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4]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 이야기 / 정우준

by 철폐연대 posted Apr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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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바닥 일기

 

 

 

불운한 피해자에서 변화를 만드는 당당한 주체로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 이야기

 

 

정우준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이 한참일 무렵, 한 기자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겠냐고 물었다. 당시만 해도 법 제정이 소원한 상황이었고, 법 제정이 어렵다는 생각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시간이 지나 법 제정이 조금씩 가까워질 무렵 우연히 그 질문이 떠올랐다. 하고 싶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재사망을 개인의 불행이나 노동자의 과실이 아니라 기업의 과실로 인한 ‘기업살인’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는 법이다. 이 법이 제정된다면 그간 가족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당당하게 알리지도 못했던 수많은 산재사망 유가족들에게 일하다 노동자가 죽는 일은 본인과 돌아가신 분의 탓이 아니니 조금 더 당당하게 지내시라고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노동건강연대 활동을 하며, 일을 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가족과 동료들을 자주 만났다. 때로는 장례식장에서, 때로는 현장에서 그리고 꽤나 시간이 지난 후 제3의 장소에서. 한 노동자의 죽음은 커다란 운동을 만들기도 하지만 일하다 죽은 대다수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사라진다. 급작스럽게 일어난 사고이기에 장례식장은 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유가족은 슬픔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노동자를 탓하는 회사와 돈 몇 푼으로 사고를 마무리하려는 상황에 직면한다. 더 열악한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거나 이주노동자의 경우는 제대로 된 빈소조차 마련되지 못한 채 잊히기도 했다.

 

산재사망에 있어 노동자의 탓, 개인의 불운이라는 인식이 여전한 대한민국에서 산재사망 유가족들이 직면하는 상황은 냉정하다. 연이 닿아 유가족과 연대해 사고를 사회에 알리고 회사의 압박에 맞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우리가 마주치지 못했던 대다수의 산재사망 유가족들은 가슴에 가족을 묻은 채 살아간다. 함께 연대를 해 싸웠음에도 가족의 텅 빈 자리를 고개 숙인 채 바라보는 유가족들의 모습은 바꿀 수 없었다. 회사와 사장의 사과, 회사와의 조금 더 좋은 합의는 할 수 있었지만, 가족의 황망한 죽음 앞에 선 유가족들에게 큰 힘을 줄 수는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매일 2, 3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사고로 사망하고 산재사망 유가족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그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해결해 줄 어떠한 제도와 연대도 만들어 내지 못했던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그렇게 한 가족의 마무리를 함께했을지 몰라도 또 다른 유가족이 처한 상황을 막지 못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의 탄생

 

한 가족의 슬픔은 약간 줄일 수 있되 매해 2,400명이 넘는 산재사망 노동자의 유가족들의 처지를 바꿀 수 없었던 시간이 꽤나 지속되던 어느 날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했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김미숙 어머니, 현장실습생 유가족들, 고 이한빛 PD 유가족, 고 김태규 노동자 유가족, 반올림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산재사망 사건들에 연대하기 시작했다. 휑하기 일쑤였던 산재사망 노동자들의 장례식장은 유가족들의 방문으로 공간이 차기 시작했고, 가족의 황망한 죽음에 정신없는 유가족들을 만나 본인들이 겪은 경험을 나눴다.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말부터 회사와 싸움을 하는 법 등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나눴다. 같은 아픔을 경험한 유가족들이 찾아가니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로 장례식장을 찾아가 명함을 주며 필요하시면 연락을 달라는 이야기를 할 때 접하지 못했던 반응들이 나왔다. 의심의 눈초리를 줬던 유가족들은 같은 아픔을 가진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눈물 흘렸고, 끼니 거르지 말라는 흔한 말에서조차 위로를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산재 유가족들을 찾아만 간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가족들끼리 자신의 아들, 딸의 기일을 함께 기리기도 했고, MT를 가기도 했다. 누구보다 슬플 가족의 생일과 기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생겼고, 다른 활동가와 가족에게조차 하지 못 할 말들을 서로 나누기도 했다. 같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수다를 떨고, 술을 마셨다. 투쟁들이 많았던 어떤 날들은 가족들보다 더 자주 봐서 가족보다 더 친근하기도 했다. 서울, 부산, 광주, 대전, 수원 전국 곳곳에 떨어져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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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1. 다시는 군산 1박 2일 MT 즐거운 회의시간. [출처: 정우준]

 

 

그렇게 유가족들의 연대는 강해졌고, 유가족들과 함께하던 노동·인권단체들이 함께 정기적인 회의와 연대 활동을 시작했다. 김용균재단, 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활동가들이 유가족들과 연대해 산재사망 유가족들을 찾아가고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 고 문중원 기수 대책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다양한 집회와 기자회견에 연대했다.

 

그렇게 함께하던 가족들은 ‘다시는’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다. ‘다시는’이라는 이름은 본인과 같은 아픔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게 하겠다는 유가족들의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그간 가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산재사망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산재사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시민들의 관심이 점차 늘어났다. 산재사망 문제가 나와 다른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시민들이 겪는 공통의 문제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었다. 몇몇 언론사 지면과 집회에서만 이야기됐던 산재사망 이야기가 대중화됐고, 그 해법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대두되었다. 그렇게 ‘다시는’ 이름으로 뭉친 강한 마음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나아갔다. 법 제정을 넘어 그간 개인의 불운과 노동자의 탓으로 돌려졌던 산재사망이 기업에 의한 살인,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구조적인 죽음이라는 인식이 더욱더 커졌다.

 

‘다시는’이 만들어 갈 미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산재사망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줄어들지 않는 산재사망 상황 속에서 다시는의 구성원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한익스프레스 유족, 고 이선호 노동자 유가족, 고 김재순 노동자 유가족 등 다시는의 구성원으로 함께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내기 위한 유가족들이 점차 늘어났다. 가족들의 할 일도 여전히 줄지 않았다.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유족들을 찾는 일은 더욱더 늘어났고, 산재사고사망뿐만 아니라 시민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의 연대에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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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홍정운 산재사망사고 관련 홍정운 유가족과의 만남을 위해 다시는 가족들 여수 방문.

[출처: 정우준]

 

 

변화는 그간 고개 숙였던 산재 유가족들이 다시는으로 뭉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다시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그간 용기 내지 못했던 유가족들이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받고자 나서기도 했다. 가족의 죽음에도 고작 몇백, 몇천에 합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본인 가족의 죽음이 개인의 탓이 아니라 회사의 탓으로 인한 구조적인 죽음이고, 당연히 사과받고 사회가 책임져야 할 죽음이라는 인식으로 나아갔다. 노동자 죽음에 직면한 현장들이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다시는이 함께할 미래는 여전히 무겁다. 산재사망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경영계와 새로 선출된 정권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무력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산재에 취약한 불안정 노동자들은 줄어들지 않고 중대재해는 아니지만 일터 곳곳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해 적극적인 대안들이 마련되지도 추진되지도 않고 있다. 노동자들이 보다 권한을 가지고 현장을 개선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겠지만 갈 길은 너무나 멀다.

 

하지만 다시는이 마주할 미래는 밝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을 함께할 때 그 누구보다도 법이 제정될 수 있다는 현실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법 제정 과정을 함께하며 산재사망 문제, 노동자 건강권 문제를 바꾸는 것은 누구보다 그 문제를 절실하게 여기고 바꿀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바로 다시는의 구성원들의 믿음과 마음을 보며 느꼈던 것들이다. 한 해 2,400명의 노동자가 죽는 대한민국이 단 한순간에 변하지 않겠지만 그 변화의 가장 앞선 자리를 산재 유가족들이 묵묵히 지킬 것이다. 그 묵묵함 속에서 다시는 일을 하다 가족을 잃는 사고들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바람은 앞으로 더욱더 커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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