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4] 낯선 환경의 설렘에서 느끼는 익숙하지 않은 시간 / 이태성

by 철폐연대 posted Apr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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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2)

 

 

낯선 환경의 설렘에서 느끼는 익숙하지 않은 시간

 

 

이태성 • 공공운수노조 전북평등지부 전주리싸이클링타운분회 분회장

 

 

 

겨울철 뼛속까지 시린 칼바람을 견디며 봄기운이 제법 물씬 풍기는 계절이 다가오지만,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길거리 위의 생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겨울이 아무리 춥다고 해서 봄이 안 오는 건 아닐 것입니다. 지금 꽃이 안 피는 것은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만개하기 위한 기다림일 것입니다.

 

전주에서 부산으로 주말부부 생활을 한 지 벌써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돌이켜 보면 1976년 생에 전주에서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6년 양산에서 바이오가스화 시설의 시운전과 상용화로 전기 및 가스화 설비 경력자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서 진주를 제2의 고향으로 꿈꾸었지만, 소개받았던 지역이 진주 아닌 전주임을 알고 상당한 고민 끝에 결심하고 ‘전주종합리싸이클링타운’에 내려왔습니다. 

 

다소 생소한 전주종합리싸이클링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품 선별, 하수슬러지 소각으로 구분되고 버려지는 다양한 물질들을 재활용 공정을 거쳐 자원화하는 곳입니다. 정상적으로 상용화되기 이전에 기계 설비 등 종합 시운전을 하게 되는데, 성능평가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데, 정말 시운전하는 몇 개월 동안 출퇴근 시간은 불규칙했고 며칠 밤을 회사에서 지내기도 하면서 전주리싸이클링에 대한 애착과 제2의 고향에 대한 고민을 서서히 쌓아 나갔습니다. 

 

2017년 상용화되고 나면 전주리싸이클링타운이라는 곳의 직원이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주리싸이클링의 4개 공동출자자 태영건설, 한백건설, 성우건설, TSK워터(에코비트워터) 중 최대 지분사인 태영건설의 직원으로 1년 계약직 제의를 받으면서 다시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동안 현장에서 흘린 피와 땀이 나중에는 분명 좋은 결과로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악덕업체라는 단어를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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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 전주리싸이클링타운 고용승계 쟁취와 민간운영 중단을 촉구하는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 [출처: 공공운수노조] 

 

 

계약직에 대한 차별 대우와 갑질, 연차사용 강제, 부당해고 등 말도 되지 않은 상황들을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몸이 아파도 집안에 경조사가 있어도 연차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 당연했으며, 동고동락했던 동료가 근무 태도가 부적절하다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정리해고되었을 때 사측에 이러한 불공정함을 지적하는 바른말을 하면 그만두고 싶냐는 협박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갑질과 부당한 대우가 이어지던 중, 사측은 2018년 말 태영건설의 자회사인 에코비트워터로 주관운영사를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다시 이해하기 힘든 기준의 평소 업무 자세를 운운하며 6명을 정리해고하겠다는 공식적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나는 가스발전기 및 전기계장 팀장으로 필수인력 해당 명단에는 없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아들이자 남편이고 가족인데, 나만 아니면 될까? 언젠가 그게 내가 된다면? 더욱이 나와 함께 부산에서 유경험자로 같이 왔던 형도 이 명단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동료들과 대책회의를 하면서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에게 노동조합은 TV를 통해 경찰들과 대치하며 몸싸움하는 장면이나 데모하는 모습으로만 봐 왔기에 무척이나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무리를 이끌거나 대표가 필요한데, 서로 눈치만 볼 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어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모든 것이 회사에 유리하게 흘러가서 불안감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래서 2018년 4월 고민 끝에 분회장을 맡기로 했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사직서까지 미리 작성하여 우리들의 결의를 다졌고,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던 고용안정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색한 팔뚝질과 노동가요는 아무리 불러도 입에 착착 달라붙기는커녕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시민들을 향한 선전물 배포와 피케팅에 행인들의 시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3~4일간만 파업하면 끝이 날 것 같았는데, 추석을 지나 한 달간의 장기간 파업으로 차가운 바닥만큼이나 통장의 잔고는 더욱 차가웠고 밝았던 우리들 표정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실제 TV에서 보던 것을 내가 경험해 보니 절실함과 간절함이 생겨났고, 남들이 보는 차가운 시선은 안중에도 없어졌습니다. 

 

무슨 일이든 과정이 있으면 결과도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 우리들의 투쟁도 결실을 보는 듯했습니다. 고용안정과 노동환경 개선이 되는 듯 잠시 흘러갔는데, 또 다른 풍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19년 태영건설의 자회사인 TSK워터(에코비트워터)로 전적이 되면서 사측은 1,500만 원 삭감된 연봉을 제시했습니다. 정말 그만둘까 하는 복잡한 생각과 이렇게 해서라도 무리하게 계속 다녀야 할까? 매일 자신에게 답이 없는 물음으로 깊은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래도 한 번 끝까지 가 보자 결심하였습니다. 현재도 매달 빠듯한 통장 잔고이지만 믿어 주고 이해해 준 사랑하는 가족에게 미안했고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전주리싸이클링타운분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안정적으로 안착하게 되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배움의 깊이가 간절해졌습니다. 교육에 빠짐없이 신청했고 틈이 나는 대로 집회현장을 쫓아다녔습니다.

 

지금까지 근로기준법에 무지했지만, 교육을 받고 궁금했던 것을 공부하면서 대기업이라고 하는 에코비트워터라는 곳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휴일근로수당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 간의 품앗이 근로를 강요하고, 연차사용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며, 업무시간 외 근로수당을 미적용하며, 임금 체불도 수시로 발생하는데 정말 대기업의 인사노무관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에코비트워터는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각종 법을 위반하며 사용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진정과 고소를 이어나갔고, 우리와 한 약속을 파기했기에 매년 파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무리하지 않을 거고, 자신들의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 무리하지 않을 건데, 이렇게 우리는 파업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측과의 끊임없는 분쟁과 투쟁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현장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의 처우도 서서히 바뀌어 갔습니다. 공정하고 차별받지 않고 최소한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만, 노동조합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요술지팡이는 분명 아닐 겁니다. 이를 유지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조의 구성원인 조합원 모두가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야 가능함을 알게 되었기에 힘찬 팔뚝질과 파업가를 부르며 단결 투쟁했습니다. 사측과 주무관청은 무리하게 파업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월급을 줄여 가며 재미 삼아 파업을 하는 노동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23년 에코비트워터는 그동안 주무관청(전주시) 몰래 전국의 음폐수를 불법 반입 처리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여 이슈화되었습니다. 노동환경의 유해환경인 악취에 대해 노-사-정 협의회를 진행하겠다 하여 그동안 경직된 노사관계가 완화되지 않을까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10월 에코비트워터에서 성우건설로 주관운영사 변경을 하겠다는 결정을 통보받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사측은 많은 시간 동안 노조파괴 공작을 준비하며 기업노조를 결성하였고, 연고지도 없는 강원도 고성과 평창 등 원적지 발령을 내었고, 전문성과 연관성도 없는 전 형사과장을 운영 소장으로 배정하였습니다. 또한 조합원 11명만 결국 고용승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24년 1월 3일부터 칼바람의 엄동설한을 이겨가며 전주시청에 원직복귀를 요구하며 3월 21일 기준 79일 차 천막농성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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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전북평등지부는 2024년 1월 3일부터 전주시청 민원실 앞에서 전주리싸이클링타운 노조파괴 공작과 노동자 집단해고 규탄, 원직복직 쟁취, 민자투자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2018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분회장으로 숨 가쁘게 달려오면서 불면증으로 모자란 잠을 이겨 보려고 매일 술로 지낸 날도 있었고, 마음의 병을 얻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기도 했습니다. 간혹 길을 걷다 보면 커다란 벽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너무 높아 넘어가지 못할 것만 같은 그 벽도 사실 알고 보면 그저 별거 아닌 야트막한 담장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주리싸이클링타운분회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튼튼해지는 과정의 성장통일 거라고 확신하며,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지독하게 버티고 버텨서 승리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