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202303] 이곳은 자본과 정권에 맞선 투쟁의 최전선이다 / 김헌주

by 철폐연대 posted Mar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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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이곳은 자본과 정권에 맞선 투쟁의 최전선이다

 

 

김헌주 •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 대표 / 철폐연대 회원

 

 

 

“‘인간사냥!’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리고는 ‘맞다, 인간사냥이다. 한국 분들이 저렇게 많이 모여 인간사냥을 막아 내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뭐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2월 10일 대구출입국 앞에서는 ‘여수보호소 화재참사 16주기 추모 및 미등록이주노동자 강제단속추방반대 투쟁선포식’이 열렸다. 이날 베트남 노동자들이 많이 참석했다. 집회 후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한 베트남 노동자가 나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순간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돌이켜 보면 이주노동자투쟁은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는 투쟁이었다. 2003년 이용석 열사가 분신했던 비정규직 투쟁 현장,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마치고 가두투쟁을 전개하다 연행되고 외국인보호소에서 투쟁을 이어가다 결국 강제추방된 평등노조 이주지부 투쟁국장이었던 비두 동지가 한 말이 생각났다. 언젠가 마석에서 열렸던 이주노동자집회, 아직은 한국말이 어색한 비두 동지였지만 그 집회에 참석했던 민주노총 동지들이 불렀던 노래, 그 노래 가사가 비두 동지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는 그 말이 생각났다.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선포식이 있던 날 페이스북으로 집회상황을 생중계했던 한 이주활동가는 그날 수백 명의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날 그 이주 동지는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수십 통의 감사전화를 받았고, 한국 동지들 덕분에 자기가 감사인사를 많이 들었다고 고마워했다. 이후 대구출입국 앞에서 이어지고 있는 1인시위, 금요일 집중집회를 보면서 안산의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도 안산에서 집회를 하자면서 SNS를 통해 서로를 독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8. 본문사진1.jpg

2023.02.10. 여수보호소 화재참사 16주기 추모 및

미등록이주노동자 강제단속추방반대 투쟁선포식. [출처: 이재각]

 

 

다시 단속추방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합동단속. 고용노동부, 국토부, 경찰까지 합세했다.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으니 새로운 인력을 대거 들여오겠다고 한다. (세상에, 사람이 아니라 인력이란다!!!) 새로운 인력이 대거 들어올 거니까 용도폐기(?)해야 할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인간사냥이 시작되었다. 자본과 정권은 늘 든든한 저들만의 연대(?)로 우리를 옥죄고 있으며 가장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의 하나가 미등록노동자를 향한 인간사냥, 단속추방이다. 저들은 또 앵무새처럼 되뇐다. ‘엄정한 법질서 확립!!!’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연대회의’ 긴급집행위가 열렸다. 우리는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리라’라는 우리의 원칙이 있다. 아무리 급해도 치밀하게 투쟁계획을 짜야 한다. 부딪쳐서 깨어지는 것은 결국 우리 동지들이므로. 선포식 일정을 점검하고 1인시위와 금요일 집중집회 계획을 짰다.

 

나도 안동지역의 5명의 동지들과 함께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구출입국 앞에 도착했을 때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50명 정도는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내 어리석은 바람을 나무라기라도 하는 듯 약 200명 정도의 동지들이 모였다. 금속노조의 푸른 투쟁조끼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늘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에 서는 공공운수노조 경북지역지부 동지들도 많이 보였다. 그날 집회 사회를 보는 내 목소리가 많이 떨렸으리라 생각한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대표의 연설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울렸다. 비록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박 동지의 그 절절한 진심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차별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는 동지들끼리 언어가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뜨거운 연대의 열기. 신경현 동지가 쓴 시에 곡을 붙여 임정득 동지가 부른 노래, ‘달리기’는 단속반을 피해 달아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절한 심정을 담아 선포식에 참석한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매일 대구출입국 앞에 선다. 혹은 1인시위로 혹은 집중집회로. 출입국을 드나드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인증샷도 찍고, 이주노동자들이 끓여 오는 커피도 나누어 마시면서 누구 말마따나 ‘투쟁은 치열하게 그러나 즐겁게!’

 

 

8. 본문사진2.jpg

2023.02.17. 금요집중집회. [출처: 대경이주연대회의]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의 문제를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소위 공권력에 맞서야 하는 우리의 무력감이다. 그건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출입국 앞에서 앰프를 틀어 놓고 이주노동자 밴드의 ‘Stop Crackdown!’을 들으면서 1인시위를 하는 이 시간에도 전화벨이 울린다. 안동의 풍산시장에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수갑을 찬 채 또 연행되었다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저항해야 한다. 인간사냥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으므로. 그래서 대구경북이주활동가들의 이름으로 발표한 호소문 일부를 다시 한번 옮긴다.

 

다시 여수보호소 화재참사 16주기입니다.

16년이란 시간이 흘렀건만 사람이 사람을 사냥하는 이 비극을 또다시 우리는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고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마음을 모아야 할 이 엄중한 시각에 이주노동자들을 사냥하는 발길이 이주노동자들을 다시 사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 비극을 막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몸뚱아리밖에 없다 하더라도 이 몸뚱아리 하나로 어깨를 걸고 바리케이트를 친다면, 단 한 명의 이주노동자라도 우리가 친 바리케이트로 만든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단속추방의 칼날을 피할 수만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맨몸으로 어깨를 건 이 바리케이트에 이주노동자들도 함께할 것입니다.

 

절절히 외칩니다

 

단속추방 중단하라!

인간사냥 중단하라!

모든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게 체류비자를 발급하라!