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1] ‘2021년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 결과와 취지, 노동사건을 중심으로 / 김은진

by 철폐연대 posted Jan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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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포커스

 

 

‘2021년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 결과와 취지, 노동사건을 중심으로

 

김은진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편집자 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세계 인권의 날’(12월 10일) 73주년을 앞둔 지난 12월 6일 <2021년 한국인권보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인권보고대회는 지난 한 해 동안 한국 사회 인권 실태를 돌아보고, 민주주의 실현과 인권 보장을 위한 대안과 담론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2021년 올해의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 결과가 발표되었다. 2021년 선고된 각급 법원과 헌법재판소, 국가인권위원회의 판결 및 결정 가운데 인권 및 사법정의를 증진시키거나 저해하는 등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 판결들을 선정했다. 이하 글은 민변의 15개 분야별 위원회와 공익인권변론센터, 사법센터 등에서 추천한 사법기관의 판결·결정 72건 중 노동사건을 중심으로 판결 의미와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 이유 등을 짚어보았다.

 

1. 2021년 노동분야 디딤돌 판결: 새로운 용역업체의 합리적 이유 없는 고용승계 거부를 부당해고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6두57045 판결)

 

가. 개요

 

A업체는 2014. 9. 1. B건설에서 근무하던 근로자 23명 중 4명에 대하여 고용승계를 거부하였다. 고용승계가 거부된 당사자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고,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각하되었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인용 결정을 받았다. 이에 A업체(원고)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A업체와 같이 청소용역을 도급받아 수행한 용역업체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전 용역업체에서 근무한 근로자들의 고용을 대부분 승계하여 온 상황이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새로운 용역업체가 종전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고용을 승계하여 새로운 근로관계가 성립될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에게는 그에 따라 새로운 용역업체로 고용이 승계되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근로자에게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근로자가 고용승계를 원하였는데도 새로운 용역업체가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승계를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에게 효력이 없으므로, 원고의 이 사건 고용승계 거부는 부당해고에 해당하여 그 효력이 없다고 판시하였다.

 

나. 선정 이유

 

위 판례는 용역업체 변경에 있어서 소위 ‘고용승계기대권’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로서 갱신기대권과 동일한 법리 구조를 갖고 있다. 용역업체 변경 시 기존 하급심 판결들이 고용승계를 인정하기 위해 묵시적 영업양도를 인정하거나 이 사건 원심과 같이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보던 것과 달리, 고용승계기대권 법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여 향후 용역업체 근로자들의 고용승계 요구에 중요한 법리적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 2021년 노동분야 걸림돌 판결: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이 근로자 측에 있다는 기존 법리를 유지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1. 9. 9. 선고 2017두45933 판결)

 

가. 개요

 

망인은 출근 후 동료 직원과 함께 약 10분 동안 약 5㎏의 박스 80개를 한 번에 2~3개씩 화물차에 싣는 일을 한 후 사무실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박리성 대동맥류 파열에 의한 심장탐포네이드’로 사망하였다.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부지급처분을 받았다. 이에 소를 제기하였으나 원심은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유족들(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의 개념, 보험급여의 지급요건 및 이 사건 조항 전체의 내용과 구조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산재보험법 제3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업무상의 재해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고 이는 보험급여의 지급요건으로서 이를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서 증명하여야 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입법자가 이 사건 조항 단서 규정을 통하여 상당인과관계 증명책임의 전환과 같이 산재보험제도 운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항의 변경까지 의도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고 판시한 것이다.

 

나. 선정 이유

 

대법관 4인이 입법자의 의사는 업무상 재해에서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책임을 전환해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상대방(회사)이 증명하도록 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기존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내었음에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 판례 법리를 고수하였다. 의학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업무상 질병에서의 의학적 인과관계 규명을 노동자 개인의 입증책임 부담으로 본 것은 실질적으로 입증상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으로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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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6. 매년 한국사회의 인권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한국인권보고대회>에서 ‘2021년 디딤돌ㆍ걸림돌 판결 선정 결과 보고’ 시간을 가졌다. [출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3. 디딤돌에 선정되지 못하였으나 의미 있는 판결

 

가. 복수 노조 중 어느 한 노동조합이 설립될 당시부터 주체성과 자주성 등의 실질적 요건을 흠결한 경우 다른 노동조합은 해당 노동조합의 설립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의 제기가 가능하고, 노동조합이 주체성과 자주성 등을 흠결한 경우, 이러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1. 02. 25. 선고 2017다51610 판결).

 

이 판결은 복수 노동조합 설립이 전면적으로 허용되고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적용되고 있는 현행 노동조합법 하에서, 설립 및 운영에 있어 노동조합으로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어용노조가 교섭대표 노동조합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하여 제동을 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원청의 사무실이나 공장 외의 장소에서 근무하더라도 업무수행 방식이 원청 소속 근로자들의 업무와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실질적으로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면, 근로자파견 관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한 서울고등법원 판결(서울고등법원 2021. 3. 26. 선고 2019나2050572 판결).

 

이 판결은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원청 근로자들과 동일 장소에서 근무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근로자파견 관계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근로자파견의 인정 범위를 확장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다. 조합원들로 하여금 합리적인 이유 없이 무쟁의 장려금을 지급받을 수 없게 한 것은 불이익취급 또는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1. 8. 19. 선고 2019다200386 판결).

 

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하여 사용자가 복수 노동조합 중 A노동조합의 약체화를 꾀하기 위하여 그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전제조건을 제안하고 이를 고수하는 반면, 다른 노동조합 B는 그 전제조건을 받아들여 단체교섭을 타결함으로써 A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을 결렬케 한 경우, 그와 같은 전제조건이 합리적·합목적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경우와 같이 다른 복수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조작하여 해당 노동조합 또는 그 조합원의 불이익을 초래하였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사용자의 중립유지의무 위반으로서 해당 노동조합에 대한 불이익취급의 부당노동행위 내지는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한다고 확인하였다.

 

라. 징계절차에 회부된 단계에서 그 사실을 회사 게시판에 게시한 행위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행위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1. 8. 26. 선고 2021도6416 판결).

 

이 판결은 징계회부 사실 자체는 공지할 만한 일이 아니고, 징계 의결이 있기 전에 단지 징계절차에 회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피해자에게 일응 징계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사실이 공개되는 경우 피해자가 입게 되는 피해의 정도가 적지 않으므로 회사가 게시판에 징계절차 회부 사실을 게시한 행위는 명예훼손죄의 위법성조각사유인 공공의 이익에 해당하지 않아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

 

4. 걸림돌에 선정되지 않았으나 문제가 있는 판결

 

가. 선박건조 사내도급이 파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부산고등법원 2021. 1. 13. 선고 2020나50822 판결).

 

이 판결은 근로자들(원고들)이 선박건조 및 수리ㆍ판매를 하는 원청회사의 협력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①원청회사(피고)의 선박 건조 작업 중 사상업무(용접표면을 매끄럽고 깔끔하게 하여 도장을 용이하게 하는 작업), 취부업무(정확한 용접을 위해 블록을 올바른 위치에 배열한 후 이를 고정하기 위한 가용접 작업)를 수행하였음에도 원청회사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인 원고들에 대하여 직ㆍ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상당한 지휘ㆍ명령을 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②원청회사 소속 근로자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선박의 여러 블록을 분담하여 공동으로 하나의 선박을 건조하는 작업을 하였음에도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인 원고들이 원청회사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협력업체가 ③근로자 선발, 근로자 수,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였고, ④도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인원 등을 구비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협력업체 근로자들(원고들)이 선박건조 및 수리ㆍ판매하는 원청회사의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파견법상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에게 실질적인 지휘ㆍ감독을 행사하였다고 볼 여지가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도급인의 지시권으로 해석하여 도급과 파견의 법리를 오해하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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