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4] 임금체계 개편, 그리고 직무급제 / 김혜진

by 철폐연대 posted Apr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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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임금체계 개편, 그리고 직무급제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2020년 1월 고용노동부는 ‘직무·능력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 지원 방향’을 발표하고 직무급제 도입을 희망하는 기업에 전문 컨설팅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직무급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경사노위는 2021년 2월 19일 서면 방식으로 본회의를 열어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직무급제는 무엇이고, 왜 정부와 기업은 임금체계를 개편하려고 하는 것인가?

 

임금체계란 무엇인가?

 

노동자들은 임금이 얼마나 오를지에 관심이 많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임금을 통해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서도 임금협상에는 조합원들이 관심이 많지만 단체협약에는 관심이 없다고 걱정하는 집행부들도 있다. 조합원들의 임금 수준은 임금협상을 통해 결정되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최저임금이 결정한다. 그래서 최저임금 결정 시기가 오면 모두들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임금 수준’이 아니라 ‘임금체계’가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임금체계에는 ①임금 구성 항목 ②임금 지급 방식 ③임금 결정 기준 등이 포함된다. ‘임금 구성 항목’은 기본급과 각종 수당, 상여금 등 임금을 구성하는 여러 항목을 의미한다. ‘임금 지급 방식’은 시급인지, 월급인지, 연봉제인지 등을 말한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보통 월급을 받는다고 말하지만 시급을 월 단위로 계산해서 주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시급제 임금이다. ‘임금 결정 기준’이란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도록 할지, 직무 혹은 성과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할지에 대한 것으로서 말 그대로 임금을 결정하거나 조정하는 기준을 의미한다.

최근 ‘통상임금 소송’ 때문에 ‘임금 구성 항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임금을 올릴 때 기본급을 올리기보다 상여금이나 수당을 신설하거나 올리는 바람에 임금 항목이 복잡한 사업장이 많아졌다. 초과근로수당을 계산할 때의 기준은 통상임금인데 그동안 기업들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하지 않고 계산을 해왔다. 노동자들이 상여금을 포함해서 계산해야 한다고 소송을 걸었고, 2013년 대법원은 “정기적이고 고정적ㆍ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이후로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을 정기적으로 줄 것인지, 고정적으로 줄 것인지, 일률적으로 줄 것인지가 노자 간 쟁점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때문에 임금체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부는 기본급은 낮지만 상여금이나 수당 등으로 임금을 많이 받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보면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최저임금에 상여금과 수당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법을 개악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더해 약간의 수당과 상여금을 받던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올라도 임금이 그대로이거나 깎여버렸다. ‘임금 구성 항목’ 중 일부를 최저임금에 산입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없애버린 것이다.

‘임금체계’는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담긴다. 따라서 임금체계를 변경하려면 노동자들의 집단적 동의가 필요하다. 임금 구성 항목, 즉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은 노자 간 협상 결과에 따라 종종 달라진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개편하려는 것은 ‘임금체계’ 중에서도 ‘임금 결정 기준’에 대한 것이다. 임금 결정 기준이 달라지면 임금의 구성 항목이나 지급 방식도 달라진다. 임금 결정 기준을 바꾸는 것은 무엇을 기준을 임금을 결정할 것인지를 바꾸는 것이고, 기업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며,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임금만이 아니라 미래의 임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임금 결정 기준에 따른 임금체계

 

임금 결정 기준에 따른 임금체계는 연공급이나 직무급, 직능급 등으로 나뉜다. 정부는 한국 기업의 임금체계가 연공급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이후 직무급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임금 결정 기준’을 바꾸어서 임금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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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속년수에 따라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것이 연공급이다. 호봉표가 있는 사업장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이고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온 임금체계이다. 정부는 한국의 임금체계가 연공급 중심이라서 기업들의 부담이 높다고 하는데 정말 한국에서 연공급제가 대다수일까? 2020년 1월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6월, 100인 이상 기업의 호봉제(연공급) 비율은 58.7%였다. 그런데 이 중 300인 미만 사업장을 보면 호봉제는 16.9%밖에 되지 않으며 300인 이상 사업체가 60.9%인 것이다. 다시 말해 연공급제가 일반적이라고 하지만 대기업을 제외하면 연공급은 많지 않다.

중소기업은 임금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곳이 많다. 기본급은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며 몇 가지 수당과 상여금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근속에 따른 임금을 보장한다 하더라도 근속수당 정도이며, 온전한 연공급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임금을 늘리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비정규직들의 경우에는 근속에 따른 임금체계가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10년 일해도 똑같은 임금”이라고 문제 제기하는 것은 바로 연공급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연공급제’가 대세도 아니며, 정부가 이야기하는 연공급제는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정규직들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직무급제는 ‘직무’에 대한 가치평가를 해서 그 직무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는 것이다. 직무급제에서 임금을 인상하는 길은 상위 직무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데 순수한 의미의 직무급제는 일반적이지 않다. 직무급이라고 하더라도 성과급과 연공적 요소가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별 성과를 매겨서 성과에 따라 임금을 더하거나 혹은 근속수당을 더하거나 직무 내부의 호봉표를 변형한 형태로 연공급적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다. 특히 경총이나 전경련 등에서 대기업 정규직들을 대상으로 도입하자고 강조하는 직무급은 ‘성과’를 연결시키는 임금체계이다. ‘직무성과급’이야말로 노동자들을 직무별로 분리시킬 뿐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성과를 기준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무급제 개편의 문제

 

정부는 연공급제로 인해 노동자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임금 비용이 과도하게 높아져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기피하므로 직무급제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현재의 직무급제 추진 상황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기업의 부담이 커져서 신규채용이 어렵다고 하는데, 이미 공공부문이나 민간 대기업의 경우 임금피크제를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다. 설령 직무급제가 도입되더라도 그 대상은 저항이 예상되는 고임금 정규직들이 아니라, 신규 채용된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즉 미래의 임금비용을 줄이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인 것이다.

직무급제의 근거로 사업장별 임금격차를 문제 삼기도 한다. 같은 직무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느 기업에서 일하든지 동일한 임금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산업구조가 왜곡돼 있다 보니, 대기업 중심으로 협력업체들이 하청계열화되어 있다. 원청이 협력업체에 단가인하 압력을 가해 이윤을 수탈하기 때문에 협력업체들은 어려움을 겪는다. 사업장별 격차를 문제 삼으려면 임금체계 개편 이전에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원하청 불공정거래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공공기관의 기관별 임금격차도 산별교섭을 통해 조정을 거치면 되는 문제이다. 문제의 핵심은 사업장별 임금격차가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이다.

정부나 일부 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직무급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동일한 업무를 한다면 임금차별을 받지 않고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무엇을 ‘동일한 업무’로 간주할 것인가이다. 이미 기업들은 정규직이 하는 일과 비정규직이 하는 일을 분리하고 있다. 예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하던 일도 지금은 대부분 분리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직무를 세부적으로 분리하고 그렇게 분리된 직무의 직무가치를 임의로 부여하고, 그에 따라 고용형태를 달리하면 노동자들은 완벽하게 위계화된다.

직무급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리에 기초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다른 노동 다른 임금’의 원리로 변질되었다. 기업 안에서 직무급제가 도입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직무 위계라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설령 사회적으로 직무가치를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성과 연령, 학력, 결혼유무 등 여러 요소들이 ‘사회적 차별’로 작동하는 상황에서, 예컨대 여성중심 직무는 직무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저임금이 정당화될 가능성도 높다. 낮게 평가된 직무는 마치 청소직무에서의 최저임금이 정당화된 것처럼 저임금이 정당화될 것이다.

지금처럼 기업과 정부가 직무급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상황에서는 직무에 대한 가치평가만이 아니라 직무 간 등급의 수, 직무 간 임금격차, 직무 간 이동 여부, 직무 내부의 숙련에 따른 보상체계 등도 왜곡될 것이다. 가장 하위 직무가 최저임금에 숙련도 인정받지 못하게 구성되면 대다수 직무의 임금은 그 기준에 따라 하향할 것이다. 입직통로와 고용형태에 따라, 하는 일에 따라 노동자를 위계화하고 폄훼하고,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직무급제라는 이름의 ‘다른노동 다른임금’ 체계는 차별과 저임금을 합리화하는 굴레가 된다.

정부는 이미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을 통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표준임금체계(안)’을 만들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직무급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바 있다. 아래는 정부에서 만든 ‘표준임금체계(안)’의 직무등급이다. 물론 이 임금체계가 거센 비판에 직면하여 수정하겠다고는 했으나 사실상 이와 유사한 임금체계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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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직무급제는 비정규직을 우선 대상으로 했다. 이 임금체계에 따르면 정부에서 ‘행정업무’를 하는 3등급 무기계약직 노동자가 15년 동안 일을 하면서 계속 단계가 상승할 경우 최저임금보다 125%를 더 받는다. 이 임금체계는 정부의 직무급제가 소위 ‘하위 위계’ 노동자들의 임금을 어떻게 저임금으로 고착하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벌리는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숙련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어떻게 해야 존엄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없다. 정규직과의 차별을 줄이는 방안도 없다. 사회적 차별에 기초하여 저평가된 낮은 임금으로 평생 일하라는 요구만 가득하다. 이것이 정부가 이야기하는 직무급제의 실체이다.

 

임금의 원칙을 세우자

 

비정규직은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이고, 차별도 심각하며, 직무 위계가 신분의 위계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임금체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필요하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체계랄 것도 없이 최저임금이 곧 임금인 구조를 바꿔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임금체계를 만드는 과정은 연공급이냐 직무급이냐의 논쟁이 아니라, 임금의 원칙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우선 결정하는 과정이어야 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임금의 첫 번째 원칙은 ‘존엄하게 생활 가능한 노동소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와 비교하여 많은가 적은가가 아니라, 임금으로 생활이 가능해야 하고, 최소한의 생존을 넘어 인간답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임금 수준이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임금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임금 수준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영화는 몇 번 보고 책은 몇 권 볼 수 있어야 하는지, 여행은 갈 수 있는지 등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바로 그 임금 수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임금에는 안정성도 중요하다. 즉 내가 이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과급 등의 비중을 줄이고 고정적인 기본급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주관적 평가에 의해 임금이 흔들리도록 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임금이 높아진다는 전망이 필요하다. 내가 더 많이 애를 쓰고 열심히 일을 하면 이곳에서 내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15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의 125%밖에 못 받는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전망을 가질 수 없고, 숙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어렵다.

임금은 개인별로 결정되지만, 기준은 집단적이어야 한다. 개인별로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거나 비밀주의를 고수하면 안 된다. 기본급 인상은 집단적인 교섭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조가 필수적이고 파업이 헌법상의 권리인 이유는 개별의 협상으로는 노동자가 권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집단적 교섭을 통해 기본급이 인상되어야 노동자들이 지속적인 저임금에 묶이지 않을 수 있다. 공공부문처럼 총액을 묶어두고 직무 간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이어서도 안 된다. 노동자 집단 전체의 임금에 대한 교섭 권한이 확보되어야 한다.

직무의 저평가에 근거한 저임금이 업무에서의 주도력 박탈로 이어지면 안 된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경우 숙련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업무의 발전 전망을 무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 노동자의 신분을 낮게 규정하고 함부로 하는 경우도 있다. 임금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권리 배제가 정당화되기도 한다. 임금 수준이나 직무에 대한 평가가 그 직무에 대한 노동자의 주도력이나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결정하고 주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승진, 합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리 등 임금과 별개로 업무에서의 주도력이 존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