대 활동도 집행위원으로서 뭔가 더 잘하고는 싶은데, 회의 와서 같이 토론하는 것 이상으로 하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비정규직 운동에 대한 공부나 연구도 더 해 보고 싶은데, 저에게 부여되는 역할로 강제되지 않으면 당장 닥치는 일들에 밀려서 결국 못하게 되거든요. 계속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은 하는데 ‘대체 내가 열심히 한다는 건 어떤 걸까?’ 하는 고민은 듭니다.

 

 

Q. 마지막으로 철폐연대 2022년 사업기조로 제출하고 있는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의 전망 마련’에 대한 권미정 회원님의 의견이나 고민을 들려주세요.

 

A. 일단은 불안정 노동이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그 목록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다음에 이 운동의 요구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도 함께 정리됐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한 축으로는 이게 노동운동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전체 사회변혁운동에서 불안정 노동 혹은 비정규직 운동이 어떤 위치를 점유하고 또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그 이후의 전망도 밝힐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해야 할 것이 자본과 정권은 불안정 노동을 어떤 식으로 확산시키면서 대응해 왔는지도 짚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크게 네 가지 축으로 봐야 할 것 같고요. 그 속에서 우리의 조직과 투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요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렇게 전망이 제출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