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의 인권
이란 마흐사 아미니와 신당역 여성 노동자의 죽음
단 한 명의 여성살해도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정은희 •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여성운동위원회
지난 9월 14일 신당역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동료 남성에게 살해됐다. 이틀 뒤인 9월 16일 이란에서는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에 살해됐다. 그리고 지난 2개월 사이 이란에서는 여성살해에 맞선 페미니스트들의 시위가 혁명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살해된 여성 한 명의 죽음에 모두가 떨쳐 일어난 결과였다.
마흐사 아미니는 애초 9월 13일 짧은 휴가를 위해 가족과 함께 테헤란을 방문했다가 지하철역에서 ‘나쁜 히잡’을 쓴 혐의로 이란의 ‘도덕 경찰’에 체포됐다. 그가 체포된 지 이틀 만에 경찰은 구금 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입원했다고 밝혔고, 그다음 날에는 그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는 아미니가 의식을 잃은 채 튜브와 모니터링 장비가 부착된 병원 침상에 누워 있는 사진이 나타났고, 사진 속 아미니의 얼굴은 멍들어 부어올라 있었다. 당국은 아미니가 심장 문제 등 지병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유족 측의 변호사에 따르면 그의 사인은 두개골 골절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이란에서는 전국적으로 시위가 촉발됐으며, 이 시위에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과 수많은 노동자계급이 동참해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목숨 건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란혁명 위해 싸운 여성 배반한 호메이니
아미니가 경찰에 살해되기 전 이란 여성들은 강제적인 히잡 착용에 립스틱이나 머리스타일, 옷의 색깔로 일상적인 저항을 해 왔고,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는 ‘나쁜 히잡’ 시위를 했다. 그리고 아미니도 그러한 여성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 여성들에 대해 이란의 악명 높은 도덕 경찰은 구타하고 체포하면서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했다. 하지만 이란 정권의 여성 억압은 단지 히잡 강제 착용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이란의 공식 결혼 연령은 13세이며, 아버지의 허락이 있으면 더 어린 나이에도 결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란에서는 2021년 3월까지 한 해 동안 결혼한 10~14세 소녀의 수는 3만 1,379명에 달했다. 또 남성은 통지만으로도 이혼할 수 있지만, 여성은 이혼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전환요법은 만연해 있고, 이들은 채찍에서 사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처벌을 받고 있다. 임신중지의 권리 역시 사실상 전면 금지돼 있다.
현재의 이슬람 정권은 1979년 이란혁명을 도둑질해 들어선 정권이다. 앞서 혁명 전 미국과 영국을 등에 업은 쿠데타로 복귀한 팔레비 정권은 친미노선 속에서 자본주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며 노동자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했지만, 도시빈민과 노동자계급이 앞장선 이란혁명에 쫓겨났다. 당시 혁명에는 민족주의자, 자유주의자뿐 아니라 사회주의자 등 다양한 정치 세력이 합세했다. 그러나 기층민중에 주도력을 가지고 있던 세력은 호메이니를 필두로 근본주의의 이슬람주의자들이었고, 이들은 수많은 노동자민중이 피 흘려 이룩한 혁명을 그들 자신의 혁명으로 변질시켰다.
당시 이란에서는 수많은 여성도 팔레비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거리에서 싸웠고 더 나은 사회를 갈구했다. 하지만 이후 집권한 호메이니는 히잡 착용 의무화를 비롯해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기 시작했다. 이에 여성들은 1979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 테헤란에서 시위를 벌이고 호메이니 집권 뒤 첫 번째로 공개적인 저항을 감행했다. 여성들은 “우리의 혁명에 후퇴는 없다”, “평등, 평등, 차도르도 히잡도 아니다”를 외치며 시위했다. 이란혁명을 끌어 올린 수많은 이들은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이슬람주의 정권을 원치는 않았다. 그러나 거리는 잔인하게 진압됐고, 주요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은 여성들을 지지하지 않았다. 혁명 세력 중 가장 규모가 큰 좌파였던 스탈린주의 투데당(민중당)도 여성의 권리는 부차화하며 반혁명의 위험을 종식하고 제국주의를 먼저 철폐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슬람 정권에 협조했다. 그러나 호메이니 정권은 미국을 등에 업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이 1980년 이란을 침공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투데당을 비롯한 경쟁 세력을 불법화하고 숙청했다.
‘여성, 삶, 자유'를 위한 이란 민중의 봉기를 지지하는 예술 작업. [출처: Hourd]
이란식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세계
이러한 호메이니 정권은 미국에 맞섰을 뿐 이란식 자본주의를 추구하며 노동자민중을 착취했다. 특히 이라크와의 전쟁 후 취임한 라프산자니 정권은 여성에 대한 억압은 다소 완화했더라도 정부 규모 축소와 민영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삶의 질은 더욱 악화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 중 하나는 기층여성이었다. 그 결과, 통계를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최근 연도인 2016년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은 14.9%에 지나지 않았으며, 일을 하더라도 남성 임금의 18%밖에 벌지 못하고, 다수는 이슬람주의 샤리아법에 따라 경제적으로 남성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가 공고화됐다. 즉 이란의 신정체제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제하지만, 그 속성은 여성을 억압하며 동시에 그들의 노동력을 심화 착취하는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세계 여성노동계급이 겪어온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 전 세계 여성의 3분의 1이 평생 한 번 이상의 폭력/성폭력을 당하며, 남성은 1달러를 벌 때 여성은 77센트를 번다.
[참고]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212&me_id=10&me_code=30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250&me_id=10&me_code=30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205&me_id=10&me_code=30
https://lefteast.org/the-life-uprising-in-iran-imperialism-and-international-solidarity/
https://www.leftvoice.org/women-life-freedom-strategic-perspectives-on-the-iranian-revolt/
https://borgenproject.org/the-gender-wage-gap-in-iran/
https://mronline.org/2022/10/12/the-main-losers-of-1979-the-creators-of-the-new-revolution-in-i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