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12] 노동과 검찰개혁 / 탁선호

by 철폐연대 posted Dec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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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 포커스

 

노동과 검찰개혁

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객관성, 공정성, 중립성이라는 허구

 

검찰이 지난 2019년 7월 법원 판결과 달리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간접공정 대부분에서는 불법파견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하며 밝힌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파견법 문제는 고용유연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간접고용 방식(형식적·명목적 회사 설립 등을 통한 근로자 확보, 도급 등 외부인력 사용, 해외시장 진출 등 모색)을 선호하는 사용자 측의 입장과 노동력 제공에 대해서는 노동법으로 규제(인간의 상품화 금지)되어야 한다는 노동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분야다.”

검찰은 이 문장을 통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불법파견 문제를 수사하여 기소했다는 인상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불법파견 문제’라고 하지 않고 ‘파견법 문제’라고 했다. 검찰 눈에 문제는 법 위반 행위(불법파견)가 아니라 파견법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법률에 위반되는 범죄행위를 수사/기소하는 행정기관이 아니라 입법자의 어깨 위에서 ‘파견법’ 자체를 문제 삼았다. 위 문장은 파견법 해석·적용과 관련해서는 간접고용 방식을 선호하는 사용자(범죄혐의자)의 입장을 배려하겠다는 검찰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검찰의 의지는 수사와 수사지휘 과정에서도 잘 드러났다. 담당 검사는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수사지휘건의를 받고 두 달 후에 근로감독관을 대면하여 수사방향을 설명했는데, 그 사이에 두 차례나 피고발인 대리인을 직접 면담하여 변론을 들었다고 한다. 검사는 수사지휘건의를 받은 후 약 4개월이 지난 후에야 근로감독관에게 수사지휘를 했다. 사용자 측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검사는 피고발인(정몽구 등)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리인과 직접 면담하여 변론까지 들은 후에 많은 고민 끝에 수사지휘를 한 것이다.

검찰은 그동안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법원의 계속되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관점을 최대한 지켜가며 수사와 기소를 했다.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려고 했지만, 수사/기소 과정에서 사용자 측을 배려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1 2018.8.7.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정몽구와 검찰책임자 처벌촉구 기자회견 [출처 금속노동자(임연철)].jpg

2018.8.7.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정몽구와 검찰책임자 처벌촉구 기자회견 [출처: 금속노동자(임연철)]

 

 

검찰의 역할 - 체계적인 노동배제 및 억압

 

그동안 노동조합 파업이나 집회, 부당노동행위 사건조사와 관련하여 몇 차례 대면해 본 공안검사들은 매우 바쁘고 피곤해 보였다. 그들의 칼은 때론 날카로웠고, 때론 무뎠다. 피의자의 변호인 입장에서 조사동석을 할 때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파고드는 검찰의 칼은 집요했고, 고소·고발인 대리인 입장에서 조사를 받을 때 범죄혐의를 입증할 추가증거를 내놓으라고 하는 검찰의 칼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공안검사의 말에서는 자신들이 국가경제를 수호하고 있다는, 자신들이 정말 공익의 대표자라는 소명의식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그들의 묵직하고 강건한 태도에서는 진정성마저 느껴졌다.

노동사건을 수사/기소하는 공안검사는 사라졌다. 정부는 지난 2018년 9월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공안부를 공공수사부로 변경했다. 이제 공안검사가 아니라 공공형사부 노동수사지원과 검사가 노동사건을 수사하게 됐다. 그런데 사람이나 제도는 그대로 두고 간판만 바꿔 신장개업한 가게에서 ‘공안’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노동을 바라볼 수 있을까.

대한민국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수사권, 수사지휘감독권, 수사종결권, 영장청구권, 기소독점권, 공소유지권, 형집행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라는 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검찰청법 제4조 1항에 검사의 지위를 그렇게 정해놓고 있다. 사법고시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검사에 임용된 사람은 임용되자마자 갑자기 공익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다.

공익의 대표자 검사들은 자신들의 막강한 권한을 정치와 사익추구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얼마 전 <PD수첩>에서 방송된 ‘검사 범죄’시리즈에서 제보자X라는 사람은 ‘죽이려는 수사로 명성을 얻고 덮으려는 수사로 부를 축적한다’는 한 문장으로 이를 잘 표현했다.

검찰의 죽이려는/덮으려는 수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자들이다. 검찰은 파업이나 집회 등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엄중한 수사/기소를 통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억압해왔고, 사용자들의 노조파괴나 불법파견 등에 대해서는 느긋하고 관대한 태도로 수사/기소를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사용자들의 불법을 용인해왔다.

노동사건에 대한 검찰의 죽이려는/덮으려는 수사/기소는 단지 일부 정치검찰의 권한 남용 문제가 아니다. 검찰은 노동자들이 사용자들의 기업 할 자유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할 목적으로 노동사건을 수사/기소한다. 검찰은 검찰권을 통해 한국 사회가 노동을 대하는 지배적인 방식을 체계적·제도적으로 실행하는 기관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검찰개혁 방향은 검찰 권력 독점의 폐해를 줄이고 중립적이고 공정하고 깨끗한 검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고 검경수사권을 조정하면 검찰 권력의 분산과 조정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관예우를 근절하고 감찰기능을 강화하면 좀더 깨끗한 검찰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논의가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검찰개혁의 의미가 국가기관 사이의 권한 조정 정도로 축소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하고 깨끗한 검찰을 만든다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노동의 관점에서 검찰개혁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억압적 국가기구인 검찰을 개혁하는 것은 가능이나 한 것일까.

 

 

노조파괴의 시대, 쿨했던 공익의 대표자 검찰

 

특수부 검사 윤석열이 쿨하게 수사하던 이명박 정권 시절 사용자들은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대놓고 노조파괴 범행을 저질렀다. 공안부 검사들은 쿨하게 무혐의 처분했고, 노동자들은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다. 검찰이 노동3권 침해행위인 부당노동행위를 축소/은폐 수사한 이유는 단순하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집단적인 방식으로 사용자들에 대항하는 것이 사용자들의 몫을 줄어들게 하고 이른바 기업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조파괴의 시대에 검찰이 안간힘을 써서 사용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려 했던 모습을 다시 살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11년 7월 개정 노조법 시행으로 사업 및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되고 창구단일화제도가 도입되자,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은 기업들은 민주노조를 약화시키고 친사용자 노조를 육성하려고 했다. 노조파괴가 이어지는 가운데 2012년 9월 24일에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현장 용역폭력 청문회에서 은수미 의원은 창조컨설팅 내부 문건을 공개하며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발레오만도 등의 노조파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내부 문건에서는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 국정원, 경찰, 검찰 등 유관기관 대응전략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금속노조 등은 2012년 10월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심종두·김주목,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파괴를 시도한 유성기업·상신브레이크·발레오전장·보쉬전장 대표 등 31명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노조운영에 대한 지배개입 등)로 검찰에 고소했다. 사업장 관할별로 사건이 이송된 후 각 지방검찰청은 관할 고용노동청에 수사지휘를 하였다. 고용노동청은 2012년 12월에서 2013년 1월 사이 사업장과 기업별노동조합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검사의 지휘에 따라 3~4차례 보강수사를 진행한 다음 관할 검찰청에 불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하였다. 검찰은 2013년 12월 일괄해서 불기소처분을 하였다. 금속노조 등은 이에 불복하여 법원에 재정신청을 하였고, 법원은 발레오만도와 유성기업 사건 중 일부혐의를 인정해 공소제기결정을 하여 강기봉과 유시영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1,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노조파괴 범죄자들은 처벌을 받았지만, 검찰은 수년간 소극적인 수사와 수사지휘(가령 근로감독관이 유시영 등의 출국금지와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수사지휘를 하여도 이를 거절)와 불기소 결정을 통해 범죄자들의 노조파괴 행위가 계속되는 것을 방치했다. 노조파괴의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계속 대면하면서 가해행위에 맞서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검찰의 발레오전장 및 유성기업 사건에서의 불기소이유를 보면 노조파괴 범죄 행위에 대해 고의적으로 눈을 감았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때로 법적·논리적으로 너무 허술해 측은하고 눈물겹기까지 하다.

검찰이 발레오전장 사건에서 강기봉을 불기소한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창조컨설팅 심종두, 김주목은 은수미 의원실에서 입수하여 발표한 창조컨설팅 내부문건 중 ‘쟁의행위 대응 전략회의’ 등의 문건을 발레오전장 측의 다양한 질문에 대비하기 위한 내부검토용으로만 사용하였다고 진술하였다. △ 발레오전장 압수수색에서 위 문건들이 발견된 바 없다. △ 그 외 위 문건이 강기봉 등 발레오전장 측 관계자에게 전달되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 창조컨설팅 사무실 압수수색에서 조조모가 기업별노조 설립을 위해 경주시청에 제출한 문건과 유사하거나 거의 일치하는 문건들이 발견되었으나, 김주목은 컨설팅 업무를 위하여 발레오전장 사무실에서 회사컴퓨터로 작업하던 중 컴퓨터에 보관된 문건을 우연히 발견하고 업무에 참고하기 위해 USB에 담아왔을 뿐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 김주목의 진술은 조조모 대표의 진술과도 일치한다.

그런데 재정신청을 통해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기소된 강기봉에 대한 재판에서 1심 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시하였다.

“피고인 강기봉이 위 범죄사실 기재와 같이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쟁의행위 대응 전략회의’ 등의 문건에 첨부된 ‘임시총회 소집 및 임시총회 소집권자 지명 요청’ 등의 문건에 첨부된 ‘임시총회 소집 및 임시총회 소집권자 지명 요청’ 등의 문건 또는 ‘쟁의행위 대응전략’ 등의 문건에 포함된 자문내용을 발레오만도지회의 대항세력인 조조모에 전달하여 조조모가 기업별노조인 발레오전장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 … (중략) … 피고인 강기봉은 위 ‘쟁의행위 대응 전략회의’ 등의 문건은 창조컨설팅 내부토론 또는 교육자료로 이를 발레오전장이 전달받은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문건 기재와 같은 내용의 전략회의 자체가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창조컨설팅의 대표자인 심종두, 전무인 김주목의 이 법정에서의 진술 역시 동일하다. … (중략) … 그러나 아래와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보면 이를 전혀 믿기 어렵다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는 형사재판에서 법원이, 발레오전장 측이 기업별노조로 조직형태 변경을 지원하였다는 것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고, 강기봉․심종두․김주목의 말을 ‘전혀’ 믿기 어렵다고까지 하였다고까지 한 것은 불기소하려고 갖은 안간힘을 쓴 검찰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다. 애썼다만 이걸 가지고 혐의 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라는.

검찰은 유성기업 사건에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 검찰이 유성기업이 창조컨설팅과 공모하여 제2노조 설립에 지배개입하였다는 혐의에 대해서 불기소처분을 하면서 밝힌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유시영 등 피의자들은 제2노조가 설립된 이후에야 설립 사실을 알았고, 자문을 받은 적도 문건을 건네받은 적도 없다고 진술하였다. △ 유시영 등의 진술은 제2노조 설립에 관여한 자들이 회사 측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한 진술과 부합한다. △ 창조컨설팅 심종두·김주목이 피의자들과 회의를 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금속노조 영동지회와 아산지회의 불법행위에 대한 대응방안 회의였을 뿐, 신설노조 설립에 대해 회의를 하거나 회의 중에 ‘경영정상화 관련 전략회의’ 문건을 교부한 사실도 없다고 진술했다. △ 창조컨설팅에서 압수한 ‘전략회의’ 문건만 가지고는 유시영 등 피의자들이 제2노조 설립에 지배개입한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

검찰은 발레오만도와 유성기업이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두 배척하고 혐의사실을 부인하는 피의자들 및 피의자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자들의 진술을 신뢰하였다. 검찰의 이러한 판단은 법원에서 모두 뒤집혔다. 검찰의 불기소 이유대로라면 발레오만도 강기봉과 유성기업 유시영이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문건을 손에 들고 조직형태변경 총회나 제2노조설립 총회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 정도가 있어야 범죄혐의를 인정할 수 있다.

검찰은 발레오만도와 유성기업 사건에서 압수수색마저도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불기소 결정의 정당성을 보여주려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검찰은 발레오전장 사건에서는 발레오전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는데도 창조컨설팅 문건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혐의없음의 이유 중 하나로 삼았는데, 유성기업 사건에서는 유성기업 사무실에서 창조컨설팅 문건이 발견되었음에도 피의자들이 자문을 받은 적도 문건을 건네받은 적도 없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혐의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압수수색을 했는데도 충분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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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13. 창조컨설팅 심종두 항소심 엄중 처벌 촉구 기자회견 [출처: 금속노동자(성민규)]

 

 

파업을 범죄화하는 공익의 대표자

 

국제노동기구는 한국을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파업을 이유로 노동조합 활동가를 체포․처벌하는 국가로 거명해왔고, 2007년에는 계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도록 형법 제314조를 검토하기 위한 일체의 조치를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은 국제적인 상식이 되었는데도, 공익의 대표자 검찰은 파업을 범죄화하기 위해 수사/수사지휘/기소권을 활용해왔다.

검찰은 2013년 12월 철도공사의 수서발 고속철도 분리설립(철도 민영화) 반대 등을 주장하며 철도노조가 파업했을 때, 경찰이 철도노조 집행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민주노총 건물에 진입하도록 했다. 검찰은 철도노조의 파업 종료 후 자진출석한 집행부 등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첫머리는 파업을 공익을 해치는 범죄로 보고 있는 검찰의 인식과 태도를 잘 보여준다.

“본건 파업은 2013. 12. 9. ~ 12. 30. 무려 22일간 지속되어 우리나라 철도역사상 최장기 불법파업에 해당합니다. 이로 인해 철도공사는 KTX 등 총 10,227회의 열차 운행중단으로 총 158억 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입었고, 일반 국민들과 기업들도 열차 운행중단으로 막대한 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업기간 내 궤도 열차탈선 1건 등 총 24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하였고 급기야 12. 15. 에는 미숙련 대체인력인 철도대학생을 투입한 결과 무고한 승객의 생명을 앗아가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또한 본건 파업은 정부당국의 민영화가 아니라는 반복된 천명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이 민영화의 시작이라는 허위 주장을 내세워 여론을 호도함으로써 심각한 국가적 혼란을 초래하였고 더욱이 철도노조는 민노총 등과 연계하여 본건 파업을 도화선으로 삼아 정부 퇴진운동으로까지 나아가려는 반민주주의적이고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드러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대법원이 2011년 3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단순파업조차 위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던 기존 판결을 변경해 전격성과 그로 인한 심대한 혼란 또는 손해의 발생이 있는 파업만을 위력으로 보았기 때문에 철노노조의 파업은 업무방해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공공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체포, 구속을 하도록 지휘한 것이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2017년 2월 철도노조 집행부에 대하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 엘리트는 공익의 대표자가 될 수 없다

 

어느 사회나 범죄는 있게 마련이다. 범죄에 대한 수사와 처벌도 필요하다. 다만 무엇을 범죄로 볼 것인지, 범죄에 대한 수사/기소/재판/형집행에 대한 권한을 누구에게 부여하고 어떻게 행사하도록 할지는 사회마다 다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국가기관인 검사가 기소를 전담하도록 하는 국가소추주의와 검사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하고 있다(제246조). 따라서 피해자 등 사인은 범죄자에 대한 기소를 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은 또한 검사가 형법 제51조가 정한 양형의 조건(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제247조). 따라서 수사결과 충분히 혐의가 인정되고 소송조건을 갖춘 때에도 검사는 공소제기를 하지 않을 수 있다.

형사소송법은 검사는 수사의 주체로 모든 수사에 관하여 사법경찰관리를 지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법경찰관리는 검사의 지휘가 있을 때는 이를 따라야 한다(제195조 및 제196조). 즉, 검사는 수사권과 수사지휘권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헌법은 국민의 신체의 자유와 주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국민을 체포ㆍ구속ㆍ압수 또는 수색하거나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제12조 제3항 및 제16조). 즉, 검사는 영장청구권을 독점하고 있기도 하다.

검사에게 수사/기소 등과 관련하여 막강한 권한을 부여해야 할 당연한 이유는 없다.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근거가 필요해서 그런지 법은 사법고시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검사에 임용된 사람을 갑자기 공익의 대표자와 인권옹호기관으로 만든다.

법에서 공익의 대표자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과 공익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검사를 공익의 대표자로 규정하는 것은 사법 엘리트에게 공익이라는 가치 판단을 독점하는 지위를 부여하여 검찰권력을 강화한다. 한 사회에서 무엇이 공익인지 규정하는 것도 투쟁의 영역이다. 특정한 직업공무원이 독점하도록 둘 수는 없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에서 빠진 것 – 민주적 통제와 참여

 

검찰개혁을 위해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있어 왔고 일정한 제도개선도 있었다. 검찰총장 임기제 및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도입, 검찰인사위원회 심의기구화 및 검사적격심사위원회 도입, 검사동일체원칙 완화, 재정신청 확대, 검찰시민위원회 도입,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에서부터 얼마 전 특수부 축소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두고 여러 정치세력들이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면서 검찰개혁의 논의 지형은 축소되어버렸다. 검찰권의 민주적 통제 또는 형사절차에서의 시민 참여확대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던 제도개선안들이 언급되는 것도 보기 어렵다. 과연 현재 수사/기소를 담당하는 국가기관 사이의 권한 분산과 조정이 형사사법절차의 민주적 통제와 참여를 확보할 수 있을까.

사법개혁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2003년부터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 하에서 검찰권을 통제하기 위해 논의된 방안들을 간략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기소법정주의(수사결과 충분한 혐의가 인정되고 소송조건을 갖추면 반드시 기소해야 한다는 원칙) 도입 △ 재정신청제도(고소인 및 고발인이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신청하면 법원이 불기소처분의 당부를 판단하여 공소제기결정을 하는 제도) 전면 확대 △ 미국식의 기소대배심(중대한 범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경우 시민들에 의해 구성된 대배심에 의해 기소를 결정하는 제도) 도입 △ 일본식의 검찰심사회(지방재판소에 설치된 검찰심사회가 고소․고발인 등의 신청에 따라 심사를 하여 기소상당 취지로 결정하면 기소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 도입 △ 사인소추제도(검사 등 국가기관만이 기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달리 범죄피해자 등이 가해자를 상대로 기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 △ 공소참여제도(피해자가 독립적인 상소권한 등 소송절차상의 고유한 지위를 인정하여 공소참여인으로 검사와 함께 공소에 참여하는 제도)

그러나 검찰개혁 논의는 민주적 통제와 참여를 강화하기보다는 사법부인 법원에 의해 검찰 기소재량권 통제방식인 재정신청제도를 전면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물론 그마저도 2007년 국회 심의과정에서 고발사건은 일부만 제외하고 재정신청 대상에서 제외하고 재정신청이 인용되는 경우 검사로 하여금 공소 제기·유지하게 하는 내용으로 변경되었다.

 

 

노동조합이 형사사법절차에 참여하는 개혁을 논의해야 할 때

 

 

검찰개혁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노동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근로감독관이라는 관료적 제도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은 그 범위와 절차가 불분명하여 자의적인 수사지휘를 가능하도록 한다. 노동법원 설치와 같은 사법개혁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형사사법절차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국가기관만이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는 관념이 지배적인 사회에 살다 보니 노동조합이 형사절차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노동조합과 같은 단체가 중대한 노동관계법령에 위반(예: 부당노동행위, 불법파견, 상습적인 임금체불, 중대재해 등)에 대해서 직접 형사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 제도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 위해서는 프랑스 제도를 어느 정도 참고할 수 있다.

프랑스는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도 형사소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인소추제도를 채택하고 있다(프랑스는 공판 전단계가 경찰, 검찰, 예심 3단계로 구분된다. 예심은 법원의 수사판사가 재판법원으로 이송하기 이전 범죄행위자를 특정하고 범죄의 상황과 결과를 확정하는 절차다. 예심이 개시된 사건에 있어서 사건을 수사할 권한은 법원이 있다. 물론 전체사건 중 검찰이 재판법원에 직접 기소하는 사건이 다수이고 예심절차를 거치는 사건은 소수다.). 프랑스에서는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검사의 공소제기 여부에 상관없이 사소를 제기할 수 있고, 검사의 불기소에 불복하여 사소를 제기할 수 있다. 사소를 제기하는 방식은 예심 수사판사에게 고소장을 제출하거나 검사와 마찬가지로 재판법원에 피의자를 직접 소환하는 재판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프랑스의 제도에서 중요한 것은 법률에서 정한 경우 지방자치단체, 노동조합, 사회단체 등과 같이 자연인이 아닌 법인에 의한 사소제기나 소송개입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은 범죄피해자의 동의하에 사소를 제기할 수 있는 단체와 범죄(예: 성폭력 또는 가정폭력 방지를 위한 사회단체로 상해, 성범죄, 유괴, 감금, 주거침입죄), 공소가 이미 제기된 경우 소송에 개입할 수 있는 단체와 범죄(예: 노동현장에서 안전사고 또는 직업병의 피해자를 보호, 지원하기 위한 단체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피해자의 의사와 독립하여 사소제기와 소송에 개입할 수 있는 단체와 범죄(예: 레지스탕스와 강제수용자들의 정신적 이익과 명예를 보호하는 단체로 전범에 대한 찬양행위, 유적에 대한 파괴와 묘소를 훼손하는 행위)로 구분한다.

형사사법절차는 누군가의 이익을 지키고 누군가의 피해를 회복시키는 과정이다. 한국 사회의 형사사법절차는 사용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범죄피해는 무시된다. 검찰개혁은 검찰 권한의 조정과 분산이라는 관점을 넘어, 형사사법절차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노동3권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와 산업현장에 만연한 불법파견 등과 같은 범죄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참여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