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107] 코로나19 시대, 한 프리랜서 사진가의 생활 / 이동건

by 철폐연대 posted Jul 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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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코로나19 시대,
한 프리랜서 사진가의 생활

 

이동건 • 철폐연대 회원, 사진가

 

 

 

음식 사진을 찍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일이 끝나고 전화를 해보니 임용현 상임활동가였다. <질라라비>의 회원 코너인 ‘살아가는 이야기’에 글을 써 달라는 제안을 한다. 5월 초에 통화를 했지만, 5월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가 있었다. 그래서 글은 쓰겠지만, 6월에나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살아가는 이야기라…. 뭘 가지고 쓰지? 아니 근데, 내가 요즘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지?’

 

철폐연대 자료실에서 다운을 받아 읽은 ‘프리랜서 노동 뜯어보기’ 자료집이 머리를 스쳐 갔다. 당시에 자료집을 읽으면서 내 노동을 투영해 봤었다. 나는 노동자 같으면서 같지 않았다. 개인사업자인 자영업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개념(전문성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명의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지휘, 감독을 받지 않는 특징)’의 프리랜서도 아니었다.

 

나는 1년 가까이 음식배달 플랫폼의 음식 사진을 찍는 일을 프리랜서로 하고 있다. 이걸 써 보면 어떨까? 작년 여름에 ‘쿠팡이츠’를 시작으로 ‘요기요’를 거쳐, 지금은 ‘배달의 민족’에서 일을 받아서 음식 사진을 찍고 있다. 음식배달 플랫폼 업체들은 프리랜서 노동자를 사용하는 방식은 같으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이러한 이야기를 적으려고 한다. 그리고 언제 일거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프리랜서이지만, 아직은 ‘현직’이라 가명으로 글을 쓴다.

 

첫 번째 음식배달 플랫폼, 쿠팡이츠

 

지난여름, 아는 동생들과 저녁을 먹게 됐다. 한 친구가 저녁밥을 먹으면서 틈틈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저녁을 다 먹고 커피 한 잔을 하면서도 그 친구가 핸드폰을 꾸준히 확인하는 것을 보면서 ‘기다리는 전화나 문자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후 8시 30분이 넘어서야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확인하고는, 카페에 비치된 정사각형 휴지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다 쓰고 난 다음에는 나가서 한동안 통화를 하고 들어왔다. 다른 게 아니라, 내일 일하러 갈 음식점 목록을 조금 전에 받아서 지금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쿠팡이츠에서 음식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소개로 나도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렇게 음식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 노동자로 일을 시작했다.

 

노동조건

 

내가 하는 일은 촬영 장비를 바리바리 챙겨서 쿠팡이츠에 입점(?)한 음식점에 방문해서 배달 음식을 촬영하는 것이다. 쿠팡이츠는 외주업체인 ‘A스튜디오’에 음식 촬영을 할 수십 개의 음식점 목록을 주고, 이후 스튜디오는 스튜디오에 속한 프리랜서 사진가에게 촬영할 음식점을 분배한다. 프리랜서 사진가는 음식점에 가서 음식들을 촬영하고 사진 파일을 웹하드에 올리면 한 건이 마무리가 된다. 이와 같이 일을 처리하면 건당 ○만 원을 받는다.

 

음식 촬영 한 건당 몇 만원을 주고, 쿠팡이츠나 스튜디오는 다른 노동조건은 일절 책임지지 않는다. 카메라와 조명, 동조기, 소프트박스 등의 촬영장비와 배경지, 키친크로스, 그리고 접시, 컵받침 등의 식기류와 인테리어 소품 등등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음식점으로 이동할 때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준비하고 챙겨야 할 짐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장비와 소품 등은 프리랜서 사진가가 사서 준비해야 할 몫이다. 또한 스튜디오는 자차를 ‘반드시’ 강제하지 않는다. 다만 자차로 이동하는 프리랜서 사진가에게 더 많은 촬영 건을 분배하는 ‘안배’를 한다고 한다.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아도 나머지 공백은 다들 눈에 선할 것이다.

 

자기 차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는 음식점의 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스튜디오가 프리랜서 사진가 사는 곳 근방의 음식점을 배정한다고 하지만, 쿠팡이츠가 경기 남부 지역의 음식점 목록을 주면 스튜디오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러한 경우에 나는 한강의 북쪽에 살지만, 화성시, 시흥시, 오산시, 평택시, 안성시까지 가야 했다. 이처럼 장거리로 이동할 경우에, 거리에 따른 어떠한 보조도 없다. 지급되는 금액은 여전히 건당 몇 만원이 전부이다.

 

프리랜서라는 미명 하에 악조건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쿠팡이츠의 임금지급 시기는 프리랜서 사진가 사이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쿠팡이츠는 매달 15일을 기점으로, 앞의 한 달 동안 촬영한 것을 정산한다. 정산한다, 사회 통념상 정산을 한다고 하면 지불해야 할 해당 금액을 계산하여 지급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쿠팡이츠의 정산은 국어사전의 뜻 그대로이다. ‘정밀하게 계산하다.’ 정산한 15일을 기점으로 쿠팡이츠는 두 달 후에 일한 임금을 지급한다. 즉, 8월 16일부터 9월 15일까지 일한 임금을 9월 15일에 정산하여 11월 15일에 지급한다. 쿠팡(쿠팡이츠 말고)은 전자상거래 업계(11번가, 옥션 등)에서도 정산이 40~50일로 가장 긴 편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수만의 입점업주들에게도 저러한 행태를 보이는데, 백여 명 안팎(추측)의 프리랜서 사진가에게 어떠한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불확실성

 

‘프리랜서 노동 뜯어보기’ 자료집에서 확인한, 유럽연합의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근로조건에 관한 지침’을 보면서 내 노동의 불확실성에 대해 새삼스레 놀랐다. 쿠팡이츠에서 프리랜서로 일할 때 ‘불투명하고 예측 불가능한 근로조건’의 ‘소소한 것’들 중에 하나가 다음 날 촬영 일정이 전날 오후 7시와 9시 사이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촬영 일정은 미리 잡히겠지만, 촬영자는 촬영 열몇 시간 전에 그 일정을 알게 된다. 촬영 목록을 받고, 늦은 시간에 촬영 일정 확인을 위해 음식점에 전화를 해야 한다. 촬영 시간이 겹치는 경우에는 시간 조정을 위해 전화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저녁마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그 시간에 사람을 만나거나 운동을 할라치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음식배달 플랫폼의 후발주자인 쿠팡이츠는 수도권의 수많은 음식점을 촬영하면서 속도전을 펼쳤다. 이 속도전을 위해 많은 프리랜서 사진가가 투입됐다. 코로나19로 팬데믹이 선언되면서 행사와 결혼식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프리랜서 사진가들은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처럼 실업자와 같은 신세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나 또한 다른 프리랜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위와 같은 상황과 조건이 맞물리면서 프리랜서 사진가들은 쿠팡이츠의 속도전에 빨려 들어갔다.

 

쿠팡이츠가 여러 개의 외주업체에 촬영을 맡기면서 외주업체 또한 ‘안정적인’ 프리랜서들을 확보하기 위해 매력적인 당근을 내놓았다. 내가 속한 업체는 주 4일 이상 촬영을 하면, 하루에 촬영 3건을 최소한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게다가 주 4일 이상 일하는 사람들에게 촬영을 먼저 배분하고 남았을 경우에, 일주일에 하루 이틀 일하는 프리랜서에게 돌아갔다. 플랫폼 자본이 플랫폼 노동자를 다양한 인센티브라는 줄로 부리듯이, 외주업체는 프리랜서 사진가들의 목에 일거리와 우선권이란 줄을 걸었다.

 

다만 이 장밋빛 목줄도 삽시간에 빛이 바랬다. 일을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일거리는 줄어들었고, 촬영지는 멀어졌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고양에서 파주로, 안양에서 화성과 평택으로, 의정부에서 양주와 동두천으로. 작아지고 희미해지던 일거리는 띄엄띄엄 찾아오기도 했다. 다음 날 일정을 전날 밤에 알 수 있다는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직업소개소에 앉은 일용직 건설노동자처럼 일거리의 유무를 밤마다 ‘카톡’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불안이 고조되면서, 일거리를 놓고 프리랜서끼리 볼썽사나운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이 됐다. 프리랜서 사진가는 외주업체가 만든 구글 스프레드시트(입력 순서대로 일을 배정)에 자신이 일하기를 희망하는 날짜에 자신의 이름을 기입한다. 일거리가 많을 때는 다들 느긋하게 입력했다. 외주업체에서 독촉을 할 정도로 한껏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스프레드시트가 리셋이 되는 시간에 프리랜서 사진가들은 수강신청을 하는 대학생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제는 ‘광클’을 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입력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졌다고 외주업체에 항의하는 사람부터…. 외주업체는 프리랜서 사진가가 잘못이나 실수를 하면 며칠 동안 일을 주지 않는 패널티를 부과했는데, 빠른 순번의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에 패널티를 줘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점점 줄어드는 파이를 놓고 날카로운 말들이 오갔다. 그리고 나는 쿠팡이츠 일을 그만뒀다.

 

쿠팡이츠의 수도권 촬영이 줄어들고 부산, 대구 등의 광역시에서도 촬영이 시작됐다. 타지역 촬영을 위한 외주업체들 입찰 과정에서 촬영 건당 금액이 낮아졌다. 기존 촬영 금액의 약 60~70%로 쪼그라들었다. 딱 절반이 된 곳도 있었다. 결국 노동조건은 후퇴했고, 불확실성은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