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11] 해고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정의이고 평화입니다 / 김계월

by 철폐연대 posted Nov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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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해고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정의이고 평화입니다

 

김계월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지부장

 

 

 

서울고용노동청 앞 천막 농성장에 들어서면 농성 날짜판이 보이고 바로 옆 기둥에는 “해고는 살인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고 새겨진 서각이 문패처럼 걸려 있다. 지난 5월, 문정현 신부님께서 직접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에게 보내주신 연대의 선물이다.

지난해 5월 11일 코로나19로 해고된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다시 두 번째 가을을 맞았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또 다시 겨울 채비를 해야 하는 해고 노동자들의 심정은 참담하기만 하다. 지난봄 복직의 꿈에 부풀어 뛰던 우리들 가슴은 부당해고 철회 투쟁 500일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면서 여기저기 생채기도 나고 온통 헝클어졌다.

이내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던 복직은 어쩌다 현실이 아닌 꿈에 머물게 되었을까. 아무리 부당해고라고 소리쳐 말해도 가닿지 않는 분노와 고통의 나날들이 부질없이 이어지고 있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1 아시아나케이오01.jpg

 

2021.10.19. 부당해고 철회 투쟁 523일차, 금호미술관 앞 아침선전전 중인 필자 모습. [출처: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모든 걸 쏟아부어 여기까지 왔는데…

 

원직복직을 향한 싸움은 봄에 정년을 맞이하는 두 동지의 끝장 투쟁을 기점으로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자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박삼구가 구속되는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두 동지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은 해고 노동자로 정년을 맞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이기도 했다. 나머지 세 동지 역시 한남동 박삼구 자택에서 서울고용노동청 앞 천막 농성장까지 사흘간 오체투지 행진에 나섰다.

사시사철 천막 농성장을 사수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기자회견과 집회, 그리고 단식투쟁, 오체투지 행진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해 싸워 왔다.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힘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회사는 정년을 앞둔 두 노동자의 복직을 거부했고 결국 길거리에서 두 동지는 서럽게 정년을 맞이해야만 했다.

해고 노동자들의 봄은 그렇게 흘러갔고, 꽃이 피고지고 하는 사이 천막에도 여름이 찾아왔다. 지난여름은 또 어찌나 더웠는지 연일 폭염과 장마 속에서 밤새 천막 농성장을 지키는 건 고스란히 연대 동지들의 몫이 되었다. 늦은 밤 폭우로 천막이 주저앉을 뻔 했을 때도 한걸음에 달려와 천막 지붕에 고인 물을 퍼내고 천막 내부를 수리해 줬던 연대 동지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변함없이 해고 노동자들의 보금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듯 자본가 박삼구와 싸우는 일은 당사자 다섯 명의 작은 힘만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다. 거대한 자본 앞에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연대 동지들의 관심과 지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연대의 힘이라는 걸 이 투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박삼구는 죗값의 반도 치르지 않았다

 

방역지침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을 땐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이대로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깊숙이 빠져 들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코로나19 경제위기를 핑계로 일자리에서 무참히 내쫓겼는데, 또 다시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집회시위의 권리마저 순순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1인시위와 릴레이 선전전으로 함께 모여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금호문화재단 박삼구 구속과 엄벌을 촉구하며 투쟁했다. 끈질긴 싸움을 통해 지난 5월 13일 박삼구는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로 법정구속되었지만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 5명은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사법부가 인정한 박삼구의 죄목은 재임 당시 회삿돈을 가로채고 빼돌려 그룹사 지배권을 공고히 했다는 것, 그를 통해 그룹의 경영부실을 자초했다는 것뿐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공항ㆍ항공 산업에서 이익은 극대화하고 위험은 밑바닥, 가장자리에 있는 하청, 하청의 재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책임은 눈 씻고 찾아봐도 판결문에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민주노조를 가혹하게 탄압하고 차별한 책임도 거기에는 없었다.

사법부는 거위의 배를 갈라 자기 배를 불린 박삼구의 탐욕을 벌했지만, 이 거위를 살찌우기 위해 그동안 약탈적 노동조건을 감내해 온 사람들의 현실은 정작 나 몰라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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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0. 서울행정법원 앞 부당해고 판결 촉구 3천배 기도 수행 중인 필자의 모습. [출처: 아시아나케이오공대위]

 

부당해고 판정/판결에도 회사는 요지부동

 

해고 노동자들 마음 틈새로 바람이 들어와 흔들기도 하고 무거운 돌덩어리가 짓누르기도 하는, 참으로 고된 시간이었다. 지난한 싸움을 지속하는 와중에 행정소송 선고일이 다가왔다. 이미 작년 7월, 12월에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라고 판정했지만, 사측은 끝내 이에 불복해 올초 부당해고 구제명령 재심판정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8월 20일 행정소송 1심 선고일을 겨냥해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부당해고 판결 촉구 3천배’를 2박3일에 걸쳐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다급하게 결정을 내렸지만, 릴레이 3천배에 함께하기 위해 많은 동지들이 서울행정법원으로 모여들었다. 기도하러 온 연대 동지 중에는 깁스를 하고 온 동지도 계셨고 멀리 진주에서 와주신 스님도 계셨다.

힘의 논리가 법의 논리를 압도하는 세상에 3천배 기도는 정의롭고 상식적인 판단을 염원하는 기도이기도 했다.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8월 20일 서울행정법원은 또 다시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노위, 중노위에 이어 행정법원까지 연이은 부당해고 판정/판결을 받아들고 지난 1년 3개월 동안 거리에서 투쟁해 온 고통의 시간이 잠시 멈춘 듯 했다. 날아갈 듯 기뻤고 통쾌하기까지 했다. 혹시라도 법원 판결에서 뒤집히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들을 생각하면, 이번 사법부 판결은 해고 노동자들에게 다시금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부당하게 해고시킨 사측의 행태가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이 법원 판결을 통해 재차 입증되었으니, 이제는 정말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겠지 내심 기대했다. 그 기쁨과 기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단 하나의 일자리도 지키겠다는 약속,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9월 6일 단 한 차례의 노사 교섭이 열렸다. 아시아나케이오 사측은 복직 안건에 대해 ‘복직 후 당일 퇴사’라는 제안으로 해고 노동자들을 우롱하고 기만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9월 7일 회사는 또 다시 항소했다. 사법부 판결에 힘입어 이번 추석엔 가족과 오붓하게 명절 연휴를 보낼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 5월 11일 해고된 후 두 번째 가을, 그리고 두 번째 추석 명절을 거리에서 보냈다.

특별한 날엔 유독 가슴이 시리고 서럽고 아프다. 그렇게 복직의 꿈은 멀어지고 다시 지난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을 업신여기고 천대하는 자본의 태도에 격한 분노가 치밀었다. 박삼구 일가는 금호고속, 금호산업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을 지배해 왔고, 공익법인 금호문화재단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 KO, KR, KF, KA와 AH, AO, AQ 등을 거느리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조업 위탁업무를 독점해 왔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하고 유해한 작업환경에 내몰렸고, 마른 걸레 쥐어짜듯 하청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 박삼구는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돈이 없어 복직을 이행할 수 없다며 잔뜩 엄살을 피웠다. 이런 회사가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복직명령을 거부한 이유로 3차례에 걸쳐 부과된 억대의 이행강제금을, 그리고 대형로펌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거액의 수임료를 지불했다는 사실에 기가 찰 따름이다. 이 돈이면 해고자 5명 복직시키고도 남을 돈이다.

사측이 복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까닭은 해고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조합원이기 때문이다. 노조 할 권리는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이다. 또 노동자들이 기댈 언덕은 민주노조뿐이다. 노동조합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와 인권을 지켰던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부당해고한 장본인, 박삼구는 그 죗값을 받아 마땅하다.

 

이미 너무나도 늦었지만, 회사는 지금이라도 부당해고를 철회하고 해고 노동자를 원직복직시켜야 한다. 정부 역시 명백한 부당해고라는 사법부 판결을 무시하며 악의적으로 복직을 거부하고 있는 박삼구의 아시아나케이오를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된다. 정부는 “단 하나의 일자리라도 지켜내겠다”며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강화했고, 또한 고용안정협약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원청인 아시아나항공에는 2조 4천억 원에 달하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했지만, 코로나19 시기 누구보다 고용이 불안정한 하청 노동자들은 사각지대로 내몰려 희망퇴직과 무기한 무급휴직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기약 없는 복직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재난은 노동자의 잘못이 결코 아니다. 억울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지금 당장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길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 해고 노동자가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이 약속했던 노동존중사회를 여는 첫걸음이자 재난 시기 일자리 충격을 극복하는 첩경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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