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3] 작지만 당찬 투쟁, 2평 비닐 농성장에 5명의 해고 노동자가 살고 있습니다 / 박주동

by 철폐연대 posted Mar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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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작지만 당찬 투쟁, 2평 비닐 농성장에 5명의 해고 노동자가 살고 있습니다

 

박주동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본부 전 본부장

 

 

 

5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이유

노조는 절대 안 된다는 사업주의 반노동자적 태도

 

일산 백석동 흰돌마을 3단지 앞 입구에 2평도 안 되는 비닐 농성장이 위태롭게 서 있다. 농성장의 주인은 2020년 7월 토지주에 의하여 집단해고 당한 5명의 ‘일산 뉴대성자동차전문학원’ 해고 노동자들이다.

일산 뉴대성자동차전문학원 노동조합은 자타공인 민주노총 최대 산별인 공공운수노조 산하 조직이다. 노조 공식 명칭은 전국자동차학원지부 뉴대성자동차학원지회이며, 공공운수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한 것은 20년을 훌쩍 넘었다.

해고된 학원 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20년 이상 학원을 임대하다 기존 임대 계약을 해지하고 영업권을 양도ㆍ양수 받은 토지주가 학원을 직접 운영 또는 재임대할 경우 고용을 승계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자동차학원을 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토지를 사용할 경우에는 더 이상의 고용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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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 학원 입구에서 고용승계를 위한 노숙 투쟁 [출처: 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 뉴대성지회]

 

학원노동자의 80%가 촉탁과 계약직

노동조합 만들기가 어려운 자동차학원 노동자들의 현실

 

운전학원연합회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는 347개의 자동차운전학원이 있고 기능강사, 검정강사, 행정 등 학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약 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는 0.3%인 50여 명에 불과하다. 한국사회 노동조합 조직률 10%와 비교하면, 열악함을 넘어 무의미한 수치일지도 모른다.

2003년까지만 해도 운전학원 노동자의 조직률은 전국 25여 개 사업장 600여 명에 이르면서 조직화 바람이 불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전 둔산자동차학원 △충남 홍성자동차운전학원 △울산 삼성자동차운전학원 등의 사례에서처럼, 사업주들은 학원을 위장폐업 또는 제3자에게로의 임대 등의 방식으로 노조를 말살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또한 위장폐업을 하지 않은 학원들도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등 노골적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촉탁 및 계약직으로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조성하면서 노동조합의 확산을 막았다. 여기에 더해 개발 바람을 타고 학원 부지가 아파트 및 상가로 개발이 되면서 자동차학원의 노조 조직률은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2021년 1월 기준 전국자동차학원지부의 조합원들은 5개 지회 약 30여 명이다.

 

‘책임 있는 사회공교육기관’, ‘공정과 투명성을 통한 국가의 위탁사무 대행’, ‘도로교통 안전의 주역’, ‘우수강사를 통하여 양질의 운전자 배출’ - 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역할을 함축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국가위탁사무를 수행하는 사회공교육기관의 중추인 운전학원 노동자들도 이러한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고 있을까. 공교육기관 종사자로서 자부심은 고사하고, ‘평생 비정규직’에 ‘노조 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 고난의 직장일 뿐이다.

 

 

노동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경찰과 노동부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에 위치한 뉴대성자동차학원은 2003년 3월 위장폐업을 하였고 노조는 이에 맞서 6개월간의 투쟁 끝에 위장폐업을 철회시키고 고용승계 투쟁을 승리하였다. 이에 토지주는 다시 학원을 제3자에게 임대하면서 2020년 6월까지 매월 약 2,800만 원의 임대료 수익을 챙겨오던 중 임대차 계약 해지 후 재개원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하였다.

현재 토지주는 해고 노동자들의 대화 요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작년 12월 경찰청에 학원 설립자 신고를 하고, 학원 이름을 ‘호수자동차학원’으로 변경하면서 재개원에만 몰두하고 있다.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한 후 다시 학원을 열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노조 탄압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 과정에서 토지주는 노조 사무실을 출입하던 조합원들을 주거침입으로 고발했고 경찰은 이를 기소의견으로 송치하였다. 그런데 노조 사무실로 사용하던 컨테이너는 2000년 당시 임차인과의 단체협약 체결을 통해 노조가 점유권을 가진 건물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조합원의 노조 사무실 출입은 정당한 노조활동에 속한다. 게다가 본인이 소유한 건물도 아닌 바에야 토지주가 주거침입 운운할 자격은 더더욱 없다.

노조를 반드시 몰아내고야 말겠다는 일념이었을까. 급기야 토지주는 노조 사무실의 현판과 현수막을 철거하고 시건장치까지 교체하면서 사무실 내 노조 집기와 비품 사용을 못하게 했다.

이에 노조는 토지주 소유가 아닌 노조 점유 사무실 현판과 현수막을 탈취하고 시건장치를 바꾸고 비품 사용을 막는 등의 행위에 대하여 ‘재물손괴 및 절도 혐의’로 토지주를 고발 조치했다. 하지만 경찰은 ‘혐의 불성립’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들어 사건 수사를 서둘러 종결했다.

영업권 양도ㆍ양수로 인한 고용승계 의무가 있는 토지주에 대한 ‘부당해고 진정’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부 고양지청은 토지주가 직접 사용자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펴면서 고용승계를 위한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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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 눈이 내린 날에도 어김없이 농성장을 지키며 피켓팅을 하고 있는 해고자들 모습. [출처: 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 뉴대성지회]

 

우리가 믿을 건 노동자의 연대

 

이러한 과정에서 계약직과 촉탁직이 대부분이던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노동조합으로 똘똘 뭉친 5명의 조합원만이 남았다. 흔한 말로 ‘그림이 되지 않는’ 투쟁일지언정 조합원들은 8개월째 물러서지 않고 당차고 아름다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뉴대성자동차학원지회의 투쟁 상황은 정말로 열악하다. 전체 자동차학원지부 조합원은 채 30명이 되지 않고 지회 조합원은 5명뿐이다 보니 그 흔한 정책 담당자나 조직 담당자도 없이 고군분투할 수밖에 상황이다. 이정원 자동차학원지부장은 심장 투석을 받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농성장을 왕복하면서 투쟁을 책임지고 있다. 성기춘 지회장은 해고되지 않았다면 올해 정년을 맞이하는 60세의 늙은 노동자다. 해고 조합원 대부분이 오십을 넘긴 나이에 한겨울 비닐 농성장 생활을 하느라 몸도 마음도 버겁기만 하다.

뉴대성자동차학원의 해고철회ㆍ고용승계 투쟁은 여론의 전폭적인 관심과 주목을 이끌어낼 만큼 큰 싸움이 아니다. 그렇기에 조합원들은 하루하루가 절박하다. 가장으로서의 생계에 대한 고민과 함께 ‘우리가 정말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우울증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을 넘기고 이제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다. 오늘도 지치지 않고 작지만 당차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뉴대성자동차학원 5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관심과 연대가 그래서 더욱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