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9] 노동 밖의 노동, 사회복무요원 / 전순표

by 철폐연대 posted Sep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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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노동 밖의 노동, 사회복무요원

 

 

전순표 •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 위원장

 

 

 

A씨는 동사무소에서 관용차량을 운전하는 업무를 담당합니다. 때로는 동사무소에서 관리하는 꽃밭에 물을 주거나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기도 합니다. B씨는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돌보고 가정에서 모셔오는 일을 합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일도 있습니다. C씨는 장애인 작업장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물건을 만들고 포장, 운반 등을 돕습니다. 여느 노동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지만, 이들은 모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공익근무요원’이라고 불렸던 사회복무요원입니다. 사회복무는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자들 중 신체검사 등급이 4급인 사람들이 군대 대신 사회에서 21개월간 복무하는 제도입니다. 이들은 현역병과 동일한 봉급에 점심 식비와 교통비를 더해 약 70~80만 원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간 이 제도는 현역병들과의 형평성과 잉여병력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고 수용되어 왔습니다.

 

낯설게 보기

 

그런데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다 보면 이것이 굉장히 이상한 제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국방의 의무는 군사적 목적에 한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비군사적인 목적으로 병력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가? 징집되었다는 이유로 정당한 대가 없이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 ‘노동의 강제’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한국의 의무 병역제도라는 특수한 상황과 분리해서 생각해 본다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보수를 지급하고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할 경우 징역형에까지 처할 수 있는 사회복무제도는 현대 문명 국가에서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제도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바로 의무 병역제도와 다른 병역 의무자들과의 형평성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평성은 정치적 언어이지 개인의 노동과 그 조건을 규정하는 노동의 언어일 수는 없습니다. “군사훈련도 노동이다”라는 다소 급진적인 입장을 배제하더라도 사회복무가 노동의 성격을 강하게 가진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1개월을 제외하면 20개월간 이들의 생활은 보통의 임금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노동하는 사람이지만 노동자가 아닐 수 있을까? 지금껏 많은 노동자가 동일한 질문을 받아 왔고 우리 사회는 느리지만 꾸준히 노동자의 범위를 넓혀 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 왔던 군 복무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볼 때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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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2. “징병제와 사회복무를 폐지하라” 정부서울청사 앞 기자회견.

[출처: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

 

 

왜 이들은 노동자여야 하는가?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조합법 등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단체가 119명의 사회복무요원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사 대상자 중 19.3%가 직원으로부터 모욕이나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역시 직원으로부터 폭언이나 욕설을 들은 경험이 있는 사람도 19.3%로 조사되었습니다. 민원인 등 기관 외부인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도 10.9%나 되었습니다.

 

이들은 구조적으로 폭력에 취약한 지위에 있습니다. 21개월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동일한 기관에 종속되어 있고, 업무상 지시를 위반하면 복무 연장이라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들이 대부분 2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이라는 점도 나이 권력이 크게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터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다음날 출근하여 얼굴을 맞대야 하는 직장 상사를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근로기준법의 직장내 괴롭힘 조항에는 피해 신고가 접수되었을 때 사용자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복무요원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다만 「사회복무요원복무관리규정」에 따라 복무기관장(시장, 요양원장 등)이 사회복무요원의 ‘고충’을 ‘적극 처리’해야 할 뿐입니다. 실제로 한 사회복무요원이 기관장의 폭언, 폭행을 이유로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였으나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채 각자도생하거나 경찰이 개입할 정도로 일이 커지기 전까지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왜 노동조합인가?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노동을 가시화하여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부각시키고 조직화하여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단결권 협약에 따르면, 군인과 경찰을 제외하고 노동자는 누구나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으며, 노동조합 설립에 대한 허가제는 금지됩니다. 우리나라 노동관계 법령도 노동조합 설립에 대해 신고제를 취하고 있고, 공무원과 교원에 대해서만 별도의 법으로 요건을 정하고 있습니다. 군인의 경우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서 ‘노동단체의 결성’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이 공무원 또는 군인에 해당하느냐가 문제 될 수 있겠으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르면 사회복무요원은 공무원이나 군인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노동조합 설립을 막을 별다른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고,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환경 개선을 도모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만약 정부가 노동조합의 설립을 막는 경우에도 이것으로 이슈를 만들어 투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복무와 노동을 연관 지어 본 적이 없던 대중들에게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2022년 3월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결과는 ‘반려’ 즉 거부였습니다.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이 밝힌 반려 사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은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민간인과 다른 특별한 지위를 가지며, 사회복무요원의 직무상 행위는 공무 수행으로 보고, 공무원에 준하는 공적 지위를 가지므로 노조법 제2조 제1호의 근로자라고 보기 어려워 동 신고서 일체를 반려한다.

 

사회복무요원이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근로자가 아닌 실질적인 이유는 전혀 들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결정에 불복하여 6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함께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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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30. “사회복무 폐지와 국제노동기구 협약 이행으로” 국회 앞 집회.

[출처: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

 

 

활동 및 전망

 

사회복무요원노조가 법내노조로 인정되지 못하면서 활동에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또한 병역법에 따라 무단결근, 업무상 지시 불이행, 근무 태만 등이 복무 연장 사유로 되어 있고, 심하면 처벌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활동은 위험부담이 컸습니다. 따라서 집회, 언론을 통한 공론화 등의 대외적인 투쟁에 집중했고, 사회복무요원들의 원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지방병무청 앞 집회, 국회 앞 집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또한 사회복무요원의 노동환경, 공무원의 무분별한 개인정보처리 일임 실태에 대해 보도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노조에서 현직 사회복무요원들을 대상으로 최초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는 앞서 본 폭언이나 폭행 피해 외에도 사회복무요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여 주는 지표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4급 판정 사유와 배치되는 노동에 투입되었다(38%), 복무로 인해 가지고 있던 질병이 악화되었다(55%), 직원에게 반말을 듣거나 야, 공익 등의 호칭으로 불린 적이 있다(37%), 업무 범위 밖의 사적 심부름에 동원된 적이 있다(41%) 등의 결과가 있었습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복무 중인 사회복무요원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사업도 진행되었습니다. 주로 휴가 제한, 부당한 복무 연장, 업무 범위 밖 노동 강요, 개인정보처리 업무 강요 등 불법행위에 대한 문의가 많았는데, 이에 대해 명확한 법 규정을 안내해 주고 행정심판, 고충민원 신고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안내하였습니다. 또한 폭언이나 공무원의 고유 업무를 맡기는 등 심각한 경우에는 언론을 통해 공론화시킬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향후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법내노조가 된다면 현재 규정된 권리구제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고, 적극적인 단체교섭을 통해 겸직의 원칙적 허용, 임금 인상, 복무기관이 범죄를 행하고 근로기준법이나 사회복무요원복무관리규정을 위반했을 때 복무기관을 재지정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제도를 개선해 나가려고 합니다.

 

조합 활동이 병역법에 따라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활동의 걸림돌로 남아 있습니다. 강경한 행동을 하기 어려운 만큼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사회복무제도는 국제적으로 매우 심각한 노동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왔습니다. 이 제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사자 청년들이 노동 착취에 침묵하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역사에 남기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