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1] 철폐연대와 함께하는 2020년 동향 / 철폐연대

by 철폐연대 posted Jan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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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폐연대와 함께하는 2020년 동향

 

 

1. 정부 정책

 

● 아직도 요원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해였다. 그만큼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작은 사업장,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의 목소리가 높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상시 5인 이상의 노동자를 사용하는 곳에만 전면 적용되고, 그보다 작은 규모의 사업장에는 제대로 된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16일에는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실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의 극히 일부 조항만 적용이 되는데, 법 적용 예외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최소한 지켜야 할 것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이 법 적용 회피를 위해 4명까지만 등록을 하는 등 사업장 규모를 형식적으로 5인 미만으로 유지하는 경우도 확인되었다.

4월에는 한국노동연구원이 <코로나19, 사회적 보호 사각지대의 규모와 대안적 정책방향>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보고서는 5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사업체의 일감이 줄어들면 무급휴직 또는 해고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고용보험 가입률이 낮은 편이어서 해고 이후 실직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11월 10일에는 민주노총이 시행한 작은 사업장에 대한 조사결과도 발표되었다. 이는 코로나19를 전후로 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생활상의 변화와 정부대책의 적용 실태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약 8명 중 1명꼴(13.4%)로 ‘코로나 실직’을 경험하였으며, 임금감소를 경험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월평균 감소액은 4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업장 규모가 작아질수록 사회보험 가입비율이 낮아 10명 중 7명은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은 작은 사업장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고용안전망이 허술한 까닭은 현행 근로기준법이 5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의 제한을 적용받지 못하며,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수당 및 연차 유급휴가에 대해서도 적용받지 못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사업장이 문을 닫더라도 휴업수당을 받지 못한다. 또한 해고도 쉽게 이루어지는 데 반해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불가능하다.

이에 민주노총은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골자로 하는 일명 ‘전태일법’을 제안했으며,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것을 21대 총선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전태일3법의 하나로 제안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노조법2조개정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과 함께 10만의 국민동의를 받아 발의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 노동권을 제약하는 법제도 개악은 기업 활동 보호를 이유로 빠르게 이루어지는 반면,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개정 속도는 느리기만 해,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보호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 필수노동자 보호는 노동기본권 보장에서부터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감염병은 ‘필수노동자’라는 새로운 용어를 한국 사회에 가져왔다. 위기 상황에도 반드시 수행되어야 하는 노동, 그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을 이렇게 지칭하며 이들에 대한 보호가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s)’는 미국 주정부들이 보건의료·식료품·공공운수 등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산업의 노동자에게 계속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행정명령에서 나온 말이다. 영국에서는 같은 의미로 ‘핵심 노동자(key worker)’라고 부른다. 한국 정부는 ‘필수노동자 보호를 위한 관계부처 태스크 포스’를 출범시키면서 이 말을 차용했다. 한국에서 공식화된 정의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사회기능 유지를 위해 핵심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면노동자’다.1)

그런데 한국에서는 ‘필수노동자’라는 말이 지금까지의 불안정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체하는 것과 다름없이 되어버렸다. 정부가 정한 필수노동자의 범위에는 보건·의료·돌봄 종사자, 배달업 종사자, 환경미화원, 제조·물류·운송·건설·통신 등 영역의 대면 노동자가 포함된다. 지금까지 노동법상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던 이들을 ‘필수노동자’라는 말로 불러내며, 정부는 노동권의 보장이 아닌 특별한 보장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로 기존의 특수고용, 플랫폼 종사자 등에 대해 나와 있던 코로나19대책을 반복할 뿐, 이들의 권리 보장에 대한 대책은 제대로 내지 않았다.

이들의 노동은 위기 상황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며 그 일상을 받치고 있는 노동이다. 그러나 그 일상에서 이들의 노동은 비정규직으로, 노동권의 밖에 존재해 왔다. 그런 권리의 부재가 감염병 위기 상황에도 멈출 수 없다는 이 노동의 특성과 함께 더욱 보호의 필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의 보호뿐만 아니라 그 전에 노동기본권의 보장이라는 기초가 없으면, 여전히 이들의 노동은 권리 영역 밖에 놓이게 되며, 필요에 따라 불려나와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 노동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필수노동자에 대한 보호법 제정안을 11월 23일 대표발의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별도 특별법안을 만들겠다고 한다.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고려되지 않고 예외적으로 이야기되는 보호나 플랫폼 산업의 활성화를 중심에 둔 종사자 보호 대책은 지금까지 이들이 권리에서 배제되어 온 과정을 묻어 버리게 될 것이다. 필수적 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보호를 이야기한다면 무엇보다 배제되었던 권리상태를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 민중언론 참세상, “필수노동자[워커스 사전] INTERNATIONAL”, 채효정 (2020.11.16.)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5546

 

 

 

 

2. 비정규직 일반

 

● 코로나19와 불안정노동의 심화

 

코로나19가 야기한 경제위기 후폭풍은 파장과 진폭 면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피해를 남겼다. 지난해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사태의 촉발은 항공․여행․숙박업을 시작으로 산업 전반의 급격한 위축으로 이어졌는데, 매출과 영업이익 폭락은 기업들이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주된 근거로 작용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지속은 이른바 ‘위기업종’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금융 및 세제지원을 신속하게 이끌어냈지만, 당장 고용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직접지원 대책은 너무도 부실했다.

감염병 재난 상황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2020년 4월 항공․해운․자동차․조선 등을 기간산업으로 지정해 40조 원 규모의 자금지원방안(기간산업안정기금)을 마련한 바 있다. 또한 고용유지를 위한 대책으로 고용유지지원금과 무급휴직 지원요건을 완화했고, 특별고용지원업종도 확대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일삼는 기업들에 대한 제재는 거의 실행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의 사례는 주로 기업 지원에 쏠려 있으면서도 불안정 노동자들의 위기 상황에 둔감했던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애초 정부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기금 지원 시점부터) 6개월간 고용 총량의 90% 유지’를 내걸었지만, 이조차도 기간산업안정기금 설치 및 운용을 위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이 4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노사가 고용유지를 위해 상호 노력한다’로 후퇴했다. 더구나 기간산업에 종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장 방안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모회사(항공사)-자회사(지상조업사)-하도급 업체’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의 맨 밑바닥에 자리한 하청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급격히 무너트리는 데 일조했을 뿐이다.

일례로 아시아나항공의 지상조업 하도급 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도 활용하지 않고 하청노동자들에게 무기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강요했다. 그리고 이에 동의하지 않은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 8명을 5월 11일자로 정리해고했다. ‘코로나19 해고 1호 사업장’으로 알려진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 사태는 ‘사용자의 해고회피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근거로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잇달아 부당해고 판정이 나왔다.

한편, 코로나19 장기화로 저비용항공사(LCC)에서도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었다. 이스타항공 경영진은 제주항공으로의 인수․합병이 무산된 이후 구조조정을 본격화해 10월 14일 600여 명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이스타항공 역시 아시아나케이오와 마찬가지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여객수요 급감에 따른 항공업계의 동반 추락은 양대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추진으로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양사간 합병은 중복인력의 감축계획으로 이어질 텐데, 자회사․하도급 업체에 대한 구조조정은 이보다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위기가 장기 지속하는 가운데 정부 정책은 불안정 노동자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대량 구조조정을 통해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의 고용위기 대응책이 더더욱 문제적인 까닭은 항공업계뿐 아니라 전 산업으로 불안정 노동자들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직, 계약직 노동자들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와 열악한 노동조건 문제는 복잡하게 얽힌 고용구조와 이를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국내 대기업들의 민낯을 다시금 확인케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오히려 활황을 맞이한 배송물류업계 대기업들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방역 조치에는 소홀했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로켓배송’을 모토로 내건 쿠팡에서는 장시간․야간 노동이 일상화돼 있었고,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밀집 근무를 해야 했다. 심지어 2020년 5월 부천신선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가족 감염자에게 쿠팡은 아직까지도 사과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이 또한 비단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과로로 숨진 택배노동자는 15명에 달한다. 집단감염의 위험은 물론이거니와 과로사 등 노동자 건강권을 침해하는 작업환경에 대해 당국의 전수조사와 전면 작업중지, 시정명령 등 조치가 뒤따라야 했지만, 위험이 감지된 다수 현장에서 이러한 조치는 적시에 이뤄지지 않았다. ‘아프면 3~4일 쉬라’는 정부의 생활방역 제1지침은 권리로부터 배제된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위험에 방치된 노동자들 중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은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힘겨운 일상을 견뎌야 했지만, 2020년 내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방역이나 경제를 빌미로 한 기본권의 배제와 차별을 혹독하게 겪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1월 27일 발표한 <코로나19와 이주민 인권상황 모니터링> 보고서는 재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방역대책과 지원대책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가령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배제, 재난 관련 정보 획득의 어려움, 공적마스크 구입 배제 등이 그러했다. 사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 등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역할은 그동안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그 밑바탕에는 이주노동자를 동등한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시혜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부 정책의 문제가 있는데, 벌써 16년째 존속되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재난 상황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었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정부는 경제위기의 충격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기업 지원에 큰 힘을 쏟았고, 불안정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선별적,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 코로나19는 오늘날 불안정 노동자들을 관통하는 권리의 부재, 불평등 문제를 증폭시켰지만, 동시에 이것이 공동체 모두의 과제임을 여실히 확인한 계기이기도 했다.

 

 

3. 간접고용․특수고용

 

● 특수고용 노동자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적용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과제’를 발표하며 일자리 안전망 강화를 목표로 관계법령을 개정하여 2019년부터 산재보험 적용대상 특수고용 노동자 및 예술인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2018년 8월 고용노동부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예술인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발표하였고, 11월에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한정애 의원에 의해 대표발의되었다.

그러나 특고·예술인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한다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20대 국회가 끝나갈 때까지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재난 상황을 맞닥뜨리며 정부·국회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에 밀려 2020년 5월 환노위에서 대안법으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배제하고, 예술인에게만 예외적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특고 제외, 예술인 특례적용 등을 비롯한 실효성의 문제로 시행령 논의 내내 예술인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예술인 고용보험법은 12월 10일에 시행되었다.

바로 그 이틀 전 12월 8일, 환노위에서는 특수고용 및 플랫폼 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14개 직종에 대해 법이 시행되는 2021년 7월 1일부터 1차적으로 고용보험을 적용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미 특고 산재보험이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고용보험 역시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특고 산재보험은 2008년 7월 특례적용으로 제도 도입되어, 11년간 적용 직종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왔다. 2020년 12월 현재 14개 직종 77만여 명이 적용받고 있는데, 이는 특수고용노동자 3분의 1가량에 불과하다. 이렇듯 특고 산재보험이 단계적으로 적용된다는 것도 문제지만, 산재보험 적용 가입 직종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또 문제가 있다. 주로 하나의 사업장에 노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전속성’이라는 기준을 통과해야 하고, 사용자가 산재보험 가입을 회피하기 위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하지 않아야만 가입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대리운전기사 중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대리운전기사는 단 3명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12월 14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특고 산재보험의 전속성 요건 폐지 등 산재보험 확대 적용을 위해 ‘노․사․전문가TF’를 구성 운영해 방안을 논의해가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정부의 단계적 확대 적용에 반해, 특고․플랫폼 산재보험 적용방안에 대한 민주노총의 기본입장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을 특례제도가 아닌 ‘산재보험법상의 근로자 정의’를 개정하고 전면 적용하는 것이고, 기존 독소조항을 개정하는 것이다.

 

●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조합 활동과 노조법 2조 개정 운동

 

2020년 5월 21일,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이 부산경남경마기수노동조합이 제출한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교부했다. 고 문중원 경마기수가 마사회의 비리를 폭로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지 반 년 만에, 설립 신고 넉 달 만의 일이었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7월 17일, 노조 설립 신고 421일 만에 설립 필증을 발급받았다. 그동안 대구, 부산, 울산 등 지자체들이 대리운전기사 노조에 대해 설립 신고 필증을 발급했지만, 전국 단위의 대리운전기사 노조에 대한 노동부의 설립신고필증 발급은 처음이었다.

전국방과후강사노조는 9월 18일, 노조 결성 477일 만에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부지청으로부터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발급받았다고 밝혔다. 라이더유니온은 11월 10일, 설립신고서 제출 3개월 만에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 필증을 교부받았다. 2019년 서울시에서 라이더유니온의 설립신고에 대해 신고필증을 교부한 바 있었는데, 고용노동부의 설립 필증 교부로 인해 전국 단위의 공식적 법내 노조로서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이렇듯 특수고용 및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노조 설립 인정이 계속되고 있어 일견 상황이 진전된 듯 보이나, 보험설계사들의 경우엔 여전히 고용노동부의 ‘검토 중’이라는 답변을 받고 있고, 대리운전노조의 경우처럼 노조 설립 인정은 되었으나 사용자가 사용자성을 부인하면서 교섭은 되지 않는 상황은 여전하다.

지난 2020년 8월 카카오모빌리티는 대리운전노조의 교섭요구에 대해 자신들은 중개 플랫폼일 뿐 사용자는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이 같은 카카오모빌리티의 주장에 대해 10월 경기지노위는 카카오모빌리티 쪽에 ‘노조의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고 교섭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카카오모빌리티가 카카오티 대리운전 기사들의 ‘사용자’임을 인정하는 결정을 했다. 12월 중노위에서도 경기지노위의 결정을 유지하는 판정을 내렸다.

2020년은 전태일 50주기로,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 전면적용, 노조법 2조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전태일 3법을 국회에 입법청원 했다. 이 중 노조법 2조 개정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간접고용노동자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을 담은 내용이다. 전태일 3법은 10만의 동의를 얻어 발의되었으나, 12월 9일 국회에서 통과된 노조법은 ‘근로자의 정의’를 좁게 정의한 노조법 2조를 수정하지도 않았고,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을 막은 2조 4호 라목 전체를 삭제하지도 않은 대신 단서조항만 뺐을 뿐이다. 결국 현행 노조법 2조에서는 특수고용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등을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서 이번 법 개정에도 2조 4호 라목에 발목이 잡혀 여전히 이들의 노조 할 권리는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ILO 핵심협약 87호와 98호를 비준하기 위해 이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와 규정을 바로잡고 보완하려고 노동관계법을 개정한다고 밝혀 왔으나, 사실상 이번 노조법 개정은 양대 노총이 ILO 기본협약 위배라고 규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ILO 협약을 비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노동법 개악을 강행한 것이고, ILO 핵심협약 비준안은 여전히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4. 공공부문 비정규직

 

● 자회사 구조에 맞선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2020년에는 자회사에 맞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이 계속 이어졌고, 한편으로는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의 원청과 자회사 등을 상태로 한 투쟁도 계속되었다. 연초에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분파업 및 전면파업 등을 진행하며 자회사가 아닌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투쟁의 흐름을 더 이어가지는 못했다. 부산지하철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을 계속했으나 결국 자회사 고용을 받아들이며, 이후 투쟁을 기약하게 되었다. 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직접고용이 필요하다는 특조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기존 하청업체의 지분을 한국전력과 발전회사가 매입하는 식으로 공공기관 자회사로 전환하여 고용 전환하겠다는 정부 대책이 발표된 이후 상황의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 다름 아닌 권한 없는 자회사를 넘어 원청을 상대로 투쟁을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그 역시 큰 진전을 보이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잡월드의 자회사 노동자들은 상생협의체 논의를 2020년 하반기부터 진행해 왔으나, 계속된 공전 속에 지지부진하다가 연말에는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안을 사측이 들이밀어 투쟁을 예비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철도공사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머물러 있는 저임금을 개선하고, 정년연장을 통해 고용을 안정시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 중이다. 11월 11일 시작된 파업은 연말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아직 파업을 풀고 현장으로 돌아갈 만한 의미 있는 합의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공무직으로 직접고용 전환된 노동자들 역시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전환 이후에도 여전히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교섭을 하고 투쟁에 나서도 기관이나 주무부처조차도 정부의 예산지침 등을 핑계 대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

자회사에 대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원청은 형식적인 원하청협의체조차 무의미하게 만들고, 주무부처들은 기획재정부의 예산지침을 이유로 처우개선이 불가능하다고 핑계 대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전환 노동자에 대한 수당 신설 금지 지침이 많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가로막고 있는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음에도, 기획재정부는 또 주무부처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핑계를 댄다. 전환 이전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이었는데, 전환 이후에도 임금이 개선될 수 있는 체계를 제대로 만들지 않았고, 수당 신설은 못하게 만들어 임금 개선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20년 3월 공무직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공무직 등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및 처우, 인사노무관리 기준 등에 대한 통일적 기준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여러 쟁점을 확인하는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 대책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을 여전히 저임금 수준으로 관리할 계획을 짜면서도,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압박하는 지침이나 규정 등은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공공부문 공무직 및 자회사 노동자들의 처우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정부가 져야 할 많은 책임이 외면되는 가운데 이에 대응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비정규직 고착화가 아닌 제대로 된 공적돌봄체계 구축이 필요

 

초등돌봄의 운영주체가 학교여야 하는지, 아니면 지자체로 이관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초등돌봄을 담당하고 있는 전담사들은 초등돌봄이 교육의 영역이기 때문에 학교가 운영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교원단체들은 초등돌봄을 복지의 영역으로 전환해서 지자체로 운영을 이관해야 한다고 말한다. 2020년 7월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학교돌봄의 지자체 책임운영 모델을 도입하겠다”고 하고, 권칠승,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초등돌봄 운영을 지자체로 이관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법안에는 초등돌봄의 운영 주체가 분명하지 않아서 ‘민영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초등돌봄은 시간제 돌봄전담사의 불안정한 노동에 기대 운영되어 왔다. 제도적 근거 없이 비정규직으로 양적 확대를 이루어 왔기에, 초등돌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한편, 그 가운데 돌봄 환경과 돌봄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초등돌봄이 교육인지 복지인지는 사회적으로 논의하여 결정할 사안이다. 그를 위해 학교 현장의 돌봄전담사와 학부모, 교사, 교육 당국, 지자체가 함께 하는 토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 있어 학교라는 교육기관이 변해가는 사회에서 돌봄의 역할을 교육의 영역으로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것 역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성급한 법안 발의가 아니라 각 주체 간의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법 추진의 과정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가 다만 초등돌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 새롭게 생겨날 때 정부는 쉽게 비정규직으로 고용을 늘려 왔다.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을 가지고 제도를 구축해 갈 것인지에 대한 고려 없이 손쉽게 비정규직 고용을 통해 그를 메꾸어 온 과정이 비정규직 확산을 이끌었다. 이를 제도적으로 정비하고자 할 때는 당연히 그 주체의 요구를 수렴하고, 장기적인 정책 방향을 함께 논의해 가야 할 것이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전국여성노조·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로 구성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연대)는 이러한 법제화 움직임에 맞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초등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반대와 학교돌봄 법제화, 상시전일제 전환 등을 요구하며 교육당국의 책임 있는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12월 7일 국회 교육위원회와 학비연대의 긴급간담회에서 현재 발의된 법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국회가 시도교육청들과 노동조합의 합의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지면서 파업은 일단 유보된 상태다.

 

 

5. 노동안전

 

● 코로나19 시대, 택배노동자가 쓰러지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언택트 소비가 부쩍 늘어나면서 택배노동자의 고됨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법 제도적 장치의 부실로 인해 2020년 한 해 동안 15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택배노동자의 과도한 노동 강도는 이미 여러 차례 문제제기가 되어 왔다. 거기에 더해 올해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배송물량이 폭증했고, 이로 인한 택배노동자의 과로는 치명적 수준이 될 것이라고 충분히 예견되었다. 하지만 정부도, 택배사도 뚜렷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지난 10월, 한 달 사이 7명의 택배노동자가 사망하자 CJ대한통운 등 주요 택배사는 ‘분류도우미’ 5천 명을 투입하고, 모든 택배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등의 과로사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오후 10시 이후 심야배송을 중단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인력 투입에 대한 비용 분담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서 채용은 미뤄지고 있고, 배송기사 처우와 현장 개선도 이뤄지고 있지 않다. 심야배송도 여전하다. 물량을 소화할 인력이 없어 오후 10시 넘어서도 배송은 진행된다.

오히려 이를 악용해 택배노동자들의 수수료를 삭감하고, 심지어 해고 통보를 받는 노동자도 발생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에 따르면, CJ대한통운 안성터미널 공도대리점 소장은 소속 택배노동자 16명의 산재보험 가입을 이유로 배송수수료에서 건당 20원씩을 삭감했다. 게다가 삭감한 수수료를 산재보험으로 사용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CJ대한통운 서초터미널 양재제일집배점에서는 택배물량이 늘어나 다른 택배노동자에게 배송을 부탁했다는 이유로 택배노동자 한 명이 해고 통보를 받기도 했다. 해당 노동자는 하루 평균 300개 넘는 물량을 배송했고, 주 평균 80시간 넘게 일했다.

택배기사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된다.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맺고, 배송에 따른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더 빠른 배송을 위해 당일 물량 100% 소화를 강요당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에는 계약해지 압박을 받는다. 근로기준법 적용도 받지 못해 주5일 근무나 주52시간 초과근무 금지도 해당이 없다. 산재로 다치거나 사망해도 이를 입증하는 것도 힘들다.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앱에는 배송업무 외에 부수적 업무 시간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강요하거나, 산재보험료 50%가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여전하고, 사람들의 택배를 통한 소비도 여전하다. 15명이 목숨을 잃은 지금,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대책은 이미 늦었다. 이미 늦었다고 대책을 마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고민해야 한다. 하루 3~5시간씩 공짜로 노동하는 분류작업을 별도의 노동자가 수행하게 하고, 심야노동을 포함한 장시간노동을 금지해야 한다. ‘물량이 너무 많은 날은 일정 분량을 다음날 이어서 배송하도록 해 달라’는 택배노동자들의 요구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이다. 이 간단하고 상식적인 요구가 시행된다면 어쩌면 지금도 과로로 쓰러지는 택배노동자를 단 한 명이라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가 2020년 한 해 전국을 가득 채웠다. 하루 7명, 한해 2천4백 명이 넘게 죽어나가는 일터를 바꿔내고자 노동자민중 10만 명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청원했다. 국민청원 발의안의 핵심은 ▲경영책임자 처벌 ▲기업의 비용으로 처리되는 벌금형이 아닌 하한형이 있는 형사처벌 ▲원청 처벌과 공기단축을 요구하는 발주처 처벌 ▲산재 사망과 시민 재해를 포함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 ▲불법적 인허가에 대한 공무원 책임자에 대한 처벌 ▲반복적 사고를 은폐하는 기업에 대한 인과관계 추정 도입 ▲사망 사고와 직업병, 조직적 일터 괴롭힘에 의한 사망 포함 등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책임질 대상과 처벌을 분명하게 하자는 법이다. 기업경영의 권한이 있는 실질적인 경영책임자, 원청, 그리고 기업 그 자체에 책임을 묻고 인허가 권한이나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 공무원에게도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벌 만능주의가 아니라 강력한 처벌을 통해 생명을 함부로 하는 사회적․조직적 문화를 바꾸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했을 때 노동자도, 시민도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책임지지 않는 기업의 문화는 노동자에게도 시민들에게도 크나큰 피해를 발생시켜 왔다. 노동자의 사망사고뿐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구 지하철 참사, 불산 누출사고 등 기업이 저지른 범죄는 그동안 경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일로 포장되면서 사실상 용인되어 왔다. 그러한 관행은 또 다른 노동자와 시민을 죽게 했다. 그래서 노동계는 지난 수년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여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의지는 미약하다. 경영계는 이윤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경영계가 법 제정을 반대하며 거론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재해방지 의무가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기업살인법의 경우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시 기업의 과실을 따질 때 ‘안전조치가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라는 포괄적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현장의 구체적 안전조치는 기업이 직접 담당한다. 둘째, 산업안전보건법상 이미 세계 최고의 형량 기준을 정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안전보건 의무를 어긴 기업에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지금까지 경영책임자가 구속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고, 벌금도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선고되고 있음을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세 번째 반대 이유는, 하청업체의 사고를 원청이 책임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원·하청 관계는 다분히 수직적 관계이며,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노동자에게 재해가 집중되는 일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2020년 12월 18일 현재, 국회 앞에서는 산재피해 유가족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바라는 노동자민중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씨는 12월 16일, 연내 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법 조항 하나하나가 사람이 죽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함부로 덜어내지 말고, 국민이 발의한 법안 그대로 온전히 통과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 일터에서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와 기업의 무책한 경영으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만들어진 법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통해 반복되는 죽음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6. 법률 · 판결 동향

 

● 2020년 노동계 디딤돌 판결은 어떤 게 있었나

 

2020년 주목할 만한 여러 가지 판결들이 있었지만, 특히 기억할 만한 판결들을 다시 확인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태아의 건강손상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6두41071 판결)을 빼놓을 수 없다.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 다수가 2009년에 임신해 2010년에 출산을 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있었다. A 등은 임신 초기에 유해한 환경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했으므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피고)에 산재보상(요양급여)을 청구했다. 그러나 피고는 업무상 재해란 노동자 본인의 질병 등만을 의미한다며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을 했고, A 등은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10년 만에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 노동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노동자의 노동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와 관계없이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판정했다. 그간 업무상 위해성으로 인해 사업장에서 빈번한 유산, 선천성 질환을 경험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지만, 업무상 재해가 불인정됨에 따라 피해가 잇따랐다. 어느새 10살에 다다랐을, 또는 그 사이 삶을 마감했을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판결일 것이며, 앞으로 임신한 여성 노동자가 더욱 보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전교조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위법성을 확인한 판결(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변호사 시절 전교조 사건을 대리했던 김선수 대법관을 제외하고 12명이 참여한 가운데 10대 2의 의견으로 고용노동부의 처분이 위법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고용노동부가 처분의 근거로 든 노조법 시행령이 법률의 위임을 받지 않았고 헌법상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해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은 무효라고 했다. 해당 판결에 따라 전교조 위원장을 포함한 해직 교사들이 학교로 돌아가게 됐고, 전교조는 합법노조로서의 지위를 되찾았다.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자 B씨의 유족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6다248998 판결)에서 대법원이 1, 2심을 뒤집고 현대․기아차 산업재해 사망자 유족의 특별채용이 유효하다고 한 전원합의체 판결도 빼놓을 수 없다. B씨는 1985년부터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일하던 중 백혈병이 발병해 2010년 사망했으며, 유족들은 단체협약 규정에 따라 B씨의 자녀를 채용해달라며 소송을 청구했다. 1, 2심은 특별채용 규정이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다며 효력을 부인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유족은 공정경쟁 채용절차에서 우선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 절차에서 특별채용되는 것이고, 피고들의 사업 규모가 매우 크고 노동자의 숫자도 많은 데 반해 특별채용 조항이 적용되는 유족의 수는 매우 적다며, 이러한 특별채용이 구직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특히 대법원은 문제가 된 조항은 “약자를 보호하는 규정”이며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인 만큼 그 효력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마지막 디딤돌 판결은 원청 사업장에서 하청업체를 상대로 쟁의행위를 한 사건으로서 한국수자원공사와 청소 및 시설관리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도급인 공사 본관에서 용역업체를 상대로 쟁의행위를 한 것을 이유로 하청 소속 노동자들에게 업무방해와 퇴거불응 했다고 고소한 형사사건(대법원 2020. 9. 3. 선고 2015도1927 판결)이다. 대법원은 도급인 사업장은 수급인 소속 노동자들의 근로 제공 장소이자 삶의 터전이므로, 파업이 도급인 사업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아울러 도급인인 한국수자원공사도 이들 노동자가 제공하는 근로의 이익을 누리기 위해 사업장을 근로장소로 제공한 것이므로, 쟁의행위로 일정 이익이 침해되어도 사회통념상 용인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코로나19로 노동자의 삶이 팍팍했던 와중에 반갑고도 의미 있는 판결이 다수 확인되었다는 점은 노동계에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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