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7] 청소년도 ‘집다운 집’에서 살 권리 / 정찬송

by 철폐연대 posted Jul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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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청소년도 ‘집다운 집’에서 살 권리

 

 

정찬송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주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가에서도 사람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법1)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주거가 권리임을 인식하며 살아가기는 어렵다. 집이 재산, 상품으로만 거래되는 사회에서 ‘집다운 집’을 갖는 것은 개인의 능력에 맡겨진다. 이런 사회에서 기본적인 권리로서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힘을 잃는다. 이렇게 상실·박탈된 권리 감각은 으레 사회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가장 먼저,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로 이야기되며, 아직은 보호자라고 여겨지는 비청소년에게 종속된 불완전한 존재로 위치되어진다. 미성숙한 청소년은 권리의 주체로 호명되지 못한다. ‘어른’이 될 때까지 권리를 유예 당한 청소년은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채 청소년의 시기를 견뎌야 한다. ‘부모님 집에 살면서 청소년이 집을 고민할 일이 뭐가 있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이 경험하는 주거 문제는 비청소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고, 때로는 시급성과 심각성이 더 두드러진다.

 

2020년 통계청과 여가부 조사에 따르면 매년 12만 명의 청소년이 가정을 떠나 거리로 나온다. 시설을 이용하지 못/않는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실제 탈가정 청소년의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청소년이 가정을 떠나 거리로 나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신체적·정신적 폭력과 방임, 내 존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집에서 청소년들은 살기 위해 집을 탈출한다. 자유와 존엄을 찾아 집을 탈출한 청소년들에게 어떤 선택지가 주어질까. 공원, 옥상,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 등 거리에서 노숙을 하거나 친구 집, 쉼터와 같은 시설 등에서 머물게 된다. 때로는 몇몇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이들과 돈을 모아 고시원, 월세방을 얻어 같이 생활하기도 한다.

 

청소년에게 쉼터(시설)는 어떤 곳일까? 많은 청소년이 쉼터가 잠시 동안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종국에는 나의 ‘집’이 되기는 어려웠다고 이야기한다. 시설에서 함께 살기 위해 지켜야 하는 다양한 규칙은 개인의 삶과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을 반드시 따라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퇴소해야 하는 구조는 청소년이 시설을 기피하게 만든다. 낯선 이들과 함께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시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기도 어렵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했던가. 청소년이 주체가 될 수 없는 시설의 구조적 한계 속에 청소년은 시설에 자신을 꿰맞추던가, 떠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나일 수 없는 공간이 집일 수 있나요?”라고 되묻던 청소년의 물음이 마음에 남는다.

 

나답게 있을 수 없었던 시설을 떠난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선택지가 많지 않다. 미성년이라 집 계약을 잘 해 주려고 하지 않는다. 미성년에 안정적인 주거도 없으니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당장 돈도 없고, 나이 때문에 집 계약이 어려우니 나이를 묻지 않는 무보증 고시원에 들어가거나 친구들과 돈을 모아 저 보증, 고 월세의 방 하나를 구해 팸을 꾸려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안정적인 일자리도, 사회적 자원도 많지 않은 청소년이 월세와 생활비를 오롯이 감당하며 안정적인 일상을 꾸리기란 쉽지 않다. 월세와 공과금이 밀리기 일쑤여서 집에서 쫓겨나거나 전기, 가스가 끊긴 채 생활한다.

 

주거위기가 단순히 탈가정 청소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 말 안 들을 거면 내 집에서 나가!” 너무 익숙한 말이지 않은가? 최근 본 인기 드라마에서 부모와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는 청소년 자녀가 부모에게 들은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청소년 자녀는 집을 나와 허름한 모텔에서 생활한다. 드라마 전개상 부모와 자녀의 극적 화해 끝에 청소년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생각보다 이런 상황을 경험했다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청소년은 자연스럽게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나의 집이 아니었음을, 언제든 이 집에서 쫓겨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훈육, 화풀이…, 어떤 이유에서 사용되었든 이 말속에 권리로서 보호받고, 주거를 보장받아야 하는 주체로서의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언제든 박탈될 수 있는 권리가 어디 있겠는가. 언제 집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 외에도 집이, ‘집다운 집’이 아닌 경우는 많다. 방문을 절대 닫으면 안 된다거나, 방문 고리가 아예 없다는 집도 있다. 모든 것이 통제당하고 감시당하는 것만 같은 공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을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

 

 

7. 본문사진1.png

2021.04.02. 서울시장 보궐선거 아동·청소년 주거권 정책 요구안 발표.

“탈가정 청소년의 주거이동” 스토리 전시 및 퍼포먼스. [출처: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이제라도 국가와 사회는 청소년의 주거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청소년을 주거권의 주체로 법률에 명시하고, 청소년의 주거위기를 지원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의 「주거기본법」의 주거지원 대상에서 청소년을 포섭할 수 있는 정의를 찾기 어렵다. 「아동복지법」, 「청소년복지지원법」에도 청소년에게 충분한 주거지원을 보장하는 규정을 찾기 어렵다. 최근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지원정책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는 시설 위주의 보호 정책의 연장으로, 시설을 이용하지 못/않는 청소년을 포괄하는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 시설의 이용 여부, 가정과의 단절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청소년이 주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보호종료아동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정책 기조를 ‘주거위기2)를 겪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주거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재수립해야 한다.

 

청소년에게 맞는 주거지원을 하기 위해 청소년의 주거실태를 파악하고 주거지원 정책 수립을 위한 담당 부처를 배치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지원센터가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집을 뿌리 삼아 삶을 꾸리고, 지역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단순히 집만 제공되는 것이 아닌 주거를 기반으로 다양한 삶을 위한 지원이 함께 가야 한다. 금전적 지원, 주거유지서비스, 의료지원, 행정·법률지원, 생활지원, 심리지원, 교육·취업지원 등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지원이 함께 갈 수 있도록 예산과 인력을 필수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청소년 탈시설 권리를 선언하고 탈시설로드맵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현재 청소년 보호는 시설 수용의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청소년이 원가정에서 보호받기 어렵거나, 집을 나오는 순간 시설로 입소 당한다. 시설에 들어가지 않으면 국가의 어떠한 보호도 기대하기 어렵다.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제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통해 “구체적인 탈시설 계획을 통해 단계적으로 시설보호를 폐지하기 위한 적절한 인적, 재정적, 기술적 자원을 할당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시설은 주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청소년 지원정책을 탈시설 기조로 재수립하고 구체적 계획을 세워 실행해야 한다. 이 과정은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주거가 필요한 청소년에게 일시적인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포함하여 청소년의 욕구와 상황에 맞는 주거와 삶을 위한 지원이 적절하게 연결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은 많은 고민과 논의가 따라야 할 것이다. 기존 청소년 지원시설의 역할 재배치 등과 같은 문제도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시설 이외에 청소년 주거를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주거 대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9년부터 서울시에서는 주거유지서비스와 함께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형태의 지원주택을 도입하여 장애, 정신장애, 홈리스, 노인을 대상으로 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일정하고 적정한 주거가 없고, 보호자로부터 방임되었다는 점, 시설 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장애, 정신장애, 홈리스, 노인 등과 청소년의 상황은 비슷하다. 이러한 주거취약 상황에 주목하여 지원주택 대상에 청소년을 포함하여 공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청소년을 지원하다 보면 국가에서 제공하는 주거지원서비스에서 청소년들이 계속 미끄러지는 것을 경험한다. 대표적으로 주거급여가 그렇다. 청소년이 단독으로 주거급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가정폭력 신고 이력, 상담 기록, 통장 거래내역 등을 통한 가족관계 해체 증명, 본인 명의의 임대차 계약서 등이 필요하다. 가족과 어떤 이유로 관계가 단절되었는지 사유서도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가정폭력을 당하더라도 부모를 신고하거나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남겨 두지 못한다. 행위능력이 제한된 미성년의 경우 법적/현실적으로 본인 명의의 임대차 계약도 어렵다. 청소년의 자립 맥락과 현실을 고려하여 지원서비스 신청 절차와 증빙 요건 완화가 너무나 절실하다. 더불어 청소년도 필요에 따라 안정적인 주거를 구할 수 있도록 행위능력을 보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청소년의 특별 대리인이 되어 계약을 조력하거나, 주택 사업을 하는 기관과 신탁 계약을 체결해 청소년에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청소년의 주거 계약을 통제만 하는 것이 아닌 안전한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법적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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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6. 전국동시지방선거 청소년 주거 정책 요구 기자회견.

“모든 청소년이 존엄한 삶을 영위할 ‘집다운 집’을 요구한다!” [출처: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주거권은 인권이다. 인권은 유예될 수 없다. 인권이 나이, 학력, 성별, 인종, 성적 정체성, 종교, 정치적 견해 등의 이유로 누구에게는 적용되고 누구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에게도 주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앞서 구구절절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청소년에게도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함은 그저 사람이기에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청소년에게 보호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청소년에게 어떤 보호,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우리 사회가 듣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통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보호’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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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거기본법 제2조(주거권).

2) (ⅰ) 정해진 거처 없이 거리 생활을 하거나(비정착성), (ⅱ) 쉼터나 타인의 주거와 같은 임시적인 공간에 머물거나(비정규성), (ⅲ) 고시원이나 원룸텔 등 비적정 주거환경에 머물고 있거나(비적정성), (ⅳ) 보호가 필요한 아동 또는 위기 청소년으로 보호를 받았거나, (ⅴ) 보호가 종료된 상황 - 2021년 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 제안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