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1] 지역난방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 / 방두봉

by 철폐연대 posted Jan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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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지역난방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

 

방두봉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지역난방안전지부 지부장

 

 

 

2018년 12월 백석역 인근에서는 도로 밑 열수송관이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심 한복판에 100도에 가까운 뜨거운 물기둥이 솟구쳐 올라 한 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당시 경찰은 수송관 파열사고의 원인을 ‘용접 불량’이라고 밝히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한국지역난방공사 직원 6명과 현장 점검을 맡았던 하청업체 직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어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열수송관 안전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노후 열수송관을 대대적으로 점검, 보수해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자회사 정규직 전환’의 실체

 

그동안 용역업체 비정규직이었던 우리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자회사 ‘지역난방안전’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정부와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이를 두고 ‘정규직 전환’이라고 했다. 여전히 하청 노동자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지만, 어쨌든 정규직 전환이 되면 고용과 처우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 기대가 실망을 넘어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원청인 지역난방공사는 “24시간 지역난방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면서 야간 점검 업무를 추가했다. 자회사 근무체계는 8시간 주간근무에서 24시간 업무가 지속되는 교대근무 형태로 바뀌었다. 업무의 양과 범위 역시 크게 늘었다. 하지만 바뀐 근무체계와 추가된 업무에 비해 충원된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근무복이 수개월이나 밀려서 지급되거나 한여름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맨홀 안에서 점검 작업 후 먼지와 땀으로 몸이 흠뻑 젖어도 마땅히 씻을만한 공간이 없었다. 작업을 마치고 맨홀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달려오던 차가 눈앞에서 급정거했던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노조 자체 조사에 따르면 수면장애와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가 크게 늘었고, 일하다 다쳐도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한다는 응답자의 비중 역시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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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4. “노동자의 안전이 시민의 안전이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앞 파업결의대회 모습. [출처: 지역난방안전지부]

 

정부가 공공기관 작업장 ‘2인 1조’ 근무를 의무화하겠다고 했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난방 자회사에서 2인 1조 근무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두 명 중 한 명이 연차라도 사용해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이를 대체할 인력이 없어 불가피하게 1인 근무를 하거나 휴무자가 근무를 대체해야만 한다. 2인 근무를 해도 한 사람은 차도에서 교통을 통제하고 맨홀 속 작업은 나머지 한 사람이 주로 하기에 현장의 노동자들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회사는 인력 충원은 고사하고 하절기에는 오히려 점검 인원을 줄이겠다고 했다.

 

이렇게 현장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몰아 쥐어짠 결과 자회사는 2019년 6억7천만 원의 수익을 냈다고 공시했다. 노동강도는 높아지고 회사는 수익을 냈지만, 처우는 용역업체 시절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노동조합은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데 사용하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자회사 사측은 모회사인 지역난방공사가 발생한 수익을 달라고 하면 줘야 한다며 노조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개선 대책에 따르면 오히려 모회사는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복리후생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적절한 관리비와 이윤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부 대책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관리 책임이 있는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실태를 알고는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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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7. 한국지역난방공사 앞 파업투쟁 선전전을 진행 중인 조합원들의 모습. [출처: 지역난방안전지부]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도 안전하다

 

공기업인 한국지역난방안전공사의 자회사인 지역난방안전 노동자들은 지난 11월 25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적정인력 확보를 통한 노동안전 보장과 처우개선이 이번 파업투쟁의 핵심 요구였다.

공공기관 작업장에서는 ‘2인1조’ 근무를 의무화한다는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역난방 자회사에서는 여전히 2인1조 근무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과 시민 안전을 위해서는 인력충원이 절실함에도 회사는 노동자들의 이러한 요구를 줄곧 외면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파업기간 동안 대체인력이 투입되었지만 점검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날씨는 영하로 떨어지고 온수가 유출되는 등 곳곳에서 위험신호가 감지되었고 시민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노동조합은 사측의 제시안에 합의하고 지난 12월 14일 현장복귀를 결단했다. 아쉽게도 노사합의는 기본급 3.3% 인상과 운전자보험 가입 등 미미한 처우개선에 그쳤다. 이번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은 자회사 구조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

 

노동자가 위험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면 제대로 된 점검이 될 수 없으며, 안전인력을 확보하고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곧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임을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자회사는 직시해야 한다. 특히, 열배관은 신도시 등 인구밀집지역에 집중되어 있어 사고가 발생되면 다수 시민이 피해를 입을 우려가 높다.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와 같은 원인으로 경상자가 29명,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에 달한다는 통계, 대형 사고는 반드시 징후가 존재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을 기억해야 한다.

 

지역난방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은 다단계 하청구조로 인한 소통과 협력의 단절, 원청의 책임 회피가 어떻게 현장의 위험을 방치하는지 온몸으로 겪고 있다. 더구나 자회사 전환 이후에도 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는 저임금․장시간 노동, 인력부족, 업무강도 강화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안전도, 시민 안전도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