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202] 불안정노동철폐운동, 20년을 돌아보고 전망을 고민한다 / 철폐연대

by 철폐연대 posted Feb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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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 운동을 생각한다

 

[철폐연대 2022년 사업기조와 방향]

 

불안정노동철폐운동,
20년을 돌아보고 전망을 고민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1. 2022년 사업기조: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의 새로운 전망 마련

 

비정규직 체제 바로보기

 

현 정부 정책하에서 권리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점점 척박해져 왔다. 역대 최대 규모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 시행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의 왜곡된 고용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아닌 시혜성 정책은 사회적 불만을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돌리게 만들었다. 자본은 여전히 비정규직의 저임금과 유연한 고용을 활용해 위기극복 정책을 펴고, 이러한 비정규직의 활용은 공공부문에서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비정규직 고용 확산에 대한 비판은 사회적으로 힘을 갖지 못하고, 고용과 노동조건의 모든 결정권이 사용자에게 쥐어진 채 절차의 공정이라는 이름 아래 비정규직 고용이 정당화되고 있다.

 

여전히 비정규직의 확산은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지만 이에 대한 해법은 상당 부분 뒤틀린 방향으로 나아간다. 공정성의 논리에 뒤를 이어 처우 개선을 통해 비정규직 고용의 문제를 완화 내지 해소하는 것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여전히 시혜에 기반한 이러한 (이른바) 유연한 고용구조에 대한 구상은 비정규직이 야기하는 노동권 파괴의 본질을 가리고 권리의 총량을 가늠하며 고용과 임금을 맞바꾸는 것을 다시금 정당한 것으로 주장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을 다시 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인식의 확대가 필요하다.

 

권리의 바깥에 놓인 노동자들

 

불안정 노동의 확산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변화로 그 불안정성을 사회적으로 보완해 간다. 반쪽짜리 고용보험의 확대, 직종을 한정한 산재보험과 노동안전에 대한 제도적 조치,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보호법 논의 등에서는 불안정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를 이야기하지만 노동자 권리의 부정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 같은 제도의 부분적 개선은 투쟁을 통해 확대되는 권리의 측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정 노동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조치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쪼개지는 권리의 총체를 발견하기 어려워지는 반면, 불안정한 노동을 활용하는 산업, 기업들은 약간의 비용을 더하는 것으로 현 고용구조의 지속성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일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불안정 노동 확산뿐만 아니라 기존의 비정규직 관련 규제를 다시 넘어서는 양상으로 심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회사 구조를 통한 고용상 책임에서의 도피가 확산되고, 이는 공공/민간을 가리지 않고 활용되고 있다. 아래로 책임을 넘기는 하청구조는 여전히 대자본의 이윤을 떠받치는 구조로서 공고하다. 그리고 그 말단에서 양산되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권리 배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노동권은 보편적 권리가 아닌 자본의 위계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를 분할하여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한다. 노동재해가 집중되는 작은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되지 않고, 법과 제도가 낳은 한계는 계속해서 권리의 밖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을 양산해 낼 뿐이다.

 

‘불안정 노동’에 맞서는 전망 제시하기

 

2022년 지속되는 코로나19의 위기는 여전히 사회적 발언의 경로를 찾기 어려운 상황을 지속시키고, 통제되는 일상에 익숙해지라는 정부 명령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척박하게 만든다. 2022년 상반기 양대 선거가 예정되어 있으나,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쉽게 부각되지 못하고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는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운동의 노력과는 무관한 세상을 그린다. 그런 가운데 향후 체제내화 되어가는 운동의 흐름은 가속화 될 것이며, 노동자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예상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회의 전망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여전히 확산되는 불안정 노동에 맞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 체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그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2021년 제출한 사업의 기조와 같이 ‘배제된 노동자와 함께’ 불안정 노동 철폐의 목소리를 더 높이 세우기 위해, 우리는 지난 20여 년의 투쟁을 돌아보고 이후 운동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또한 이는 다른 사회에 대한 지향을 명백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과제로서의 불안정 노동 철폐라는 언명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중의 삶을 설명하는 말일 수 있을지언정, 다른 사회의 상을 제시하고 함께 나아갈 것을 권유하는 힘은 부족하다. 2022년 사업의 기조를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의 전망 마련’으로 제시하는 의미는 바로, 운동의 전망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의 전망에 대한 제시에 있다. 자본 중심의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이야기할 준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2. 2022년 사업 방향

 

첫째, 불안정노동철폐운동 20년 평가와 전망 [기획사업]

 

2022년은 철폐연대 창립 20주년이다. 비정규직 운동의 역사 또한 99년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의 투쟁으로부터 23년이 된다. 철폐연대는 비정규 운동 10년이 되는 시점인 2009년, 대토론회를 통해 비정규직 운동을 돌아보고 이후 불안정노동철폐운동의 전략적 원칙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연대>를 제시하였다.

 

<노동자의 권리>에서는 권리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의 조직화, 주체화, 투쟁을 통해 보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하였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통해 노동자 분할을 심화시키는 자본의 전략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연대>를 이야기하였다. ‘보편적 권리’를 가진 동등한 노동자로서의 연대를 통해 자본의 구조조정에 대항하며, 특히 가장 조직되기 어려운 말단의 노동자를 조직하는 전략적 집중을 통해 위계적 분할 구조를 타파하고 광범위한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구축해 나간다는 전략이었다.

 

그 후 다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철폐연대는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와 ‘노동자 권리의 사회적 확산’을 주요한 활동의 방향으로 삼아 활동을 이어왔다. 그 시간을 돌아보고, 비정규직 운동 20여 년의 과정을 함께 돌아보며 이후 운동의 전망을 밝혀야 할 시점이다. 노동의 분할은 극복되고 있는가, 권리에 접근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권리는 더 가까워졌는가,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진전은 이루어졌는가, 그를 통해 우리는 자본에 대항하여 흔들리지 않는 투쟁을 일구어 냈는가. 여전히 긍정적 답을 내기 어려운 현실에서 힘들지만 한발 더 나아갈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이는 사업기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운동 내부의 전략으로서의 고민을 넘어서야 한다. 불안정노동철폐의 과제가 그리는 다른 사회에 대한 지향을 명확히 하며, 이를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제출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배제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싸움

 

노동권에서 배제된 노동자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이 필요하다. 노동의 목소리가 더 이상 소외된 이들의 대표적 목소리가 되지 못하는 시대이며, 코로나19로 인한 대다수 사회 구성원의 힘든 일상은 그런 양상을 더 강화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대다수의 ‘노동’에 주목하며, 그 노동의 권리를 말하고자 한다. 그렇게 노동의 문제가 왜 중요한지, 노동자들이 내는 목소리가 왜 중요한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자본이 왜곡하는 노동의 모습으로 남게 두어서는 안 된다.

 

안정된 고용이 기득권이나 전리품이 되는 현실을 거부하고, 정부와 자본이 가두려고 하는 정형화된 노동의 형태 밖에 존재하는 노동의 모습을 계속해 드러내야 한다. 그 권리 침해의 양상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노동의 권리가 모두의 권리임을 말하고,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는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말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를 위해 배제된, 드러나지 못했던 노동자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사회로 계속해서 내보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철폐연대 활동의 방향이다.

 

첫째, 작은 사업장 노동자를 만나는 접점이 되는 월담노조의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월담노조가 하고자 하는 것은 개별의 권리, 개별 사업장 중심의 노조 활동이 아닌, 노동자의 지역과 공단을 바꾸어 내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으로서 노동자의 일과 일터를 함께 변화시켜 나가고자 한다. 제도에서 배제되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을 지역에서 전개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는 지역 자체의 변화를 통해 조직화에 이르고자 한다. 그에 철폐연대의 역할을 집중해야 한다.

 

둘째, 정책력의 제고는 여전히 중요하다. 비정규직 현장의 목소리를 사회로 끌어내는 것, 미조직 노동자의 목소리가 사회로 뻗어나갈 통로를 여는 것, 다양한 불안정 노동자의 이야기를 사회에 내보내고 그로써 노동자의 권리가 모두에게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일터와 사회를 연결하는 철폐연대의 정책적 역량의 발휘가 보다 충분히 기획되고 실행되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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