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004] 더 이상 죽지 않게 / 김혜진

by 철폐연대 posted Apr 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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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더 이상 죽지 않게

김혜진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죽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재와 직업병으로 사망하는 노동자는 2016년 2,040명, 2017년 2,209명, 2018년 2,142명이었다. 기업이 제대로 안전장치를 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였다면 죽지 않아도 될 이들이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죽는다. 이렇게 죽어가는 노동자 대다수는 하청노동자들이다. 2016년 국정감사에 의하면 2015년 30대기업 산재사망의 95%는 하청노동자였다.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고,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노동자들이 산다.

 

1. 하청노동자들이 죽는 이유

 

기업들은 위험한 업무, 안전설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업무를 하청업무로 돌린다. 그런데 하청노동자들이 위험한 업무를 맡기 때문에만 죽는 것은 아니다. 위험이 외주화되면 하청노동자들은 구조적으로 더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1) 시설의 소유와 운영의 분리로 안전에 대한 책임이 사라진다

대다수 하청업체는 독립적인 도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설과 설비는 원청회사가 모두 소유하고, 하청업체는 노동자들을 공급하는 역할 이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도 모든 시설은 원청인 서부발전이 소유하고 있었다. 일하는 공간에는 석탄분진이 휘날렸고 앞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며 안전장치도 제대로 없는 컨베이어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으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이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헤드랜턴을 제대로 지급하는 것 말고는 그다지 없다. 인력충원이나 안전장치와 시설개선 등은 모두 원청인 서부발전의 역할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원청기업은 도급을 맡겼다는 이유로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하청업체는 자신의 설비나 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자신들에게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니 하청노동자들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안전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권한을 가진 원청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원청기업와 하청노동자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가로놓여있다. 구의역 김군의 동료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한 후 가장 큰 변화로, 회사에 인력충원 등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꼽은 것은, 하청노동자의 요구가 전달되는 것조차도 지금의 하청 구조에서는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2) 소통이 단절되어 위험에 대한 대응이 어려워진다

2016년 구의역 김군은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해야 했다. 전철이 다니는 시간에 선로 안쪽 작업을 하면서도 관제실에 열차를 멈춰달라고 요청하지 못했다. 정규직이라면 관제실에 바로 연락할 수 있었겠지만 하청노동자인 김군이 열차를 멈추려면 참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청업체와 스크린도어 수리 담당 부서, 역무실, 관제실 등 여러 곳을 거쳐야 하는 이 복잡한 연락체계 때문에, 김군은 열차를 멈춰달라고 요청하기보다는 빨리 수리를 하고 나오는 것을 택했고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졌다. 서울지하철은 ‘효율성’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안전을 위한 효율성은 없었고, 노동자들은 안전을 위한 소통을 할 수 없었다.

무수히 많은 사고가 안전에 대한 소통의 단절 때문에 발생한다. 2017년 김천구미역에서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숨졌다. 포항지진으로 KTX의 선로가 바뀐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규직들은 모두 알고 있던 열차 시각 변경을, 정작 그 선로에서 일해야 하는 하청노동자들은 알지 못했다. 끝까지 사고를 막아보려고 손수레를 밀쳐냈던 이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무단침입’이라는 굴레를 씌웠다. 연락체계가 원활했다면 죽지 않아도 될 이들이었다. 원하청구조가 만들어지는 순간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 사이의 연계는 파괴되고, 안전을 위한 소통은 어려워진다. 그래서 하청노동자들이 죽는다.

 

3) 처벌받아야 할 자들이 처벌받지 않는다

 

위험을 외주화하면 원청은 하청노동자 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에서 빠져나간다. 그러니 기업들은 위험한 업무를 안전하게 만드는 대신 외주화를 선택하게 된다. 2017년 8월 20일, STX조선해양 선박 내 도장작업 중 폭발사고로 하청노동자 4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는 원청업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8년 5월 창원지법이 내린 판결은 STX조선해양 법인 벌금 2천만 원, 재하도급 법인 벌금 1천만 원이었다. 2008년 1월 이천냉동창고에 화재가 나서 건설노동자 40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이 때에도 원청인 코리아2000에 대한 처벌은 벌금 2천만 원이 전부였다.

2013년에서 2017년까지 에너지 공기업들은 개별 실적요율 적용에 따라 500억 원의 보험료를 감면받았다. 무재해인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서부발전에서는 44명이 다치거나 사망했고, 그 외의 발전소에서도 사망자가 5명, 부상자가 39명이었으며, 그 중 95.5%인 42명이 하청노동자였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이들이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원청은 무재해사업장이 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으로 원청의 책임이 인정되기는 했지만, 원청을 실질적인 사용자로 인정하여 노동자 안전에 대한 책임을 완전하게 물리지 않는 이상,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기업들은 이익을 얻고 외주화는 더 확산될 수밖에 없다.

 

 

2.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투쟁의 의미와 한계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상정했고, 2018년 12월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무려 28년만의 개정이었다.

 

1)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연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정부가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철도 비정규직 사망사고와 구의역 김군의 사망사고를 비롯한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와 반올림을 비롯한 산재 피해자들과 그에 연대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비록 노동자의 권리가 제한적으로 담기기는 했으나, 산업안전보건법 대상의 확대, 외험의 외주화 금지, 원청 책임 및 처벌 강화, 기업의 영업비밀 남발 규제, 작업중지권 등의 내용이 포함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부개정안은 기업들과 경제부처, 보수언론의 반발로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그런데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였던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확산되면서 죽어가던 이 법안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김용균 노동자의 유가족과 시민들은 더 이상 김용균의 죽음과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고 위험업무에 대한 도급 금지와 원청의 책임 인정을 위해 투쟁했다. 산재피해 유가족들이 모여 국회의원들에게 이 법안을 수용하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8년 12월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이 법안의 통과는 노동자 투쟁의 결과였다.

 

2)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의 의미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 대상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30년 전 15살 문송면 노동자의 수은중독과 원진레이온 노동자의 사망을 계기로 전면 개정된 후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다. 노동자들 중 많은 수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사각지대로 존재해왔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기존 법안의 “근로자”를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바꿈으로써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포함될 수 있도록 했다. 일하다가 죽거나 다치지 않을 권리,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의 대상 확대는 불안정한 노동자가 확대되는 지금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원청 책임범위가 확대되고 처벌이 강화된 것도 개선점이다. 원‧하청이 같이 일하는 사업장의 경우, 원청 사업자가 안전보건 조치를 해야 하는 장소가 22개 위험장소에서 원청 사업장 전체로 확대되었다. 원청사업장이 아니더라도 원청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인 경우에는 원청이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갖게 되었다. 원청사업주가 안전의무를 위반했을 때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던 것을, 3년 이하 징역과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높였다.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원‧하청 사업주에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상 벌금, 법인 대표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내도록 했다.

 

3) 위험의 외주화를 막지 못하는 한계

그러나 이 법안은 위험의 외주화를 온전히 막을 수 없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으려면 유해 위험업무에 도급을 금지하도록 해야 하는데, 도급 금지를 적용받는 업무는 도금이나 수은, 납, 카드뮴 등을 사용하는 작업으로 제한되었다. 2016년 구의역 김군이나 2017년 5월 1일 발생한 삼성조선소 크레인사고, 그리고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노동자가 일하던 공정은 도급 금지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가중처벌은 도입되었으나 하한형은 도입되지 않아서 실질적인 실효성은 갖지 못했다. 또한 노동자가 위험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할 경우, 사용자가 그를 빌미로 불이익한 처분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처벌조항도 빠져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시행령을 개악했다는 점이다. 법안 자체가 도급 금지 작업 범위를 매우 축소했고, 그 밖의 위험작업을 도급하려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는데, 시행령에서 그 대상을 황산, 불산, 질산, 염산을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 분해, 해체, 철거하는 작업으로 한정했다.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 대해서 원청의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는데 사고가 다발하는 덤프나 굴삭기 등 건설기계는 원청 책임강화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전면적 작업중지 명령도 법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시행령에서는 작업중지 명령 해제를 쉽게 하는 등 오히려 개악해버리기도 했다. 기업을 위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후퇴시켰다.

 

 

3.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하여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회적 힘이 모여야 하고, 제도적 변화도 이끌어내야 한다.

 

1) 간접고용 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개정해서 도급 금지 범위를 넓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유해‧위험업무의 범위를 확대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우 도급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위험업무 외주화’만이 문제가 아니며, ‘외주화’ 그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켜 이윤을 얻는 기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며, 상시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말로는 도급이나 자회사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인력파견 업체에 불과한 하청업체 구조를 없애고, 원청이 직접 책임지는 구조로 바꾸어가야 한다.

지금 당장 간접고용을 없애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기업이나 단체가 교섭의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기업에게 안전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고자 할 때, 원청이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노동안전에 한해서만 원청의 책임을 물을 경우 기업들은 빠져나갈 통로를 만든다. 현재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조법 2조를 개정해서 원청기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지도록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원청이 사용자로서 포괄적 책임을 지게 될 때 노동안전에 대한 책임도 제대로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게 해야 한다. 바뀐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노동안전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이 분명해지면 원청에 대한 처벌도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처벌의 하한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과는 미지수이다. 특히 원청기업에 대해서 더욱 관대한 수사기관과 법원의 특성을 보면 원청은 쉽게 처벌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일터에서 산재와 직업병으로 노동자들이 죽어갈 때 이것을 살인으로 인식하지 않고 기업 활동의 부작용 정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죽지 않아도 될 노동자들이 죽도록 만드는 것은 살인이고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우선 기업을 처벌하고자 한다. 물론 기업 처벌은 벌금의 형태가 될 텐데, 노동자들이 사망했을 때 기업의 이윤에 타격을 입힐 정도가 되어야 기업들이 안전장치에 비용을 들이도록 할 수 있다. 그리고 원청을 비롯한 실질적인 책임자가 처벌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안전에 대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들이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또한 관리감독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공무원도 처벌해야 한다. ‘처벌’이 만능은 아니지만, 안전장치를 하는 비용보다 노동자들이 사망했을 때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크게 만들고, 그 때문에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가 되어야,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

 

 

4. 마치며

 

2016년 구의역 김군이 목숨을 잃었을 때 시민들과 동료들이 나섰다. 시민들은 구의역 9-4 스크린도어에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포스트잇을 붙였고,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라고 이야기했다. 2018년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숨졌을 때에도 동료들은 용기를 내어 현장의 문제를 증언했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청와대까지 행진했고, “더 이상 죽지 않게”를 외쳤다. 시민들도 그 죽음을 함께 애도했다. 그러한 연대에 힘입어 유가족이 앞에 나섰다. 국회의원을 만났고 그들을 움직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기업의 이윤이 최고인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목숨은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달라졌고, 유가족들도 더 이상 체념하고 슬퍼하기만 하지 않는다. 적어도 ‘더 이상 일하다 죽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니 조금 더 힘을 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곧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운동본부가 구성된다. 그리고 한 해에 죽어가는 2,400명의 산재와 직업병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법안 발의자도 모으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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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200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질라라비> 200호에서는 우리가 아프게 떠나보낸 동지들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의 비정규운동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정책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비정규 현장을 지키며 투쟁하고 활동하는 동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그간 <질라라비>를 함께 만들어주시고 읽어주신 동지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더불어, 4월 24일에는 <질라라비> 200호 발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질라라비>가 200호를 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운동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후원을 요청드립니다.

 

※ 후원계좌 : 하나은행(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824-910011-23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