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909] 구조조정에 맞서는 조직화, 현대중공업 원·하청 공동투쟁 / 이성호

by 철폐연대 posted Sep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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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구조조정에 맞서는 조직화, 현대중공업 원·하청 공동투쟁

이성호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장)

 

 

현대중공업에 사내하청노조의 깃발이 선 것은 16년 전 이맘때이다. 2003년 8월 24일 설립총회를 열어 30일에 울산시 동구청으로부터 설립필증을 교부 받고, 9월 1일 3도크 옆 종합식당에서 설립보고대회까지 무사히 마친다.

당시 하청노조는 출범선언문에서 비정규직 철폐와 함께 ‘원·하청 단결투쟁’을 전면에 걸고 호소했다. 그러나 곧이어 원청 자본은 하청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폐업과 해고, 블랙리스트 등 광폭한 탄압으로 찍어 눌렀다. 이 과정에서 박일수 열사가 산화하시고 현장의 조합원들이 모두 쫓겨나게 되지만, 2002년부터 어용 집행부와 대의원들이 장악한 정규직노조는 최소한의 보호막은커녕 열사의 영안실을 침탈하는 등 오히려 하청노조 탄압에 혈안이었다. 정규직노조가 12년 만에 다시 민주노조로 세워진 2013년 말까지, 현대중공업에서 원·하청 노동자의 단결과 공동투쟁은 정말로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구조조정에 맞선, 그러나 수세를 면치 못한 방어투쟁 속에서

 

2014년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대중적으로 상승한 시기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할 사측의 사령탑이 들어선 것도 이때이다. 2014년 말에 사실상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희망퇴직을 가장한 정리해고와 기성금 삭감, 업체 폐업이 2015년부터 줄을 잇는다. 불황을 명분으로 2016년 5월 정부 차원의 조선업 구조조정이 공식화되면서 분사-아웃소싱이 전면화되고, 하청노동자들은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 무급 휴업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갔다.

2017년 인적분할 법인분리로 현대중공업을 4개 회사로 쪼개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현중재벌 3대세습 구조를 완성했고, 2018년에는 해양사업부가 완전히 가동을 중단하면서 사측은 정규직에게조차 무급 휴업, 기준 미달(40%)의 휴업수당 지급 등의 공세를 폈다. 바닥을 찍고 다시 조선업 경기가 회복 추세로 돌아서면서, 4년간의 3만 5천 명 대량해고(이중 3만 명이 하청노동자) 구조조정 또한 마무리되길 바라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권과 자본은 보란 듯이 뒤통수를 쳤다. 2019년 초 기습적으로 대우조선해양의 매각과 인수·합병을 발표하고, 현대중공업은 이를 명분 삼아 이번엔 물적분할 법인분리를 강행한다. 정부가 나서서 헐값매각으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독점체제를 뒷받침하고, 현중재벌은 이참에 3대세습 자금 확보를 위해 중간지주사라는 고액배당 빨대 구조까지 만든 것이다.

이렇듯 정몽준-정기선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에 최종 단계로 보이는 구조조정이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까지 확정되면 경기 변동에 따라 속도가 결정될 뿐, 효율화를 명분으로 한 중복부문 구조조정은 앞으로도 수년간 거의 일상처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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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30. 현대중공업 법인분할 저지투쟁 [출처: 지회]

 

노동조합은 지난 5년 동안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으로 쉼 없이 달려왔다. 국면마다 공세를 취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방어하기에도 벅찬 수세적인 투쟁으로 밀리고 또 밀렸다. 직영 조합원은 희망·정년퇴직 등으로, 하청 조합원은 업체 폐업·임금 삭감 등으로 모두 반토막 났다. 그러나 패배감과 절망, 힘겨운 싸움 속에서 한편으로는 무엇이 승리와 희망, 공세적 투쟁을 담보할 수 있는지 노동자 대중의 직관과 공감대가 더디지만 숙성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규직이 파업을 해도 하청이 공장을 돌리는 현실에서, 현장을 완전히 멈출 수 있는 힘이, 단지 선언에 그쳐왔던 원·하청 노동자의 단결과 공동투쟁이 절박함으로 싹트고 조금씩 자라왔던 것이다.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되뇌며 더디게 지나온 시간들

 

역량 투여와 실력의 문제는 차지하고,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조의 하청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고민은 2013년 10월 정규직노조의 민주파 집행부 당선부터 시작됐다. 하청노조야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0순위의 과제로 두는 조직이지만, 정규직노조의 과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단편적인 예로 2014년에는 집행부만 민주파였지 대의원은 모두가 어용이었고, 대의원까지 민주파가 압도적으로 차지하게 된 것은 2015년부터였다. 그리고 2014년 십수 년 만에 파업투쟁을 벌였지만 공장을 멈출 수 없는 한계를 직시하면서, 정규직 조합원들의 마음속에 하청조직화의 필요성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구조조정 초기 단계에서 처음으로 원·하청 노조가 하청조직화를 실천한 것은 2015년 5, 6월이다. 핵심은 하청노조 집단가입 집중캠페인과 원·하청 공동집회였는데, 당시 실질적인 공동투쟁과 4만 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가입 대세 흐름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후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남긴 유의미한 시작이었다. 실제 원청 자본은 2015년 6월 하청조직화를 우려해 “인위적인 구조조정 중단” 입장을 서둘러 발표한다. 게다가 갑자기 모든 원·하청 노동자들에게 1백만 원의 격려금을 일방적으로 지급하는 일까지 벌어져 많은 여운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그로부터 2018년까지 제대로 된 하청조직화와 원·하청 공동투쟁을 성사시키지 못한다. 구조조정과 노조탄압 공격에 대응한 투쟁도 방어에 급급해 후퇴를 거듭하는 시기를 보냈다. 대신 한축으로는 노동조합의 조직체계를 몇 차례 전환함으로써 민주노조 사수와 하청조직화의 활로를 모색해온 시간이었다.

우선 2016년 12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로 전환한다. 구조조정에 맞선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1차 조직전환이었다.

2차 조직전환은 2017년 9월 현중지부 ‘1사 1조직’ 규정 개정이다. 금속노조 울산지부 소속의 사내하청지회와 일반직지회를 금속노조의 원칙에 따라 현중지부로 포함하는 규정을 개정한 것이다.

마지막 3차 조직전환은 2018년 7월 현중지부는 ‘1사 1조직 통합시행규칙’을 제정, 사내하청지회는 규칙을 개정해 최종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로 조직을 변경, 명실공히 하나의 조직으로 완전히 통합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의미와 한계도 있지만, 이러한 전체 과정의 한 측면은 하청조직화와 원·하청 공동투쟁을 위한 조직적인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일관된 방향성을 갖고 이루어졌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2019년 하청조직화와 원·하청 공동투쟁의 경과

 

이른바 ‘원·하청 단일노조’ 1사 1조직 체계에서의 하청조직화는 2018년 8월부터 12월까지 실태조사와 여론전을 중심으로 한 기본사업부터 전개했다. 내용은 ‘하청노동자 임금실태조사’와 ‘기성삭감-4대보험 체납 하청노동자 피해 원상회복 촉구 서명운동’, 불법파견 물량팀 문제 국정감사 대응과 ‘하청고용구조 개혁’ 여론전, ‘하청속풀이데이’ 행사 등이다. 2019년부터는 현장주체 발굴 및 네트워크 구성을 목표로 현장사업에 집중하는데, 건조부와 도장부 등 특히 외업 부문에서 작년부터 이어온 임금 체불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 직면한다. 급기야 4월에 대규모 임금 체불과 하청노동자 2천 명의 자발적인 집단 작업거부 사태가 터진다.

 

3월에 개설된 단체카톡방(익명채팅방) <하청다함께>에 이내 수백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모여든다. 4월 10일 월급날이 지나고 12일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출근집회, 정문 앞 기자회견 참여, 원청 부서 사무실 앞 연좌농성, 울산시청·동구청 주최 하청업체 채용박람회 항의시위, 오토바이 경적시위, 사내 원·하청 공동집회 등 지금껏 숨죽이며 나서지 못했던 하청노동자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투쟁에 나선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과정에 사내하청지회가 결합하고 이를 주도했으며, 지부의 지원과 정규직 활동가들의 연대가 잘 맞아 돌아갔다. 다급했던 원청은 문제 해결에 나서고, 체불임금과 업체 폐업에 따른 고용승계까지 모두 정리되면서 4월 25일에 사태는 일단락된다.

 

5월부터는 ‘하청임금 25% 인상’을 전면에 걸고 ‘노란리본 달기 운동’ 등 임금인상 투쟁을 위한 여론전과 출근집회, 오토바이 경적시위를 전개한다. 그러나 5월은 무엇보다 물적분할 법인분리 저지 투쟁이 핵심이었다. 현중지부 정규직 조합원들이 전기와 가스를 차단해 공장을 멈춰 세우는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법인분할 주주총회장인 한마음회관을 제대로 점거하면서 하청노동자들도 같이 들썩이고 매우 큰 자극을 받는다. 사실상 지난 5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가장 강력한 파업투쟁이 눈앞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규직이 파업투쟁으로 공정을 멈추고 하청을 이끌어주면 대오에 동참하고 싶다’는 반응이 하청노동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규직이 발등에 불 떨어져 자기들도 자회사 하청 신세가 되니 우리를 이용해 먹으려 한다’, ‘정규직이 우릴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느냐’ 등의 뿌리 깊은 불신과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5월 31일 기습적으로 장소를 바꿔 날치기로 주주총회가 통과됐지만, 6월에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지속된다. 하청노동자들의 반응도 계속 확인되는 바였다. 이에 5월 말 5일 동안의 주총장 점거로 미처 시도하지 못했던, 파업과 연계한 하청조직화와 원·하청 공동투쟁에 대한 고민과 의견이 치열하게 논의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시키는 원·하청 공동투쟁과 파업연계 하청조직화는 성사되지 못한다. 이에 대한 평가는 올해를 보내며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6월 11일 현중지부와 사내하청지회는 ‘하청조합원 조직확대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하청교섭 타결 없이 정규직교섭 타결 없다’는 입장을 공표한다. 또한 하청조합원 2천 명이 되면 본격적인 교섭과 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으로 하청노동자 노조 가입 현장설명회를 집중 전개하고, 6월 20일 원·하청 공동집회로 이를 총화한다. 이에 20일 당일 원청은 하청노동자들의 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하청업체에 지침을 내려 오전 근무만 하고 조기퇴근을 시키거나 연장근무를 잡는 등 방해에 열을 올린다. 원·하청 노동자들은 공히 사측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극명하게 경험하게 된다. 이와는 별도로 6월 14일 <하청다함께> 단톡방 개설 100일을 맞아 전체모임을 진행해 임금 25% 인상 투쟁과 노조 가입을 결의한다.

 

7월 8일 현중지부와 사내하청지회는 사상 최초의 ‘원·하청 공동 총회-총투표’ 실시를 기자회견으로 선포한다. 7월 15일부터 17일까지 정규직 조합원들은 임·단협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해고자정리 역사바로세우기’ 총회 투표를, 하청노동자들은 6대 요구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현장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하청총투표에는 2천 2백 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참여해 압도적 찬성으로 요구안을 확정하고, 직후부터 요구안 쟁취를 위한 노조 가입 현장 활동을 전개한다. 여름휴가 전 모든 활동은 7월 25일 현중지부 노조창립 기념행사인 원·하청 문화한마당으로 정리하게 된다.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하기휴가를 끝내고 8월부터는 하청총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교섭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여전히 건조부와 도장부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이 30%가량 체불되는 사태가 계속되면서, 임금 체불 부서 단위로 원·하청 사측에게 우선 교섭을 요구할 계획이다. 또한 지난 5월 10일 거제 대우조선의 하청노동자 2천여 명이 원청에 항의해 미지급된 성과금을 받아냈듯이, 현대중공업에서도 임금 체불에 대한 원청 책임과 근본 해결을 촉구하는 ‘하청노동자 총궐기’를 추진 중이다.

 

올해 원·하청 공동투쟁의 서막이 오르고 스토리가 한창 전개 중이지만, 아직 클라이맥스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실의 벽과 실기, 역량 부족으로 빠른 시간 안에 정점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국면을 열어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청조직화는 원·하청 공동투쟁의 전제이자 목표이다. 공동투쟁의 한 축인 하청노동자를 주체로 형성하는 일이자, 공동투쟁 그 자체가 하청노동자들을 더 크게 노동조합으로 조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에 맞서 공세적인 투쟁으로 승리를 향해 전진하는 유일한 길이라 확신한다. 원·하청 노동자들의 단결을 현대중공업에서 실현해 전국의 동지들과 함께 모든 노동자가 계급적으로 단결하는 길을 꼭 열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