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7]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 / 박성현

by 철폐연대 posted Jul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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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

 

박성현 • 4ㆍ16재단 나눔사업팀장

 

 

 

7년,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무척 긴 시간일 수 있다. 나에게 있어 7년은 <재난>이나 <재난 피해자>를 안다고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피해자를 안다는 건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결코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황망한 참사로 가족을 한순간에 잃고, 가족을 품지 못하는 경험, 손을 만지거나 어깨를 토닥일 수 없는 삶을 경험하지 않고 ‘안다’ 말할 수 없다.

 

다만, 이 현장에서 경험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7년간 세월호 참사를 겪은 피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민 혹은 활동가들은 아프거나 힘들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피해 가족들의 슬픔이나 고통만큼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했다. 개인적으로도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어지간한 슬픔은 슬프지 않았고, 어지간한 아픔도 아프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흘러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각자 고통의 크기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등 뒤에 서서, 그의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적다고 느끼고 있었다. 시민들은 피해 가족 등 뒤에서, 그 안에서도 조금 일찍 아이와 함께 지역에 돌아온 가족은 그렇지 못한 가족 등 뒤에서, 그렇게 서로의 등 뒤에 서서 내 앞에 선 이웃의 슬픔과 고통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아직 세월호 참사로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의 이웃이 우리에게는 마음의 무거운 무게로 남아 있다. 가족을 찾지 못한 가족의 절규 무게만큼 무겁게 남아 있다. ‘우리도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절규의 무게.

긴 시간 중 초반 1년 피해 가족 곁에서 함께하는 동안에는 그들이 아이를 잃은 애끓는 슬픔을 품고 부르짖는 ‘내 아이를 살려 달라’ 혹은 ‘찾아 달라’는 요구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18년을 키운 온 우주 같은 아이를 단 몇 시간 만에 바다가 삼켜 버렸으니, 구조해 달라는 요구는 너무도 당연하다. 단원고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낳고 키운 부모가, 온 가족이 새로운 삶을 꿈꾸며 그 배에 타 있었다. 그런 가족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안산에 있는 주민들이나 활동가들은 그들 곁에서 슬픔을 같이 목구멍으로 넘기며 곁에 서는 일도 당연했다. 안전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일, 혹여 참사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전원구조>하는 일, 현실처럼 참사가 발생해 누군가를 잃으면 사회가 사과하고, 이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일, 슬픔의 수렁에서 딛고 나올 수 있도록 사회가 돕는 일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피해 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서 단식을 하고, 경찰에 둘러싸여 고립되었다.

 

대규모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TV에는 성금을 모으는 ARS 전화번호가 화면 한쪽에 표시된다. 성금이 모이는 걸 보면서, 선한 이웃들이 많은 사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시민들의 선한 의지를 탓하고자 함은 아니지만, 성금을 걷고 전달하고 나면, 한국 사회에서 재난 참사는 ‘안타까운 일’이나 이내 곧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일’이며, ‘피해자들의 잃은 가족에 대해 가슴에 묻고 살 일’이라는 과정이 이어져 왔다. 지금까지 재난을 대하는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태도였다. 피해자의 처참한 삶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묵과되고,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생각해 왔다. 국가가 재난 참사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피해 현실에 비해 매우 부족한 보상으로 가름하거나, 인도적 시신 인계 과정은 없이 재빠르게 청소하고 치워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일을 ‘복구’라는 이름으로 반복해왔다. 이러한 국가 및 사회구성원들의 재난 참사에 대한 태도는 재난 참사 현장 및 그 이후의 삶의 회복에 대한 <권리>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 있다.

 

앞선 경험 속 시민과 피해자들이 무거운 책임감, 안타까움, 슬픔을 삼켜가며 요구한 모든 말과 행동은 무리한 주장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권리>였다. 피해자들은 정부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위기 상황에서 구조될 권리, 시신을 인도받을 권리, 애도할 권리, 가족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 권리를 요구했던 것이다. 재난을 겪은 적 없는 시민들이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주기보다는 ‘빠른 일상의 복귀’나 ‘참사에 대한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것도 언론 오보 등 다양한 사회적 원인이 있지만, 피해자들이 어떤 권리를 무시당하고, 존중받지 못하는지, 또 그러한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에도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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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권리 매뉴얼 책자 안내 자료. [출처: 4ㆍ16재단]

 

당연하다 여긴 피해자의 요구가 모든 시민이 가진 <권리>라는 것을 나 또한 부끄럽게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깨달았다. 2015년 4.16인권선언 과정에 함께 참여하고, 2018년부터 참여해온 ‘피해자 권리 매뉴얼’ 집필 작업에 함께하면서 깨닫고 알게 되었다. 그토록 당연하다 생각한 요구가 존중받아야 할 권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피해자 권리 매뉴얼’의 시작은 이러한 권리가 어느 날 벼락 맞은 듯 당하는 재난 현장에서 피해자 당신이 어떠한 권리가 있는지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재난 현장에서 당신이 민원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 이미 인권의 주체이므로 피해와 관련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음을 알고,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만들었다. 재난 현장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경황이 없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정확히 알기 어렵다. 재난 현장에서 피해자들은 ‘살아남은 피해자’로서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들이 죄스럽다 느끼기 쉽다. 당신의 아직 찾지 못한 가족들을 기다리고, 걱정하느라 ‘자기’ 걱정을 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엄을 지킬 필요가 있음을 말해줄 수 있는 가이드가 되기를 바랐다.

피해자 권리 매뉴얼을 만들면서, 우리는 피해자의 범위를 새롭게 규정하는 것에서 꽤 오랜 논의를 했다. 재난을 직접 겪은 직계존비속까지만 인정하는 한국 사회의 법체계가 품지 못한 재난 참사 피해자들을 떠올렸다. 희생자의 가족, 그들의 이웃, 지역사회, 피해자들과 함께 지원하는 조력자, 자원봉사자, 공무원, 언론인, 재난 현장에서 누구든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우리 사회가 예측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경험을 나누었고, 이를 담았다.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지원체계는 사회가 충분히 회복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했다. 이와 함께 2차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피해자 범위를 넓히는 일은 중요했다.

 

재난참사 피해자들과 마주해 함께 지원하거나 애쓰는 조력자, 자원봉사자들이 그 과정에서 재난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며 어떻게 책임을 다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들도 2차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을 지원했던 잠수사(전문자원봉사자)들이 겪었던 재난 현장의 비인권적 처우, 그 현장을 쫒겨나듯 떠나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 골괴사 및 잠수병 같은 사고 후유장애 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고 법제화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고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경험을 기반으로 작성했다.

 

공무원을 위한 가이드에서는 재난 현장에서 재난 참사 수습과정과 이후 대책 마련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브리핑하거나 재난 피해자들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것과 이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전담 공무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함께 기술했다. 이들에게도 자원봉사 인력과 마찬가지로 재난 현장에서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이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의 필요성이 있음을 밝혔다.

 

재난 현장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언론인들을 위한 가이드에서는 주요 원칙으로 “① 재난 피해자 중심으로 보도한다 ② 재난 보도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보도한다 ③ 정확하게 보도하라 ④ 선정적으로 보도하지 말라 ⑤ 재난 보도를 정치 보도로 만들기 말라”에 대해 소개한다. 모든 참사 현장을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재난 피해자 중심>의 원칙을 적용해 기술하고 있다. 언론인들은 정부 관련 부처의 브리핑을 보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겠지만, 그 브리핑이 정확한 사실인지, 피해자가 원하지 않거나 문제가 되는 정보는 아닌지 충분히 확인하여 보도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시했다.


‘피해자 권리 매뉴얼’을 출간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논의와 관련 전문가들과의 간담회, 증언대회 등을 통해 피해 현장 상황과 놓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귀담아 듣고자 했다. 최종 출간 전, 다시 권리의 당사자인 재난 피해자들에게 감수를 요청했다. 스텔라데이지호 피해 가족과 화성씨랜드 참사 피해 가족들의 경험이 담긴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생생하고, 적확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 내용은 원문 그대로 싣기로 합의했다. 여러 숙의 과정을 통해 제작한 <피해자 권리 매뉴얼>은 다음 걸음으로 “재난 피해자 권리 지원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을 기획하고 있다. 우선, 피해자 권리 매뉴얼 책날개에 기꺼이 함께 손잡고, 다른 재난 참사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지원을 하겠다 마음먹은 단체들의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책자에 이렇게 기록되어 배포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핸드폰 번호까지 기꺼이 알려주신 단체들이다. 이러한 기획은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의 증언에서 시작했다.

 

“처음 재난 참사 소식을 듣고, 어느 부처에 누구에게 연락하고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부처가 결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절실하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할 수 있는 전화번호 하나, 그것이 가장 필요했다.”

 

6월 19일 있었던 피해자 권리 매뉴얼 북콘서트로 마주한 “재난 피해자 권리 지원 네트워크” 참여자들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재난참사 피해 가족이 중심이 된 단체들이었다. 직접 경험하고 상처 입은 치유자들이 세상의 또 다른 참사 피해자들을 돕겠다고 기꺼이 나섰던 것이다. 모인 자리에서 그들은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재난 피해자의 참여와 그들을 돕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 갈 것, 재난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손에 전달할 수 있는 책이 되도록 지원 구조를 갖출 것, 일원화된 긴급콜 전화번호의 필요,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지원 범위와 역할을 정하는 일, 각 단위가 역할을 나누어 체계를 갖추는 일 등 다양한 일들을 협의하고 확정지어야 한다. 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지만, 함께 해결할 동료를 많이 얻은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피해자 권리 매뉴얼>은 오랜 시간 준비한 것에 비해 부족함이 많은 책이다. 4.16재단의 <피해자 권리 국제포럼>에서 피해자단체 D.A의 피해자가 말했다.

 

“당신의 사회가 피해자의 권리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법과 제도 안에 피해자의 권리라는 단어가 얼마나 기록되어 있는지를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재난 피해자의 권리가 법과 제도에 한 줄 한 줄 당연하게 기록되는 날까지, 이러한 권리가 당연하게 재난 피해자의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그 날까지 갈 수 있는 첫 디딤돌 정도로 이해해 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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