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9] 윤석열식 교육 해법은 틀렸다 / 이진영

by 철폐연대 posted Sep 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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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윤석열식 교육 해법은 틀렸다

: 교육당국은 학생인권에 대한 사냥을 당장 멈추고,

현실적인 교육대책 마련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진영 •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지난 8월 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학생 인권을 이유로 규칙을 위반한 학생을 방치하는 것은 인권을 이유로 사회 질서를 해치는 범법 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전달 7월 18일에 일어난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사망사건에 대해 교권침해 문제가 제기되었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이에 대해 대통령이 즉각적인 원인과 대책을 언급한 것인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교권침해의 문제가 학생인권 탓이라는 것이다. 또 이날 윤 대통령은 “인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규칙과 질서 유지를 위한 법 집행을 못 하게 막으면 오히려 국민의 인권이 침해된다”고 발언하며 마치 교권과 학생인권이 대치되는 것처럼 언급했다. 이날 대통령의 발언은 교사 사망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인권에 관한 빈약한 이해와 잘못된 원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어서 더욱 문제적이었다.

 

이번 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우리 사회에서 학교와 교육의 의미가 퇴색하고 교육 주체 간 신뢰도 점차 사라진 데 있을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가 교육을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서비스’로 이해하는 정책과 문화를 확산시켜 온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또 점점 심각해지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신으로 인한 관계의 해체 및 경쟁의 심화 역시 불안정하고 공격적인 상태의 학생과 보호자를 증가시키는 반면, 학교가 이러한 부담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번 사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겹겹이 쌓이고 꼬인 모든 모순과 부담을 ‘독박 교실’에서 교사 개인이 감당하도록 전가하고, 체계적인 지원은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학교와 교육당국의 무책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원인 분석과 엉뚱한 해법을 언급한 대통령의 발언이 교육 당국의 발 빠른 정책이행으로 이어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에도 교과부 장관으로 2012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 제동을 걸기도 했던 이주호 현 교육부 장관은 공식적인 자리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교권침해의 원인을 학생인권으로 돌리며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여 왔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교육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교원의 학생생활 지도에 관한 고시를 발표하기 위해 포럼과 토론회를 단 며칠 상간으로 연거푸 열며 형식적인 절차 갖추기에 급급한 모양새였는데, 심지어 교육부 포럼의 대표 발제를 맡은 보수 성향 교원단체 소속 현직 교사는 발제의 대부분을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는 데 할애하는 것도 모자라 학생인권조례가 ‘일진회’를 구성할 권리를 포함한다며 사실을 호도하는 웃지 못할 발표를 해서 언론에 보도가 되기도 했다. 결국 교육부는 교권 추락의 원인이 학생인권 때문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 8월 17일 교권 확립을 위한다며 ‘교원의 학생생활 지도에 관한 고시안’을 발표했는데, 고시안 내용에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교사가 물리적으로 제지하거나 학생 분리 등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학생인권이 오·남용되는 것을 예방”하겠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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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4. 모두를 위협하는 교육부 생활지도 고시안 폐기!

근본적 대책 촉구, 교육주체 공동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출처: 청시행]

 

 

이쯤 되면 학생인권조례가 도대체 뭐길래 대통령과 교육부가 나서서 교사 사망사건의 직접적인 배경인 양 한목소리로 문제 삼고, “학생인권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교육부 고시를 이토록 긴급하게 발표해야 하는지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말 그대로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의 문화, 관행, 규칙 등에 의해서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당해 왔기 때문에 이를 개혁하기 위해 나온 제도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의 학교에서 학생들은 통제와 교육의 대상, 미성숙하고 인간이 덜된 존재로 간주되었다. 학생에게 인권이 존재하며 지켜져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이처럼 인권과 권력이 없는 존재였던 학생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보장되고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공식적으로 규정한 것이 학생인권조례이다. 학교에서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모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복장 및 두발 등 개성을 실현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와 감시받지 않을 권리, 학생 자치할 권리, 휴대폰 소지 및 사용의 자유 등 우리 사회 시민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리는 권리들을 명시해 놓고, 인권 침해가 발생하면 구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부서와 담당자를 명시해 놓은 것이 학생인권조례의 대체적인 내용이다. 대통령이나 교육부 장관의 말대로 교복 입은 시민의 권리를 명시한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원인이라면, 그동안 교권은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통제하거나 억압하면서 유지되어 왔다는 말과 다름없지 않은가?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한 것은 교육감 직선제 실시와 소위 ‘진보 교육감’의 출현과 궤를 같이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하고 더불어민주당이 경기도의회 다수를 점하면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수 있었다. 이렇게 경기도에서 첫발을 뗀 이후로는 광주광역시(2012년), 서울특별시(2012년), 전라북도(2013년) 등 총 4개 광역지자체에서 2013년까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그리고 다소 시차를 두고 2020년 충청남도, 2021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여섯 번째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다. 2021년 학교구성원조례라는 이름으로 제정된 인천시 조례까지 포함하면 전체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총 7개 지역에만 학생인권이 자치법령으로 제정되어 있는 현실이다. 경상남도와 같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도의회의 벽을 번번이 넘지 못한 지역도 있고, 대전광역시와 강원도에서는 주민발의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2021년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도 법으로 제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학생인권은 지역에 따라 그 보장의 정도가 상이하거나 아예 보장의 근거조차 없는 지역이 더 많은 게 10년 남짓한 학생인권 제도화의 현실이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일부 보수 성향의 교육감 후보들은 아예 선거에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공약에 내걸기도 했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인천지역과 같이 진보성향의 교육감이었던 지역에서 보수교육감이 새로 선출되었거나 서울시와 충청남도와 같이 국민의힘 보수 정치세력이 다수가 된 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손보거나 조례 폐지를 안건으로 논의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다. 학생인권조례는 그 의미와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이 진보-보수 정치세력을 가르는 이정표처럼 사용되다가 이번 사건에서 정작 책임져야 할 교육당국과 보수 정권의 ‘교권과 학생인권의 대립’이라는 면피용 프레임에 소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저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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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5.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청시행)’ 출범 기자회견.

[출처: 청시행]

 

 

1990년대 이후 대두한 청소년인권운동은 두발·복장의 자유(개성 실현의 권리), 체벌 및 언어폭력·모욕적 대우의 금지, 정규 수업 시간 외 보충·자율학습에 대한 강요 중단, 소지품 검사·압수의 폐지를 비롯한 사생활의 자유 보장, 학교 내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학교·교사에 의한 종교 강요 중단, 학생 자치 활동의 자율성, 학교 운영 참여권 등을 주요 학생인권 문제로 제기했다. 이 운동은 10여 년에 걸쳐 학생인권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부상시켰고, 그 방법 중 하나로 학생인권을 위한 입법을 추진했다. 그 결과 초중등교육법 등에 학교의 학생인권 보장의무를 명시한 성과는 있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으니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교육부는 시종일관 학생인권의 문제들에 ‘학교 자율’ 또는 ‘각 지역 교육청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답해 왔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발생한 사건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을 지목하고 “학생인권의 오·남용을 막겠다”는 언어도단과 함께 학생인권 침해 대책을 교권강화 대책이라며 부끄러움 없이 발표하는 교육부의 무책임과 무능이 놀라울 따름이다.

 

학생도 한 사람의 존엄한 존재로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약속하고, 이를 법제도로 명문화한 학생인권조례가 선거 결과 또는 정치세력의 유불리에 따라 공격을 받고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는 지금의 현실이 곧 우리 사회가 학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들에게 어떤 대접을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학교에 필요한 것은 난데없는 학생인권 사냥이 아니라 학생인권법 제정과 더 많은 민주주의, 교사를 비롯한 각각의 교육 주체를 실질적으로 지원할 교육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