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12] 이란 마흐사 아미니와 신당역 여성 노동자의 죽음 / 정은희

by 철폐연대 posted Dec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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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이란 마흐사 아미니와 신당역 여성 노동자의 죽음

단 한 명의 여성살해도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정은희 •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여성운동위원회

 

 

 

지난 9월 14일 신당역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동료 남성에게 살해됐다. 이틀 뒤인 9월 16일 이란에서는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에 살해됐다. 그리고 지난 2개월 사이 이란에서는 여성살해에 맞선 페미니스트들의 시위가 혁명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살해된 여성 한 명의 죽음에 모두가 떨쳐 일어난 결과였다.

 

마흐사 아미니는 애초 9월 13일 짧은 휴가를 위해 가족과 함께 테헤란을 방문했다가 지하철역에서 ‘나쁜 히잡’을 쓴 혐의로 이란의 ‘도덕 경찰’에 체포됐다. 그가 체포된 지 이틀 만에 경찰은 구금 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입원했다고 밝혔고, 그다음 날에는 그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는 아미니가 의식을 잃은 채 튜브와 모니터링 장비가 부착된 병원 침상에 누워 있는 사진이 나타났고, 사진 속 아미니의 얼굴은 멍들어 부어올라 있었다. 당국은 아미니가 심장 문제 등 지병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유족 측의 변호사에 따르면 그의 사인은 두개골 골절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이란에서는 전국적으로 시위가 촉발됐으며, 이 시위에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과 수많은 노동자계급이 동참해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목숨 건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란혁명 위해 싸운 여성 배반한 호메이니

 

아미니가 경찰에 살해되기 전 이란 여성들은 강제적인 히잡 착용에 립스틱이나 머리스타일, 옷의 색깔로 일상적인 저항을 해 왔고,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는 ‘나쁜 히잡’ 시위를 했다. 그리고 아미니도 그러한 여성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 여성들에 대해 이란의 악명 높은 도덕 경찰은 구타하고 체포하면서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했다. 하지만 이란 정권의 여성 억압은 단지 히잡 강제 착용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이란의 공식 결혼 연령은 13세이며, 아버지의 허락이 있으면 더 어린 나이에도 결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란에서는 2021년 3월까지 한 해 동안 결혼한 10~14세 소녀의 수는 3만 1,379명에 달했다. 또 남성은 통지만으로도 이혼할 수 있지만, 여성은 이혼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전환요법은 만연해 있고, 이들은 채찍에서 사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처벌을 받고 있다. 임신중지의 권리 역시 사실상 전면 금지돼 있다.

 

현재의 이슬람 정권은 1979년 이란혁명을 도둑질해 들어선 정권이다. 앞서 혁명 전 미국과 영국을 등에 업은 쿠데타로 복귀한 팔레비 정권은 친미노선 속에서 자본주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며 노동자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했지만, 도시빈민과 노동자계급이 앞장선 이란혁명에 쫓겨났다. 당시 혁명에는 민족주의자, 자유주의자뿐 아니라 사회주의자 등 다양한 정치 세력이 합세했다. 그러나 기층민중에 주도력을 가지고 있던 세력은 호메이니를 필두로 근본주의의 이슬람주의자들이었고, 이들은 수많은 노동자민중이 피 흘려 이룩한 혁명을 그들 자신의 혁명으로 변질시켰다.

 

당시 이란에서는 수많은 여성도 팔레비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거리에서 싸웠고 더 나은 사회를 갈구했다. 하지만 이후 집권한 호메이니는 히잡 착용 의무화를 비롯해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기 시작했다. 이에 여성들은 1979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 테헤란에서 시위를 벌이고 호메이니 집권 뒤 첫 번째로 공개적인 저항을 감행했다. 여성들은 “우리의 혁명에 후퇴는 없다”, “평등, 평등, 차도르도 히잡도 아니다”를 외치며 시위했다. 이란혁명을 끌어 올린 수많은 이들은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이슬람주의 정권을 원치는 않았다. 그러나 거리는 잔인하게 진압됐고, 주요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은 여성들을 지지하지 않았다. 혁명 세력 중 가장 규모가 큰 좌파였던 스탈린주의 투데당(민중당)도 여성의 권리는 부차화하며 반혁명의 위험을 종식하고 제국주의를 먼저 철폐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슬람 정권에 협조했다. 그러나 호메이니 정권은 미국을 등에 업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이 1980년 이란을 침공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투데당을 비롯한 경쟁 세력을 불법화하고 숙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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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삶, 자유'를 위한 이란 민중의 봉기를 지지하는 예술 작업. [출처: Hourd]

 

 

이란식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세계

 

이러한 호메이니 정권은 미국에 맞섰을 뿐 이란식 자본주의를 추구하며 노동자민중을 착취했다. 특히 이라크와의 전쟁 후 취임한 라프산자니 정권은 여성에 대한 억압은 다소 완화했더라도 정부 규모 축소와 민영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삶의 질은 더욱 악화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 중 하나는 기층여성이었다. 그 결과, 통계를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최근 연도인 2016년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은 14.9%에 지나지 않았으며, 일을 하더라도 남성 임금의 18%밖에 벌지 못하고, 다수는 이슬람주의 샤리아법에 따라 경제적으로 남성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가 공고화됐다. 즉 이란의 신정체제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제하지만, 그 속성은 여성을 억압하며 동시에 그들의 노동력을 심화 착취하는 모순을 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세계 여성노동계급이 겪어온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 전 세계 여성의 3분의 1이 평생 한 번 이상의 폭력/성폭력을 당하며, 남성은 1달러를 벌 때 여성은 77센트를 번다.

 

이러한 여성 억압과 착취는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비롯된 문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부장제는 유산계급의 이윤 창출을 위해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기제로 기능한다. 이에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는 가부장적 성적 위계에 기초해 여성의 노동을 가치 절하하고 성별분업을 구조화하여 가정에서는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무급 노동자로, 일터에서는 저임금 노동자로 여성을 착취했다. 또 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화하는 데서 나아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상품화하여 여성 억압을 심화했다. 따라서 여성 억압과 착취를 철폐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변혁운동을 우회할 수 없으며, 이는 이 체제가 억압하는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투쟁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이란, 혁명으로 향하는 전환점

 

현재 이란 시위는 혁명으로 향하는 전환점에 서 있다. 영국 기반 반체제 언론 <이란 인터내셔널>은 20일, 지난 2개월 동안 이란 시위대는 정권의 개혁은 불가능하며, 체제의 전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시위는 현재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더욱 격렬하고 빈번해졌으며, 외딴 지역으로도 확산했다. 인구 4,000명 이하의 작은 도시인 머뮤리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으며, 인구 5만의 아바데흐에서는 “우리의 목표는 전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특히 이란 노동자들은 시위 초기부터 파업을 통해 아미니의 죽음과 정권의 탄압이 계급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그들 자신의 힘으로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나섰다. <이란 인터내셔널> 보도에 따르면, 이란 남부에 위치한 정유, 가스, 화학산업 노동자들은 10월 12일 경제투쟁 이슈를 결합해 파업에 돌입한 뒤 10일 이상 파업을 고수했다. 이란 북서부 사난다지 등 코르데스탄 지방 대도시에 위치한 여러 사업장에서도 파업이 일어났다. 지난 11월 13~14일에는 이란교사노조연합조정위원회(CCITTA)의 발의에 따라 수많은 학교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이란 최대 자동차 부품 설계 및 제조업체인 크라우즈사의 노동자들도 19일 파업에 돌입했다. 이란에서 세 번째로 큰 국영 이스파한 철강회사 노동자들도 시위에 연대하여 파업을 진행했다. 또한 11월 15일부터는 2019년 시위대 학살 3주기를 계기로 최소 3일간 테헤란, 마슈하드 등 여러 도시에서 파업과 상점 폐쇄 조치가 잇따랐다.

 

현재도 이란 정권은 노동자민중을 학살하며 체제를 비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란의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16일까지 어린이와 청소년 58명을 포함해 최소 402명이 사망했다. 또 학생 524명을 포함해 최소 1만 6,813명이 체포됐다. 13일 이란 정권은 시위자 1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렸고, 추가로 20여 명이 같은 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반정부 시위는 약 150개의 도시와 최소 140개의 대학에서 지속되고 있다. 특히 수많은 학교와 거리에서 소녀와 십대들은 그들의 암울한 현실에 항의하며 다른 미래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히잡을 벗고 출전한 엘나즈 레카비 선수를 비롯해 카타르월드컵에서 부리아 가푸리 선수가 국가 제창을 거부한 것처럼, 혁명운동은 전 민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이란 노동자계급의 항거와 투쟁은 여성해방을 염원하는 세계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단 한 명의 여성살해도 역사적으로 체계화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그 잔혹한 체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염원하는 혁명을 다시 빼앗기지 않고 그들 자신의 혁명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세울 수 있도록 투쟁을 조직하고 나아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을 조직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윤석열 정권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실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 구조는 바로 가부장제 자본주의이고, 가부장 국가의 배후는 자본가계급이다. 그래서 신당역에서 살해된 여성 노동자와 이란 아미니의 죽음은 다르지 않다. 우리 역시 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싸움을 조직해야 할 때다.

 

 

[참고]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212&me_id=10&me_code=30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250&me_id=10&me_code=30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205&me_id=10&me_code=30

https://lefteast.org/the-life-uprising-in-iran-imperialism-and-international-solidarity/

https://www.leftvoice.org/women-life-freedom-strategic-perspectives-on-the-iranian-revolt/

https://borgenproject.org/the-gender-wage-gap-in-iran/

https://mronline.org/2022/10/12/the-main-losers-of-1979-the-creators-of-the-new-revolution-in-i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