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1703] 특수고용으로 위장된 제화노동, 사장님은 노동자! / 제화지부 인터뷰

by 철폐연대 posted Mar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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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으로 위장된 제화노동, 사장님은 노동자!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정기만 지부장, 홍노영 조합원 인터뷰

인터뷰‧정리 신순영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수제화 특화사업 홍보를 위해 꾸며진 역사 안은 어디를 봐도 신발이다. 양쪽 벽은 물론 보행로 중간에 마련해놓은 각종 부스에서는 하이힐의 유래며 한국 수제화 산업의 역사, 성수동 제화거리에 둥지를 튼 공방 소개에 수제화 제작 체험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제화지부장으로 활동하느라 열일곱 살 때부터 생업으로 삼아온 구두 일을 접고 두고,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정기만 지부장을 만났다. 구두로 도배하다시피 한 성수역사를 나와 함께 인터뷰 할 홍노영 조합원이 있는 공장으로 향하는 길, 퇴근시간 이후 어둠에 싸인 수제화 골목은 을씨년스럽다.

 

 

‘도급계약’ 체결한 제화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

 

지난 1월 25일 서울고등법원은 홍노영 조합원을 비롯한 9명의 제화지부 조합원들이 제기한 퇴직금 지급 소송에 대해, 주식회사 탠디(Tandy)의 항소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2월 23일, 도급계약의 강제성과 형식성을 지적하며 제화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과 같은 맥락이다.

 

재판부는 주식회사 탠디(Tandy)의 “원고들은 피고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수급인들이었을 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피고는 원고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 업무 내용과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 여부 △ 사용자의 근무시간‧장소 지정과 구속 여부 △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소유 및 제3자 고용 등 독립적 사업 영위 가능성 △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 창출과 손실 초래 등 위험 부담 △ 보수의 성격과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여부 △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전속성 유무 △ 사회보장제도 관련 근로자 지위 인정 여부 등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통해 퇴직금 지급 의무가 있음을 판시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측이 도급계약을 주장하며 제시한 작업장임대료와 설비이용료 기준,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누락, 4대 보험 미가입 등에 대해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할 여지를 충분히 인정하고 근로자성 판단 여부에 있어 중요한 고려요소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연매출이 3천 억 원에 이른다는, 백화점 구두 업체 매출 1위 탠디를 통해 제화노동자의 노동과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1 홍노영 조합원(좌)과 정기만 지부장 [출처 철폐연대].JPG

홍노영 조합원(좌)과 정기만 지부장 [출처: 철폐연대]

 

사장님이 된 제화노동자,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다

 

제화노동자들은 2000년대 이전까지는 ‘그냥 노동자’였다. 하청을 받아 구두 한 켤레 당 공임을 받는 ‘개수임금제’가 일반적이었지만 평균 150만 원 안팎의 퇴직(위로)금이 관례적으로 지급됐다. 각종 유기용제 중독이나 근골격계 질환 등이 빈발하고 장시간 노동이 일상인 열악한 조건이지만, 수십 년 갈고 닦은 손재주로 열심히 일하면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할 만 직업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변화가 찾아왔다. 2000년 초 구두 원청업체 소다와 탠디가 제화노동자들에게 개인사업자 등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세금을 줄이는데 협조해달라는 명목, 제화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하지만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일감을 주지 않았다. 마구잡이 사업자등록 강요에 대해 어떠한 제약도 따르지 않았다. 원청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며 이윤만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전략은 업계 전반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당시 제화노동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몰고 올 파장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사장님’이 되었고 단가를 후려치는 불공정한 도급계약이 관행이 됐다. 이름뿐인 사장이 되어 개수임금제로 일하며 더욱 극심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사회보장도 없이, 제화노동자들은 제도권 밖으로 내몰렸다. 원청의 ‘협조 요청’은 왜곡된 제도로 현장에 정착됐고,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탠디왕국’ 노동자들의 각성

 

탠디는 백화점 구두업체 매출 1위의 대표적인 국내 제화 브랜드다. 지난해 말 패션 전문 온라인매거진 <패션 인사이트>는 탠디를 “불황 속 절대 강자”로 칭하며 '2016 올해를 빛낸 베스트 브랜드 16'에 꼽았다. “장인정신으로 변함없는 고품질의 신발을 제작하며 쌓인 고객 신뢰도로 경기 불황도 비껴가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하지만 현장은 달랐다. 홍노영 조합원은 2007년 6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서울 낙성대에 위치한 탠디공장에서 일했다. 지금도 구두를 만들고 있는 그의 경력은 40년에 가깝다. 탠디를 선택한 이유는 6,800원인 한 켤레 당 공임, 평균 5,500원 선인 성수동에 비하면 나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탠디는 점차 하청을 확대하며 일감을 줄이고 있었고, ‘낙성대 탠디왕국’이라고 부를 만큼 사장의 횡포가 일상이었다. 급증하는 매출에도 일하는 작업 현장에는 정수기 대신 약수가 제공됐고, 사장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현장을 돌며 막말을 일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15년을 근무한 동료가 간암 판정을 받았다. 일을 할 수 없어 바로 퇴사하게 되면서 사장에게 2천만 원을 요구했다. 어차피 퇴직금은 없는 걸로 알고 있으니 치료비라도 달라고 한 건데, 사장은 2백만 원을 주고는 온 공장을 돌아다니며 엄청 욕을 해댔다. 그 역시 한 집안의 가장인데,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 된 걸 보니 보기가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싶었다.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까 퇴직금도 4대 보험도 신경 못 쓰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그런 일이 닥치는 걸 보니 덜컥 불안해졌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무런 사회보장도 없이 개수임금에 목숨 걸고 일하다가 건강을 잃고 일터에서 물러나면 그대로 끝, ‘구두장이’의 현실이 비참하게 다가왔다. 원치 않는 사장으로, 권리를 빼앗긴 특수고용노동자로 살아온 17년, 어느새 당연해져버린 현실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화지부와 함께 소송단을 모으는 데에 거의 2년이 걸렸고, 이들이 결국 ‘노동자’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경쟁과 불안정의 악순환, 제화노동자의 삶과 노동

 

“제일 불쌍한 게 제화노동자다. 건설일 해보니 여기는 사람 사는 데구나 싶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구두 만드는 현장에서 일할 수 없어 건설일용직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정기만 지부장의 말이다. 탠디 소송의 목적은 단지 퇴직금만은 아니었다. 2000년 이후 몰락을 거듭해 온 ‘성수동 바닥’을 뜯어고치고 잃어버린 권리와 삶을 되찾고 싶어 시작했다. 선례를 만들어 더 많은 제화노동자들과 함께하고픈 바람을 담은 싸움이기도 하다. 개수임금제가 강요하는 경쟁은 제화노동자들을 갈수록 피폐하게 만들어 왔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된 이후의 공임은 오른 물가를 감안하면 오히려 떨어졌다.

 

하청업체가 100% 제작해 납품하는 수제화 한 켤레 가격에는 원청업체 이윤과 백화점 수수료(통상 판매가의 40%)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하청업체로 배분되는 나머지 몫에서 재료비와 임대료, 업주의 몫 등을 제외하고 나면, 갑피(바닥창을 뺀 가죽 부분을 디자인에 맞춰 자르고 박음질해서 붙이는 공정)와 저부(갑피를 바닥창에 붙이고 밑창·굽·깔창 작업까지 해 구두를 완성하는 공정) 작업을 담당하는 제화노동자 2인의 인건비는 1만 원 남짓 수준이다. 40년 일한 제화노동자의 시급은 1만 원이 될까 말까다. 중국산 신발의 물량 공세와 원청의 단가 후려치기는 경쟁을 가속화하고 그래서 제화노동자들은 더욱 개별화된다. 일감이 넘치는 성수기에는 밥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사우나에서 쪽잠을 자며 일에 매달리고, 비수기에는 경마니 경륜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제화노동자들 절반은 아마 이혼했을 거다. 온전하게 가정이 유지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성수동 고시원의 절반은 제화노동자들이 살고 있다고 보면 맞을 거다.”

수십 년 함께 일해 온 구두장이 동료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홍노영 조합원의 탄식 섞인 말이다. 성수동에서 일하는 5천여 명의 제화노동자 중 제화지부 조합원은 40여 명, 정기만 지부장이 막내다. 악순환 속에서 제화노동자들은 늙어갔고 이제는 멈추고 싶지만, 여전히 절대다수는 현실의 질곡에 빠져있다. 수십 년 한 우물을 판 제화노동자들의 기술과 역량은 ‘장인급’이지만 제화업계와 우리 사회는 물론, 제화노동자 스스로도 자신의 삶과 노동을 돌보는 데에 무관심했다.

 

 

변화하는 성수동, 40년 구두장인의 꿈은 ‘노동자’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9년 제화지부는 성수동 제화업체와 함께, 노사발전재단의 국비 지원을 받아 제화기능훈련원의 문을 열었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에서 제화노동자로 돌아온 故 이해삼 동지와 함께 벌인 일이었다. 각자 일에만 골몰하는 제화노동자들이 모여 함께 후진을 양성하고 이를 통해 제화업계를 합리화하는 거점으로 구상되고 운영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노사발전재단에서 고용노동부, 2014년부터는 서울시로 이관된 제화기능훈련원에 대한 지원은 갈수록 축소됐고, 수백 만 원에 달하는 공간 임대료와 상근인력 인건비를 제화지부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더는 감당할 수 없어 지난해 문을 닫았다.

 

최근 몇 년 간 서울시와 성동구는 성수동을 ‘한국의 밀라노’로 만들겠다며 특화사업을 벌였다. 수제화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고, 고급 제화인력을 양성하고 구두제작 기술을 고도화하며, 수제화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 관광코스를 개발하여 문화관광 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 아래 수제화 공동판매장 확대 설치, 수제화 특화거리 조성, 구두테마공원 조성, 성수디자인위크 운영, 슈슈마켓 운영, 구두데이(9ㆍ2데이)행사 개최, 구두테마 관광코스 개발, 수제화 교육을 통한 전문인력 양성 등의 주요 추진사업이 정해졌다.

 

그러나 제화노동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달갑지 않다. 인근 서울숲 개발사업과 맞물려 성수동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강남에서 넘어온 이들이 올리는 빌딩이 늘어간다. 건물은 비어있는데도 하루아침에 공장문을 닫고 쫓겨나는 영세 사장이 늘고 있다. 제화노동자들의 상황도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일하는 이들의 삶이 고려되지 않은 보여주기식 특화사업에 오히려 박탈감을 느끼는 상황이다.

 

제화노동자들의 바람은 거창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면 서운하지 않을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고, 그래서 일과 삶의 균형이 유지되는 일상이면 족하다. 그에 더해 제화노동의 명맥이 젊은 세대로 이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결국 수십 년 구두를 만들어 온 이들의 바람은 ‘그냥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홍노영 조합원은 몇 번이나 반복했다. “크게 바라는 건 없지, 그냥 15년 전처럼만 되면 좋겠어.”

 

 

특수고용으로 위장된 제화노동, 사장님은 노동자!_신순영-질라라비201703.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