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4]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의 문제점 / 김혜진

by 철폐연대 posted Apr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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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포커스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의 문제점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3월 6일 고용노동부는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을 확정하고 발표하였다. 2022년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근로시간 개혁과제’를 발표한 이후 3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이다. 이 개편방안이 장시간 노동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매우 거셌다. 고용노동부는 4월 17일 입법예고 기간까지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하면서 한발 물러선 모양새지만 장시간 노동과 노동유연화라는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1.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의 내용과 문제점

 

고용노동부가 발표하고 입법예고한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이하 개편방안)은 다음과 같다.

 

1. 연장근로 단위 기간 확대

-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현행 1주에서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확대

- 단위 기간에 비례하여 연장근로 총량 감축(주 평균 근로시간 : 월 12시간, 분기 10.8시간, 반기 9.6시간, 연 8.5시간)

-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또는 1주 64시간 상한 준수, 4주 평균 64시간 이내 근로 준수, 야간근로 건강보호 가이드라인 마련

2. 근로자대표 제도화

- 근로자대표 서면 합의로 노동시간 개편

- 근로자대표의 선출 절차, 권한과 책무 법제화

- 부분근로자대표제 도입.

3. 근로시간저축계좌제

- 현행 보상휴가제를 근로시간저축계좌제로 확대 개편

4. 선택근로제 정산 기간 확대 등

- 선택근로제 정산 기간을 전 업종 3개월, 연구개발 6개월로 확대

- 고소득 전문직 노동시간 상한 규제 삭제

 

(1) 집중 장시간 노동을 불러온다

 

현재는 주당 12시간의 연장노동이 허용되어 1주 52시간이 최대 노동시간이다. 그런데 기업이 연장근로 단위 기간을 한 달로 바꾸고 11시간 연속휴게시간을 보장한다고 해 보자. 하루 24시간에서 연속휴게시간 11시간과 휴게시간 1.5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최대 노동시간은 11.5시간이다. 정부는 1주 1일이 주휴이므로 여기에 6일을 곱해서 주 69시간이 최대 노동시간이라고 하지만, 주휴는 수당으로 대체될 수 있으니 실질적으로는 1주 최대 80.5시간 노동이 된다. 11시간 연속휴게 대신 1주 64시간 상한을 지킨다고 해도 문제는 마찬가지이다. 이 제도에서는 3일간 하루 16시간 노동을 하고 나머지 이틀은 8시간을 노동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선택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한다고 하는데, 선택근로제는 노동시간 상한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의 위험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고소득 전문직에게 근로시간의 상한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으니, 노동자들의 죽음을 부르는 장시간 노동을 보편화하겠다는 말이다. 과로사 인정기준이 4주간 64시간, 혹은 12주 60시간이라는 말은 그 정도 이하로 일하면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 정도면 과로사의 인과관계가 충분하다는 의미이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업무부담 가중요인을 고려하여, 이를테면 집중적 장시간 노동도 과로사를 부르는 요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2) 열심히 일하고 제주도 한달살기를 하면 된다고?

 

개편방안에서는 한 달 열심히 일한 후에 제주도에서 한달살기를 계획할 수도 있다고 홍보했다. 그런데 직장갑질119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1년 동안 직장인 80%는 연차휴가를 15일 미만으로 사용했다.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동료들의 업무부담’이 28.2%이고, 휴가를 사용하기 어려운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응답이 16.2%이다. 이런 노동자들이 과연 한 달 휴가를 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한 달을 쉬려면 117시간 동안 잔업수당 일체 없이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직장인이 휴가를 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연차휴가 수당을 받기 위해서’인데, ‘잔업수당 없이 과로노동을 하고 한 달을 쉬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겠는가.

 

집중연장근로를 했으니 한 달을 쉬겠다고 할 경우 승진이나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근로시간저축계좌에서 휴가를 자유롭게 쓰려면 회사에 일이 없거나 인력이 충분할 때에야 가능할 것이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보상휴가제도를 확대 재편하는 것인데, 지금의 보상휴가제도는 사용자들이 연장수당을 주지 않는 수단으로도 악용되고 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간꺾기’처럼 장시간 일을 시키고, 일이 없을 때 조기퇴근을 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근로시간저축계좌제는 연장수당을 받지 못한 채 노동자의 계좌에 넣어 놓은 노동시간을 회사가 필요할 때에만 사용하는 제도가 될 것이다.

 

(3) 근로자대표제도 개선의 한계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개편은 ‘근로자대표의 서면합의’로 가능하게 하겠다고 했다. 노조가 있으면 과반노조가 근로자대표가 되겠지만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4%밖에 안 되고, 근로자대표는 대부분 사용자가 지정한다. 근로자대표의 선출 절차, 권한과 책무를 법제화하겠다고 하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 하더라도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 근로자대표가 사측의 근로시간 개편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2022년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도 민주적으로 선출하도록 법을 개정했지만 사측이 선출에 개입하거나 지명해도 처벌조항이 없고 근로감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근로자대표 선출방식의 제도화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 예상되는 지점이다.

 

더 큰 문제는 ‘부분근로자대표제’를 도입하겠다고 한 점이다. 회사 전체가 아니라 특정 직무, 직군, 직종에서 노동시간 개편을 하려고 할 경우, 노동조합 동의 없이 그 사업부서 노동자 대표의 서면합의로 노동시간 개편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특정 직무별로 순차적 도입을 하면, 노조의 동의를 무력화하고 사업장 전체적으로 노동시간 개편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부분근로자대표제가 도입되면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힘은 축소되고, 노동자들은 직무별로 쪼개진 채 사측에 대응할 힘을 잃게 된다.

 

2. 노동시간 개악과 불안정노동

 

(1) 장시간 노동에 더 취약한 불안정노동자

 

불안정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가능성이 커진다. 2023년부터 5~29인 사업장도 1주 최대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1주 52시간을 넘더라도 처벌하지 않고 1년간의 계도기간을 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의 일손 부족을 이유로 고용노동부가 감독 유예를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노동시간 제도가 개악될 경우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은 동의 없이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부분근로자대표제를 통해 비정규직 집중 직무에 개악된 노동시간을 도입할 경우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영화노조나 전국보조출연자노조 등에서는 교섭을 통해 1주 최장 52시간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애를 써 왔다. 장시간 노동이 영화계에서는 필연적인 것처럼 이야기되었지만, 노조의 노력으로 현장에서는 조금씩 최대 52시간 노동이 정착되어 왔다. 장시간 노동은 한 산업의 특성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일 뿐임을 영화산업이 보여 준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간이 늘어나더라도 52시간 이상의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허용된 노동시간이 늘어날 경우 프로젝트형으로 일하는 불안정노동자들이나 일감의 수요변동이 심한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은 기본값이 되어 버릴 것이다.

 

(2) 노동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정노동자

 

불안정노동자들 중에는 노동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요양보호사처럼 방문노동을 하는 경우 이동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영화 스태프들은 세팅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대학 비정규교수들이나 초등돌봄교사 등 시간제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CJ택배노동자들은 배달 전 분류작업을 해야 했고, 그 때문에 더욱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시간이 많은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될 경우 건강에 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작은사업장은 포괄임금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포괄임금은 월 총액 임금을 미리 정하고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연장, 야간, 휴일 노동을 시키는 구조이다. 물론 포괄임금으로 계약을 했다 하더라도 장시간 노동의 경우 연장근로수당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도 영세사업장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은 취약하고 그렇기 때문에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는 포괄임금의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장시간 노동의 위험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

 

(3) 제대로 쉴 수 없는 불안정노동자

 

직장갑질119의 2022년 연차휴가 사용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고용형태가 불안할수록 연차휴가를 6일 미만으로 사용했다. 정규직들은 28.5%만이 6일 미만으로 연차를 쓴 반면에 6일 미만으로 연차를 썼다고 답한 비정규직은 61%나 됐다. 노동조합이 없거나 5명 미만이거나, 직위가 낮거나 임금이 낮은 노동자들일수록 연차휴가를 적게 썼다. 불안정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자기가 원할 때 휴가를 쓰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제대로 쉬어야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 텐데 지금도 불안정노동자들은 제대로 쉬기 어려운 것이다.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심야노동을 하고 매우 과도한 노동강도로 일을 하는데도 휴게시간이 없다. 4시간에 30분, 8시간에 1시간의 휴게시간 기준은 노동강도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더 높은 노동강도로 일을 하는 일용직 등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휴게시간 기준은 없는 셈이다. 콜센터 노동자들이나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은 인력이 부족하니 내가 아파서 쉬면 동료들이 고생을 하기 때문에 아파도 쉬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간마저 길어지면 노동자들은 아프거나 피로할 때 회복하기 어렵다.

 

(4) 정규직의 축소와 업무량에 따른 단기계약의 증가

 

기업들은 가급적 정규직을 적게 고용하고 노동시간을 늘리고자 한다. 노동자를 더 채용하는 것보다 한 명을 장시간 노동 시키면 시간당 비용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이 없으면 고용은 줄고 노동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IMF 경제위기 당시 노동계에서 법정 노동시간 축소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요구했던 것처럼,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자리를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노동시간 개편을 통한 장시간 노동의 확대는 정규직 고용이 축소되도록 만든다.

 

제조업에서는 파견이 허용되지 않지만 6개월간은 임시 간헐적 업무에서 파견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연장근로 단위기간을 반기로 확대하고 부분근로자대표제를 도입하면 파견노동자를 3개월 쓰고 다시 다른 파견노동자로 교체 사용하여 6개월간 계속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편법이 활용될 수 있다. 물량의 변동이 심한 업종에서는 단기계약 노동자를 쓰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계절노동자는 농업노동 외에는 잘 활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지면 기본 인원은 대폭 축소하고, 특정 계절에 물량이 몰릴 경우 단기계약직을 집중 투입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를 활용할 수 있다.

 

(5) 장시간 노동은 임금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불안정노동자들 중에도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는 노동자가 있다. 8시간 일해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최장 노동시간 52시간 적용 유예를 더 연장하자고 하면서 “저녁 있는 삶보다 저녁 드실 여건부터 갖춰 드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임금 현실을 개선할 생각은 없으니 장시간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니겠냐는 뜻이다.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 때문에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정부는 장시간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 되니 굳이 최저임금 인상 등 저임금 개선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불안정노동자들이 주로 시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은 임금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 불안정한 노동자들일수록 생계를 위해 장시간 노동을 많이 하고 과로에 노출되거나 늘 피로가 쌓여서 아플 수밖에 없다. 건강하지 못한 노동은 그만큼의 비용을 더 들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불안정노동자들을 걱정하는 척하면서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하지만, 불안정노동자들의 삶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시간 개악에 반대하는 것 못지않게 최저임금을 생계 가능한 임금으로 올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존엄한 노동시간의 보장

 

세계인권선언 제24조는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일을 하더라도 적정한 시간 쉴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사회적 삶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합리적인 노동시간의 규제와 휴가에 관한 권리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인권선언에서만이 아니라 ILO(국제노동기구)에서도 2018년에 <미래를 위한 존엄한 노동시간의 보장> 보고서를 내고,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노동으로부터의 보호를 원칙으로 제시한 것이다.

 

노동시간은 사회적 인간으로서 취미나 학습활동을 하거나 공동체를 돌보는 일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시간이 회사의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예측 불가능하게 이루어지면 안 된다. 스케줄 근무를 하는 이들이 저녁시간에 취미활동을 하고 싶어도 시간을 맞추기 어렵듯이 잔업이 회사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활을 계획하기 어려워진다. 저녁시간이나 심야, 주말의 비전형적 노동시간이 많아지면 노동자들은 삶을 구성하는 공동체와 함께할 시간이 없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방안’은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불규칙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문제이다.

 

정부는 ‘노동시간 개편방안’이 노동자들의 선택권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4%밖에 되지 않고, 최저임금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그리고 대다수의 기업이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으로 인력을 최소한으로 쓰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게다가 언제 해고될지 몰라 자신의 권리를 말하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 개악은 역설적으로 노동시간의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주었다. 노동자들이 적정한 시간만큼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 하고,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적은 노동시간과 임금 때문에 여러 일을 병행해서 하지 않도록 최소 노동시간도 보장되어야 한다. 임금과 노동시간의 규제 바깥에 있는 프리랜서 등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시간과 최저임금이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에도 힘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 불안정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를 외칠 수 있도록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