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8]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에 부쳐 / 김성호

by 철폐연대 posted Aug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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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 포커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에 부쳐

김성호 (성동근로자복지센터)

 


2019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7월 16일, 이 법에 대한 반응이 대단했다.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서는 하루 동안 수백 건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상담 요청이 있었고, 대부분의 언론사에서는 수십 건의 뉴스와 칼럼, 사설을 쏟아냈다. 그 이전부터 노동조합 등 노동단체와 사용자 단체는 각각 대응 지침을 만들어 교육·배포하고 있었으며, 인사 노무 관련 교육기관에서도 앞다퉈 관련 교육을 시행하고 있었다. 정부의 홍보가 충분치 않았음에도 여론의 관심과 반응이 뜨거웠다. 그 관심과 반응은 현재 일터 내 일상화된 폭력문화와 위계적 조직문화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싶다.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가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몇몇 연구보고서를 보면 2010년 이후 노동조합 또는 노동단체들이 관련 사례를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언급이 있고, 그에 앞서 2004년부터 ‘갑을관계’ 등 사회 갑질에 대한 표현이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구체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이슈가 되었던 것은 2013년 ‘라면 상무 사건’,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KT의 가학적 인사관리 등이 있다. 특히 ‘땅콩 회항 사건’은 그 일가의 비상식적 갑질 행위들이 연거푸 이어지며 직장 내 괴롭힘을 사회 문제화시킨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런 사례들이 사회적 공분을 산 것은 이 일들이 특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7년 IMF 위기와 2010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상시적인 구조조정, 외주화, 성과주의 중심의 인사관리,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부하에서 노동규율이 무시되는 현실 등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부터 일터에서 형성된 노사관계의 모습이기도 했다. 또 학교, 군대 등 위계와 억압, 괴롭힘에 익숙해진 사회생활이 노동 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리잡은 측면,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서열문화, 승자독식, 획일화된 가치 등도 직장 내 차별과 괴롭힘을 만드는 배경이라 볼 수 있다.

 

 

1 [출처 민주노총].jpg

[출처: 민주노총]

 

 

괴롭힘도 불법이라는 선언

 

 

일터에서는 언론에 비치지 않은, 그것이 직장 내 괴롭힘인지도 인지하기 힘들었던, 밖으로 드러내기에는 자신의 자존감마저 훼손될까봐 쉬쉬했던 수많은 가학적 행위들이 이미 존재했다. 직장 상사나 직장 내 파벌에서 가하는 인격 모독과 조롱,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부당노동행위와 혐오 표현을 일삼는 사용자, 정규직이 아니어서 사무용품이 지급되지 않았다던 파견노동자, 반말과 폭언에 시달리며 허드렛일만 하다 오는 특성화고 산업체 파견형 현장 실습생. 나이가 어려서, 여성이어서, 학벌이 좋지 않아서, 그 밖에 수많은 ‘이유’들을 만들어 내며 가해졌던 괴롭힘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자신의 고통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자신의 탓인 줄 알고 그 시간을 견디며 지내왔을 것이다.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대응하지 못함으로 인해) 일상적인 불안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고립(또는 대인기피증)되거나 자존감까지 훼손되기도 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압박과 감시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고통과 질환을 겪기도 했다. 이는 신체적인 문제로도 나타났는데, 불면증, 체중 감소, 소화 장애 등이 대표적이었다.

어려웠던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을 문제로 인식해도 노동조합 조직률이 매우 낮은 우리 현실에서 이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또한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불비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률적 빈틈이 존재하기도 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이 고통을 해소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상담 내용 중에는 무례한 언동, 회식 등 집단생활을 강요하는 행위, 업무 문제로 모욕적인 언사를 겪었던 일, 눈 밖에 나서 타지로 인사명령을 받았던 일 등 은밀하게, 조직적으로 조여 오는 다양한 괴롭힘에 대한 것이 점차 많아졌으며, 그중 기존 법률로는 대응하거나 입증이 어려운 사안이 상당수였다. 상담자 입장에서는 적절한 대응 방법을 안내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무력해지기도 했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이런 현실 속에서 모인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힘이 되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처벌조항이 미비한 점 등 한계가 많지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그런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파편적으로 조명되고 수집되었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2016)과 같은 단행본을 필두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2017), 한국노동연구원의 규율 방안 연구(2017)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도 2018년부터 관련 대책을 준비하고, 국회에서는 이 법을 의결(2018.12.27., 2019.7.16. 시행)하였으며, 입법 후속 과제로 정부와 노동계, 경영계, 시민사회 등이 참여하여 관련 매뉴얼을 만들기에 이른다(2019.2.21.). 또 이 법의 다른 의의는 사업주에게는 직장 내 괴롭힘이 불법행위이고, 괴롭힘을 예방하지 못하거나 발생 시 제대로 조치하지 못하면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시그널을, 노동자에게는 일터의 다양한 괴롭힘이 불법임을 선언할 수 있는 근거를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주된 목적이 아니고, 조직 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괴롭힘이 발생했을 경우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하는 법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 법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아직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처벌할 만큼의 사례가 축적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수없이 많이 발생할 괴롭힘 관련 사안을 가·피해로 구분하여 처리하는 것보다 조직 내 민주적 질서를 세우고, 피해 발생 시 회복 질서를 만들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가 일하는 공간에서 괴롭힘은 어떻게 정의해야 하고, 조직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및 금지 △사업주의 예방 및 조치 의무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 의무기재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신고·주장을 이유로 한 불이익 조치 시 형사처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질병을 산업재해 범위에 포함 △국가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책무 등을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내용을 말한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근로기준법에 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우선 행위자를 사용자 또는 상급자로 한정 짓지 않고 근로자로 하였으므로 동료나 하급자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도 고려 대상이 된다. 파견이나 용역의 경우도 사용(원청)사업주나 그 소속 노동자가 파견노동자(용역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괴롭힘 행위도 이 법이 적용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간적 범위는 직장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다른 요건들이 충족된다면 출장지, 사적 공간, 온라인 공간 등도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판단기준을 참고할 수 있다(직장 내 성희롱도 직장 내 괴롭힘에 포섭될 수 있지만, 이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규율하고 있으므로 해당 제도를 우선 검토하면 된다.).

우위는 노동자가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를 말하는데, 이는 조직 내 직책 등 지위뿐만 아니라 수적 측면, 나이·학벌·성별·출신 지역·인종 등 인적 속성 측면, 업무역량이나 업무의 직장 내 영향력 측면, 사내 조직 구성원 여부 및 사내 지지 세력 존재 여부, 또 정규직 여부 등의 요소도 검토사항이 된다.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은 근로계약상 업무 내용과 무관하거나 적정한 범위를 넘어 다른 일을 강요하는 것, 업무에 편승하거나 업무를 빙자하여서 하는 행위들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매뉴얼을 보면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하는 폭행,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지는 폭언, 욕설, 험담 등, 반복적인 개인 심부름, 집단 따돌림이나 업무 배제 및 무시 등을 예시로 들고 있고, 업무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행위와 업무에 필요한 비품이나 사내 인트라넷 접속을 차단하는 행위들도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업무상 지시나 질책은 관련 내용만 하면 되지 모욕적 언사를 하거나 다른 사안들과 연계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직장 내 괴롭힘은 위의 상황 속에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외에도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포함한다.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란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말하는데, 행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실상 그런 행위가 있었다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인지에 대한 논의와 다툼은 사실 이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저런 실태조사와 해외 사례에 대한 연구는 있었으나 그것이 직장 내 괴롭힘인지에 대한 판단은 개별 사안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한 형태이기도 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판단 기준이 많이 참고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직장 내 괴롭힘은 행위자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으므로 형법(폭행, 상해, 모욕, 명예훼손, 협박, 강요, 성폭행, 성추행 등)이나 민법(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사용자의 배상책임, 공동불법행위자 책임 등), 남녀고용평등법(직장 내 성희롱, 모성보호 관련) 등 개별 법률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은(입증할 수 있는 것은) 그 개별 법률로 다루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렇게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하기 위해 법률로 개념 정의를 했다는 의의가 있지만 불충분한 부분도 있다. 행위자를 사용자와 근로자로 제한하고 있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고객이나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괴롭힘에 대해서는 규율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또 피해자를 근로자로만 한정하고 있어 특수고용노동자 등에 대한 괴롭힘 행위를 규율할 수 없다. 나아가 해당 내용이 근로기준법에 포함되어 있다 보니 특수고용노동자와 같이 다양해지고 있는 고용 형태와 외주관계 등으로 인한 변화된 업무 관계, 그리고 늘어난 고객 접촉면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행위자 또는 피해자가 근로자(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하거나 제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면도 있다. 그리고 우위(위계)라는 것이 따로 행사하지 않고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가진다는 속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법에서는 우위를 가진 자가 이를 ‘이용’해야 한다는 요건을 두고 있어 이 부분에 동의하기 어렵다.

한편 직장 내 괴롭힘은 행위의 반복성과 지속성이 중요한 특성임을 강조한 연구들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행위의 반복성, 지속성이 언급되지 않아 1회에 그친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인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이에 대한 해석론적 정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이 내용은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영세사업장 노동자는 여전히 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형법, 민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은 적용).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발생 시 조치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피해노동자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그 사실을 사용자(또는 관할 고용노동청)에게 신고할 수 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고용노동부가 전국에 167명의 전담 근로감독관을 배치하여 신고 사건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했으니 회사 안에서 신고하기 어려우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고용노동부는 익명신고도 접수한다고 밝혔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인지할 경우 지체 없이 사실조사를 실시하고, 괴롭힘이 사실로 확인되었을 때는 행위자에 대해 징계, 근무 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또 조사 기간 또는 조사 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부여, 배치전환 등)를 해야 하고, 이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받게 된다(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그리고 10인 이상 사업장이면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사항에 관한 내용을 취업규칙에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이 법을 만들며 그 목적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예방·대응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지만 정작 그에 대한 규율은 매우 미흡하다. 신고를 사용자에게만 하게 되어 있고,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 사업주가 가해자일 때 벌칙 규정이 있으나 이 법은 그런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가 가해자일 경우 이를 제대로 조사할 수 없는 문제가 있고, 관련된 조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 법 적용은 5인 이상 사업장인데 이에 대한 사내 규정은 10인 이상 사업장에만 의무를 지우다 보니 5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마무리하며

 

직장갑질119와 다수의 노동조합은 이 법 시행을 계기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상담)를 받고 있다. 사례가 모이면 고용노동부에 청원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법 시행 초기이다 보니 묻혀있던 다양한 괴롭힘을 찾아내어 법 취지에 맞게 사례화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더불어 이 법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개정 목소리를 지속해서 내야 한다. 물론 만들어지자마자 개정할 수는 없겠지만 모이는 사례를 기반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을 찾아내고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건 필수적이다.

그리고 수시로 터지는 갑질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직장 내 괴롭힘이 단순히 직장만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 사회 중 직장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도 아니기에 사회 전반의 위계와 폭력적 문화를 바꾸는 노력도 함께할 필요가 있다. 경쟁과 서열로 점철된 교육과 사회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논의와 실천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부디 어렵게 태어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안착하고, 개선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