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3] 자본의 노조파괴전략과 그에 맞선 현장투쟁과 법률투쟁의 결합 필요성 / 김상은

by 철폐연대 posted Mar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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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포커스

 

자본의 노조파괴전략과 그에 맞선 현장투쟁과 법률투쟁의 결합 필요성

 

김상은 • 법률사무소 새날 변호사

 

 

 

들어가며

 

유성기업 노사는 2010년 1월 13일 ‘주간연속 2교대제의 2011.1.1.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되, 도입 관련 중요사항은 2010년 특별교섭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하여 현대차 자본은 ‘유성기업 노-사 간 주간연속 2교대 시행 합의 시 → 현대차/기아차 본교섭에 일부 변수 발생 우려’하여 ‘현대차/기아차 시행前 先시행 노사합의 방지’를 원했다(‘유성기업 주간연속 2교대 도입 관련 문제점 및 추진방향’). 이것이 현대차 자본이 유성기업 노사관계에 개입하게 된 동기였고, 현대차 자본의 탐욕은 유성기업 10년 분쟁을 촉발시켰다. 자본은 지난 10년간 직장폐쇄, 어용노조 설립, 징계 등 법률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악용하여 민주노조 파괴전략을 추진했고, 국가권력(검찰, 법원)은 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용인했다. 유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의 노조파괴전략에 맞서면서 유성기업을 둘러싼 현대차 자본, 유성 자본, 창조컨설팅의 공모관계 및 국가권력의 反노동자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하에서는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자본의 민주노조 파괴전략과 이에 맞선 현장투쟁과 법률투쟁의 결합 필요성에 대하여 살펴본다.

 

 

공격적 직장폐쇄에 공장점거로 맞서다

 

유성기업 노사는 2011년 1월 18일부터 2011년 5월 4일까지 총 11차례 주간연속 2교대 관련 특별교섭을 진행하였으나,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진전이 없자 유성지회는 잔업·특근을 거부하면서 투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2011년 4월 28일 유성자본은 창조컨설팅으로부터 『회사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를 전달받았다. 위 문서에서 창조컨설팅은 유성자본에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 규모 축소2노조 설립을 핵심목표로 설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유성기업 경영진’, ‘유성기업 실무진창조컨설팅 연구진으로 구성된 노사관계 전략회의를 구축하여 정기적이고 상시적인 회의체계를 운영하고, 대외적으로는 노동부’, ‘노동위원회’, ‘국정원’, ‘경찰’, ‘검찰등 유관기관 대응 전략을 수립한다는 내용이 제안 요지였다. 유성 자본은 노조파괴전략의 첫 번째 조치로 2011년 5월 18일 아산공장에 대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당시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태도는 직장폐쇄가 쟁의행위 개시 후 단행될 경우 정당한 것으로 봤고, 유성기업의 직장폐쇄가 노조의 잔업·특근거부 이후에 개시되었기 때문에 유성기업 아산공장에 대한 공장점거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거액의 손해배상책임이 따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성 동지들은 아산공장으로 들어가 용역깡패들을 몰아내고 공장점거에 들어갔고, 이에 놀란 유성기업 및 현대차 등 임직원들이 급히 공장 밖으로 피하는 과정에서 ‘현대차와 창조컨설팅이 직장폐쇄의 배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자료([유성기업]주간연속2교대 도입 관련 문제점 및 추진방향, 2011.5.18.자 현대자동차 황승필 차장이 최동우 이사대우 및 김정훈 전무에게 보낸 이메일1), 유성기업㈜ 불법파업 단기대응방안, 업무정상화 방안, 유성기업㈜ 쟁의행위 대응요령)를 확보하게 되었다. 만약 당시 유성지회가 민·형사상 책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점거파업을 실행하지 않았다면 유성기업 쟁의행위의 원인과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특정할 수 없었을 것이고, 유성지회의 조직력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유성 투쟁 10년의 동력은 아산공장 점거파업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유성 동지들은 점거파업에 돌입하기 전 필자에게 사측의 직장폐쇄가 위법한지에 대한 질의를 한 바 있는데, 유성지회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고 다만 현장 판단의 올바름을 확인하고자 했다.

 

1) 이메일에는 2011년 5월 17일 노동조합의 동태 및 2011년 5월 18일 쟁의행위 찬반투표 일정 및 경비용역 투입예정{경비용역 24명 18일 아침 10시 유성기업 인근대기, 상황판단 후 공장투입 후 출입문 (12개) 경비예정이고 관리자들 작업가능토록 노조간부 출입통제 예정}이라고 기재되어 있었고, 하단에는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파업결의 시 조합원들이 라인 내 파업/농성할 경우 라인 내 파업/농성자 격리방법 및 (일용직 생산인원 확보와 공장 외곽경비 용역 확보는 다른 문제라고 전제한 후)조합원 단체행동 이탈자 확보, 社側(유성기업)의 MIND 개선은 되고 있으나, 여전히 對노조 행동의식/방법에 대한 미숙함⇒ 缺品對策(?)’이라는 자필 메모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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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총괄이사 차량에서 발견된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일부.

 

국가, 용역깡패의 노조원들에 대한 상해 사건에 면죄부 주다

 

유성기업 10년 분쟁기간 중 국가권력(법원, 검찰, 경찰)은 자본편향적인 권한 행사를 통해 유성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짓밟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지연시켰다. 이를 확인한 첫 번째 사건은 직장폐쇄 당일 발생한 차량을 이용한 상해사건이다. 유성기업이 고용한 용역직원 이준호는 2011년 5월 19일 01:28경 카니발 승용차를 이용하여 도로와 노상을 따라 행진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운전차량의 앞범퍼 등으로 충격하여 피해자 김정민에게 약 12주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해를 입히는 등 13명에게 상해를 가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준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고, 불구속 재판을 진행한 후 사고발생 9개월이 지난 다음해 2월 3일에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다(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1고단1175 판결). 대전지방법원이 ㈜ASA사건(대전지방법원 2009고단533, 891 사건)에서 ASA지회 노조간부가 차량을 둘러싸고 진로를 가로막는 용역직원을 가격하여 전치 3주의 상해를 입게 한 것에 대하여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 등 상해)죄를 적용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것과 대조된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이준호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후 다시 아산공장으로 들어가 다른 용역직원들과 합류했고, 용역깡패들은 2011년 6월 22일 오전 아산공장 정문에서 유성노동자들에 대한 살인적인 폭력행위를 저질렀다. 법원이 다수의 피해자가 있고, 그 중 어느 누구도 이준호와 전혀 합의도 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된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이준호에 대한 영장을 기각시키고, 검찰이 이에 대하여 영장을 재청구하지 않은 것은 이준호에 대한 영장 발부가 당시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만약 법원이 용역직원 이준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구속재판을 진행하였다면 직장폐쇄 중 유성기업이 고용한 용역직원들에 의한 살인적인 폭력행위는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고, 유성기업의 노사분쟁 양상은 다르게 전개되었을 수도 있었다.

 

 

공격적 직장폐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다

 

2010년 KEC, 발레오만도에서 자본은 직장폐쇄를 노조파괴의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한다)은 직장폐쇄를 사용자 측 쟁의행위로 규정하면서도 ‘사용자는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개시한 이후에만 직장폐쇄를 할 수 있다’는 제46조 제1항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직장폐쇄의 요건을 추가하고 법정형을 상향하는 취지의 노조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쟁의행위 관련 절대 다수의 규정은 노동자 측 쟁의행위의 주체, 시기, 절차, 방법상 한계 및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에 관한 것인 실정과 대조적이다. 이와 같은 법률규정 때문인지 수사기관은 노조 측의 쟁의행위가 개시된 이후 단행된 사용자의 직장폐쇄는 일응 정당하게 보면서 형사처벌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이와 연동하여 직장폐쇄 개시 및 유지와 관련하여 사용자를 처벌한 판례 또한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유성지회는 2011년 5월 18일 아산공장, 동년 5월 23일 영동공장에서의 직장폐쇄 개시 및 유지가 노조파괴를 위한 것으로 이는 노조법 제81조 제4호(지배개입 부당행위)에 해당한다고 고소하였고, 위법한 직장폐쇄기간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였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민사 제2부(재판장 방승만)는 2012.9.25. 직장폐쇄가 정당하다는 이유로 임금청구를 전부 기각했으나(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1가합3919), 대전고등법원은 2014.4.24. 유성 자본이 유성지회의 업무복귀 선언 이후에도 아산공장에 대한 직장폐쇄를 유지한 것은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방어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노조의 조직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 등을 갖는 공격적 직장폐쇄에 해당하여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영동공장에 대한 직장폐쇄 개시의 경우 직장폐쇄 前에 노조가 잔업 및 특근을 거부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영동공장에 대한 점거의 우려만으로 개시한 것이고, 영동공장에서 결품사태가 우려되거나 실제 발생한 적이 없어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대항 방어 수단으로서 정당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고, 직장폐쇄 유지 또한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임금청구를 인정했다(대전고등법원 2012나6378).2)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검사 김태견은 2013년 12월 30일 유성지회의 고소사건의 대부분을 불기소처분했고, 이에 대하여 유성지회 및 유성노동자들은 재정신청(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하여 법원에 심사를 요청하는 제도; 편집자 주)하였다. 대전고등법원은 2014년 12월 30일 노조법위반(① 아산공장 직장폐쇄 유지 및 영동공장 직장폐쇄 개시 및 유지, ② 단체교섭 거부, ③ 어용노조 조직 및 운영 관여 및 불이익 취급) 및 근로기준법위반(위법한 직장폐쇄 기간 임금미지급) 사실에 대하여 공소제기 결정을 하였고(대전고등법원 2014초재413), 이에 따라 기소된 사건에 대하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양석용 판사는 2017년 2월 17일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이 사건 각 범행은 회사의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조직적, 계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기간 또한 장기간으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이유로 유시영에게 검사의 구형량을 뛰어 넘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3고단1867, 2015고단507(병합), 2015고단768(병합), 2016고단2490(병합)}.3)

 

 

2) 이에 대하여 유성기업이 상고하자 대법원은 유성기업의 상고를 기각했다(대법원 2014다30858사건).

3) 유시영 등이 항소하여 항소심에서 일부 범죄사실에 대한 무죄판결이 있었으나 대부분 범죄사실에 대하여는 1심이 유지되었고(대전지방법원 2017노663), 유시영 등이 상고했으나 상고기각됐다(대법원 2017도13781).

 

어용노조를 뿌리 뽑기 위해 노동조합설립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다

 

2011년 7월 1일자로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되었다. 자본은 이와 같은 법률환경 변화에 발맞춰 민주노조 파괴의 수단으로 노조법상 조직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복수노조설립을 추진하게 된다. 이는 2010년 발레오만도와 2011년 유성기업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한편 현행 노조법 제2조 제4호가 노동조합에 대하여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라고 정의하면서, 소극적 요건으로 단서에서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 등을 열거하고 있다. 이 경우 노조법 제2조 단서에 해당하지 않지만 자주성·독립성이 없는 단체를 노조로 볼 수 있는지, 없다면 기왕에 설립된 ‘어용노조’의 법률적 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쟁송방법이 문제된다.

 

이와 관련하여 유성지회는 ‘개개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민·형사상 쟁송이 아니라, 그 근원적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법률수단’을 고민했고, ‘노동조합설립무효확인소송’이 가장 유효적절한 쟁송방법이라고 여겨 2013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유성기업4) 및 유성기업노동조합(이하 ‘어용노조’라 한다)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쟁점은 이와 같은 소송이 가능한 것인지와 자주성·독립성을 상실했다고 볼 증거가 있는지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제41부(부장 권혁중)는 2016년 4월 14일 ‘확인의 소’가 부적법하다는 어용노조의 본안전 항변(원고가 제기한 소에 대해 소송요건의 흠결 등을 이유로 본안 변론을 거부할 수 있는 피고의 권리; 편집자 주)을 배척했고, ‘금속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여 교섭대표노동조합의 지위를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성기업의 치밀한 기획 하에 설립-운영된 유성기업노조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자주성 및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할 것이어서 유성기업노조의 설립은 무효’라고 판결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3가합367). 이에 대하여 어용노조가 항소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하였고(서울고등법원 2016나6950), 어용노조가 상고하여 대법원이 2021년 2월 25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대법원 2017다51610).

 

4) 예비적으로 유성기업에 대하여 전국금속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동조합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소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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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0. 유성기업 노조파괴를 지시한 현대자동차 임직원 구속 촉구 기자회견 모습. [출처: 노동과세계]

 

노조파괴의 배후, 현대차 임직원 및 창조컨설팅에 대한 책임을 묻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유성 투쟁 10년은 자본의 노조파괴전략에 맞서면서 유성기업을 둘러싼 현대차 자본, 유성 자본, 창조컨설팅의 공모관계를 밝혀내고 법률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었다.

 

유성지회의 2011년 5월 18일 직장폐쇄에 맞선 직장점거 과정에서 현대차 자본과 유성 자본, 창조컨설팅의 공모관계가 처음으로 밝혀진 후 2012년 9월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창조컨설팅이 사용자들과 공모하여 유성기업 등에 노조를 파괴한 사실을 공개하였다. 이어 2012년 10월 18일 창조컨설팅 압수수색과 2012년 11월 14일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압수수색 시 컨설팅 제안서, 전략회의 자료, 현대차와 유성기업 및 창조컨설팅 간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창조컨설팅과 현대차 임직원들의 노조법위반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검찰은 창조컨설팅과 현대차 임직원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현대차 임직원들에 대해서는 유시영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현대차 임직원들의 관여 부분이 판결문에 적시되고 노조가 검찰의 직무유기를 강하게 비판하자 공소시효만료를 앞두고 현대자동차 이사 최재현 등 4명을 노조법위반죄로 기소하였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판사 홍성욱은 2019년 8월 22일 ‘피고인들이 유시영 등 유성기업 임직원들과 공모하여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잘못을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경위 등에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 등 실형선고를 하지 않았고(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7고단1027), 검사와 피고인들이 항소하였으나, 대전지방법원은 항소를 기각하였고(대전지방법원 2019노2706), 쌍방 상고하지 않아 확정되었다.

 

2011년 12월 9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이 순천향중앙의료원 압수수색을 통해 인사 경영 전략회의 회의록 및 전략회의 문건 508매(창조컨설팅 대표 심종두 등이 순천향대병원 사용자들과 노조파괴를 위한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노조파괴를 실행한 사실이 기재된 문건) 등을 확보하였음에도 검찰은 순천향대병원 사용자들에 대해서만 기소하였고, 2012년 9월 24일 국회 환노위에서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 등 노조파괴에 관여한 사실이 폭로된 이후에 제기된 고소사건에 대해서도 2012년 10월 18일 창조컨설팅을 압수수색한 이후에도 장기간 기소하지 않다가 2015년 6월 5일에야 비로소 유성기업 및 발레오만도 민조노조 파괴에 관여한 사실 중 일부에 대해서만 창조컨설팅 대표 심종두와 전무 김주목을 기소했다. 이에 대하여 서울남부지방법원 임종효 판사는 ‘노조법을 위반함과 동시에 헌법 제33조 제1항을 위반하여 근로자의 자주적인 단결권 등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2018년 8월 23일 심종두, 김주목에게 각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하였고(서울남부지방법원 2015고단2030), 이에 대하여 피고인들이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8노1712). 피고인들이 이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이 이를 기각하여 실형이 확정되었다(대법원 2019도4481).

 

 

노조파괴 컨설팅비 등 횡령 사건으로 ‘두 번째’ 실형선고를 이끌어 내다

 

유성기업 대표이사 유시영은 유성지회 10년 투쟁과정에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하여 두 차례의 실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했고, 현재 세 번째 재판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사건에서 2011년 직장폐쇄를 개시 유지, 어용노조 설립 및 금속노조 탈퇴에 관여한 혐의와 관련하여 1년 2개월의 실형이 확정되었다{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3고단1867, 2015고단507(병합), 2015고단768(병합), 2016고단2490(병합), 대전지방법원 2017노663), 대법원 2017도13781}. 첫 번째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성노동자들은 유성 자본이 자신들의 노조파괴 범죄행위를 뉘우치고 노조파괴를 멈추기를 원했다. 그러나 유성 자본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단체협약상 신분보장규정을 위반하여 무차별적인 징계를 강행했고, 노사문제 해결을 위한 유성지회의 교섭을 응하지 않았다.

 

두 번째 사건에 대한 고소는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2018년 10월 15일부터 유성지회는 서울사무소에서 유성기업 대표이사와의 실질적인 교섭을 요구하였으나 유성기업이 이를 거부하자 교섭이 무산될 것을 대비하여 노조파괴 컨설팅 비용 및 형사변호사비용 지출 관련한 핵심 증거(관련자의 자백)를 취합한 후 2018년 11월 1일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에 유시영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담당검사는 사석에서 유시영이 이미 한 번의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다시 실형선고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담당검사의 위 발언을 유성동지들에게 전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검사의 위 발언은 일반적으로 맞을 수는 있으나 노동사건의 추이는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며, 특히 재판을 둘러싼 세력 간의 역관계를 반영하여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성 자본은 유성지회의 고소 후에도 계속하여 교섭을 거부하던 중 아산공장에서 노무담당 상무에 대한 우발적인 폭행사건이 발생했고, 아산지회 조합원 2명이 구속되고 다수의 조합원들이 수사를 받는 등 유성지회가 수세에 몰리게 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유성지회는 공평한 법집행을 요구하면서 아산경찰서와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을 압박했고(선전전, 기자회견, 수사관·수사검사·아산경찰서장·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장의 직무유기에 대한 고소), 검사 정재신은 노무담당 상무 폭행 사건으로 구속된 조합원들을 기소한 다음 주에 유시영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제1형사부(부장 원용일)는 유시영이 노조파괴 컨설팅 비용으로 약 13억 1,000만 원을 지급하고, 유성기업 임직원들 개인 형사사건 변호사 선임료 명목으로 1억 5,400만 원을 지급한 것과 관련하여 1년 10월의 실형을 선고했다5)(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9고합23, 45).

 

5) 피고인들이 항소하여 대전지방법원이 일부 범죄사실을 무죄로 판결하면서 유시영은 1년 4개월로 감형되었고(대전지방법원 2019노531), 이에 유시영이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여 실형이 확정되었다(대법원 2020도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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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24. “9년을 넘길 수 없다. 끝내자! 유성기업 노조파괴 -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행진” 모습. [출처: 충남 노동자뉴스 ‘길’]

 

 

현장투쟁과 법률투쟁의 결합은 매일 확인되어야 할 격언이다

 

지난 유성지회 10년 투쟁 과정에서 유성 동지들로부터 재판결과가 현장투쟁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평가는 일면적이고 과한 측면이 있다. 2011년 점거파업부터 시작하여 지난 10년간 자본과 국가권력에 대한 유성 동지들의 비타협적인 투쟁이 법률투쟁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유성 동지들이 민·형사책임을 두려워하여 아산공장을 점거하지 않았다면 현대차 자본, 유성 자본, 창조컨설팅 간의 추악한 노조파괴 음모가 밝혀질 수 있었겠는가. 직장폐쇄 종료 후 무차별적인 징계와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후 투쟁을 포기하였다면 창조컨설팅을 퇴사한 노무사가 은수미 의원실에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파일을 전달하였겠는가. 전달하였다한들 당사자인 유성 동지들이 침묵하고 있었다면 백 개가 넘는 노조파괴 파일이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겠는가. 유성 동지들이 현대차 자본의 책임을 제기하고 투쟁하지 않았다면 검찰이 2012년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했던 현대차 자본의 노조파괴 지시 이메일은 지금도 검찰청 창고 구석에서 먼지에 쌓여 쥐가 갉아먹고 있을 것이다.

부당한 법원의 판결과 부당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맞서 유성 동지들이 검사와 판사의 실명을 적시하며 비판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것을 넘어서서 검사에 대한 직무유기 고소, 판사가 속한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던 모든 유성기업 사건들에 대한 기피신청을 통해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법률투쟁의 결과가 유성동지들이 원하는 대로 나왔겠는가.

 

유성지회 10년 투쟁에 결합하여 법률투쟁을 진행했던 필자에게 이 싸움은 ‘현장의 힘’이 법률투쟁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현장투쟁과 법률투쟁의 결합이라는 말은 결코 상투적인 용어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접하는 노동현장에서 계속 확인되어야 할 격언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