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10] 문화의 공간이자 정치의 공간, 광장을 열어라 / 박한희

by 철폐연대 posted Oct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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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문화의 공간이자 정치의 공간, 광장을 열어라

- 광화문 광장 집회·시위 불허에 대해 -

 

 

박한희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지난 9월 24일 3만 5,000명이 함께한 기후정의행진이 개최되었다. 기후위기의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적 불평등이 초래하는 차별적 영향의 문제점을 알리며 기후정의를 위한 체제변환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서울시청 앞에서의 본 집회 후 이어진 약 4km의 행진에 참여하며 광화문 광장 옆을 지날 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서울시의 위헌적 행정이 아니라면 지금의 이 집회와 행진이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 재개장과 집회·시위 불허

 

지난 8월 6일, 긴 공사 끝에 광화문 광장이 재개장했다. 기존의 면적보다 2.1배 커지고 폭도 더 넓어져 수많은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런데 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면서 서울시는 시민들이 모이고 말하는 권리는 제한하겠다는 모순된 입장을 보였다. 조례에 규정된 광화문 광장의 조성 목적이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이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이 있는 집회·시위는 원천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심지어 서울시는 ‘문화제’로 신고된 행사여도 집회·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사전에 걸러내겠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지금까지도 광화문 광장은 조례에 따라 허가제로 규정되어 있었지만 문화제 형식으로 신고된 집회는 문제없이 개최되어 왔는데, 그것조차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울시의 방침은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가 낸 광화문 광장 사용 신청에 대해서 서울시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단지 구두로만 다른 행사가 있어서 어렵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조직위원회가 규탄 기자회견을 했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서울시는 문서를 통해 광장 사용 가능 여부에 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들이 밝힌 집회·시위 불허 방침이 스스로도 모순된다는 것을 알기에 보인 비겁한 행정으로 결국 기후정의행진은 광화문 광장에서는 개최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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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7. 924 기후정의행진 광화문 광장 및 도로 불허 규탄 기자회견. [출처: 문화연대]

 

 

서울시가 이렇게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시위를 불허하겠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서울시가 내세우는 이유는 ‘공유재산법’과 ‘서울특별시 광화문 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이다. 공유재산법 제6조는 “누구든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공유재산을 사용하거나 수익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 법을 근거로 제정된 서울시 조례는 광장 사용을 시장이 허가/불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 이렇게 법과 조례에 따른 방침이니 문제가 없다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집회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한 최상위 규범인 헌법이 있기 때문이다.

 

집회 장소는 항의의 대상과 분리될 수 없다

 

헌법 제21조는 집회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는 시민들이 모이고 말하는 집회·시위가 민주사회에서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정치적 의견을 낼 수 없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집회의 자유는 개인의 자유권이자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기본권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회의 자유에서 중요한 것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든 집회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특히 집회의 장소는 집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집회가 개최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집회는 국가, 지자체 등 권력기관의 인권침해 등 위법·부당한 행위를 규탄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규탄의 대상 또는 의견을 전달해야 하는 기관 앞에서 집회는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도 듣지 않는 집회는 그 의미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집회의 목적·내용과 집회의 장소는 일반적으로 밀접한 내적인 연관관계에 있기 때문에, 집회의 장소에 대한 선택이 집회의 성과를 결정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집회장소가 바로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따라서 집회의 자유는 다른 법익의 보호를 위하여 정당화되지 않는 한, 집회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금지한다.” (헌법재판소 2003. 10. 30. 선고 2000헌바67 등 결정)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국회의사당, 법원 인근에서의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1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서도 반복되었다. 그리고 법원 역시 같은 취지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를 금지한 경찰의 조치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통령도 국회도 그 누구도 자의적으로 특정 장소에서의 집회를 절대 금지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헌법상 집회의 자유가 갖는 의미이며 모든 이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다. 당연히 서울시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고, 서울시의 조례와 방침은 위헌·위법한 행정이라 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써 광장을 열어라

 

사실 광장에서의 집회·시위를 막고 있는 지자체는 서울시만이 아니다. 인천시는 2019년 인천시청 앞에 광장을 조성하며 ‘인천애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그러나 조례를 통해 인천애뜰 잔디마당에서의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하였다. 허가·불허가 대상으로 한 광화문 광장 조례를 넘는 그 자체로 위헌적인 조례를 만든 것이다. 나아가 대구시의 경우는 조례를 통한 구체적 근거도 없이 대구시청 앞에서 집회는 물론 1인 시위까지 금지하고 이를 막고자 청원경찰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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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1. 대구시의 집회 및 1인 시위 금지 조치에 대해

지역 인권시민단체들은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출처: 뉴스민]

 

 

이러한 지자체들의 조치는 헌법의 명문과 달리 우리 사회의 집회의 자유가 처한 현실을 여전히 드러낸다. 집회는 여전히 불온하고 금지해야 할 것, 시민들이 모여서 예술을 즐기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권력에 대항해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이 여전히 집회의 자유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그렇기에 모두를 위한 광장을 여는 것은 더 나은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진정한 민주사회의 실현을 위해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라 할 것이다.

 

이미 시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광장을 열은 바 있다. 2009년 서울시가 역시 조례를 근거로 서울광장에서의 추모 집회를 불허하자 ‘광장조례개정캠페인단’이 꾸려졌고, 주민 발의 등 조례 개정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는 기존의 허가제에서 신고만 하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신고제로 바뀌었고, 성별·장애·정치적 이념·종교 등을 이유로 광장 사용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규정되었다. 비록 이렇게 조례가 개정된 이후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승인 지연 등 차별적 행정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시민들의 힘으로 모두의 광장을 연 성과는 분명히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번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시위를 불허하는 서울시의 방침 역시 결코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공권력감시대응팀과 문화연대를 비롯한 시민인권단체들은 가칭 ‘광화문 광장 집회의 권리 쟁취 공동행동’을 조직 중에 있다. 공동행동을 통해 서울시 방침의 위헌·위법성을 드러내고 시민이 광장의 소비자가 아닌 광장 정치, 민주주의 주체로 서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질 예정이다.

 

광장에서 문화생활과 여가를 즐기고, 때로는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고 표출하는 것, 이 모든 일들이 일상이자 권리로서 보장되는 사회, 이를 위한 공동행동에 많은 이들의 동참을 바란다. 동시에 서울시가 지금이라도 헌법에 반하는 집회·시위 불허 방침을 철회하고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서의 광화문 광장이 갖는 의미를 진지하게 고찰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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