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2]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쿠팡은 응답하라!” / 고건

by 철폐연대 posted Feb 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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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쿠팡은 응답하라!”

 

고건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 대표 인터뷰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지난 1월 11일 새벽,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밤샘 근무를 하던 50대 여성노동자가 사망했다. 사망한 노동자는 근무 당시 영하 11도의 혹한 속에서 핫팩 한 개로 추위를 견디며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탄물류센터는 신선식품 물류센터가 아님에도 난방장치 하나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쿠팡 물류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벌써 5명에 달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랐지만 쿠팡 측은 재해 발생 원인과 업무 사이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한편, 쿠팡 물류센터의 작업환경이나 노동자 처우는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모임> 고건 대표는 지난해 5월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쿠팡 부천물류센터의 계약직 노동자였다. 그는 당시 쿠팡 측의 미흡한 방역조치 실태를 공론화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되었다. 고건 대표가 직접 마주했던 쿠팡의 노동 현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직까지도 사과 한 마디 않는 쿠팡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까. 1월 15일 철폐연대 사무실에서 고건 대표를 만나 ‘로켓배송’ 쿠팡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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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9. ‘쿠팡 물류센터의 코로나19 방역 관련 현장실태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고건 동지의 모습. [출처: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원회]

 

“쿠팡은 어떻게 무권리의 위험 현장이 되었나”

 

지난해 9월 28일에 있었던 ‘쿠팡 집단감염,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 보고회’의 제목이다. 이 질문은 2020년 5월, 쿠팡 부천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이기도 했다.

일터에서의 권리 부재가 어떻게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몰았는지 고건 대표의 증언을 들어보자.

 

“제가 쿠팡에 처음 일을 하게 된 건 작년 3월께 부천신선물류센터가 들어서면서였어요. 여기서 일을 하면서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회사의 방역조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데, 여긴 어떻게 된 게 ‘코로나 특수’를 누리느라 다른 건 다 뒷전이더라고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거리두기와 비대면 활동이 일상화되면서 온라인 소비 패턴은 순식간에 대세로 등극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게 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도 그만큼 늘어났고, 집은 이제 생산(재택근무)과 소비(온라인쇼핑)의 중요한 거점이 됐다. 위기 상황에서도 경제활동을 이어가야만 하는 가계 입장에선 이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누군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존에 170만 건이었던 물량이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300만 건으로 늘었어요. 그렇다 보니 물량에 허덕이고 마감에 좇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마감이 지상과제가 된 거예요. 오후조 기준으로 마감시간이 네 차례 돌아오는데, 그것만 지킬 수 있으면 다른 것은 어찌 되든 상관없는 구조 같아요. 그 속에서 방역수칙이 지켜질 리 만무하죠. 들어갈 때 손소독제 한 방울, 열감지 체크 한 번 하는 게 전부였어요.”

 

사측은 주기적으로 소독 작업을 실시했다고 하는데, 3교대로 24시간 팽팽 돌아가는 현장에서 이걸 목격한 노동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터에서 노동자들끼리 대화 한 마디 나눌 시간은 없었다. 언젠가 점심시간에는 노동자들끼리 이런 얘길 나눈 기억이 있단다.

 

“형님, 여기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안 터지는 게 신기하지 않아요?”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 지나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쿠팡 노동자 84명과 그 가족 등 총 152명이 감염됐던 부천물류센터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한 달 넘게 폐쇄됐다가 7월 초에야 재가동에 들어갔는데, 물량이 급격히 늘어난 요즘 들어서는 출고 파트 등에서 여러 사람이 뒤엉켜서 일하는 모습으로 회귀했다고 하더라고요.”

 

과도한 실적주의

 

여전히 쿠팡 노동자들은 거리두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이 때문에 ‘쿠팡 노동자 인권실태조사단’은 “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정도를 감시·적발하는, 안전보다는 강압적으로 독려하고 통제하는 방식이었다”며 쿠팡의 억압적 통제방식을 꼬집기도 했다.

그래서,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빠른 작업 속도에만 맞춰진 쿠팡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고건 대표는 지적한다.

 

“저는 과도한 실적주의가 쿠팡의 온갖 문제를 낳은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이윤을 내는 것에만 몰두하다 보면,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처우와 관련한 개선 방안은 등한시될 수밖에 없잖아요. 코로나에 걸리고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데도 쿠팡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존중하지 않고 있어요.”

 

과도한 실적주의는 쿠팡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을까.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방식 중 큰 논란이 일었던 UPH(Unit per Hour, 시간당 작업량) 문제에 대해 물었다.

 

“물류센터에서 집품(물건 선별)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개별 소지한 PDA를 통해 작업지시를 받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관리자들이 WMS(창고관리시스템)라는 프로그램으로 노동자들의 작업처리 속도를 일일이 체크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UPH가 하위등급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을 선별해 방송으로 호출해서 꾸짖는 경우가 허다해요. 제가 일했던 물류센터는 당시에 방송장비가 없었어요. 그래서 업무처리 속도가 저조한 노동자들을 관리자들이 막 잡으러 다녔어요. ‘이런 식으로 일할 꺼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 ‘이렇게 늦게 처리하면 사원님이 직접 퀵으로 쏠 거냐’는 식으로 공개적으로 다그치는 거예요. 한마디로 ‘공개처형’ 시키는 거죠.”

 

이렇게 물류센터에서 집품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피커(Picker)라고 부른다. 피커들은 각자 소지한 PDA기기를 통해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품의 위치를 안내받는다. 이 과정은 노동자들이 최적화된 동선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 시간을 절약하고 불필요한 움직임을 제거한다.

한편 UPH는 피커의 업무능률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노동자들이 상품을 옮길 때마다 PDA로 상품에 부착된 바코드를 찍으면 실시간으로 처리 개수가 기록되는 것이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작업속도를 감시하고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통에 많은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다쳤다.

 

수직적인 작업장 질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심각한 노동강도에 더해 인권침해 문제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작업장 내 휴대전화 반입을 금지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쿠팡 측은 보안상의 이유로 노동자들의 휴대전화 소지를 일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과연 보안상의 문제 때문인지도 미심쩍다.

 

“물류센터에서 보안상 이유를 거론하는 것부터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죠. 첨단산업이라면 또 모르겠어요. 만약 물류센터 내부 시설 배치나 작업장 전경을 회사 기술보호 차원에서 촬영을 금지해야 한다면, 전자·기계업종 생산공장처럼 보안스티커를 부착하고 출입하면 되는 거잖아요. 실은 작업장 안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갑질이나 온갖 부조리한 일들이 바깥으로 새어나갈까 봐 두려운 거겠죠.”

 

얼마 전 인천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경우는 그래서 더 안타깝다고 고건 대표는 말했다. 응급상황 당시 그에게 휴대전화가 있었더라면 주변 지인이나 외부에 긴급구조를 요청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여기는 관리자들 이름도 거의 몰라요. (관리자들이) 다들 닉네임을 쓰거든요. 사원들은 전화번호 뒷자리로 불리고요. 이것도 (휴대전화 사용금지와 마찬가지로) 쿠팡의 노무관리 차원에서 이뤄진다고 봐요. 일단 대한민국에서는 뭘 하려면 실명이 있어야 일이 수월한 사회잖아요. 그런데 내가 쿠팡에서 부당한 피해를 겪어도 가해자 이름을 모른다면 첫 단추부터 못 꿰는 거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쉽사리 포기하게 될 거고요.”

 

쿠팡은 이미 6년 전부터 직급에 관계없이 닉네임으로 서로를 호명해왔다고 한다. 수평적 조직문화 증진을 위해 도입했다는 이 닉네임 부르기는 물류센터 현장에서 사실상 회사의 책임을 은폐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구조

 

쿠팡은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지속하면서도 불안정한 고용구조에 기반해 물류·배송 업계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실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직후 부천시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3,673명 중 70%(2,591명)가 일용직이었다. 반면 정규직은 98명에 불과했다.

노동자의 안전도, 존엄도, 고용도 보장되지 않는 일터가 바로 쿠팡이었다. 그런데도 쿠팡 물류센터는 항상 일손이 모자랐고, 일자리 중개 사이트의 구인 공고를 보고 몰려드는 구직자들도 넘쳐났다. 그 이유는 뭘까.

 

“물류센터마다 비율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요. 일용직 노동자들 중에 UPH 지수가 떨어지는 사람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음날 일할 기회를 박탈당하죠.

계약직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게 없어요. 쿠팡은 각각 3개월, 9개월, 1년 단위 ‘쪼개기 계약’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데요. 쿠팡에 처음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 시에는 3개월 수습계약으로만 체결할 수 있고, 계약직도 사측이 목표치로 제시한 UPH를 감당하지 못하면 재계약을 기대할 수 없게 돼요. 여기서 정말 이상한 건 3개월짜리든 9개월짜리든 계약기간이 종료한 뒤에 재계약을 맺지 못하면 향후 3개월간은 쿠팡 물류센터 어디에서든 일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는 점이예요.”

 

쿠팡 입장에서 보면 더없이 훌륭한 고용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는 두 갈래 선택지만이 주어진다.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거나, 계약직으로 언젠가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고문 속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거나.

쿠팡이 만들어놓은 느슨한 고용관계 안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하찮게 취급될 뿐이다. 그리고 쿠팡은 이들의 노동력을 최대 효율로 투하하는 데에만 관심을 둔다.

 

“사람들이 여긴 ‘돈이 필요할 때 잠시 스쳐가는 일자리’라고 인식해도 상관없다고 쿠팡은 생각했을 거예요. 코로나 위기를 틈타 언제든 쉽게 대체할 수 있고 저임금으로 쥐어짤 수 있는 그런 일자리를 고안해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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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4.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 활동가들과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상록수역 일대에서 쿠팡 노동자 권리찾기 캠페인을 함께 진행했다. [출처: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

 

쿠팡노동자들의 권리를 함께 키워가는 ‘쿠키런’

 

결국 중요한 것은 일터를 바꾸기 위한 노동자 스스로의 권리찾기가 아닐까. 우선 저임금 노동과 불안정한 고용이 일상화된 쿠팡 물류센터 노동환경에 대한 노동자들의 낮은 기대수준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쿠팡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소모품 취급하는 이유 중엔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도 있어 보여요. 대개 짧은 주기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낮기 때문에 동료들과의 소통과 교류에도 소극적이게 마련이잖아요. 쿠팡 노동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차피 좋은 일자리가 아닌 걸 알고 들어왔기 때문에 변화 가능성에 기대를 걸지도 않는다고 말해요.”

 

쉽사리 바뀔 것 같지 않은 판도이지만, 고건 대표는 균열과 변화의 계기를 분명히 만들어낼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서로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워낙 재직기간도 짧고 일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한 사업장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이 사업장 저 사업장을 옮겨 다니면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특성에 맞게 조직화의 틀도 새롭게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쿠팡 노동자들을 비롯한 물류센터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닐까요?”

 

최근 공공운수노조와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원회>는 쿠팡 노동자들의 권리를 키워나가는 커뮤니티 ‘쿠키런’ 홍보 캠페인을 시작했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 일하다 다쳤거나 아프면 보상받을 권리처럼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조차 말할 수 없는 이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함께 모여 소통하고 단결할 방법을 찾기 위함이다. ‘쿠키런’은 쿠팡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보면 좋겠어요. 가령 쿠팡 일자리에 처음 들어서는 사람들에겐 정보공유도 무척 중요할 수 있거든요. 회사가 퍼뜨리는 정보는 워낙 제한적인데다가 대부분 노동자의 권리를 삭제한 채 제공되잖아요. 현장 노동자들이 자기 경험을 생생하게 담아서 정보를 공유하고 일터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건 대표는 이렇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문제를 공감하는 것 자체가 장차 노동자들 사이의 결속력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은 계속 감추려 들고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게 낱낱이 밝혀질 것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에 함께하는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쿠팡에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훅 가는 건 한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질라라비> 독자들에게도 한 마디를 부탁했다.

 

“비대면 시대에 쿠팡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무척 편리하고 친숙한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모든 소비자들로부터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말을 듣는 게 목표라고 쿠팡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물류·배송 노동자들의 희생과 노력이 없었던들 쿠팡이라는 기업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쿠팡 이용자들의 소비행위를 문제 삼고 싶은 건 아니에요. 다만 쿠팡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어요. 모든 인간은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래서 쿠팡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개선이 우리 모두의 권리를 키우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