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6] 노동안전보건 활동가가 된 지 한 달째입니다 / 성상민

by 철폐연대 posted Jun 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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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바닥 일기

 

 

오늘로써 노동안전보건 활동가가 된 지 한 달째입니다

 

 

성상민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이 글은 5월 17일에 쓰고 있다. 4월 17일에 가산디지털단지에 위치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한노보연) 서울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였으니, 오늘로써 한노보연 활동가가 된 지 한 달을 맞이한 셈이 되었다.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노동안전보건 영역의 활동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완전히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산재 사건을 알게 된 이후 꾸준히 노동 현장의 안전 문제에 대한 기사나 보고서, 책을 보곤 했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활동했던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단체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에서도 센터에서 진행한 방송·미디어 노동자의 노동안전 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노보연의 여러 활동가들을 만나며 안면을 익히기도 했다. 하지만 내 자신이 한노보연의 활동가가 되리라고는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이전부터 지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 노동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다

 

한노보연의 활동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은 반쯤은 우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석사논문 주제로 웹툰 영역의 노동 실태와 인식 문제를 다뤄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생각만큼 논문이 잘 진척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침 한노보연의 상임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한빛센터에서 활동할 시기 한노보연 활동가들과 실태조사 작업을 진행하였기에 조금은 안면이 있었고, 그 당시 한노보연이라는 조직과 소속 활동가들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지니게 되었다. 한노보연의 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면서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의 기억들은 노동안전보건이라는 영역을 완벽하게 잘 알지는 못해도 한노보연이라는 조직 내부에서 함께 배우고 활동하며 내 자신도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로서 잘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한노보연으로 나를 이끈 요인에는 우연적인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전부터 나는 문화예술 영역을 바라봄에 있어 창작 노동의 문제를 분명하게 바라봐야만 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나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문화예술 영역에서 평론·연구 작업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원래 만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작은 누나, 무척이나 영화를 좋아해 동네 비디오방을 단골처럼 드나들었던 큰 누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만화, 그리고 영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였던 덕분이었다. 비록 난 손재주가 떨어져 무언가를 그리는 실력도 무척이나 부족했지만, 대신 내가 눈과 귀로 느끼는 매체와 표현물에 대해서는 글로 잘 풀어낼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이른 시기에 글을 쓸 수 있는 길을 만들게 되었고, 운 좋게 비평 공모전에도 당선이 되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다양한 문화 현상에 대한 평론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모든 이야기가 꼭 밝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보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수의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씁쓸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문화예술 영역의 글을 쓰기 시작했던 2000년대 중후반에는 특히나 더 그랬다. 만화는 2010년대 이후 웹툰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이렇다 할 성장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으며, 같은 시기 영화 또한 2006년 봉준호의 <괴물>을 정점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주로 만난 두 영역의 종사자들 중에서는 당장의 생계를 고민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더라도 당장 자신들이 활동하는 판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작업이 가능한지를 고민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고민의 칼날은 ‘사용자’를 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소비자의 의식’을 지적하는 식으로 흐르기 일쑤였다. 한국인들이 문화 활동에 무심해서, 불법 공유를 통해서 공짜로 보는 게 익숙하니 창작물이 귀한 줄을 몰라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어렵다는 말을 무척이나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분명 한국은 예나 제나 독서율은 물론 문화 활동에 풍부히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은 맞다. 저작권 논의를 단순히 ‘돈’의 문제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과 별개로, 불법 공유가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시급한 문제로 볼 수 있다고 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작자의 처우 문제에서 작업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할, 창작 노동물의 제작을 대가로 계약을 한 사업주의 책임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사업주에게 분명하게 요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졌지만, 그 말은 그저 ‘특이한 생각’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문화예술노동에 대한 관심을 노동안전보건 전반의 문제로

 

비록 내 자신은 ‘창작자’가 아니다. 그저 창작자들이 무수한 고생 끝에 만들어 낸 작업물들에 대해서 작품 개별로, 또는 현상이나 흐름의 차원에서 이런저런 설명이나 분석을 붙일 따름이다. 그러기에 문화예술 창작자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도 제한적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저 계속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매체에 발표하는 글을 통해서 해당 문제의 심각성이나 근본적인 구조 변화의 필요성을 환기했을 따름이다.

 

그러던 상황에서 2010년대 중후반부터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만화, 영화는 물론 방송, 게임, 음악 등 한국에 존재하는 문화예술 산업 전 분야가 스스로 덩치를 키우고 해외로도 발길을 넓히면서 외연을 확장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산업 전체는 커졌지만, 산업이 커진 만큼 처우가 나아진 이들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이전에는 산업 전체가 어렵다는 이유로 빈곤하고 열악한 처우와 보상을 정당화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그렇게 넘길 수 있는 때는 아니었다. 그전까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만 있던 문화예술산업의 노동조합이 그렇게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전에 활동했던 한빛센터도 그러한 흐름에서 생긴 조직 중 하나였다. 마냥 길지도 짧지도 않은 3년간의 활동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외부에서는 잘 알 수 없는 방송·미디어 영역의 노동 실태는 물론, 문화예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노동이 형성되고 작동하는지를 무척이나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빛센터 활동을 마친 뒤 잠시 쉬고 있었던 대학원에서의 문화연구 공부를 지난 일 년간 집중했다. 비록 목표로 했던 석사 논문 작성과 졸업은 이루지 못했지만,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약 30명에 가까운 웹툰 창작자를 인터뷰하면서 좀 더 깊게 웹툰 창작 노동의 실태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초, 한노보연이 발표한 한 편의 보고서를 보았다. <웹툰 작가들의 정신건강 및 신체건강과 불안정 노동 수준 실태 조사>라는 제목의 보고서였다. 분명 조사가 필요했지만 그전까지 깊은 접근이 부재했던, 웹툰 창작 ‘노동자’들의 건강과 불안정 노동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접근한 연구였다. 그 연구가 한노보연의 상임활동가 지원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3. 본문사진.jpg

2023.03.07.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웹툰작가들의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토론회. [출처: 매일노동뉴스]

 

 

노동안전보건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나를 상임활동가로 함께할 것을 선택한 한노보연의 동지들에게 감사의 말을 이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익혀야 할 것도 적지 않다. 여러 고민 끝에 나를 새로운 동료로 맞이한 동지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노동안전보건의 문제를 몸과 마음으로 체화시키려 노력하고자 한다. 나는 오랜 시간 문화예술 영역의 노동 문제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국 사회 전반의 노동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노동에 대한 시선을 넓히며, 문화예술 산업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변화로 향하는 긴 여정에 함께할 수 있는 활동가가 되려 한다. 그 길이 내가 오랜 시간 발을 디뎌 왔던 영역을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