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2] 방송작가 최초의 근로감독, 그 이후 / 김한별

by 철폐연대 posted Feb 04,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오늘, 우리의 투쟁

 

 

방송작가 최초의 근로감독, 그 이후

 

김한별 •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지부장

 

 

 

 

지난해 3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방송작가 첫 번째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판정이 나온 것을 시작으로 4월 KBS, MBC, SBS 지상파 본사 3사에 시사교양 보도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이 착수되었다. 장장 8개월에 걸친 대규모 근로감독 이후,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목요일 조사대상의 42%인 152명의 방송작가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았다. 이들 152명과 방송사가 직접 근로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내용의 노동부 시정명령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152명의 작가들 중에서 판정 직후 일터에서 쫓겨난 작가들이 생겼다.

 

5 오늘, 우리의 투쟁 01.jpeg

 

2021.12.22. MBC 뉴스외전 방송작가, 광주MBC 아나운서 근로자지위확인 공동 진정 기자회견 [출처: 방송작가유니온]

 

 

MBC 2시 뉴스 프로그램 <뉴스외전>에서 정규직 기자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 작가들이었다.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하다 지난해 말로 계약 종료를 통보받은 것이다. 사유는 ‘내년 대선과 올림픽으로 결방이 잦아 일급을 제대로 받지 못할 테니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매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 프로그램이었기에 매일 아침 8시경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했다. 정규직들의 업무 지시 아래 아이템 발제와 섭외, 원고 작성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보도국 뉴스에서 작가 재량으로 창작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작가들의 모든 업무 내용도 당연히 사용자가 정할 수밖에 없다.

 

대체 어느 누가 이들을 프리랜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용노동부도 1차 조사 결과로 이 작가들이 ‘근로자성 인정 여지가 높다’고 판정했다. MBC에서 <뉴스외전> 작가들에게 해고 통보를 하기 훨씬 전이다. 이 같은 사실을 통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MBC는 마땅히 근로감독 시정지시를 통해 직접 근로계약을 맺어야 할 작가들을 부당하게 해고한 것이다. MBC는 최종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부당해고를 번복하지 않았다.

해고 당사자 작가는 당장 다음 날 MBC로 출근을 해야 했지만 용기 내 서울고용노동청 앞 기자회견장에 섰다. “MBC에 수많은 전태일들이 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방송사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 또 참으면 프리랜서라는 명목 하에 작가들은 영원히 50년 전 전태일일 수밖에 없다”며 근로자지위확인 진정을 낸 취지를 밝혔고, 현재 추가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내가 노동 이슈를 다루어야 하는 방송 기자나 피디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30년 넘게 프리랜서로 여겨졌던 직군에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임을 인정받는 첫 사례가 생겼다. 한 직군만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세 기업에서 한꺼번에 400여 명의 프리랜서들이 근로자성을 다투는 근로감독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아 마땅히 근로계약을 맺어야 할 근로자가 부당하게 해고당했다. 이 정도의 의미 있는 사건에 대해 대체 왜 방송사는 보도하지 않을까. 이번 근로감독이 착수되고 진행되면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단 한 곳의 방송사에서도 보도되지 않았다. 내부 노동 문제에 입 막고 귀 닫을 수 있는 기업을 감히 언론이라 말할 수 있을까.

 

MBC, SBS에서는 근로감독 결과가 나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작가들에게 근로감독 시정명령 관련 아무런 얘기가 없다. KBS에서는 작가들과 근로계약을 준비 중이지만 작가들에게 향후 근로조건도 전혀 제시하지 않은 채 근로계약 프리랜서계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등 온갖 꼼수들이 나오고 있다. 프리랜서 작가들의 고정석도 없애고 있다. 모든 방송사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똑같은 패턴이다.

 

방송작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인정 첫 판정을 받아낸 MBC <뉴스투데이>의 두 작가는 아직도 MBC와 행정소송으로 다투고 있다. KBS전주의 작가도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와 근로자성을 인정받았으나 KBS의 중노위 재심신청으로 또다시 법적 다툼을 이어가게 되었다.

 

5 오늘, 우리의 투쟁 02.jpg

 

2022.1.18. KBS전주 지노위 판결 승복 및 해고 작가 복직 촉구 기자회견 [출처: 방송작가유니온]

 

지난해 말 MBC에서 이례적인 흑자로 방송작가를 비롯한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괄 100만 원을 지급했다. 사내 프리랜서 스태프들이 일괄적인 추가 성과급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BS 또한 마찬가지로 지난해 흑자를 냈다. 흑자를 낸 방송사가 해야 할 일은 프리랜서 성과급 100만 원으로 퉁칠 것이 아니라, 보다 안정적인 고용형태로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고 임금 지급 기준을 만들고 허울뿐인 계약서를 손보는 일이다. 흑자라는 이 수치는 방송작가 노동 처우개선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렇게 방송사와 싸우는 작가들의 투쟁은 근로감독이 끝난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국회도, 정부기관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소불위 방송사에 대응할 길은 오직 사회적 압박뿐이다. 언제까지 방송사가 방송 비정규직 문제를 불명예스러운 송사와 눈 가리기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자생적 힘을 모두 잃어버린 방송사에 대항해 싸우는 길이 멀고 지난하지만,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끝까지 투쟁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