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11] 학교에서 교육을 빼면? 온라인 수업 시기를 살아가는 이야기 / 장인하

by 철폐연대 posted Nov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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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학교에서 교육을 빼면?

온라인 수업 시기를 살아가는 이야기

 

장인하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철폐연대 후원회원

 

 

 

 

매년 새해가 되면, 앞으로의 한 해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연애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학교 생활은 잘 할 수 있을까, 활동은 얼마나 바쁠까. 컨디션이 좋을 때에는 왠지 잘 될 것도 같은데, 돌이켜보면 새해의 예측과 청사진은 빗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나 아찔한 일들을 겪을 때면, 새해에는 이것이 상상 가능한 일이었던가를 가늠해보는 것이 당시의 상황을 진단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이럴 때면 갑자기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는 것인데, 올해는 정말 몰랐었다. 내가 올해 이런 일들을 겪게 될 줄은. 정말 일말의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었다. 내가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될 줄은….

사실은 별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라고 하니, 민망하기도 하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다. 고민하다 보니 그래도 학교 밖의 동지들은 온라인 수업 상황에서 교사는 도대체 학교에서 뭘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실 것도 같아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름 인류 역사상 첫 온라인 학교 수업 아니던가.

 

어쨌든 시작된 온라인 수업

 

나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3년차 교사이다. 올해에는 신설 학교로 옮겨 개교 준비를 위해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개학이 연기되더니, 어느 순간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등교 기준이 완화되어 2개 학년씩 번갈아 등교를 하고 있다. (잠깐 부연 설명을 하자면, 우리 학교에는 나 말고는 전교조 조합원이 한 분밖에 안 계시고, 학교 교장은 전교조 플래카드를 학교 담벼락에 거는 것조차 반대할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이며(21세기에!), 개교를 한다는 것은 칠판을 무엇으로 할지를 두고 3일 정도 토론을 하는 지난한 과정들을 사사건건 겪어야 하는 그런 일이다.)

3월의 개학 연기가 급작스럽게 결정되었던 것처럼, 4월의 온라인 수업도 갑자기 결정되었다. 3월에 개학이 처음 연기되었을 때에는 어차피 방학이 줄어드는 것이어서 학사일정상에는 별 문제는 없었고, 마침 학교 공사도 마무리가 안 되었던 상황이라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이 다급해진 교육부는 3월 마지막 주 들어서 온라인 수업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결국 2주 뒤부터 바로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8 살아가는 이야기_01.jpg

6월 들어 학생들은 첫 등교를 했다. 이를 위해 환영 플래카드를 준비했는데, 교장이 “전교조 플래카드를 걸면 전교조 학교처럼 보인다”면서 플래카드를 걸지 말란다. 그래서 학생들이 등교할 때 들고 서 있었다. [출처: 장인하]

 

온라인 수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혼란 그 자체였다. 일단은 녹음을 하든 녹화를 하든 장비가 필요한 것인데, 학교에는 당연히도 그런 장비가 없었다. 부랴부랴 전국의 학교에서 장비들을 구입하기 시작하니, 가성비 좋다는 마이크, 삼각대, 웹캠 등의 품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어쨌든 온라인 수업 준비에 필요한 물품들은 차차 구비되었는데, 온라인 수업 자료를 만드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당장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데, 누구도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이런저런 자료를 내려보냈지만, 정말이지 쓸모 있는 게 없었다. 교사들은 서로 알음알음 팁들을 공유했고, 아주 조금 더 아는 사람은 마치 엄청난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인 양 다른 교사들에게 연수를 해줘야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쨌든 교사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을 찾아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자꾸만 ‘어쨌든’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데, 정말 어쨌든 학교는 돌아갔고, 어쨌든 온라인 수업이라는 초유의 일은 일상이 되어갔다.

온라인 수업 주간에 담임 교사의 하루 학교 일과는 대략 이렇다.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면, 학생들이 조회 시간 전에 건강상태 자가진단에 참여했는지 확인한다. (전체 초‧중‧고등학생 수가 600백만 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매일 아침 600만 명이 건강상태를 체크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학생도, 교사도 머리가 아프든 콧물이 나든 자가진단을 할 때에는 건강한 사람인 양 체크를 한다.) 자가진단을 하지 않은 학생은 아직 자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학생들에게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는 학생도 있고, 전화는 안 받지만 자가진단은 곧바로 하는 학생도 있다. 그날의 전달 사항은 조회 플랫폼(네이버 밴드를 학급 소통용으로 많이 쓰는 것 같다)에서 전달하고,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는다(고 가정한다). 다음으로 전날의 온라인 수업 수강 여부를 확인하여 온라인 출석부에 체크하고, 이전에 안 들었다고 체크되어 있는 수업을 그새 들었는지 다시 확인한다. 각 교과 교사들이 전날 수업 출석 체크를 완료하면, 담임의 ‘전화의 시간’이 시작된다. 안 들은 수업을 알려주고, 왜 안 들었는지 물어보고, 오늘까지 꼭 들으라고 당부하고, 언제까지 안 들으면 결과 처리가 된다고 협박하고…. 여하튼 온라인 수업 초기의 교무실은 말 그대로 콜센터를 방불케 했다. 특히나 초반에는 온라인 수업을 듣는 데에 익숙지 않아 학생들의 질문이 많았기에 전화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방금 말한 것은 학생이 ‘전화를 받는’ 경우이고, 어떤 학생들은 도무지 전화를 안 받는다. 전화는 안 받지만 그래도 메시지는 읽는 경우도 있고, 메시지는 안 읽는데 전화는 잘 받는 경우도 있고,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온라인 학교 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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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대응력을 갖춘 교육환경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의 효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출처: 전교조 부천중등지회 카드뉴스]

 

확실히 교육은 아닌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혼란스럽지만, 온라인 수업과 관련하여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교과 내용을 어떻게든 영상으로 만들어 이를 학생에게 제공하는 것은, 품이 드는 일이기는 해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학생의 반응을 알 수 없고, 학생의 수업 내용 수용 정도를 파악할 수 없으며, 학생이 수업을 들으며 무슨 생각과 고민을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학생과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매번 수업 영상과 함께 제공하는 과제와 수업소감 설문조사를 통해서 학생들의 반응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듣는지 아니면 틀어놓는지”를 물으면, 많은 학생들이 그냥 틀어놓는다고 대답한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교육부와 교육청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나 ‘줌’ 등을 활용한 실시간 화상 수업이 마치 온라인 수업 시에 발생하는 문제들, 예를 들어 학습 격차의 심화나 학생들의 낮밤이 바뀌는 등의 생활 패턴의 변화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시간 쌍방향 (화상) 수업’은 해당 시간에 학생들을 컴퓨터‧스마트폰 앞에 붙잡아 두는 것일 뿐,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단 실시간 쌍방향 수업 시 학생들로부터 유입되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입력)음소거’를 하도록 한다. 학생들은 교사의 질문에 바로바로 대답할 수 없는 구조이다. 한 명의 발언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기에, 학생들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 학생의 표정이나 학생이 끄덕이거나 절레절레 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한 명의 교사가 수업 진행을 하면서 화면 속의 학생들을 일일이 체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꾸만 회의감에 빠진다. 온라인 수업을 안 듣는 학생에게 매일 전화를 하면서 수업을 들으라고 독촉을 하다 보면, 결국 학생은 클릭을 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경험을 하지 못할 텐데 어떻게든 수업을 듣도록 학생에게 요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밤늦게까지 온라인 수업 영상을 만들다가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의욕이 사라지기 일쑤이다. 온라인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면 준비하는 대로 그 무의미함에 무기력에 빠지게 되고, 그렇다고 온라인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대로 무책임한 교사가 되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의 목적이 어떻게든 입시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도 괴롭고 학생들에게도 미안한 일들이 자꾸만 반복된다.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교사-학생 관계

 

교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은, 학생들은 생각보다 교사에게 우호적이고 학생들은 생각보다 교사를 좋아해준다. 학교 밖에서는 ‘중2병’이라느니 중학생들이 제일 무섭다느니 하면서 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담은 농담을 주고받지만(중학교 교사라고 밝히면 이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교사가 억압적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학생을 대하면 학생들은 금세 마음을 열고 교사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렇게 관계가 형성되면, 거기서부터 많은 것들이 이루어진다.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혐오로 인해, 학생들 중에도 여성이나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 집단에 대한 반감을 갖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만약 교사와 학생 간에 신뢰 관계가 있다면,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학생을 불편하게 하는 내용을 교사가 이야기하더라도 학생은 그 말을 들으려고 노력해주거나, 별다른 거부감을 표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한다.(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데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학생들과 관계 형성이 되지를 않으니, 드문드문 등교를 하면서 수업을 하고 이야기를 할 때에도 도통 무언가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를 않는다. 또한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다 보니, 학생이 수업을 왜 안 듣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얼굴 몇 번 안 본 교사에게 자신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겠는가. 게다가 드문드문 학교에 나오면 수행평가와 시험으로 바쁘기에, 학교에 나온다고 관계가 잘 형성되지도 않는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내가 수업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다 못 외웠을뿐더러, 학교 밖에서 마주치면 우리 학교 학생인지 모르기도 한다. 학년이 마무리될 때 즈음에는 담임반 학생들과 어느 정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까.

 

사상 초유의 온라인 수업 사태를 겪다 보니, 그동안 가려져 있었거나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교육의, 학교의, 학생의, 교사의 어떤 모습들이 보이기도 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본질이 무엇인지 더 명확해진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19 이후의 학교의 모습은 어떨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전과 같이 돌아가 있을까. 내년에는, 새해에 상상할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