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7] 가족구성권 3법 발의의 의미 / 이호림

by 철폐연대 posted Jul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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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다양한 가족들의 행복을 늘리는 여정을 시작하며

: 가족구성권 3법 발의의 의미

 

 

이호림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

 

 

 

혐오세력이 흔히 말하지요?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말입니다. 남자 며느리면 어떻고 여자 사위면 어떻습니까. 어서 이 가족구성권 3법이 통과되어서 남자 며느리든 여자 사위든, 그저 가족으로서 온전히 환대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2023년 5월 31일 가족구성권 3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하늘(성소수자 부모모임 대표)

 

지난 5월 31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는 ‘가족구성권 3법’의 발의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50여 명의 참여자들은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길벗체’로 쓰인 세 가지 법안의 이름을 담은 피켓을 들었고, 발의를 축하하며 무지개 깃발을 하늘로 날렸다. 기자회견에서 모두가 크게 환호했던 순간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하늘 님이 발언을 하던 때였다. 성소수자 혐오 선동 세력은 마치 그 단어만으로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반대를 규합할 수 있을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남자 며느리면 어떻고 여자 사위면 어떻냐”는 하늘 님의 발언에 모두 통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왜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가 문제일까? 아니, 애초에 가족 관계와 관련한 호칭들은 왜 성별이분법적일까? 가족과 관련한 모든 권리와 의무, 혜택들은 반드시 법적 가족에게만 부여되어야 할까? 법적인 가족이 아니더라도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권리들을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난임 ‘부부’만이 아니라 비혼 여성들도 임신과 출산을 원한다면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혼인제도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임신과 출산, 양육과 돌봄에 대한 낙인을 없애야 하는 때가 아닐까?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대표발의로 동시 발의된 가족구성권 3법은 지금 한국의 가족제도에 새롭지만 오래된 질문을 던지며, 더 많은 사람들이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족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그동안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가족제도를 바꾸기 위한 투쟁의 흐름 위에 놓여 있다. 동성동본금혼제도의 폐지에서 호주제 폐지 운동까지, 한국의 가족제도는 다양한 투쟁과 도전을 통해 평등을 향한 방향으로 변모를 거듭해 왔다. 가족구성권 3법은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차별적, 배제적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한 법안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존엄하고 평등하게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정치적 제안이다.

 

 

7. 본문사진1.jpg

2023.05.31. 가족구성권 3법 발의 기자회견. [출처: 혼인평등연대]

 

 

혈연 중심, 이성애 중심적인 한국 가족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흐름은 올해 초부터 법원에서, 국회에서 이미 만들어져 왔다. 올해 있었던 동성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 사건 항소심 판결과 생활동반자법의 최초 발의를 통해 한국 가족제도의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논의의 장이 확장되어 온 것이다. 지난 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평등의 원칙을 언급하며 동성 배우자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의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성의 사실혼 배우자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면, 이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동성의 배우자에게 같은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는 취지였다. 법원은 사건의 쟁점 범위 내에서 동성 배우자와 이성의 사실혼 배우자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결국 이는 현재 동성 간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인 부부가 될 수 없을 뿐인 동성 부부들의 관계를 “혼인의 실질과 유사한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인 이성의 사실혼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동성 부부가 혼인제도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현재의 제도적 차별의 변화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4월 26일에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대표발의로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진선미 의원이 법안을 준비했으나 무산된 이후 9년 만에 이루어진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생활동반자법안은 각 법안마다 세부적인 제도의 설계 측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가족이라는 법적인 신분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함께 돌보고 살아가는 관계에 필요한 일정 수준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는 제도적 대안이다. 한국에서 논의되어 온 생활동반자법안은 그 초기부터 성애적 관계만이 아니라 친구와 같은 비혈연·비성애적 관계도 포괄하는 방식으로 제안되어 왔다는 점에서 가족의 안과 밖을 새롭게 사유하게 한다.

 

동성혼 법제화로 무너지는 나라는 없습니다. 불행해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행복해지는 사람이 늘어날 뿐입니다. … 그래서 저희 둘의 관계가, 그리고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동성 부부들의 관계가 공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그래서 배우자로서 서로의 인생을 법적으로도 책임질 수 있기를, 그래서 누구나 사랑함에 있어 평등한 나라가 되기를, 그런 날이 너무 늦지 않게,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 2023년 5월 31일 가족구성권 3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김용민(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사건 소송 당사자)

 

이번 가족구성권 3법의 발의는 특히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큰 의미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발의된 동성혼 법제화를 실현하기 위한 혼인평등법을 포함한 가족구성권 3법은 이미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의 삶을 국가가 공적으로 승인하고, 그에 걸맞은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넘어 성소수자를 평등한 시민으로 대우하기 변화의 상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들의 관계를 부부로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동성 부부들, 원가족이 아닌 친구, 연인과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이 있다. 비혼 여성의 보조생식술 접근에 보수적인 의료적 관행과 이에 대한 국가의 명확한 지원이 없는 현실에서도 아이를 낳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도 있다. 이미 부부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들은 제도적 차별과 배제, 공백으로 인해 일상의 크고 작은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경험하고,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던 ‘부산 여고동창생 사건’1)처럼 때론 아주 큰 상실과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나아가, 혼인평등은 개별적인 권리와 의무, 혜택에 대한 법적 보호만의 문제를 넘어, 성소수자의 삶과 관계에 대한 공적인 승인이라는 존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극적으로 보여 주는 연구결과도 있다. 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한 국가 간 비교를 통해 동성혼 법제화와 청소년의 자살률 감소의 연관성을 파악한 결과, 동성혼이 법제화된 18개 국가에서 동성혼 법제화 이후 청소년의 자살률이 10만 명당 1.191명으로 법제화 당시에 비해 17.9% 감소한 것이다.2) 동성혼이 법제화된다고 해서 바로 결혼이 가능하지 않은 청소년 인구에서 정신건강이 개선되는 양상을 보인 것은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국가가 차별을 제거하고 성소수자 평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중대한 선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별 이분법에 부합하는 정체성과 관계가 아니라서, 비규범적인 섹슈얼리티를 가진 이들이라서 동등한 시민권을 누릴 자격이 없는 존재라고 여겨졌던 성소수자들의 동등한 시민권 쟁취를 표상하는 중요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7. 본문사진2.png

모두의 결혼, 사랑이 이길 때까지 캠페인 영상. [출처: 모두의 결혼]

 

 

이러한 변화를 쟁취하는 여정을 만들기 위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혼인평등연대(前 성소수자가족구성권보장을위한네트워크)는 ‘모두의 결혼’ 캠페인을 시작했다. 우리는 한국의 가족제도를 보다 평등하고 성중립적으로 만들기 위해, 혼인과 가족생활의 권리라는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성소수자가 존엄하고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입법과 사법, 대중캠페인을 잇는 다양한 활동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이번 가족구성권 3법의 발의는 그 여정의 출발을 알리는 중요한 진전이기도 했다.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지지하는 이들이 그 길에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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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0년 동거한 여고동창생의 비극적인 죽음”, 연합뉴스, 2013.10.31.

2) Kennedy, A., Genç, M., & Owen, P. D. (2021). The association between same-sex marriage legalization and youth deaths by suicide: a multimethod counterfactual analysis. Journal of Adolescent Health, 68(6), 1176-1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