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9]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변순애 분회장·박신자 사무장 / 임용현

by 철폐연대 posted Sep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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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변순애 분회장 · 박신자 사무장 

 

 

세브란스병원 노조파괴 7년, 민주노조 이름으로 버틴 7년

“우리들의 마음은 꺾이지 않는다”

 

 

인터뷰·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병원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다. 그만큼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과 인권을 증진하는 데 있어 병원의 역할은 막중하다. 특히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를 경유하면서 공중보건 위기 대응이 핵심 이슈로 부상했고, 병원 등 각종 건축물·시설물의 위생과 청결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도 커졌다. 평소 잘 보이지 않던 노동은 그제야 드러났다. 병원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청소노동자들의 존재가 온 세계를 휩쓸고 간 감염병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알려진 것이다.

그 무렵, 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을 무참히 파괴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도 세상에 알려졌다. 원청인 연세의료원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청소용역업체인 ㈜태가비엠이 공모하여 노조파괴를 실행했다는 증거가 2021년 10월 민주당 송옥주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 확인한 자료를 통해 공개되었다. “민노(민주노총) 탈퇴 3단계 단기 전략”, “반장급 현장 관리자 지속 회유” 등 노동조합을 와해하기 위해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모의한 내용이 2016년 6월부터 2017년 3월까지 15개 문건을 통해 확인되었다. 업무일지와 녹취록 등에 담겨 있는 무수한 노조파괴 증거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원하청 자본 둘 다 사과는커녕 명백한 범죄 사실에 대해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비상사태가 3년 4개월 만에 공식 종료되었다는데, 노조파괴가 남긴 생채기는 이토록 깊어서 좀체 아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조 구성원에게 집중된 각종 불이익과 차별

 

2016년 6월은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 가입한 때였다.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의 이중 착취구조 아래 밑바닥 수준의 저임금과 고용불안, 강압적인 노무관리로 현장의 불만은 켜켜이 쌓여 있던 상황이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 청소노동자들은 민주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를 선택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병원과 용역업체의 노조파괴 범죄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노조 출범 당시 200여 명의 청소노동자 중 136명이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조합원이 되었지만, 사측은 민주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민주노조를 띄운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조합원 수는 18명으로 줄어들었다. 원하청 관리자들의 겁박에 못 이겨 반강제로 노조 탈퇴서를 써야만 했던 이들, 아예 회사를 떠난 이들이 속출했다.

노조파괴는 다양한 수법으로 이뤄졌다.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일자리 배치였다. 민주노조에 남아 있던 노동자들에게는 총중량이 150킬로그램에 달하는 각종 의료폐기물을 하루 15~20회에 걸쳐 운반차(카트)에 실어 나르는 업무를 맡기는 등 병원 내에서도 모두가 기피하는 과중한 업무가 배정됐다. 이런 식으로 병원과 태가비엠은 노조탈퇴를 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근무해 왔던 구역에서 수술실, 응급실, 쓰레기운반 같은 힘든 업무로 내몰았다.

현 분회장인 변순애 동지는 입사 초기부터 과도한 노동감시와 통제를 맞닥뜨렸다. 아직 민주노총에 가입하기 전의 일이었다.

 

“제가 2017년부터 이 회사를 다녔거든요. 처음 입사하고 나면 유동 근무를 3개월 동안 해요. 유동으로 배정되면 병동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업무를 익히는 거예요. 그러다가 정년으로 퇴직 인원이 생기면 그 자리에 투입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본관 18층 청소에 투입이 됐어요. 거기에서 저랑 같이 일했던 언니가 당시 (민주노총) 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부분회장이었어요. 업무가 새벽 6시부터 시작인데 그 언니는 집이 인천이라 새벽 첫차 타고 출근하면 6시 10분이나 돼야 도착하니까 너무 힘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 소장이 10분쯤 늦는 건 괜찮다고 했다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본인은 영 찝찝할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언니 대신 걸레를 미리 빨아놔 줬어요. 이 언니는 그게 너무 고마우니까 어느 날 떡을 갖고 왔단 말이죠. 그때가 아마 6시 5분쯤 됐을 거예요. 언니랑 제가 같이 떡을 나눠 먹고 있는데 마침 반장하고 감독이 다가오는 거예요. 저희를 보곤 ‘떡 드시게요?’, ‘맛있게 드십시오.’ 그러고 지나가더니 오전 업무 마치고 식사 시간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와선 사무실로 오라더라고요. 저희 둘이 갔더니 ‘여사님 아침에 뭐 하셨나요?’, ‘시말서 한 장 쓰셔야겠는데요.’ 이러는 거예요.”

 

업무 중 대기시간 몇 분 동안 떡 한 점 먹은 것이 징계 사유가 될 줄은 그땐 꿈에도 몰랐다. 태가비엠 측은 당시 부분회장에 대한 표적징계에 착수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중이었고, 노조 미가입 상태였던 변순애 동지도 그와 함께 현장에 있었으므로 징계탄압을 뒤집어쓴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조합원은 태가비엠에서 분리수거 업무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이유로 ‘회사 이미지를 훼손시켰다’며 시말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뿐이랴. 2019년부터 세브란스병원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는 박신자 사무장도 누구 못지않게 기막힌 사연을 꺼냈다.

 

“청소 업무를 하다 보면 쓰레기 수거 용도로 종이박스를 많이 써요. 그러면 이 박스를 만들려면 청테이프를 ‘쫙쫙’ 뜯어서 붙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한 관리자가 테이프 뜯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여기서 작업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일이 하도 억울해서 당시 한노(한국노총) 위원장한테 찾아가서 하소연을 했죠. 그랬더니 이 위원장 하는 말이 ‘그건 당신 자리에서 생긴 문제니까 본인이 알아서 해야지.’ 그러는 거예요. 원래 조합원들 고충이 있으면 들어주고 문제해결에 나서는 게 노동조합이 당연히 할 일이잖아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민주노총으로 넘어왔죠.”

 

‘민주노조 할 결심’ 더 이상 노예처럼 살 수 없기에

 

변순애 분회장과 박신자 사무장이 세브란스병원 청소 업무를 시작한 때는 각각 2017년, 2019년이었다. 중년의 여성 노동자가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단시간, 일용직 노동이었는데, 그나마 종합병원에서 일하면 보수도 썩 나쁘지 않더라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두 동지는 병원 청소 노동이 이렇게 고되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여기 일하기 전에는 야쿠르트 판매원 일을 했었어요. 야쿠르트 판매 일은 자영업자로 돼 있어서 소득도 들쭉날쭉하고 퇴직금도 없거든요. 그래서 이 일을 오래 할 생각은 없었어요. 야쿠르트 영업이 방문판매를 하는 형태다 보니까 제가 빌딩 청소노동자분들을 매일 만났거든요. 그때 어떤 분이 저한테 세브란스병원이 우리 나이에 일하기엔 급여도 괜찮은 편이라고 추천하더라고요. 막상 와 보니까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거예요. 그래도 어디 가서 이만큼 벌기도 제 나이엔 쉽지 않으니까 한 달만 버텨 보자, 하면서 온 게 벌써 7년째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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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목요집회에서 변순애 분회장의 모습.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변순애 분회장은 야쿠르트 판매원을 하던 시절에도 종일 많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일을 해야 했지만, 병원 청소 노동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신촌세브란스병원은 병상 수가 2,435실에 달해 국내에서는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입원병실이 2,000실이 넘는 대형종합병원 두 곳 중 하나다. 압도적인 규모만큼 청소노동자들이 치워야 할 쓰레기 역시 매시간 어마어마한 양을 배출한다. 그런데도 인력은 늘 부족해서 한 사람이 두세 사람의 몫을 수행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다. 이 같은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그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 문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청소 구역마다 다르긴 한데, 제가 맡은 파트를 보면 마포걸레(대걸레)랑 손걸레가 있어요. 마포를 하는 사람은 바닥 청소 위주로 하는 일이고, 손걸레는 병실 침상 같은 걸 주로 닦아요. 예전 같았으면 손걸레 파트가 쉬는 날엔 업체에서 대체인력을 보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손걸레가 쉬면 마포를 하는 사람이 손걸레 파트까지 다해야 하는 거예요.”

 

세브란스병원은 2,000실을 훌쩍 넘는 규모를 앞세워 병원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병원의 위생 및 청결상태를 책임지는 청소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은 마련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최첨단 의료기기와 수술 도구, 이름 높은 의료진들이 즐비한 병원이라 하더라도, 환자와 의료진들이 안전하게 치료받고 진찰할 수 있는 환경을 가꾸어 나가는 이들을 외면한다면 누구나 믿고 갈 수 있는 좋은 병원이라 할 수 없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에겐 마포걸레 등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탕비실에서나 잠깐 짬을 내 앉을 수 있을 뿐 변변한 휴게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수술실에서 나온 혈액이나 분비물, 각종 오염물질과 세척용 락스 냄새가 뒤범벅이 된 그 공간은 누가 보더라도 사람이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빡빡한 진료 스케줄에 맞춰 일하다 보면 밥 먹을 시간도 쉬는 시간도 놓치기 일쑤였다. 박신자 사무장의 하루 일과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 숨이 껄떡 넘어가는 듯했다.

 

“제가 일하는 곳은 외래병동 4층 혈관촬영실이에요. 시술실의 한 종류인데 여기도 피를 많이 보는 곳이에요. 그래서 누군가 무심코 쓰레기통에 버린 주삿바늘이라든지 유리조각 같은 날카로운 것에 찔리는 일도 종종 생겨요. 일이 험한 건 그렇다 쳐도 저한테 할당된 업무량이 너무 벅차다는 생각은 자주 해요. 제가 좀 변두리 쪽으로 이사를 와서 출근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세 시 반에는 버스 종점까지 걸어가요. 거기에서 네 시에 버스를 타고 와서 병원에 도착하면 보통 5시 20분쯤 돼요. 원래 근무시간은 6시부터인데 한 5시 반부터 일을 시작해야 제때 업무를 마칠 수 있거든요. 어쨌든 5시 반부터 일을 시작해서 아침부터 땀을 쫙 빼고 죽도록 일하다가 9시 지나서 잠깐 쉬고…. 그다음에 10시부터 한 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어요. 아침식사는 안 하고 조금 이른 시간에 점심을 먹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12시부터 2시 반 정도까지 시술실 청소하고, 그다음에 2시 반부터 4시 퇴근할 때까지 일하고 나면 이제 하루 일과가 끝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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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세브란스병원분회 목요집회에서 박신자 사무장의 모습.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이렇게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형편없는 휴게여건이 더해져 세브란스병원은 가히 지옥 같은 일터가 되었다. 일터의 주인이 되고 내 삶도 바꾸려면 민주노조를 해야 한다는 동료들 권유에 두 사람은 주저 없이 조합원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원하청 자본이 공모한 탈퇴 종용, 해고 협박, 표적 징계, 직장 내 괴롭힘, 자리 이동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노동조합의 고소고발이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에 있었지만,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흐지부지 매듭지으려 했다. 심지어 “부당노동행위 의식하여 노노대립으로 진행하라”는 내용을 비롯해 요주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동향 파악을 지시한 문서(업무일지)를 민주노총 노동조합이 확보해 증거자료로 제출했음에도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이를 애써 무시하는 데 급급했다.

노동조합이 피고소인을 추가하여 재차 고소를 진행하고,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 사무실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압수수색이 이뤄지기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검찰이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 관계자 9명에 대해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데 또다시 2년여 시간이 지났다. 당국의 편파적인 부당노동행위 수사로 인해 4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간 셈이다. 이 지긋지긋한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병원과 용역업체의 공모가 결국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그사이 지쳐 떠난 동료들도 적지 않았다.

변순애 분회장은 극심한 노조탄압을 견디다 못한 조합원들이 민주노조를 하나둘 떠나갈 때가 지난 7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탈퇴서가 하루하루 들어 오는데, 그것도 카톡으로 보내 주더라고요. 가해자는 아직도 협박을 일삼고 있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 조합원들만 계속 힘들어하고 떠나야 하니까….”

 

수사기관의 미온적 행보에 힘입어 병원과 태가비엠의 노조파괴는 이후에도 버젓이 자행되었다. ‘원하청이 공모한 노조파괴’ 등 민주노조 조합원들이 집회시위에서 사용한 피켓과 손팻말 문구에 대해 세브란스병원 측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기까지 했다. 소송과 가처분으로 청소노동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던 세브란스병원의 계획은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무산됐다.

지난 7년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물론 있었지만 ‘그래도 민주노조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두 동지에게 언제였을까?

 

“언젠가 서울지부 차원에서 지역 대학 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에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싸우고 있는 동지들 얘길 들어 보니까 업체에서 작업화 한 켤레도 지급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분회에서 안 신는 신발 모아서 가져다드리니까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나마 나은 환경이더라고요. 지금 우리가 싸우는 이유도 떼인 돈 내놓으라는 게 아니잖아요. 너희들이 과거에 한 짓에 대해 깨끗이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하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세브란스병원이 태가비엠을 충분히 퇴출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내보내는 것 자체가 결국엔 자기들 잘못을 인정하는 거예요. 아무튼 우리보다 더 열악한 사업장을 다녀보면 느끼는 게 많아져요. 아, 우리가 좀 더 힘을 내야겠구나.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보면서 내가 전보다는 많이 성장한 것 같아서 그때가 제일 뿌듯해요.”(변순애 분회장)

 

“가장 좋은 거는 연대 다닐 때죠. 그럴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집회하고 연대할 때 왠지 모르게 신이 나더라고요. 평소에 안 하던 농담도 하게 되고, 분위기를 돋운다고 해야 하나? 제가 어느새 그런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살짝 미쳐 가는구나.(웃음) 근데 이게 좀 미쳐야지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처음엔 노조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다가 그렇게 차츰 물들어 가는 것 같고…. 또 나랑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힘도 절로 나고, 당당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더라고요.”(박신자 사무장)

 

노조파괴 범죄자들에 대한 재판이 길어지고 있지만, 이제껏 잘 버텨 온 만큼 앞으로도 두 동지는 담담하게 재판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지금 재판이 증인심문 절차가 아직 안 끝났어요. 사측이 막바지까지 시간 끌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이번 재판 결과가 투쟁 판도를 뒤바꿀 수도 있다고 봐요. 사실 그동안도 현장에서 민주노총이 바꾼 게 참 많아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관리자들 눈치 보느라고 커피도 몰래 숨어서 마시고 그랬거든요. 그땐 관리자들이 우리 가만히 있는 꼴을 못 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도 쉴 땐 쉬고 관리자들이 부당한 지시를 하면 예전처럼 순순히 따르지 않잖아요. 병원이나 태가비엠도 웬만하면 노조를 도발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일이 커질까 봐 애태우는 거겠죠. 하여튼 이 싸움을 이기려면 잘 버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변순애 분회장)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내가 바퀴벌레 소리를 들을지언정 바퀴벌레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앞으로 더 많이 와글와글 사라지지 않고 움직이고 싶어요.”(박신자 사무장)

 

“우리가 옳았다는 걸 저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어요.”

 

노조파괴는 그 자체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중대범죄다. 그럼에도 헌법을 부정하고 노동조합 및 조합원들의 존립 기반을 뒤흔드는 시대착오적 범죄는 여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다.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의 노조파괴는 노동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그들의 만행도 노동자들의 생생한 기억과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기에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렇게 끝내서도 안 된다고 두 동지는 한목소리로 말한다. 불의의 시간은 언젠가 반드시 끝날 것이고 이제 단죄와 회복의 시간이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 곁으로 곧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