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7] 양회동 열사 그리고 우리의 자존심으로 / 민선

by 철폐연대 posted Jul 11,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오늘, 우리의 투쟁

 

 

양회동 열사 그리고 우리의 자존심으로

 

 

민선 • 인권운동사랑방

 

 

 

부슬비가 내리던 6월 21일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있었다. 노동조합을 폄훼하고 탄압하는 국가폭력에 분신으로 항거했던 열사를 51일 만에 보냈다.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국가는 탄압의 광풍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장례 바로 다음 날 건설노조 간부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경찰은 6월 25일까지였던 특별단속기한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열사를 보낸 자리, 건설노조 탄압은 끝나지 않았고 이에 맞선 투쟁도 이어져야 한다. 그 자리에서 양회동 열사가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을 곱씹어 생각해 본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5월 1일 노동자의 날 아침 양회동 열사의 분신 소식과 함께 전해진 유서 내용을 처음 보고 무슨 상황이지 싶었다. 연초부터 건설노조 사무실 압수수색 소식이 이어지고 각종 소식방에는 건설노조 조합원에 대한 탄원서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양회동 열사를 추모하며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 위해 모인 시민사회 간담회를 가서야 알았다. 소환조사를 받은 조합원 수가 1,000명이 넘고, 구속자 수도 20명에 달했다. 주요 혐의는 이렇다. 건설노조가 해 온 고용안정과 노조활동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공갈/협박/강요’이고, 이를 요구하며 집회한 것이 ‘업무방해’라는 것이다. 위험한 작업지시에 따른 성과급의 성격을 지니며 타워크레인 노동자에게 관행적으로 지급되어 온 월례비는 ‘금품갈취’가 되었다. ‘채용절차법’ 위반이라고 과태료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과징금이 부과됐거나 부과될 예정이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로 모여 경찰은 특별단속을 이어 왔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노조를 ‘사업자단체’라 규정하며 과징금을 부과하고, 국토교통부는 ‘악명높은 노조’를 신고하라는 공문을 현장에 보내고, 고용노동부는 일제점검에 나섰다. 모든 기관이 총동원되어 이루어진 건설노조 탄압에는 지난 2월 ‘건폭’이라 지칭하며 강경대응을 주문한 윤석열 정권이 있다. 이에 발맞춰 경찰은 유례없는 50명 특진을 걸었고, 90명까지 확대했다. 6월 25일 경찰은 특별단속기간 200일 동안 1,484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이 중 132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건설현장에 ‘노사법치’를 확립했다는 자찬의 이면에는 특진경쟁이 있다. 이미 불기소 처분이 난 과거의 일을 다시 끄집어내고, 사실이 아니라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업체의 말을 무시하며 어떻게든 ‘사건’을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 양회동 열사의 죽음이 있었다.

 

 

4. 본문사진1.jpg

2023.05.23. 건설노동자 국가폭력 규탄 인권단체 기자회견. [출처: 인권운동사랑방]

 

 

“저는 자랑스런 민주노총 강원 건설지부 양회동입니다.”

 

건설노조의 일원으로 양회동 열사가 가졌던 긍지에 대해 떠올려 본다. 중대재해 절반이 건설업에서 발생하지만, 건설노조에 속한 조합원은 드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인해 공사기한을 단축하는 만큼 이익이 남는 건설현장에서 ‘무리하게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천천히 정석대로’ 일하는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만들어 온 것이 건설노조였다. 일을 찾아 타지를 떠돌아다니다 내 동네, 우리 지역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게 된 데에 건설노조가 있었다. 내일 나오지 말라는 한마디에 바로 일이 끊기고, 임금체불이 만연했던 현실을 바꿔 온 것도 건설노조였다. 일하면서 ‘여기요 저기요’ 아니면 ‘이 새끼 저 새끼’로 이름 불릴 일이 없고 욕을 들어야 했던 현장에서 ‘누구누구씨’라는 한 사람으로서 이름을 다시 불릴 수 있게 된 것 또한 건설노조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양회동 열사를 추모하는 자리마다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서 이름을 되찾은 우리는 다시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열사가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은 건설노조에 대한 자긍심이었다. 건설노조로 함께 모였던 건설노동자가 지어 온 것은 건물이나 시설만이 아니었다. 폐기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서로의 존엄을 함께 지키는 관계를 지어 온 것이었다.

 

“죽지 않고 일하고, 힘든 일 하면서 천대받지 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현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2년 전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한 광주 학동 참사, 그 배경으로 재하도급 과정에서 가격 후려치기로 최초 50억 원으로 책정됐던 철거비가 최종 9억 원으로 줄어든 것이 알려졌다. 작년 초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참사에서 다시 다단계 하도급의 문제가 드러났지만, 무리한 속도전을 방지하고 적정한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을 의무화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논의는 중복규제라는 업체 반대를 이유로 멈춰 있는 상황이다. 건설회사가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청에 재하청을 거치며 빠르게 더 적은 비용으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그 위험은 중대재해 절반에 이르는 건설노동자에게로, 부실시공된 건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로 전가되어 왔다. 현장에서 이를 감시하면서 제대로 시공할 것을 요구하고 싸워 온 것이 건설노조였다.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과 장비 사용 요구가 건설업체의 경영권을 침해한 ‘강요죄’라고 한다. 공사가 끝나면 실업 상태가 되는 건설노동자에게 고용안정에 대한 요구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단지 한 사람이라도 더 일하게 하자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소속 조합원을 채용하고 장비를 사용하라는 요구는 적정 노동시간처럼 그동안 건설노조가 활동하며 만들어 온 인간답게 그리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어느 현장이든 기본적으로 갖추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이렇게 건설노동자의 안전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어 온 건설노조의 활동을 ‘공갈협박죄’이고 ‘업무방해’라 하면서 국가는 자본의 폭력을 비호하고 있다.

 

 

4. 본문사진2.jpg

2023.06.14. 인권사회운동단체 주관 추모촛불문화제. [출처: 인권운동사랑방]

 

 

우리의 자존심으로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양회동 열사 투쟁을 함께하며 사회운동에 “이 싸움의 끝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노동조합이라는 물적인 의미의 조직을 흔드는 것 이상이라는, 노조로 함께 모여 투쟁하며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지킬 권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지금 건설노조 탄압에 대한 문제의식이 벼려지는 게 필요하다는 고민이다.

 

그것이 현재 노조탄압을 자행하는 윤석열 정부에 맞선 싸움으로만 한정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건폭’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을 뿐 지금처럼 ‘금품갈취’, ‘공갈협박’의 굴레로 탄압한 시작은 20년 전인 2003년 노무현 정부 시기로 거슬러 간다. 열사투쟁을 하며 해체를 요구해 온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는 건설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며 2021년 문재인 정부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노동권을 부정하면서 노조를 탄압해 온 역사를 성찰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으로 함께한다는 소식에 고민 끝에 장례위원회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몇몇 단체들과 함께 우리가 새겨야 할 열사의 뜻이 어떤 것일지 이야기하며 <양회동 열사를 보내는 우리의 다짐> 입장을 제안하게 됐다. 장례 이후 현장으로 돌아가 투쟁을 이어갈 건설노조와 든든한 동지가 되어 보수정당에 기대지 않고 더 단단하게 함께 투쟁하자는 제안이다.

 

다시, 이 싸움의 끝을 그려 본다. 건설노동자라는 이름을 되찾으며 존엄을 세워 온 여정을 자긍심으로 계속 이어가는 것, 양회동 열사 그리고 우리의 자존심을 함께 엮어 그렇게 이 싸움의 끝을 기어코 만들겠다는 다짐을 세운다. 양회동 열사의 명복을 빌며, 그 여정에 수많은 ‘양회동’과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