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405] 조선업 상생협약 1년, 하청노동자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 이김춘택

by 철폐연대 posted May 10, 202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오늘, 우리의 투쟁 (2)

 

 

조선업 상생협약 1년,

하청노동자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김춘택 •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 풍경1

4월 15일 월급날, 한화오션 탑재공정 하청업체 여러 곳에서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지난 2월 15일에도 임금이 일부 체불되었는데, 한 달 거르고 또다시 임금체불이 발생한 것이다. 이웃 삼성중공업은 이미 2023년 말부터 하청노동자 임금체불이 시작됐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월 현재 임금체불액은 한화오션 5억 원, 삼성중공업 68억 원이었다. 

 

# 풍경2

한화오션 발판공정 하청업체에서는 물량팀을 중심으로 일당 5,000원 삭감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발판은 조선소에서 일은 가장 힘든 반면 임금은 가장 낮은 직종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물량팀 비율이 70% 이상인데, 하청업체에서 임금체불을 피하려는 선제조치로 아예 임금삭감을 하려는 것이다. 

 

# 풍경3

한화오션 의장공정 하청업체 한 곳은 폐업 소문이 돌고 있다. 업체 대표가 며칠째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데, 업체를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퇴직금은 못 받게 생겼고, 폐업 과정에서 체불되는 임금은 대지급금으로 받아야 할 거라고 한다. 이 업체는 한화오션과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정식 하청업체가 아니라 물량 단위로 계약을 하는 임시 하청업체이다. 최근 2년 사이 한화오션에는 이 같은 임시 하청업체가 많이 늘었는데, 그중에서 폐업하는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 풍경4

조선소에서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1월 12일 한화오션에서, 1월 18일 삼성중공업에서, 1월 24일 다시 한화오션에서, 2월 5일 HSG성동조선에서 그리고 2월 12일 HD현대중공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해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빼앗겼다.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 풍경5

한화오션은 지난 3월 21일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는데, 연간 임원 보수 한도 50억 원과 별도로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 임원 3명에게 주식 23만 2,007주에 상응하는 범위 내에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과 주식가치연계현금을 장래에 부여받을 권리로 부여했다. 현재 주가로 환산하면 70억 원이 넘는 성과금이다. 김동관 부회장은 2023년에도 본인의 연간 총보수 90억 원의 2배가 넘는 200억 원 규모의 RSU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 풍경6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25일 조선소 원하청 대표와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그리고 이른바 전문가를 불러 모아 조선업 상생협약 1주년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에스크로제도 도입, 하청노동자 임금 7.51% 상승, 공동복지기금 원청 출연 10억→20억 확대, 이주노동자 적기 확대 도입 등이 1년 동안의 상생협약 이행 노력으로 소개됐다.

 

 

4. 본문사진1.jpg

2022.06.21.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투쟁 21일차, 노동자 7명 1도크에 건조 중인 배 안에서 끝장 농성 돌입. [출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2022년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51일 파업투쟁은 조선소 직접생산 대부분을 담당하는 하청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이에 집권 초기였던 윤석열 정부는 한편으로 경찰특공대 투입 준비로 노동자들을 협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말을 앞세워 현실 개선을 공언했다. 

 

파업이 끝난 뒤 정부는 2022년 11월 조선소 원하청 사용자를 테이블에 앉혀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발족시켰고, 2023년 2월 27일 ‘조선업 상생협약’을 체결하게 했다. 그리고 협약 체결 후 1년이 지났다. 정부는 보고회를 열어 자화자찬하기 바빴지만, 하청노동자의 현실은 위에서 살펴본 풍경처럼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그간의 과정을 살펴보면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단어로 현실을 진단할 때, 고통의 원인이자 하청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이윤 대부분을 향유하는 원청 자본의 존재는 지워지고 정규직-하청노동자의 대립과 갈등만 남는다. 그것이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다. 반대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자리라고 만든 상생협의체에는 원하청 사용자만 존재할 뿐, 정규직이든 하청이든 노동자는 철저히 배제한다. 

 

한편 좋은 말로 치장한 상생협약과는 별개로, 파업 이후 조선업이 초호황기에 들어선 2년 동안 실제로 추진된 정부와 자본의 정책은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조선업 인력난의 핵심에는 ‘하청노동자 저임금’이 자리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조선업 중대재해의 핵심에는 ‘다단계 하청고용’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청노동자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첫째, 상용직 하청노동자 임금을 대폭 인상하고(그것이 51일 파업의 핵심 구호였다), 둘째, 다단계 하청고용을 금지 또는 제한하고 상용직 고용을 확대, 안정화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의 정책은 정반대였다. 20~30년을 일한 숙련 하청노동자가 최저임금보다 조금 많은 임금을 받는 저임금 구조는 지금도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조선업 인력난에 대한 정부 정책의 핵심은 이주노동자 고용 대폭 확대였는데, 정주노동자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최저임금이 자신의 임금인 이주노동자의 대거 유입은 당연히 기존 하청노동자의 임금을 계속 낮게 유지하게 만든다. 

 

또한 ‘본공’이라 불리는 상용직 하청노동자의 수는 오히려 더 줄어들고, 물량팀, 아웃소싱, 임시업체 등 다단계 하청고용은 더 확대됐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일당제’나 ‘직시급제’ 같은 포괄임금제로 임금을 받는 물량팀, 아웃소싱 노동자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상승했는데, 그에 따라 저임금에 당장 생계유지가 어려운 하청노동자는 본공을 그만두고 물량팀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하청업체의 목숨줄인 기성금은 하청노동자 임금과 4대보험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여전히 낮게 유지되고 있다. 한화오션의 경우 기성금 단가는 2022년 3~4%, 2023년 5~8%, 2024년 4~5% 인상됐을 뿐이다. 설령, 단가가 오르더라도 기성금을 구성하는 또 다른 요소인 ‘시수’와 ‘능률’을 원청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원청이 맘만 먹으면 하청업체가 적자를 보다 견디지 못해 폐업하게 만드는 건 여전히 손쉬운 일이다. 

 

특히 근래에는 인력난이 계속되고 있기도 하고 부족한 인력을 이주노동자와 다단계 하청고용 확대로 채웠지만 제대로 생산공정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 그에 따라 발생하는 추가적인 손실과 비용을 원청이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있다. 그래서 조선업 초호황으로 원청 조선소의 경영지표는 확연히 개선되고 있는 반면, 하청업체는 계속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그 결과가 지금 하청노동자 임금체불, 4대보험 체납, 임금삭감, 하청업체 폐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중대재해로 나타나고 있다.

 

 

4. 본문사진2.jpg

2024.04.17.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2024년 투쟁 선포 기자회견.

[출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우리는 한국 조선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조선소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하청노동자의 임금과 복지가 정규직 노동자의 최소 80% 정도로 상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다단계 하청 고용은 법으로 금지되어야 하며, 상용직 하청노동자 고용이 전체 하청노동자의 70%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와 자본은 조선소 하청노동자 저임금 구조를 계속 굳건히 유지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이주노동자 고용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또한 물량팀, 아웃소싱, 임시업체 등 다단계 하청 고용 역시 계속 확대하고 있다. 어쩌면 직접생산에 정규직은 아예 없고, 하청노동자도 상용직은 없고 모두 물량팀이나 일용직으로 채우는 것이 자본이 꿈꾸는 미래의 조선소일지 모른다. 

 

2016년부터 시작된 조선업 불황기에 자본은 하청노동자 저임금(임금삭감)과 다단계 하청 고용 확대로 대응했다. 그리고 지금 조선업 호황기를 맞아서도 자본은 이미 들어선 그 길로 계속 가려고 한다. 

 

정부와 자본이 가려는 방향은 이처럼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10년 뒤 한국 조선업은 어떤 모습일까? 거창하게 말하면 계급투쟁이, 소박하게 말하면 노사관계가 미래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조선업 노사관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은 정년퇴직으로 줄어드는 조합원 수를 유지하고 기존에 확보한 고용과 복지를 지키는 것이 당면 과제일 뿐이다. 그리고 2016년 이후 조선업 불황기에 성장한 하청 노동조합은 여전히 대규모 조직화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2017년 창립 이후 크고 작은 현장투쟁을 계속하며 성장해 왔다. 그 결과 2022년 51일 파업투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51일 파업투쟁 이후 한번 꺾인 무릎을 아직 다시 곧추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와 자본이 가려는 방향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언제든 터져 나올 하청노동자 대중투쟁을 더욱 거대하고 날카로운 투쟁으로 만들기 위해, 하청노동자 대규모 조직화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조합원들과 함께 오늘도 절치부심, 투쟁의 날을 벼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