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2] 조선에서 타임슬립? LG는 노동조합이 싫어요! / 김희연

by 철폐연대 posted Feb 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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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조선에서 타임슬립? LG는 노동조합이 싫어요!

 

김희연 •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LG트윈타워공대위

 

 

 

1월 초, 이 글을 써달라고 부탁받았을 때만 해도 마감일 즈음에는 이 투쟁이 끝나 있기를 바랐다. 어제, 우리의 투쟁이 승리한 이유를 쓸 수 있기를. 애타는 내 마음을 뒤로 하고 이 투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LG트윈타워공대위’)는 2020년 12월 1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분회 조합원들의 파업 농성 돌입과 동시에 결성되었다. 그 전인 11월 26일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하청업체 계약만료로 인한 집단해고를 통보받았기에 해고가 철회되지 않는 한 파업 농성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노동조합은 이미 10월 14일 건물 앞에 농성 천막을 쳤고 앞서 수개월 동안 출퇴근 선전전과 집중 집회를 해왔다.

2019년 10월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후 단체교섭은 지지부진했다. 사측은 앞에서는 시간을 끌고 시급 10원 인상안, 60원 인상안을 내면서 뒤로는 청소노동자들이 건물 로비에서 선전전을 하는 것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맞선 노동조합의 투쟁도 실질적으로 1년을 넘어섰다.

불안정노동에 관심이 있어서 이 글을 읽을 만한 독자라면 여러 곳에 보도되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투쟁 경과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노동조합 쪽에서 본 경과보고는 이 정도로 축약하고 LG라는 기업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2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투쟁01.jpg

LG가 출입을 막아 잠긴 유리문 너머로 연대자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엘지트윈타워분회 조합원들의 모습. [출처: LG트윈타워공대위]

 

잘 알지만 잘 몰랐던 LG라는 그룹

 

주식회사LG는 한국 대기업 순위 4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비자로 LG를 만나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삼성에 이은 2등 기업의 이미지가 강하다. 무노조 경영으로 악명을 떨치는 삼성에 가려 노동탄압도 삼성보다 약간 덜 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막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번 해고에 맞서 LG트윈타워공대위는 “청소노동자 쫓아내면 LG제품도 쫓겨나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LG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무노조 삼성 불매 때문에 LG를 써왔다는 사람들을 무수히 마주치게 되었다. 나 자신도 LG제품과 서비스를 하도 많이 써와서 이것저것 해지를 하느라 고생을 했다.

LG라는 그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능성 구씨 도원수파 호양공계(이하 ‘LG구씨’)를 알아야 한다. 말 그대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겠지만 돌아가는 형국이 그렇다. 현재 그룹 회장인 구광모는 모(謨)자 돌림을 쓰는 29세손이고, 구광모의 양아버지 구본무와 친아버지 구본능이 본(本)자 돌림의 28세손이다. LG의 계열사 분리사(分利史)는 호양공계가 집안 재산을 나누는 과정의 분재기(分財記)다.

GS그룹은 LG구씨의 사돈이었던 김해 허씨 연당공파가 떨어져 나간 것이고, LS그룹은 자(滋)자 돌림의 27세손 구자경의 형제 항렬이 맡았고, LF(구 LG패션)는 28세손 대에서 갈려 구본무의 사촌동생 구본걸이 대주주이자 대표이사다. 계속해서 읊자면 방계회사가 끝이 없지만 원칙은 하나다. 주식회사LG는 종가가 맡는다. 종가가 아닌 집안은 조용히 자기 몫을 받아 나간다. 현재 계열사 분리 작업은 2020년 11월 설립된 주식회사 LG신설지주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구광모의 작은아버지 구본준이 떨어져 나감으로써 28세손의 분재가 완전히 끝났다. 이제 종가인 주식회사LG에 소속된 상장사는 LG화학, LG전자,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지투알 다섯 개뿐이다.

구광모가 아들이 없는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주식회사LG를 물려받은 사실은 유명하다. 이건 단순한 남녀차별, 그러니까 딸에게 회사를 줄 수 없어서 아들에게 준 정도의 선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구광모는 종손이 되어야 했기에 양자가 된 것이다. 구광모의 친아버지 구본능은 희성그룹 회장으로 일찍이 자기 몫을 받아 나간 상태다.

 

일감 몰아주기 그 이상의 나눠 먹기

 

21세기에 조선시대형 재산 나누기를 하고 있는 LG의 집안사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주고, 7.5시간 계약으로 수당을 줄이는 ‘임금 꺾기’를 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한 지수Inc라는 회사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회사명인 ‘지수’는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따왔다. 지수면에 있는 승산마을이 LG구씨 세거지다. LG구씨는 딸들에게 경영은 맡기지 않아도 행세할 수 있는 재산은 분배한다. 그래서 구광모의 큰고모 구훤미, 작은고모 구미정이 지수Inc라는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구훤미, 구미정 두 사람은 각기 2억 5천만 원을 투자해 자본금 5억 원으로 건물 시설관리회사인 지수Inc를 설립했고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지금까지 10년여 동안 한 사람당 100억 원, 총 200억 원이 넘는 배당금을 가져갔다. 지수Inc는 LG트윈타워 외에도 LG광화문빌딩, LG서울역빌딩, LG용산빌딩, LG강서빌딩 등 여러 LG빌딩 중 상당수의 청소와 시설관리 하청을 맡아왔다. 지수Inc에게 하청을 주는 회사는 S&I코퍼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주식회사LG가 100% 출자한 비상장 자회사다.

청소노동자가 새벽부터 출근해 청소를 한 대가로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겠다고 요구하는 것이 노인의 욕심이라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댓글 공작을 벌이고 있는 회사의 구조가 이렇다. 나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충분히 부당하다고 느끼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건가. 구씨 일가가 대낮에 고개를 들고 다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데 본인들은 당당할 수 있는 건가.

정리해보자면 주식회사LG는 구광모가 가진 15%를 비롯해 LG구씨 일가가 5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지주회사다. S&I코퍼레이션은 그 LG가 100% 투자한 자회사다. 이 회사의 하청을 받은 지수Inc는 구광모 고모 둘이서 나눠 가진 회사다. 단순히 친인척의 ‘일감 몰아주기’가 아니라 종가 중심으로 재산 분배를 하고 나머지는 독립을 하며 종가가 그 뒤를 봐주는 방식으로, 고대의 종법 질서와 계서제에 따라 기묘한 하청 고리가 단단히 잠긴 채로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승계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LG는 S&I코퍼레이션과 지수Inc의 계약이 해지되었고, 구훤미와 구미정은 지수Inc의 지분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 끝? 아니, 이제야 겨우 21세기스러운 이야기의 시작이다. S&I코퍼레이션은 지수Inc와 계약을 해지하고 백상기업과 드림누리라는 업체 두 곳과 새로운 하청 계약을 했다. 그리고 고용승계 조항을 넣지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권고하고, 여당에서도 촉구한 바 있으나 자신들은 고용승계와는 관계가 없다고 버티고 있다. 속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사탕발림을 하더라도 LG가 계약해지를 한 이유는 노동조합 파괴에 있으니까.

새로운 하청업체 중 하나인 드림누리는 장애인 고용사업장이어서, LG는 고용승계를 하게 되면 장애인들이 갈 곳을 잃게 된다는 악선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드림누리는 S&I코퍼레이션이 100% 출자한 자회사다. 왜 이런 회사를 만들었을까. 정도경영을 하는 착한 기업 LG는 장애인 고용에 관심이 많은 걸까. 알고 보니 장애인고용촉진법에 근거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제도’라는 게 있었다. 장애인 고용 비율을 맞추기가 어려우니 자회사를 설립하면 모회사가 고용한 것으로 쳐주는 제도다. 즉 드림누리는 S&I코퍼레이션이 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우회로인 것이다. 알량하지만 불법은 아니다. LG의 주장과 달리 드림누리는 주식회사LG의 100퍼센트 손자회사이므로 장애인 고용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LG가 책임져야 하고 책임질 수 있다.

LG와 S&I코퍼레이션이 할 일은 하나다. 백상기업에게 전원 고용승계를 하라고 지시하고, 향후 성실하게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하도록 감독하면 된다. 노동조합이 싫다, 어떻게 해서든 노동조합을 파괴하겠다는 반헌법, 반노동적인 태도를 고치면 된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2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투쟁02.jpg

2021.1.4. “청소노동자 쫓아내면 LG제품도 쫓겨나요.” LG트윈타워 앞 불매 선포 기자회견에 참여한 필자 모습. [출처: LG트윈타워공대위]

 

여성 노동자, 여성의 연대

 

고령의 여성이 대부분인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은 다른 투쟁에 비해 시민들의 지지를 받기가 쉬운 편이다. 연대 이전에 동정을 받는다. 너무 저임금이고 너무 고되고 너무 열악해서 그렇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해고가 일상다반사에 너나없이 힘든 감염병의 시대다 보니 집단해고에 항의하며 농성하는 청소노동자들을 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이런 노동자들을 돕는 가장 큰 조력자는 주식회사LG다. 아무런 협상안도 내오지 않고, 밥과 전기를 끊고, 가까스로 들인 초코파이와 우유를 탈취해 버리고, 직원을 동원해서 포털 사이트에 악플을 달고, 필요할 때 나서지 않고 숨어서 언론플레이만 한다. 덕분에 LG가 해도 해도 너무해서 분노했다, 힘없는 청소노동자를 지지한다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LG는 로비 농성 열흘째, 아직 해고 전인 12월 25일부터 조합원과 노동조합 상근자의 건물 진입을 막기 시작했다. 기가 막힌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해가 바뀌어 해고 1일차인 1월 1일에는 새해맞이 떡국을 막아서 그대로 꽁꽁 얼렸다. 청소노동자들은 로비에 갇혀 새해 보름을 보냈다. LG가 만행을 저지를 때마다 면식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후원 물품 문의, 지지와 불매 서명, 후원금 입금이 쑥쑥 늘어났다.

청소노동자들을 지지하고 LG를 불매하겠다는 운동에 특히 20-30대 여성들의 동참이 뜨겁다. 수백 건의 멘션과 메시지에서 중년을 넘긴 여성이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 고용과 처우에서 겪는 젠더차별, 여성 노인의 빈곤 문제를 젊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비정규직에는 여성이 많이 고용되고, 여성에게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제공되는 현실이 여성들을 투사로 만든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흐름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직장 내 성폭력 사건들도 비단 젠더나 성의 문제만이 아닌, 노동할 권리라는 측면에서 연대하며 여성과 노동의 접점을 찾아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은 여성들의 환대와 응원이 더없이 어울리는 투쟁이다. LG트윈타워분회 조합원들은 대부분 환갑 무렵에 생애 첫 노동조합에 가입한 여성 노동자들이다. 이 대단한 청소노동자들은 사측이 개개인에게 따로 접근해 적당히 위로금을 받고 나가라고 회유를 빙자한 협박을 해도 굴하지 않았다. 젊고 건장한 보안 용역 직원들이 욕을 하며 조롱을 해도 그에 맞서면서 우리는 밥을 먹지 않아도 LG와 싸울 수 있다는 결기를 보여주었다. 연대 동지들이 지어서 날라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남이 해준 밥’을 먹으며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를 부르며 신나고 흥겹게 투쟁했다. 마이크를 잡으면 누구나 청산유수 달변을 쏟아내는 연설가가 되어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자신이 겪은 과거의 노동탄압을 증언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망의 증거로서 LG트윈타워의 로비를 지켰다.

오늘, 우리의 투쟁 이야기에 ‘우리’가 아닌 ‘너희’의 얘기가 더 많았다. 오늘, 우리의 투쟁이 LG를 상대로 하기 때문이다. LG가 고용승계를 하지 않기 때문이고, LG가 노동조합을 산산조각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마음으로 글을 썼다. 청소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LG전자의 가전제품, LG생활건강의 화장품, 세제, 음료, LG유플러스의 통신 서비스를 장바구니에서 내려놓고 해지해 주기를 모든 분들에게 부탁한다. 지금도 나는 독자가 이 글을 읽을 때 즈음에는 이 사태가 해결되어 있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