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12]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및 권리보장법 이해하기 / 변재원

by 철폐연대 posted Dec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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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및 권리보장법 이해하기

 

변재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배경 및 내용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간다. 2020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되었다. 12월 10일 10시, 국회 소통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정의당 장혜영 의원을 비롯하여 58명의 의원(9일 15시 기준)이 공동으로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하 ‘탈시설지원법’)에 대한 입법발의 기자회견을 엶으로써 한국 사회의 탈시설 의제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장애인의 시설 수용을 문제의식 없이 당연하게 여겨 왔다. 무능한 국가는 민간 시설에 정부 예산을 뿌리는 것으로 국가 책임을 대신했으며, 장애인 거주시설은 국가가 뿌려 놓은 예산을 토대로 끊임없이 성장했다. 집에서 장애인을 돌볼 수 없었던 가족들은 삼시 세끼 밥이나 잘 먹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유일한 선택지인 시설로 가족을 떠밀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국민들 시야에서 장애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누구도 장애인과 그들이 모여 있는 시설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의 삶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나 평등이 보장되지 않았다.감호소처럼 엄격한 규율과 통제가 존재하며, 자신의 이름과 역사를 상실한 채 살아가야 한다. 하루하루 누군가 정해 놓은 일과에 따라야 하며, 단체 생활 속에 개인별 욕구는 고려되지 않는다. 사회참여와 사회통합과는 거리가 멀고, 어쩌다 한 번 외출이 전부이며, 누군가는 죽어서야 그곳에서 나올 수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인 로버트 마틴 의원은 “발달장애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유로워야 한다. 1등급 시민도, 낮은 시민도 없다.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시설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뉴질랜드는 지난해 모든 시설이 폐쇄됐다”고 말했었다. 이미 뉴질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연합에서는 장애인을 지역사회와 분리하는 시설은 그 자체로 ‘차별’이며 ‘인권침해’라고 규정하고 시설을 폐쇄하는 과정을 거쳐 왔다. 또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에서는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며, 특정한 주거 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아니한다.’며,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생활과 통합을 지원하고 지역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분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활동보조를 포함하여, 장애인은 가정 내 지원서비스, 주거지원서비스 및 그 밖의 지역사회지원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명시한 바 있다.

탈시설지원법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법안이 아니다. 장애계의 오랜 탈시설 운동 속에서 국가도 이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예컨대, 2019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에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마련을 권고하였다. 내용에는 ▲탈시설 정책방향과 목표, 추진일정 및 예산 ▲탈시설 전담기구 및 전담부서 설치 ▲지역사회 전환주택 및 지역사회복지서비스 확대 ▲신규 거주시설 설치 제한 등을 담아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과제 42번으로 ‘장애인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이야기하며 ▲탈시설지원센터 설치 ▲자립지원금 지원 ▲임대주택 확충 ▲대구희망원 문제 해결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여전히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행 중인 탈시설 정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세계 인권의 날에 발의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은, 장애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이 거주하는 시설의 인권침해 실태를 적극적으로 조사하여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과 그 운영법인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궁극적으로는 향후 10년 내 모든 장애인 거주시설을 폐쇄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탈시설이 강력한 권리로 작동하기 위한 법 근거의 서막이 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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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0. 장애인권리보장법ㆍ탈시설지원법 제정연대가 여의도 이룸센터 농성장 앞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권리보장법 배경 및 내용

 

장애인권리보장법의 경우에는 발의한 지 아직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법 또한 탈시설지원법과 함께 심사될 것으로 예상한다. 탈시설지원법은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의 방안 등을 모색하였다면,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이 본격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존중받고 살아갈 권리에 관하여 논하였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협력하여 9월 말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의 기틀을 만드는 데 참여하였으며, 그 외에도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안과 최혜영 의원안이 나란히 발의되어 있다. 즉 단일 법률안에 3명의 의원이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실효성 있는 제정은 한국 사회의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을 바꾸는 촉매가 될 것이다. 장애인복지제도 변화의 역사는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인 1981년, 휴지조각 같은 ‘심신장애자복지법’ 제정을 시작으로, 1988년 장애자올림픽 때 치열했던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1989년 ‘장애인복지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1989년 제정된 ‘장애인복지법’은 ‘심신장애자복지법’보다 장애인복지의 내용이 담겨 있는 법으로 평가되었지만, 그 시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시혜와 동정의 잔재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법이었다. 장애인복지제도는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제정 이후 2021년 현재까지 42년간, 차별의 역사요, 배제·격리·소외·거부의 역사였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끊어 내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지난 10여 년간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하였다.

지난한 투쟁 결과,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2021년 8월 2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심의·의결하였다.

그러나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된다는 그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가 예산에 갇혀 버린 ‘가짜’ 폐지로 전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인권리보장법 역시 현 체제의 변화 없이 졸속 입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애계가 염원하였던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지역사회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쟁취하기 위해 장애인의 권리를 기준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시혜와 동정의 떡고물로 주어진 부끄러운 환경을 권리의 환경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토대를 구축하고 변화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복지법 완전 개정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장애계가 이번 법률 제개정을 통해 바라는 내용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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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 시간에도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탈시설지원법, 권리보장법이 아니라 제대로 된 법안 제정을 목표로 국회 맞은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 농성장을 설치하여 약 300일가량 농성을 지속하며 실효성 있는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십 년 넘게 지속되어 온 우리의 투쟁에 청와대와 국회는 진심으로 응답하여야 한다. 허울뿐인 법제정이 되지 않도록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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